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2] “사랑으로 가족들 반대 극복할래요” > 세상, 한 걸음


[사람사는 이야기 2] “사랑으로 가족들 반대 극복할래요”

장애우연인 이황희 문경양 씨

본문

 연인들 중에는 비슷한 점이 많은 연인과 상반된 점이 많은 연인이 있다. 비슷한 점이 많은 것에 긍정적인 연인들을 만나보면 “두 번 말할 것을 한 번 말해도 알고, 눈빛만 봐도 상대가 뭘 원하는지 이해하기 때문에 편해서 좋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상반된 점이 많은 연인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대가 갖추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가며 더 완벽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랑을 하면서도 조건이 안맞거나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려하는 연인이 있다면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봐도 좋을 듯하다.

 전남 함평이 고향인 문경양(27) 씨와 경남 밀양이 고향인 이황희(31) 씨는 올해로 만난 지 삼 년째에 접어드는 제법 오래된 연인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어른들 얘기에 따르면 전라도 여자와 경상도 남자는 천생연분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문경양 씨와 이황희 씨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듯하다. 전라도 여자 경양 씨의 상냥한 성격과 경상도 남자 황희 씨의 무뚝뚝함이 옛말과 하나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문경양 씨는 어려서부터 척추장애로 인한 왜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다. 그에 비해 고등학교 때 우연히 축구공에 머리를 맞고 청력을 손실한 이황희 씨는 문경양 씨와는 장애를 갖게 된 시기와 장애종류도 다르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 거의 두 배 가까이 벌어지는 키 차이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시선을 고정시킬 정도다. 그러나 두 사람은 뭇 사람들의 그러한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꼭 잡고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의 걸음에 맞춰 유유히 지나간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태연하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두 사람 모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네 명의 오빠 사이에서 외동딸로 자란 경양 씨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오빠들이 매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또 집에 데려왔기 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그리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경양 씨도 점차 나이가 들면서 이서에 대해 눈을 뜰 무렵 자신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상대도 그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서서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는 미팅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경양 씨의 유일한 낙은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양 씨는 한꺼번에 부모님 두 분을 잃은 한 소녀의 사연을 라디오에서 듣고 그녀와 펜팔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에게 육체적인 도움은 줄 수 없더라도 정신적인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양 씨는 자신의 장애가 걸려 처음부터 자신의 장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친구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왔다.

 그렇지만 경양 씨는 그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장애에 대해 무척 민감했던 터라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경양 씨의 거절에 상심한 펜팔 친구는 경양 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미 다 밝혀서 알고 있는 사실을 왜 그렇게 두려워하니? 자꾸 남의 뒤에 숨지만 말고 떳떳하게 나와서 네 장애를 내보여라.” 경양 씨에게 그 친구의 말은 큰 충격이고 아픔이었다. 그 후 경양 씨는 그 펜팔 친구가 말한 것처럼 점차 남 앞에 나서기 시작했고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럼 이제 이황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문의 대를 중하게 여기는 경남 밀양 지방의 한 농가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난 이황희 씨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신체 건강한, 보통 청년이었다. 그런 황희 씨가 청각장애를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반 대항 축구시합 때였다. 반대표 선수로 출전한 황희 씨가 날아오는 공을 머리로 받던 순간 심한 통증을 느꼈고, 그 후 서서히 청령이 희미해져 현재는 보청기를 착용해야만 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황희 씨는 사고 후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우체국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웬만한 소리는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청력이 떨어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황희 씨는 자신의 청력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됐다. 전화로 우편주문을 받고 우편물을 보냈는데 그것이 그만 전혀 다른 곳으로 배달이 된 일이 발생했다.

 그 후 점차 전화업무에 자신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모두 자신을 흉보는 것처럼 들려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황희 씨는 멀리 경기도 일산에 있는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황희 씨는 경양 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구십오년 취업 나가기 한 달 전쯤 되는 어느 날 황희 씨는 같은 귀금속과에 다니면서도 장애가 서로 달라 잘 모르고 지내던 경양 씨를 처음 보게 됐다.

 “저희 옆 반에 청각장애우 반이 있어서 쉬는 시간때 가끔 청각장애우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한 청년을 보게 됐어요. 그 청년은 청각장애가 있는데도 수화도 잘 못해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 청년을 유심히 지켜봤죠. 그 청년은 수화를 못하는 대신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했는데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제게는 잘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대신 그 청년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줬죠.”

 중도에 청각장애를 입어 아직 잔존청력이 남아 있는 황희 씨는 보청기를 착용하면 다른 사람의 입모양을 보고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대신 수화를 할 줄 몰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양 씨를 알고부터는 경양 씨가 황희 씨의 말동무가 되면서 황희 씨는 그 동안 하지 못한 말을 다 털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양 씨와 황희 씨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정이 들어갔다.

 한 달 후 두 사람은 일산직업훈련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다른 곳으로 취업이 됐다. 그러나 주말이면 다른 곳으로 취업나가 일산직업훈련학교 동기들끼리 모임을 만들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황희 씨에게 문제가 생겼다. 취업한 곳에서 직장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얼마 못 다니고 그만 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경양 씨는 직장이야 또 찾으면 될 것이라며 상심한 황희 씨를 위로했으나 청각장애가 있는 황희 씨가 직장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경양 씨는 열일을 제쳐두고 황희 씨가 다시 직장을 찾는 것을 도왔다.

 황희 씨가 두 번째로 취업한 곳은 귀금속을 세공해서 해외로 수출하는 회사였다. 다행이 입사하고 처음 들어간 부서에 다행히 황희 씨와 같은 청각장애우 동료가 있어 황희 씨는 전에 일하던 곳에서보다 더 빨리 적응을 할 수 있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황희 씨가 일도 잘하고 체력도 좋으니까 수출부로 부서이동을 시켰다. 사실 황희 씨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청각장애우 동료가 있는 게 큰 위안이었기 때문에 그 부서를 떠나고 싶지 않아서 본인의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은 수출부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황희 씨는 수출부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황희 씨보다 나이가 어린 기사들이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황희 씨를 아랫사람 취급하자 황희 씨는 본인이 장애우이기 때문에 동료들이 무시한다고 생각을 해 더욱 사이가 나빠졌던 것이다. 당시 경양 씨도 황희 씨 혼자 직장생활하는 것이 걱정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황희 씨와 같은 회사로 옮긴 터라 경양 씨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양 씨는 시간이 지나면 점차 좋아지리라 생각했는데 황희 씨와 동료 사이가 갈수록 악화되자 이를 보다 못한 경양 씨가 어느 날 황희 씨 몰래 수출부 기사들을 찾아갔다.

 경양 씨는 동료들에게 황희 씨가 중도에 장애를 갖게 돼서 아직 자신의 장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고 성격이 내성적이니 좀 이해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 사정을 들은 동료 기사들도 경양 씨의 설명을 듣고 황희 씨를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 번 생긴 오해가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황희 씨는 다시 처음에 근무하던 부서로 옮겨왔다. 그러나 이번엔 원래 부서에서 ‘황희 씨가 일을 못해서 다시 내려 온 것’이라고 수군대는 통에 남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황희 씨는 아예 직장을 그만 두고 말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을 황희 씨가 이렇게 나와 버리자 경양 씨도 그 때 많이 상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희 씨가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을 경양 씨 역시 오래 전에 이미 겪은 바 있기에 경양 씨는 그럴수록 더 황희 씨 곁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양 씨는 또다시 황희 씨와 직장을 구하러 다닌 결과 최근 청음회관의 소개로 모 건설회사에 취직을 해 금형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직장을 구하기까지의 과정 역시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경양 씨나 황희 씨 모두 한결같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장애우가 취업하는 것이라고 말할까?

 “그래도 경제가 이렇게 어렵지 않을 때는 사람을 구하는 업체가 좀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요. 게다가 문의하는 곳마다 전화상으로는 안돼니까 꼭 와야 한다고 하고, 장애우고용 관련기관마저도 전화로는 접수를 받을 수 없다며 일단은 오라는 거예요. 지체장애우의 경우 그 많은 회사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니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편의시설이 잘 돼있지 않고, 그래서 구직자가 원하는 직종을 전화로 말하면 장애우고용 관련기관에서는 어느 업체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서비스를 실시해주면 좋겠어요.”

 최근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체제로 인해 장애우의 취업문이 더 좁아졌을 것이라고 이미 짐작했지만 경양 씨와 황희 씨의 이야기로 듣고 그 심각함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경양 씨는 황희 씨와 함께 이곳 저곳 면접을 다닐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척추가 휜 경양 씨는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로를 느낄 뿐 아니라 최근에 한 척추수술로 보조기를 착용하고 다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척추가 휘어서 늘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경양 씨가 금은 세공일을 하면서 매일 같이 앉아서 야근까지 하다보니 허리가 더 나빠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구월쯤 경양 씨는 혼자 병원에 다니면서 검사를 받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담당의사는 처음엔 척추 수술이 힘들다며 일부분만 하자고 제안했으나 마침 세계적인 척추 전문의가 국내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을 해 경양 씨는 목부터 척추 전체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일은 시월칠일이었고, 다행이 수술결과가 좋아 경양 씨는 수술 후 한 달가량 병원에 더 입원해 있다가 십일월 퇴원을 한 후,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요양을 하러 내려갔다.

 경양 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황희 씨가 퇴근 후 병원으로 찾아와 매일 만날 수 있었지만 경양 씨가 전남 함평으로 내려간 후 경양 씨와 황희 씨는 사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일산직업전문학교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었다.

 고향에 내려 온 경양 씨는 보조기를 턱부터 머리까지 감싸고 시골집에서 하루종일 누워서 보냈다. 그러나 그 사개월을 경양 씨는 마음 편하게 보낼 수 만은 없었다. 황희 씨가 회사에 잘 나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도 해 매일 같이 황희 씨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다.

 “오빠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전화통화를 해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지만, 밥 먹었냐는 정도의 간단한 말은 오빠가 들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오빠가 대답을 하죠. 그 짧은 몇 마디를 듣고 그 날 오빠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목소리가 좋지 않을 때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편지를 쓰죠. 사회라는 것이 우리에게 맞춰주지 않잖아요. 그러니 오빠가 이해하고 맞추고 일하라구요. 그리고 혹 동료들한테 서운한게 있더라도 바빠서 그런 것이지 본심은 아닐테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충고하죠.”

 그래서 경양 씨는 시골에 내려간 사개월 동안 비록 몸은 떨어져 지냈으나 정신적으로는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양 씨가 매일 같이 편지를 보낸 것에 비해 황희 씨의 답장은 모두합해도 스무 통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을 꺼내며 경양 씨가 황희 씨를 살짝 흘겨보자. 황희 씨도 미안했던지 “매일 편지를 보내니까 회사 사람들이 놀려서 불편했다”며 오히려 대충 얼버무렸다. 좋은 것을 좋다고 바로 말하지 않고 돌려서 표현하는 황희 씨의 성격을 잘 아는 경양 씨는 그렇다고 해서 황희 씨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는다. 황희 씨만이 가지고 있는 더 큰 장점인 소박함과 순수함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다리가 불편하니까 오빠가 항상 제 손을 잡고 다녀요. 한번은 전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 한쪽에 인형집에서 진열해 놓은 인형이 바깥까지 나와 있더라구요. 그걸 보고 오빠가 먼저 내려가 그 인형을 말없이 한쪽으로 치워줄 때 저는 감동했어요.”

 더불어 두 사람이 함께 외출을 할  때 겪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한다.

 “저희들이 데이트를 하거나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함께 외출하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저희를 쳐다봐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른들은 한 번 보고 그냥 가지만 꼬마들은 계속 따라오면서 놀릴 때도 있죠. 어린 아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으니 그럴 땐 정말 너무 속상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놀림을 당할 때 옆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황희 씨의 안타까움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황희 씨를 달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경양 씨 자신이다. “애들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경양씨는 꼬마들에게 다가가 “얘들아, 너희들 차조심하지 않고 다니면 누나처럼 이렇게 되니까 조심히 다녀야 돼. 알았지?” 그러면 아이들은 그냥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잘 감싸고 도와주는 이들에게는 서로의 단점을 단점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맞는 커플이라 해도 한두 가지쯤 잘 맞지 ㅇ낳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경양 씨와 황희 씨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거닐며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경양 씨와는 달리 황희 씨는 큰 소리가 울리면 머리가 울려 오히려 두통이 생긴다. 황희 씨는 외식을 좋아하는 반면 경양 씨는 외식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럼 이럴 때 두 사람은 어떻게 이 차이를 극복할까?

 첫 번째의 경우는 황희 씨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경양 씨가 양보하면 한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같은 경우는 경양 씨가 결코 양보하지 않는 부분. 그래서 설득을 한다고. “이제 나이도 있는데 맨날 데이트하는데 돈을 쓸 수만은 없잖아요. 결혼을 하려면 돈을 모아야죠.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가게라도 하나 차리려면 지금부터 허리띠 졸라매야 하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경양 씨의 말을 황희 씨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몸도 약한 경양 씨가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등 무리하는 것이 안쓰러워 모처럼만에 맛있는 음식을 사먹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만큼은 아무리 이해심 많은 경양 씨나 황희 씨지만 쉽게 양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두 사람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사랑싸움인 만큼 그대로 남겨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장차 서로 결혼을 하고 직장도 안정이 된다면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니까.

 서로가 가진 장애로 인해 여느 연인들과는 또 다른 시련을 지나 온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뢰가 쌓여 있다. 이것은 두 사람 모두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요즘 연인들은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 같아요. 좋아하면서도 결혼상대로서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헤어지기도 하는데 전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봐요. 돈이나 능력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다 자기 노력하기 나름이죠. 저희도 초기에 오빠가 직장을 적응을 못하고 직장을 자주 옮기니까 오빠랑 사귀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랑이란 서로가 얼마나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제가 오빠에게 도움이 되고 오빠 역시 제게 힘이 되는 것처럼요.”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독립할 만큼 아직 돈을 모으지 못한 탓도 있지만, 황희 씨의 부모님이 경양 씨를 며느리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양 씨 부모님과 오빠들은 경양 씨만 좋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황희 씨 부모님은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된 외동아들인 황희 씨의 장애를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대로 가문을 중시해오는 황희 씨 집안 어른들도 경양 씨가 갖고있는 신체적 결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빠가 보기와는 달리 정이 많고 마음도 여려요. 그래서 부모님을 거역하지 못하니까 혼자서 많이 힘들어해요. 그런 오빠가 너무 가여워서 한번은 제가 오빠한테 그냥 고향에 내려가서 직장을 구하라고 한 적도 있어요. 눈에서 멀어지면 서로 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덴 오빠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헤어질 수도 없고 결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시간만 흐르자 제가 우리끼리 혼인신고만 하고 살자고 한 적도 있는데 그건 저희 부모님이 더 반대를 하세요. 그래서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오빠가 부모님을 설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그저 황희 씨가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더 자주 안부 전화 드리고 편지를 자주 써서 부모님이 마음을 돌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사귀어 온 삼 년이라는 기간동안 자신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서로에게 귀와 입과 발이 돼왔던 이들에게 이제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았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하고 따뜻한 후원자인 가족들의 반대를 이들이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켜보도록 하자.

작성자노윤미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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