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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전문가의 꿈을 키우고 있어요”

[사람사는 이야기] 청각장애인 대학생 박민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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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민정씨 ⓒ채지민 객원기자  
 
‘사람사는 이야기’ 주인공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갔다.
오후 1시 30분. 모 대학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자 시선을 옮기는데, 그 사이 약속장소 앞에 서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는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

오늘의 주인공이 맞았기에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어디로 가서 얘기 나누는 게 편한지를 물었다. 내심 주변의 카페 같은 곳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잖아요. 그렇죠?”

오케이! 단번에 장소가 정해졌다. 어두침침한 실내가 아닌, 맑은 날씨를 만끽할 야외공간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대화 나눌 공간을 찾아 캠퍼스 안을 빙빙 돌아도, 날씨가 너무 좋은 까닭인지 벤치나 그럴싸한 자리들은 모두 학생들에게 ‘점령된’ 상태였다.

어디가 좋을까? 그때 넓은 숲길 바로 옆의 빈자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기로 갈까요?’라고 말하려는데, 마주친 눈길에선 이미 합의가 이뤄진 모양이다. 동시에 그 자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 ⓒ채지민 객원기자  
박민정. 사회학을 전공하는 02학번 대학생이자 취업 준비 중인 졸업반의 그녀.
아주 편안한 예쁜 미소의 민정 씨가 ‘사람사는 이야기’에 초대된 건 특별한 인연이 함께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느 대학생이 미국 UCLA에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는, 어느 인터넷 웹진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다.

청각장애라면 언어 사용(발음)에 일정한 불편함이 있을 테고, 우리말 자체도 자유롭게 구사하기 어려울 텐데,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미국 교환학생이라니. 그것도 최고의 명문대로 유명한 UCLA라니.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민정 씨와 연락이 닿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약속을 잡으면서도, 나름의 고민 한 가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대화를 나누며 인터뷰를 해야 하지? 종이에 글씨로 얘기하는 필담(筆談)이 필요할까? 아니면 노트북을 켜놓고 서로가 자판을 두드리며 진행해야 하는 걸까?

그 고민은 직접 마주대하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그녀의 첫 인사인 “어머,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모든 염려는 봄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아니, 청각장애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만큼 또렷한 발음이 가능할 수 있을까? 숲길 옆 테이블에 앉자마자 그 대목부터 질문을 던졌다. 아주 조심스럽게.

“지금까지 스무 해 넘도록 계속 다듬고 훈련하며 살아온 거예요.
지금은 말하는 게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예전에는 발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녹음을 하며 발음 공부를 했었는데, 당시의 테이프를 지금 들어 보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거든요.”

계속 고쳐가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다. 앞으로도 계속 수정해야 할 거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언제부터 소리가 안 들렸는지 그 시점을 명확히 말씀드릴 수 없는 게, 어릴 때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4살 때 유치원 선생님이 나름대로 테스트를 한 다음 저의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렸대요. 아주 어릴 때는 부모님마저 크게 의심하지 않으셨던 거죠. 집안에서 부모와의 관계는 모든 게 편안하게 이뤄졌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장애를 가진 분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오히려 장애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생소했단다. 그래서 민정 씨 스스로도 장애라고 말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며 살았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지체장애만 장애라고 부르는 줄 알았어요. 주위에서 조언을 얻을 방법도 없었고요. 그래서 특수학교 같은 걸 알지도 못했고, 장애 등록이라는 것도 고3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하게 됐죠.”

   
 
  ▲ ⓒ채지민 객원기자  
 
‘내가 잘 들으면 어떨까?’라는 고민마저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단다.
못 듣는 것에 대한 의심도 없었고, 그런 면에서는 사춘기 시절에도 갈등 같은 것 없이 지낸 것 같다고 한다. 보청기는 어릴 때부터 착용하고 지냈기에 별다른 거부감도 없단다.

“아, 보청기를 지금 착용하고 계세요?”
그때까지도 눈치를 챌 겨를이 전혀 없었다. 민정 씨는 양쪽 귀에 착용한 보청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7살 전후부터 재활의 일종으로 사용했기에 적응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가 정말 궁금해졌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가 무슨 소리인지도 의식이 안 돼요. 듣고자 하는 소리 하나에 의식적으로 집중해야만 들을 수 있거든요.”

청력이 95데시벨(db)이라서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생각하면 된다는데, 95db이라…. 그 정도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민정 씨는 쉬운 예를 들었다.

“보청기를 뺀 상태에서 저의 바로 옆에 멈춰 선 자동차가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도 못 듣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보청기 없이는 사람간의 대화도 불가능해요. 보청기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상대방의 눈과 입, 표정을 바라보지 않으면 소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죠. 보청기의 도움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도움이 꼭 있어야만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보청기를 한 상태라도, 상대방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면 눈동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해진단다. 눈빛 자체가 사람 심리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민정 씨의 의미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선 잘 사는 집안, 아주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이 같은 동네 안에 함께 있었어요. 잘 사는 집안 얘기는 접어두고, 우리 집보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곤 했죠.

그 애들은 비록 장애가 없다고 하지만, 집안 형편이나 부모의 갈등 문제 때문에 어려워하는 걸 많이 보며 자랐거든요. 그래서 저 스스로 장애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점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살아간다 생각하게 됐죠. 저한테는 들리지 않는다는 장애가 있지만, 그들한테는 그들 나름의 힘든 점이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며 지냈으니까요.”

그동안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직접 대화를 나눈 이들은 늘 이렇게 묻곤 했단다. (장애가 있기에) 사춘기 시절이 힘들진 않았느냐고. 그런데 민정 씨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공부하려는 노력을 계속했기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항상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학교의 틀 안에서 적응도 잘했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염려하는 어머니의 특별한 관심이 크게 도움됐다고 했다.

“원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제가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가급적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적은 개인 작업 위주의 삶을 살기 바라신 부모님의 뜻도 있었던 거죠. 그래서 국문학을 목표로 했었는데, 1학년 학부 시절에 사회학 수업을 듣는 동안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계속 변화하는 세상을 항상 관찰하며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 새로운 매력을 느꼈던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게 됐을까?
청각장애가 있으면서도, 미국 땅에 홀로 도전하게 된 계기와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부터 질문을 던졌다. 민정 씨의 대답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의 영어 수준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읽고 쓰기’ 위주의 영어밖에 몰랐죠. 말 그대로 한국적인 영어 공부만 했던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1년간 다녀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을까?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준비할 생각도 못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주위 친구들이 다녀오는 걸 보며, 저 역시 막연하게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외국에 가면 장애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훨씬 잘 되어 있다니까, 그런 걸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며 주위에서 많이들 얘기해 줬죠. 그래서 결심하게 됐어요.”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국내선발테스트’라는 걸 도전해 봤는데 정말로 선발이 됐단다.
실제로 떠날 자격이 생기고 나니까, 그때부터 걱정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음 구조부터 전혀 다른 언어와 이질적인 문화를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지…. 그런데 기회는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만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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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지민 객원기자  
 
“미국 대학에 가서 ‘장애학생지원센터’라는 곳에 찾아가니까, 대학 당국 안에 각각의 장애별로 전문상담가가 따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청각장애 담당자를 만나 진단서와 저의 상태를 말했을 뿐인데, 그 분이 ‘그럼 너한테는 속기사가 있는 게 좋겠다.’며 곧장 저의 수업을 도와 줄 속기사를 배정해 주었어요.”

민정 씨가 1년간의 UCLA 교환학생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 게 가능했던 키워드가 바로 이것이다. 속기사라는 것.
청각장애학생들을 위해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문 속기사 2명이 민정 씨의 강의실마다 함께 하며, 모든 수업 진행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서 전해 줬다고 한다.

“청각장애학생들은 강의실 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표정하게 혼자 머물러야 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를 도와 준 속기사 두 분은 실시간 대본처럼 너무 실감나게 속기와 수업 분위기를 이끌었어요.

청각장애학생만 못 듣고 못 웃는 상황을 절대로 만들지 않았죠. 꼼꼼한 강의 내용 정리는 물론, 지금 누가 무슨 농담을 해서 모두가 웃고 있다는 주변 분위기까지 저한테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려 줬어요. 심지어 수업이 끝난 뒤 저를 따로 불러서, 수업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제가 이해할 때까지 재차 확인까지 시켜 주었죠.”

한마디로 머나먼 다른 나라 얘기가 맞다.
대학 당국 안에 각각의 장애 유형별로 전문상담가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 그 장애학생들이 학교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베테랑 전문가를 배정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걸 익히고 해결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너무도 편안한 그 시스템에 적응하며 1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다시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 들어서니까… 솔직히 모든 게 열악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새로 배정된 속기 아르바이트생의 속기 내용을 읽으면 오히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민정 씨는 아르바이트생이 적어 준 문장의 예를 들었다. ‘하나의 목적에 의한…것을 표현한 것…, 짐멜이 하나 해결책으로 친교…분화하면서… 화폐가…친교…다양한 목적 관계 가지고 만들어진다….’

“정확한 수업 내용은 물론 ‘창 밖에서 기계음 울림’, ‘다 같이 깔깔 웃음’이라는 현장 분위기까지 기록해 준 미국 대학의 속기사 시스템이 부러울 수밖에 없죠. 그나마 저는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요. 청각장애학생을 위해 속기 아르바이트생을 배정하는 대학이 우리나라엔 거의 없으니까요.”

대화의 분위기를 바꾸기로 했다.
민정 씨의 가슴속엔 어떤 인생, 어떤 미래와 비전이 간직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습관·가치관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뭐가 옳고 나쁘다는 절대기준은 없겠죠. 일단 제 느낌만 먼저 말씀드린다면, 저는 장애라는 게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불편하다면 제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 저랑 통화를 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이 불편한 거지, 저는 원래부터 이랬기에 뭐가 불편한 건지를 잘 모르고 지냈거든요. ‘장애’라는 걸 너무 염두에 두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이 제한될 뿐이에요.”

장애에 얽매지 말고 관점을 바꿔 편하게 생각하다 보면,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정하는 데 훨씬 큰 도움과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지금은 금융전문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책 문장 아래 밑줄을 치듯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새겨져 왔다.

“허들 경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눈앞에 허들이 있을 때, 그 허들만 바라보고 있다 보면 ‘내가 저걸 어떻게 넘을까?’ 하며 속도를 낼 수가 없잖아요. 그 허들만 눈에 보이니까요. 하지만 허들이 아니라 목표 지점을 보면서 힘껏 뛰면, 중간 중간에 있는 허들은 그냥 뛰어넘으면 되는 대상일 뿐이에요. 쉽지 않은 이상적인 비유일 수도 있지만, 가장 필요한 진리라고 저는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우선으로 생각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걸 먼저 떠올리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안 되는 법이니까요.”

청각장애가 있는 청소년이나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자신이 걸어왔던 그 길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후배들한테, 무언가 특별한 조언이 던져질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점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듯이, 장애 자체가 꼭 어려운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본인 스스로 어려운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어렵게 만드는 것이잖아요. ‘남은 저런데 나는 왜 이렇지?’라면서, 장애 때문에 뭐를 못한다는 기존사고 안에 머물러 있으면 안 돼요.

잘하고 싶어도 안 되는 쪽을 생각하면 안 되는 쪽으로만 흐르는 게 세상이니까요. 그게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거죠. 될 쪽으로 생각해도 될까 말까인데, 가급적이면 되는 방향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3시간 가까이 대화 나누면서, 참으로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과 ‘만남의 인연’을 가졌다는 실감이 들었다.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가에, 어디선가 낯익은 리듬의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다시 한 번 그 말이 정답이라는 확신을 되새기며, 혼자만의 입놀림으로 오늘 길 내내 따라 불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거, 진짜로 맞는 말이다.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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