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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수급비로 살아야 할 미래가 두려워요”

김경태 장은경 부부

본문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 김경태라고 합니다. 3살 아기였을 때부터 다발성 신경염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손발을 전혀 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보다 절반 정도의 폐를 가지고 있어 숨쉬기도, 말하기도 힘든데 다, 근육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희귀병입니다. 그래도 저희 사연을 전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손가락 하나로 겨우 한 자 한 자씩 키보드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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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호 기자  
 
지난해 9월, 김경태 씨(38, 지체1급)는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컴퓨터 키보드 버튼을 하나하나 누르며 이틀간 A4 1장 분량의 글을 작성했다. 지체1급인 아내 장은경(36, 뇌성마비 장애) 씨와 두 자녀, 네 가족이 수급비와 장애수당에 기대어 살고 있어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서였다.

경태 씨는 힘겹게 작성한 글을 MBC, SBS 등의 방송국 게시판에 올렸고, 몇 군데 교회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그러나 게시판에 적어 놓은 계좌 번호로 입금된 돈은‘0원’.
생판 모르는 사람이‘살기 힘들다.’며 도움을 달라는 글에 쉽게 주머니를 여는 시대는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사람들의 무관심에 예상보다 더 안 좋은 결과에 상심해하던 중 경태 씨는 경인방송(OBS)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방송국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연락했다며 OBS에서 (사)좋은친구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두꺼비 프로젝트’에 출연할 의사가 없냐고 물어온 것이다.

‘두꺼비 프로젝트’는 비장애인 중심의 주거환경 때문에 불편을 겪으면서도 형편이 어려워 주택개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 가정에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해 주택을 개조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주택개조보다 돈이 급했기에 처음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한다. 그러나 방송국 측에서는 한번 방송을 타면 시청자들이 모금을 해줄지도 모른다며 김성태 장은경 부부를 설득했고, 이들은 방송 출연 제의를 수락했다 한다.

‘두꺼비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리모델링 작업 때문이었는지,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김경태 장은경 부부의 집은 깔끔하고, 좁은 공간을 고려한 실용적인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방송에서 집을 개조해 주어서 생활하기 편하지 않냐고 묻자, 경태 씨는“우리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요. 차라리 돈을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차라리 돈을 줬으면…”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돈이 너무 없어서 이틀동안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썼던 거고, 방송에도 출연하기로 한 거였어요. 그런데 방송이 된지 두 달이 넘었는데 도와준다는 사람이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들 부부가 사는 공간이 전에 비해 깔끔해진 것은 사실이나 살기 더 편해진 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에는 가스레인지를 바닥에 내리고 이방저방 왔다 갔다 하기 쉬운 위치에 놓고 사용했어요.

그런데 리모델링하면서 방송국 측에서 가스레인지를 부엌 구석에 설치해 놓았고, 무엇보다 가스레인지 높이를 30cm 정도로 해 놓아서 가스레인지에서 요리를 하면 냄비를 내려놓지 못해요.”

리모델링한 부엌에는 가스레인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붙어있는 타입이어서 가스레인지만을 따로 바닥에 내려놓고 은경 씨가 사용하기 편한 위치에 옮겨 놓을 수 없게 돼있었다.

은경 씨는 리모델링하기 전 이 부분에 대해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방송국 측에서는 현재와 같은 형태로 가스레인지를 설치했다고 한다.

“후황 위 치와 상관없이 가스레인지만 덩그러니 우리 편한대로 놓으면 텔레비전에 예쁘게 안 나오니까 그랬던 게 아닌가 생각돼요.”은경 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한 리모델링 공사를 하며 김경태 장은경 가족의 물건이 반 정도 없어진 것도 이들 부부의 맘을 상하게 했다. 장애인 문인들이 모인‘솟대문학’의 회원인 은경 씨는 평소에 즐겨 쓰던 시를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책으로 출간하였는데, 공사 이후 그 책 또한 사라졌다한다.

아이들을 위해 큰 마음 먹고 산 비싼 장난감들도, 주변이들로부터 받은 선물들도 많이 없어졌다고.

주택개조를 원하지 않던 상황에서 방송을 타면 사람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을 거란 말에 출연을 결정했지만, 들어온 돈은 없었고, 리모델링하면서 이들 가족의 소중한 물건들이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 정도 버려졌는가 하면, 집 구조도 이들이 특히 강조한 사항이 반영되지 않아 김경태 장은경 씨의 심경이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경태 씨는 인터뷰 내내 인테리어 얘기가 나오면“우리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요.”를 반복하곤 했다.

  undefined       ▲ ⓒ소연 기자     “이 사람 놓치면 평생 결혼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김경태 장은경 씨는 많은 장애인 부부가 그러하겠지만, 쉽지 않게 결혼했고, 녹록지 않은 결혼 생활을 영위해왔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생활시설 소망재활원에서 만난 이들은 시설에서 4~5년간 사랑을 키운 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98년에 식을 올렸다.

은경 씨가 예뻐 경쟁자가 많았겠다고 묻자 경태 씨는“예쁘죠? 그런데 시설 생활인이 150명 정도 있었어도 제가 나이도 있고 덩치도 커서 시설 서열에서 2인자 정도는 됐었거든요.(웃음) 그래서 아무도 (아내를) 못 건드렸죠.”

이들 부부가 있었던 소망재활원에는 18세 이하라는 입소 나이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경태 씨가 은경 씨에 게 대시했을 당시 경태 씨 나이가 23~4살 경이었으니 고연령(?) 층에 속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태 씨가 기억하는 십여 년 전의 은경 씨는 마음의 상처가 많아 시설 밖 벤치에서 긴 머리를 늘어트린 채 자주 슬픔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경태 씨가 마음을 고백한 그날도 은경 씨는 머리를 늘어트린 채 벤치에 앉아 있었고, 은경 씨가 혼자 있는 틈을 노려 경태 씨는 은경 씨에게“사귀자.”말했다고. 은경씬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태 씨를 바라봤다 한다.

“속으로 저게 미쳤나, 그랬을 거예요.”경태 씨의 말에“어떻게 알았어?(웃음)”라며 은경 씨가 바로 응수했다.

은경 씨는 고백한 다음날 아는 동생을 시켜 쪽지로 사귀겠다는 답변을 경태 씨에게 보냈고, 이 둘은 4년 여간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했다.

이들은 마침내 결혼을 결심했고, 주변에 이러한 뜻을 밝혔다고. 그러나 중증장애인 결혼에 대한 편견에 싸인 주변의 우려는 이들 결혼의 발목을 잡았다.

“집사람은 부모님이 안 계시고, 제 부모님은 저희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하셨어요. 시설 선생님들도 원장 선생님 빼고는 다들 반대했었고요. 그런데 전 이 사람을 놓치면 다시는 결혼 상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먼저 시설에서 나온 다음,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집안 가구며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 항의를 했죠. 엄마 아빠한테 당장 (은경이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어요.

‘내 얼굴 다음부터 안 보고 싶으면 (은경이를) 데리고 나오지 말고, 내 얼굴 볼 거면 당장 데리고 나와라.’하면서.”

경태 씨의 목숨을 건(?) 시위는 결국 경태 씨 부모로부터 결혼 승낙을 얻게 했다. 개신교 신자인 이들은 98년 조그만 교회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과 동시에 독립한 커플은 소망재활원에서 이들 부부가 최초라고 했다.

결혼 후 이들은 교회 전도사가 다세대 주택을 전세 내 장애인 가구들이 살게 하는 곳에 들어가 살게 됐다.

보증금과 월세 없이 살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무료로 다른 사람이 임대한 집에 얹혀살게 되니 집주인이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던 듯 했다.

결국 경태 씨 어머니와 전도사간의 싸움으로 이들 부부는 입주 4개월 만에 집을 나와야 했다고. 경태 씨 어머니가 이들 부부와 함께 거주했던 건 아니지만, 종종 그 집을 방문해 전도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경태 씨 어머니 말에 의하면 전도사가 돈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어찌됐든 이들 부부는 타의에 의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곧 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집을 얻는 것도, 집을 얻은 뒤 생활하는 것도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 2만 원에 방을 구해 커다란 바퀴벌레가 잔뜩 기어다니는 방에서 참고 생활했지만, 입주 한 달 만에 집주인이 방을 빼달라고 했단다. 집주인이 이들 방 옆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데 장애인 부부가 들어오니까 장사가 안 된다며 그만 나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보일러 없는 집에서 겨울을 보내는 등 힘든 나날이 이어졌고, 일 년 내 6번의 이사 끝에 인천 주안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직원의 도움으로 지금의 임대 아파트에 1998년 11월경에 입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은경 씨가 첫째 한나의 출산을 앞둔 시기였다고.

출산도우미, 활동보조인 없이 이들 부부는 아이 둘을 낳고 십년 간 결혼생활을 온전히 서로에게 의지한 채 유지해왔다. 젖먹이 아이들을 키워 이제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여보냈고 어렵지만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쑥쑥 커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두려움이 앞선다고 은경 씨는 말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직은 괜찮은데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 ⓒ소연 기자     진행성 희귀난치성 질환 앓고 있는 경태 씨, “가족 생계 걱정”

경태 씨는 벌써부터 첫째 한나가 다른 애들은 지갑에 만 원짜리가 몇 개 씩 있다며 돈을 달라고 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온다고.

취업을 하려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찾아 직무능력 검사를 받았지만, 다리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보니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려웠다.

가족생계에 대한 불안감은 경태 씨가 희귀난치성 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더한 듯 했다.

인터뷰 당시 경태 씨는 자신의 병을 다발성 신경염으로 알고 있었으나, 경태 씨 주치의에게 확인해 보니 경태 씨의 병명은 척수성 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이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손, 발 근육 위축에서 시작하여 점차 목 근육과 몸통의 근육이 위축되는 증상을 나타내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부모가 척수성 근위축증이거나, 양쪽 부모가 척수성 근위축증 불량성 유전인자를 한 개씩 가진 보인자의 경우 자녀가 척수성 근위축증에 걸릴 수 있다(경태 씨 자녀의 경우 유전 확률이 25%였으나 모두 병이 유전되지 않았다 한다).

보인자의 경우 인구 40명 중에 한 명 꼴이며, 척수성 근위축증 질환인은 인구 6천 명에 한 명 꼴로 나타난다. 그러나 돌연변이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어 정확한 병의 원인을 유전적 원인으로만 꼽을 수도 없다.

경태 씨는 척수성 근위축증이 3살 때 나타나 12살까지는 다리로 보행이 가능하였으나, 18살 때까지는 목발을 짚고 걸었고, 이후에는 휠체어를 사용했다 한다.
손가락 사용의 경우 시설에 입소했던 15~16살 때는 두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손가락을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폐 기능이 약해 감기라도 걸려 폐렴으로 전환되면 심각한 건강 악화를 불러 올 수 있다.
척수성 근위축증 질환인의 경우 감기에 걸리면 균을 기침으로 내뱉어야 하는데 기침이 약하기 때문에 균이 나가지 못한 채 폐에 들어가게 되고,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기침이 폐렴으로 될 확률이 높다.

경태 씨의 경우 잔병치레도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특히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0대 때부터 경태 씨는 병원에 다녔지만, 척수성 근위축증이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보니 특별히 그 병 때문에 병원에 다니지는 않는다고 했다. 10대~20대 때는 운동요법을 통해 병을 치료하려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운동을 했지만, 악화되는 신체기능 손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했다.

현재도 9가지 약을 하루 두 시간씩 복용하고 있지만, 척수성 근위축증의 근본적 치료를 위한 약 복용은 아니다.

장애가 중증이라 취업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들의 의료비와 기본 생계비를 충분히 보전하고 남을 정도의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들이 수급자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장애수당과 수급비 등을 합친 백여만 원의 돈으로 아이 둘을 대학교까지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경태 씨는 진행성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으니 취업으로 가족 수입을 늘릴 리 만무할 것이다.

인터뷰 내내 보였던 이들 부부의 미래에 대한 공포가 왜 이렇게 짙었는지 점차 수긍이 갔다.

왜 최저생계비는 물가인상률보다 낮은가?

그렇다고 이들 가족이 불안감에 지배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오산일 것이다.
김경태 장은경 씨는 생계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다가도 인터뷰 중간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서로를 놀려대며 여전히 알콩달콩한 금술을 과시했다.

또한 이들 부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 또한 사교성 있고 활발해 친구들이 많고, 첫째의 경우 반에서 1,2등은 도맡아 하고 있고 둘째 또한 유치원에서 똘똘한 아이로 통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친구들도 많고 공부도 잘해서 뿌듯하겠다고 물으니, 이들 부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말을 너무 안 들어서 힘들어요!”라며 한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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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청개구리 같아서 말도 잘 안 듣고,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안 자 매일 늦잠을 자 엄마를 고생시킨다는 것이다.

매일 아이와의 싸움으로 진이 빠지는 은주씨는“아이들이 일주일 정도 극기훈련을 받으면서 엄마 아빠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어요.”라며 힘든 기색을 내보인다. 옆에서 경태 씨는“우리가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공부는 중간 정도면 됐고, 아이들이 부모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라고 거든다.

여느 가족처럼 관계를 조율해 가며 김경태 장은경 씨와 그들의 자녀들도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적 삶을 가능케 해주는 재정적 지원. 김경태 장은경 씨는 많은 장애인 가족들 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는데 이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올라가는 최저생계비와, 2000년 산정한 장애로 발생하는 추가비용 15만원 보다 적은 장애수당, 중증장애인 전동휠체어 배터리 무상 교환 등등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 마련 돼 있지 않다보니 취업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최저생계비를 가지고 개인 차원에서 이것들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

스스로 당당히 서려는 의지를 가졌음에도 번번이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전해주지 못하는 사회의 벽에 부딪혀 지쳐 체념하고, 그러한 삶을 내면화하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경태 장은경 씨도 장애인을 냉대하는 사회 속에서의 세상살이에 꽤나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이들 부부에겐 시인, 카레이서라는 꿈이 있었지만, 비장애 중심 사회는‘장애인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거나, ‘장애인이 할 수 없게끔’만들었다. 장애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 주지 않고 독립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들을 여전히 사회 곳곳에 설치해 놓고, 사회는 장애인들보고 살아가라고 한다.

언제까지 이들 부부처럼 자활의지가 있음에도 번번이 사회적 장벽에 막혀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벌여야 하는 일이 발생해야 하는 건지 심난할 뿐이다.
작성자소연 기자  cool_w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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