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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전진하는 건설일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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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건설일용노동자

"노가다"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그들에게 고용되어 토목, 철도부설, 도로건설, 항만 등의 기반시설을 만들어 온 일꾼을 지칭했다. 건설일용노동자로 우뚝 서려는 "노가다"의 피와 땀이 배인 건설현장의 현실과 그 문제점을 알아본다.

<"노가다"를 찾아서>
 세상에서 흔히 하는 말로 "노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조선침략이라는 아픈 역사를 만나게 된다. 우리말 사전에는 "토방(土方)일, 토목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처럼 맨 처음에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그들에게 고용되어 토목공사를 했던 일꾼을 "노가다"라고 불렀으며 당시에 철도부설, 도로건설, 항만 등의 기반시설을 만들어내는 일꾼들을 통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오야지(직종별 하청업자), 데모도(보조일꾼), 야리끼리(일정한 작업량을 정해 도급을 주는 것), 대마찌(비가 오거나 일이 없어서 쉬는 것), 단도리(작업준비)등 현장 용어에서는 일본어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
 1930년∼40년대 일본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먹고살기 힘든 농촌을 떠나온 "노가다"들의 생활이 백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 생활 주변을 보면 새로 짓고 있는 주택이며 상점 건물, 서울시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하철 공사, 분당, 일산 등지의 아파트 단지의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가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이들 노가다들도 87년 이후 민주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건설일용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하기만 하다. 그 고충과 어려움을 알아보자. 

<남 모르는 고통, 돈 떼 먹히기 예사>
 올해 나이 25세, 공고를 졸업하고 조공(견습공)부터 지금 기술자 소리를 듣기까지 일해온 기간은 7년.
 미장, 조적 등 건축직종에 비해 덜 힘들고 노동시간도 짧아 용접을 시작했는데 "기술 없이 찜통 메고 하는 노가다"보다는 훨씬 낫다고 한다.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용접공이 "용접이 어찌 노가다가 아니냐"고 반론을 편다.
 용접도 건축일과 마찬가지로 종합건설회사에서 단종 회사로 공사가 내려가면 다시 소규모 공업사, 더욱 심하면 그 밑의 도급업자가 하청을 맡는 일당제의 하청구조를 갖고 있다.
 김상용씨는 소규모 공업사일을 주로 하는데 대규모 공사현장에서는 5만원, 단기간의 일거리에는 7만원의 기공 일당을 받는다.
 건설업 중 용접·배관 같이 쇳덩이를 다루는 일은 겨울에도 일을 할 수 있고 일당제에서 월급제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같은 건설업이지만 일당제가 고정형태인 건축일보다 낮다는 생각, 즉 "노가다"가 아니란 얘기도 나오는 것이다.
 "건축일보다 편한 대신에 용접일을 하면 눈물이 막 나오고 눈이 아픈 "아다리"란 게 있어요. 빛의 온도가 3∼5천 정도 되다보니 얼굴이 까맣죠. 엑스레이 용접은 빛이 엄청 세서 체내까지 침투하기 때문에 그 용접을 많이 하면 "고자"가 된다는 얘기도 하죠. 근데 불만인게 용접한다고 하면 여성 쪽에서 노가다라고 시집 안 온다는 말이 있더라구요.(아, 참 건설일용노동자라고 써야 하는데, 하면서 웃는다)"
 펄일의 가장 기본적인 용접이나 "액체, 기계 등을 보내거나 빼기 위해 파이프를 설치하는" 배관 등의 직종은 하루 평균 8시간∼8시간 30분 노동으로 건축일보다 그 시간이 짧다.
 기능공 임금은 일반용접공이 평균 5만 5천원, 배관이 6만원이다. 비수기를 거의 타지 않는 것도 좋은 조건이지만 건축일과 달리 하청업자에게 제때에 임금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체불 안 당해 본 사람이 없어요. 일이 끝난 뒤 바로 주는 경우가 거의 없고 보름에서 한 달, 어떤 때는 6개월씩이나 체불돼요. 거의 월급쟁이 하던 이들이 일당으로 오기 때문에 원래부터 일당이었던 건축현장에서처럼 임금체불 됐다고 깽판을 부리면서 싸우지 않아요."
 건축일과 또 다른 점은 나이가 45세 이상이 되면 힘들어서 일을 못한다는 것. 사실 나이가 많아서 봉급 생활자에서 일당제로 빠진 경우도 많고, 그 뒤 현장일 마저 힘들어지면 구멍가게라도 차려야 한다.
 김상용씨의 꿈은 돈을 빨리 모아서 조그만 공업사라도 기계 계통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예를 들어 물건을 만들면 다 노동자가 만듭니다. 국가가 노동자들을 인정해 줘야 하는데 체불임금도 그래요. 그것부터 회사의 근로조건까지 정부가 노동자보다 사업주 편을 들어준 대요."
 하루 빨리 대통령부터 국민까지 잘못된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별해 아빠의 하루 일과>
 건설업 중에 아파트, 주택, 빌딩 등을 짓는 일을 건축이라 하는데 건축의 마무리 공사에 해당하는 타일을 붙이는 정상균씨의 하루 일과를 들어본다. 그는 경력 12년의 기능공이다.
 "때르릉 때르릉…"
 시계소리가 맛있는 새벽잠을 깨운다. 잠결에도 무의식적으로 눈이 떠진다. 새벽 6시 정각, 밥상을 차려 놓고 마누라가 나를 깨운다. 반쯤은 눈이 잠긴 상태에서 일어나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밥맛도 없는 아침을 꾸역꾸역 먹다보면 벌써 6시 15분, 잽싸게 옷을 입고 허둥지둥 집을 나선다.
 현장 창고에 들어서니 7시 10분. 13층을 올라가니 이미 중국교포들과 필리핀 데모도(뒷일꾼)들은 사모래를 해놓고 완전히 단도리(작업준비)를 해놓은 상태다. 대충 인사를 하고 내가 일할 곳으로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일을 시작한다.
 타일벽을 한번 훑어본다. 도대체가 벽돌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일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타일은 마무리 공정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어 대충 할 수가 없다. 실을 펴고 수평을 보고 고데자루를 잡으면 타일 붙이는 일이 시작된다. 손은 일을 하고 있지만 머리 속은 별별 생각을 다한다.
 "이번 달에는 25일은 일해서 겨울에 놀은 것 반타작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 현장 끝나면 어디 가서 일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배에서 신호가 온다. 점심시간이 다 됐다는 증거다. 식권을 받아 함바집에 들어서니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밥과 반찬 세 가지, 국이 전부이다. 함바의 근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메뉴가 형편없어도 굳이 실망은 하지 않는다. 맛있게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후에 일하려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아침과 똑같이 반복된 일을 한다. 2시정도가 되면 마음이 허전하다. 그래서 노래를 부른다. 누가 노래 못 부른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시끄럽다고 욕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부를 수 있어 좋다. 신반장이 3시 반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참을 가져다 준다. 다시 2시간 정도면 내가 해야할 하루 배당량의 일을 마칠 수 있다. 5시 50분쯤 일자리를 정리하고 연장을 챙겨 하루 일을 끝낸다. 7시부터 6시까지 일을 했으니 오죽 중노동인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정식형이랑 함께 퇴근을 한다. 정식형이 자주 들리는 포장마차 앞을 지나갈 때 술 한잔하자고 유혹한다. 감자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출출한 배를 채운다. 8시에 조합 사무실에 들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니 11시가 거의 다된 시간,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제 태어난 지 20개월 된 나의 귀여운 2세 별해는 곤히 잠들어 있다. 세수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깊이 잠든 별해를 보니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내일은 일찍 들어와서 별해랑 놀아 주어야겠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높은 노동강도, 열악한 작업환경, 사회적 천대>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해서 그런지 타일을 포함한 목수, 벽돌쌓기 등의 건축 직종에는 직업병인 요통이 유난히 많다.
 벽돌공 이장섭(31)씨는 작업도중에 소주나 진통제로 아픈 허리를 달래야 할 정도이다. "한 시간에 보통 벽돌을 3백장 쌓는데 열 시간을 일하니 쉴 시간도 없고 다음날 새벽에는 또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피곤해요. 나이를 떠나서 내 주변의 기능공들은 늘 허리가 아프다는 호소를 합니다."
 가건물은 짓고 판넬, 스티로폴, 장판을 깔고 자야 하는 숙소,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함바집 식사, 샤워시설도 없는 대규모 현장의 작업환경, 하루 두 명 이상이 죽어 나가는 높은 산재율….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힘든 것은 겨울철의 소위 "비수기"이다.
 "지난 겨울은 지하철 공사장의 잡부로 일을 했는데 하루 일당이 3만원이었어요. 7만 5천원에서 3만원으로 떨어진 일당을 받고서도 추운 겨울 일자리가 없어서 노는 사람이 많아요."
 그는 땀 냄새가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사람이 붐비는 전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 주위 사람들이 비켜서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난다.
 "그게 싫어서 일이 끝난 뒤 술이나 차를 마셔서 시간을 늦추고 좌석버스를 타고 와요. 드물게 일찍 끝나는 경우에만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죠."
 현재 전국적으로 건설일용노동자의 수는 250만에 달하는데 그 현실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이들의 일당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92년 초에 서울 건설일용 노동조합에서 조사한 실질 임금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이들이 한해 평균 일하는 날은 대략 180에서 200일 정도. 평균 임금 5만원으로 계산하여 1년에 천만원을 번다. 하지만 이는 상용직의 상여금, 퇴직금이 포함된 금액이므로 이를 빼면 공장 노동자 총임의 44%에 해당. 1년치 임금이 56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한 달에 46만 7천원 정도 버는 셈이다. 더구나 이는 평균 10시간 노동과 요통 등의 직업병, 하루 2.1명의 높은 산재율을 감수한 것이니 열악한 현실을 넉넉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노가다들의 인간선언>
 88년 3월 서울 건설일용노동조합의 결성을 시작으로 "노가다"들은 성남, 인천, 서산, 여천, 전주, 광주, 구미, 포항, 마창, 안산 등 곳곳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조합초기에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섰는지 이규재(57) 전국일용노조 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88년 12월 18일, 울산에서 급히 내려오란 연락을 받았어요. 고층빌딩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6㎜짜리 철판 2개를 들어 올리다 그만 끈이 부러지면서 노동자 2명이 맞아 죽은 거라.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기계 자체가 2년 연속 검사에서 떨어져 사용중지로 판정된 기계였다고. 정상적인 기계를 쓸려면 천만원인데 사백오십만원 주고 그걸 써온 거지."
 한 사람은 열아홉 어린 나이라 그냥 화장을 했고 쉰두 살인 다른 이는 청주 남일면 고향에 묻었다.
 "회사에서 8천만원 주기로 약속하고 우선 5백만원 주면서 장사지내라 해서 유가족들이 장례비 조로 주는 걸로 알고 도장을 찍었지. 근데 장사를 치른 후에 보니 그게 합의서야. 그놈들이 8천만원을 내놓나."
 그래서 묻었던 관을 되 꺼내 회사 정문 앞에서 천막 치고 싸워서 1억원을 받아냈다. 당당한 인간선언이자 백년동안 응어리진 분노의 표현이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현재 활동이 가장 활발한 포항에서는 이미 8시간 노동과 주, 월차, 결혼, 장례 등의 유급휴가를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일어서는 사람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고질적인 문제인 "하청구조"를 없애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질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주문생산, 즉 주택, 빌딩, 공장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을 때만이 생산이 가능하고 옥외공사라 1년 내내 일을 할 수 없다는 건설업의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건설회사는 성수기때 필요한 인원이 비수기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력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자꾸 밑으로 하청을 줘서 최대 이윤을 뽑아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예산이 1억쯤 된다고 하면 공사를 맡은 종합건설이 15∼20% 뚝 잘라먹고 밑으로 줘요. 밑의 단종 회사에서는 사람을 모집하려면 인원관리나 통제, 인사관리가 복잡하니까 5∼10%먹고 또 하청을 줘요… 이렇게 5∼6단계 내려가니까 부실공사가 될 수밖에 없고 부실한 예산을 메꿔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장시간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된다 말이에요."
 건설업의 모든 비리와 건설일용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하도급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겨울철에 일이 없다는 건설업의 조건도 국가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물이 얼어서 시멘트를 치지 못하는 겨울에는 화공약품을 넣어 물이 얼지 않도록 처리할 수 있고 정 추워서 일이 안 된다면 내부에서의 일은 보온시설을 하고서 할 수 있다. 결국 하도급이나 겨울철의 비수기는 공사비용을 줄여 최대 이윤을 뽑아내자는 건설자본의 논리인 것이다.
 열악한 노동현실을 온몸으로 살아 온 이 땅의 250만 "노가다". "건설일용직"에서 "일용"을 떼어 내는 꿈 그리고 지난 백여년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갈아엎을 큰 꿈을 안은 채 전국의 모든 건설현장에서 오늘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이 땅의 2백 50만 "노가다"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글/오숙민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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