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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사람]"작은 손짓 하나에도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청각장애자복지회 기획부 김예경

본문

손끝으로 뜻을 전하는 눈짓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청각장애우들과 함께 오늘도 어지럽게 흘러가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맑은 소리"를 걸러내기 위해 하루가 짧은 김예경씨의 일과 삶의 얘기를 들어본다.

 으리으리한 호텔이며 대형 옷가게들의 빛나는 진열장이 지나는 사람들을 조금은 주눅들게 만들곤 하는 서울특별시의 금싸라기 땅 강남. 그 유명한 부촌 강남구 역삼동의 한 켠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청음회관"이라는 이름이 내걸려 있는 아담한 빨간 벽돌 건물. 사회복지법인 한국청각장애자복지회의 보금자리.
 복지회의 기획부 홍보팀 팀장인 김예경씨(33)의 일터가 바로 이곳이다. 1년에 두 번 발간되는 반년간지 "청음". "한청소식"이 그의 책임 아래 세상에 나온다. 그밖에 복지회의 전반적인 대외홍보 업무와 수화비디오 제작 등도 홍보팀의 몫이다.
 예경씨가 지금의 일터에 자리잡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때 인연을 맺은 수화 덕택이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수화강습 안내방송이 그를 잡아당긴 것이다. "수화란 게 어떤 걸까." 일단 궁금해진 예경씨는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좀 별스런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과 수화로 얘기하면 재미있을 거라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농아복지회 사무실을 찾아 나섰다.
 
서부역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듣고 무조건 찾아 헤매 다녔던 81년의 겨울, 그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간신히 찾아 들어간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김완 관장님과 이정섭 부장(한국청각장애자복지회 복지부장)님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따뜻했어요."
 그 해 겨울, 눈오던 날의 헤매임이 예경씨의 일터를 이곳으로 다져준 것이다. 흔히 그렇듯 예경씨도 처음엔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아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밑바탕으로 "청림회"(수화통역 자원봉사 동아리)를 탄생시키는 데 힘을 보탰고, 청각장애인들의 큰 행사에서 수화 통역을 하기도 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운보원에서 국어강사를 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가슴 벅찬 사명감과 결심 같은 것을 가지고 출발한 게 아니더라도 자연스런 흐름 속에서 자신이 해나가야 할 일을 발견하고, 풀어나간 것이라고나 할까.
 85년 한국청각장애자복지회가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받고 그 다음 해 1월부터 예경씨는 복지회의 정식 직원으로 홍보실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홍보실의 대표적인 업무로 꼽을 수 있는 "청음"자 제작을 하면서 그는 심층 취재를 위해 여러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취재 뒷이야기 한 토막.
 당시 경기도 송탄 미군 기지촌에는 청각장애 위안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과 하룻밤을 즐긴 미군들은 청각장애우라는 약점을 이용해 화대도 주지 않고 때리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이러한 청각장애 위안부들의 실태조사를 위해 예경씨는 용감하게 송탄에 가서 위안부들과 며칠씩 지내며 미군 클럽을 쏘다녔다. 그 며칠간의 취재 끝에 얻은 결론은 이랬다.
 "청각장애 위안부라고 해서 우리와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더 순수할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크럽에서 만난 많은 수의 미군들은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장애우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송탄 취재 기간 동안 담아 내보낸 위안부 실태 기사는 실제현장에서 얻은 뜻밖의 결론 때문에 "아니, 그럼 위안부가 되라는 소리냐"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요즘의 심층 취재는 예전과는 다른 것 같아요. 처음에 일하던 때와 지금의 열정은 다르죠."
 "청음"지 초창기의 현장감 넘치는 싱싱한 심층 취재기사와 지금의 것이 많이 다르다는 예경씨의 얘기는 그때보다 열정이 식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는 행동이 저만치 앞서 있었고 지금은 이성이 중심축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때는 보사부가 주최한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대회운영상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을 보고 "몰지각한 주최측"이라는 수식어를 서슴없이 쏟아 놓는 "과격한" 기사를 써서 웃사람의 걱정을 사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직접적인 부딪힘보다 간접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너희는 이러 이러한 것이 나쁘다"고 공격하던 것에서 "나쁜 것은 알지만 앞으로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 예경씨의 요즘 일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겉으로 크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밑에 많이 깔려 있는 것." 그것이 알찬 것이라는 걸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터득한 걸까. 예경씨는 청음회관에서 유일한 재 입사 직원이다. 88년 7월부터 91년 9월까지 그는 이곳을 떠나 있었다. 원래 뜻을 두었던 문학공부를 확실히 하려고 준비를 한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방송국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이 되었고 여러 가지 방송, 영화 관련의 글을 썼다.
 그러던 중 복지회로부터 다시 오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청음회관엔 재 입사 선례가 전무한데 예경씨가 처음이지 마지막 선례가 되었다.
 몇 년간의 떠남 뒤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 김완 관장은 물었다. 왜 다시 왔느냐고, "그것은 표현되어질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일까.
 예경씨의 "그리움"은 무엇에 대한 그리움일까. "우리 시대의 사람들, 암울한 시대 상황아래 학교를 빼앗기고 서울역에 모양 했던 80년대의 패배의식, 그래서 우리는 슬프고 소외된 감정을 느끼고 사는 것 아닌가요. 소외에 대한 의식들이 가슴 밑바닥에 있다는 거죠. 그런 소외감은 장애우들도 느끼고 있고 나도 느끼고, 그런 생각에 하나가 된 듯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글을 쓰려고 하는 그에겐 이런 소외에 대한 느낌, 소외라는 것이 영원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한다.
 다시 이곳에 돌아와 만든 "청음"지의 편집 방향에 대해 그는 "우리 울타리에만 있지 않고 널리 읽히는 책"이라고 말한다.
 현재 2만 부를 발간해 각 단체는 물론이고 기업홍보실 등 다양한 곳으로 발송되고 있는 "청음"지의 다양한 곳으로 발송되고 있는 "청음"지의 독자층을 장애우에 국한시켜서는 안되고 비장애우를 더 중요한 독자층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비장애우 속을 파고 들어가서 장애우 문제를 쉽게 접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는 장애우 복지에서 홍보사업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이 사회는 어차피 비장애우가 이끌어 가는 사회지요. 이런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주기 위해서는 활발한 홍보가 필요합니다. 보기 싫은 것이라도 자꾸만 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예경씨는 특별히 "장애우를 위한 방송 프로그램"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반대한다. "장애우들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따로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우들 속에 장애우가 자연스레 섞여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홍보사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인데 "청음"이 계간지에서 반년간지로 줄어든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보사부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청음" 발간이 장애우 복지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구실로 "청음"을 없애려 한다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에 대해 예경씨는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라고 일축해 버린다.
 
86년도에는 전국 사보 콘테스트에 나가 으뜸상을 따낸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청음"지의 발행부수가 줄어든 것에 대한 독자들의 아쉬움도 물론 크다.
 "…농아인들에 대한 기초상식이나 기본적인 예의 등 모든 것을 "청음"을 통해서 터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한가지 유감인 것은 1년에 4번 발행했던 것이 1년에 2번으로 줄어들어 불만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의 계기를 만들어 준 "청음". 단 90여 쪽의 책이 나의 인생을 확 바꿔놓다니. 앞으로 우리 청각장애우들이 있는 곳에 영원하소서…"
 홍보실로 날아오는 독자의 소리에는 아쉬움과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그 독자들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대답하는 것이 예경씨의 몫으로 계속 남겨지게 될 것이다.
 예경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청각장애우 홍보사업을 더욱 열심히 하는 것. 복지 정책이 개선되어 거기에 맞춰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될까, 안될까 저울질하기 보다 "해야한다, 이것이 옳은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풀어나간다는 그에게 "알찬청음"은 옳은 과제인 것이다.
 "어두운 찻집 쪽창으로 스며든 햇빛이 실내를 밝히듯 청음 또한 그 정도의 빛으로 존재하기를" 염원하는 김예경씨.
 그는 사람들 사이의 벽 허무는 작업을 열린 마음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

글/이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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