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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지뢰금지운동, 이제부터시작이죠”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97노벨평화상 수상한 대인지뢰금지운동가 조디 윌리암스

본문

  97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디 윌리암스가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조디 윌리암스의 한국 방문은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초청으로 2일부터 5일까지 3박4일간 이루어졌다. 
  조디 윌리암스는 방문 첫날부터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한국정부측과의 면담과 비무장지대 답사, 국내 대인지뢰 피해자에게 의족 전달, 시민단체 초청 토론회와 강연회에 참석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함께걸음은 국경의 장벽도 뛰어넘어 대인지뢰 금지운동의 선봉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디 윌리암스를 만나 보았다.


 반전운동하며 싹튼 인류애와 시민연대의식

  우리 사회에 4.19 세대와 모래시계 세대가 있듯 미국에는 반전세대가 있다.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해서 전세계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편을 가르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1960년대, 자본주의 종주구인 미국은 배트남전에 개입할 것을 선언했다. 이 때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많은 희생자를 낸 바 있는데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미국 정부가 자신했던 것처럼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자, 베트남에 참전한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한 몸으로 귀국을 했다.

  그 때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기성의 제도나 가치관 따위를 부정하고 직접 인간과 자연과의 접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히피족이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국가간의 이념 때문에 죽어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어떤 것도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히피족은 장발과 특이한 옷차림, 기발한 행동 그리고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로 잘못 알려져 있다. 미국과 같이 베트남전에 개입하고 있던 우리 정부로서도 그런 사상이 우리 나라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을 것이다.

  왜 뜬금없이 반전세대니 히피족이니 하며 지나간 일을 꺼내는가 하면 함께걸음에서 지금부터 만나게 될 97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디 윌리암스 역시 반전세대이자 히피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윌리암스가 반전세대였다는 것은 그녀가 대인지뢰금지운동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1950년 10월9일 미국 버몬트 브라틀보로에서 출생한 조디 윌리암스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1967년 윌리암스는 18세의 학생이었다. 그래서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 가장 유행했던 히피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베트남전이 끝난 70년대 초반, 미국이 베트남전과 비슷한 논리로 또 다시 중남미에서도 개입정책을 펴는 것에 반대한 윌리암스는 민간구호단체인 ‘엘살바도르 의료지원단’에서 부팀장을 역임하면서 워싱턴과 나쾨라구아, 엘살바도르 같은 중남미 현장을 오가면서 11년 동안 교육과 의료지원 활동을 했다.

  이 때 윌리암스는 국제 민간운동의 연대운동에 대한 위력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내전과 냉전의 영향으로 폐허가 된 중남미의 전쟁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세게 각국에서 민단단체들이 펴는 연대활동을 보고서 비정부조직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처음 인식하게 됐어요.”

  그렇게 이십대와 삼십대를 중남미에서 반전운동과 교육․의료 활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에도 눈을 뜨게 된 윌리암스는 1991년 베트남 참전용사회(VVAF)로 일자리를 옮겨 반전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그때 그녀는 로버트 뮬러 베트남 참전용사회 대표로부터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ICBL: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대인지뢰금지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터넷의 전자우편으로 대인지뢰금지운동 활성화시켜

- 대인지뢰금지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1년 말부터지만, 윌리암스 씨의 과거활동을 살펴보면 그 전부터 지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지뢰가 다른 무기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몰랐어요. 그것을 사용하는 군인조차도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었죠. 그러나 11년간 중남미 구제활동을 하면서 지뢰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을 무수히 접하면서 지뢰가 다른 무기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지뢰는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죠. 그리고 베트남 참전용사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더욱 대인지뢰는 잔혹한 무기일 뿐 아니라 민간인과 군인,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불법적인 무기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 대인지뢰운동은 다른 운동과 달리 국제적인 연대가 무어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될 당시에는 미국과 독일 이렇게 두 나라 정도에서만 움직임이 있었다고 아는데요. 어떻게 이 운동을 지금과 같이 세계적인 운동으로 키워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할 당시,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죠. 그 때 인터넷을 통해 국제운동을 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버몬트주에 있는 제 집에서 유급 직원 하나 없이 저 혼자서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과 시민운동기구를 상대로 대인지뢰금지운동에 대한 전자우편(E-mail)을 보냈죠. 이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자 할 때, 즉 민간단체에서 활용하기 좋은 운동방법일 겁니다”

  그렇다고 윌리암스가 컴퓨터만으로 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이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만나, 이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그들이 대인지뢰금지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그 결과 윌리암스는 소말리아와 보스니아에서 평화활동을 담당했던 로이드 액스 워시 캐나다 외무장관과 지뢰추방 노력을 해온 패트릭 리시 미국 상원의원, 작년 8월 세사을 떠난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전세계적 유명인사들을 이 운동에 동참시키고 대인지뢰금지운동을 국제적으로 영향력있는 단체로 키워 나갔다. 심지어 은퇴한 미군장성 15명의 지지를 얻어 내기도 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걸프전의 영웅이라 불리는 노먼 슈워츠코프다.

  “1996년 4월 미국 베트남전 참전용사회에서는 퇴직한 미육군 고위장교들과 끈기 있는 대화를 시도했었어요. 그 결과 15명의 미 육군장성이 서명한 편지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된 광고를 뉴욕타임즈지에 실었죠. 그 편지에는 ‘우리는 군사지휘관으로서 대인지뢰를 사용한 후 발생하는 비인간적 결과에 대해 너무나 큰 책임감을 느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다이애나비는 왕족 신분이자 영국 적십자사의 대표이기도 했지요. 우리는 이 좋은 기회를 적극 활용해 적십자사에서 다이애나비를 앙골라에 초청했고, 그녀가 이애 응한 거에요. 다이애나비가 가는 곳엔 언제나 온갖 언론사들이 함께 갔기 때문에 대인지뢰피해자의 얼굴이 구체적으로 세계의 무수한 신문과 방송에 나갈 수 있었죠. 그들은 다이애나비를 통해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대인지뢰로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보고 느끼게 됐을 겁니다.”

 
노벨위원회가 인정한 대인지뢰금지운동

  월리암스의 이런 종횡 무진한 활동으로 인해 불과 6년만에 세게 60여개국에 퍼져있는 약 1천1백여개의 단체가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에 가입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지난 해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대인지뢰금지협약에 1백23개국 정부가 조인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외형과 내용성이 모두 충실한 운동이었다고 불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10월 노르웨이 노벨상수상위원회는 평화상수상자로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과 윌리암스를 공동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항간에는 다이애나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자는 여론도 있었는데 노벨상의 관례상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는 노벨상을 시상하지 않기 때문에 노벨평화상이 조디 윌리암스와 국제대인지뢰운동에게 돌아갔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노벨상을 수상했는지 보다 다이애나든 윌리암스든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이든 어쨌든 노벨상 수상위에서는 대인지뢰금지운동을 인류 평화를 위해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윌리암스 역시 이 점에 있어서 동의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위원회에서 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선정 이유는 두 가지를 밝혔어요. 하나는 무엇보다 대인지뢰금지협약 그 자체에 있는 것이죠. 이 협약이 제정되는 과정에 민간단체들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과 추진력을 제공했다는 것과 그 대문에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실현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새로운 외교무대를 제시했다는 데 있죠.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과 약소국들이 각국의 시민사회와 협력해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인도주의적인 문제의 해결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노벨상 수상위원회는 탈냉전시대인 21세기에 있어서 이러한 우리의 새로운 외교방식이 시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 것 같아요."

  그러나 윌리암스는 노벨평화상 수상이야말로 대인지뢰금지운동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각 나라의 대인지뢰 피해자들이 여전히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고, 미국을 포함한 몇몇 강대국들이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윌리암스는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상금 오십만달러를 지뢰피해자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 세계 최강국이랄 수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현재까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서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강대국이 빠진 이 협약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심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에서는 이러한 강대국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대안을 갖고 계신가요?

  “국제협약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서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단체는 미국 정부가 서명을 하도록 압력을 넣는 활동을 계속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사실 미국 정부도 이 협약에 1백23개국이 서명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히 큰 압력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로는 이 운동의 성공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정보부가 밝힌 사실인데, 지난 3년이래로 대인지뢰를 수출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조차도 1996년 이래 대인지뢰 수출을 완전히 금지하고 지난 12월 오타와회의에 참관단을 보냈을 정도죠. 이것은 중국 정부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첫 번째로 보인 관심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역시 앞으로 서명을 할 것 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는 진짜 이유     

 -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데 미국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한반도에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고 한국 정부 역시 같은 입장입니다. 윌리암스 씨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 차관은 군사상 한국에서 대인지뢰가 꼭 필요한 이유로 ‘북한이 기계화사단을 동원해서 전격적인 침공작전을 펼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 대인지뢰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러나 대인지뢰는 여기에 별로 효과가 없어요.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전차지뢰의 효율성이죠. 우리가 말하자는 대인지뢰는 대전차지뢰와 무관한 것이거든요. 그러므로 북한의 기계화사단을 막기 위해 대인지뢰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우스꽝스러운 것이죠. 또 대인지뢰보다 더 위험한 화학무기사용금지협약은 북한이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남한 정부가 가입한 사실만 봐도 대인지뢰가 남한의 군사상 곡 필요한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한국 정부가 4자회담 과제로 대인지뢰문제를 상정할 것과 이 협약에 서명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 그렇다면 미국이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서명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한반도의 대치상황이 아닌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인데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보고 있어요. 첫째이유는 미국이 21세기 신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 하는 것이죠. 즉 현재의 대인지뢰금지협약은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을 비롯한 비정부기구와 캐나다,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중소죽가가 주도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대항해서 2010년까지 대인지뢰 완전제거를 목표로 하는 대인지뢰제거 2010계획(Demine 2010 Initiative)을 주장하고 98년 5월에 워싱턴에서 대규모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요. 둘째는 미국 국방부의 군사전략이 민간단체의 압력에 의해서 수정되는 것을 미 국방부가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슈워츠코프, 존슨 등 미국의 전직 장성들이 대인지뢰금지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미국 국방부는 대인지뢰금지협약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죠. 셋째로 미국은 북한군이 침공할 경우 진입이 예상되는 길목에 항공기로 지뢰를 대량 살포하는 작전을 수립해 놓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국정보부에 의하면 비무장지대와 서울 사이에 1백만개 이상의 대인지뢰를 살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 대인지뢰제거협약에 서명할 수 없는 것이죠.”

  윌리암스의 이러한 논리는 그 동안 국내에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은 당황스러워할 수도 있다. 과연 한반도에 대인지뢰는 필요한 무기인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정말로 1백만개 이상의 지뢰가 살포되는 것인지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윌리암스의 이러한 주장은 거짓이 아니다.

  지난 2월3일 성공회성당에서는 대인지뢰문제와 관련한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윌리암스가 위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자, 취재를 나온 일본 기자 한 명이 “현재 일본에는 1백만개의 대인지뢰가 있다. 그것은 일본 정부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한반도로 운반해 살포할 계획으로 비축하고 있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 토론회장 사람들을 잠시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윌리암스는 한국 정부가 국방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주권을 행사해서 독자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당시 당선자)은 이러한 윌리암스의 면담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유는 김 당선자의 일정이 바쁘다는 것과 김영삼 정부가 한반도에서는 대인지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이서 국익에 반하는 인사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대인지뢰금지운동은 장애우운동의 일부

  결국 윌리암스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지뢰피해자들은 그를 기꺼이 맞았다. 윌리암스는 지난 해 함께걸음 10월호에 처음 소개돼 국내 대인지뢰피해자의 실상을 밝힌바 있는 경기도 파주시 금파리에 사는 이덕준 씨 뿐만 아니라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지뢰피해자 여섯 명을 직접 찾았다.

  이 곳에서 윌리암스는 이덕준 씨와 지뢰피해자들에게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가 그 동안 모금한 기금과 의족을 전달했다. 이 기금에는 윌리암스가 한국에서 대인지뢰관련 강연회와 토론회에서 받은 강연료 전액도 포함돼 있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국내 지뢰피해자에게 의수족을 한 번도 지급하지 않은 것과 무척 대조적인 일이었다.

- 대인지뢰금지운동은 장애발생 예방과 이미 발생한 지회피해자 구제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따라서 지뢰금지운동은 장애우운동의 한 영역으로도 볼 수 있는데, 윌리암스 씨의 장애우운동에 대한 생각과 장애우단체들이 지뢰금지운동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장애우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제게는 청각장애가 있는 오빠가 한 명 있어요. 어려서부터 오빠와 함께 자라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장애우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왔어요. 그렇지만 제가 오빠의 고통을 구할 방법은 없더군요. 다만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장애만이라도 막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전쟁과 대인지뢰를 반대하는 것으로 이어진 셈이죠. 결국 장애우문제와 지뢰문제는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인지뢰문제는 다른 장애우문제와는 다른 정치적 문제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뢰금지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한국의 대인지뢰금지운동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윌리암스는 5일 나가노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올림픽위원회는 20세기 마지막 올림픽인 이번 올림픽에 세계의 여러 가지 많은 평화이슈들 중 대인지뢰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보고, 개막식 때 대인지뢰제거를 위한 평화의 호소를 채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기간 우리 언론은 이번 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대인지뢰라는 것을 알리기 보다는 우리 선수 중 누가 어떤 메달을 땄느냐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올림픽이 계속 진행되던 12일 모 종합일간지에는 윌리암스가 국제지뢰금지운동 기구의 대표직을 사퇴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흘렀다. 노벨평화상 상금 분할문제 등 조직 내부의 심각한 갈등으로 윌리암스가 대표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기사였다. 그러나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정책홍보담당 김창수 씨는 그녀가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 대표직을 사퇴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한다. 미국정부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서명할 것을 그 동안 강력히 주장해 온 윌리엄스의 강경한 입장을 미 베트남전 참전용사회에서 수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빚어진 갈등이라는 것이다.

  십대후반부터 사십대후반이라는 인생의 황금기를 오로지 반전운동과 대인지뢰금지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 윌리암스는 끝내 전세계 모든 나라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서명하는 것을 보지 못한채 대인지뢰금지운동 대표직을 물러나게 됐다. 비록 자신의 조국일지라도 잘못된 길을 갈 때는 ‘NO'라고 말해왔던 윌리암스는 이번에도 같은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직을 물러난 윌리암스의 미래보다 윌리암스가 없는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게 될지 더 궁금하다.

 

자료제공/ CBS시사자키

작성자노윤미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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