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은 입원 아닌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치료해야 한다 > 세상, 한 걸음


정신질환은 입원 아닌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치료해야 한다

[만난 사람]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단장 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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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에는 편집부 기자들이 발로 뛴 기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전문직의 필진들로부터 받는 칼럼들이 함께 수록된다. 독자 여러분의 호응을 얻는 칼럼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매달 영화 한 편씩 소개하는 ‘이영문의 영화읽기’를 애독한다는 분들의 의견이 자주 들린다. ‘영화읽기’를 애독하셨다면 그 글쓴이가 영화평론가일 거라고 막연히 짐작하셨을 수도 있겠는데, 이번 호 ‘만난사람’은 영화평론가가 아닌 그의 본래 전문직의 명칭으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전문가로서, 장애인식개선운동에도 큰 활동을 하고 계신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이영문 단장을 만나, 반가운 인사와 함께 다양하고 소중한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 대화의 내용을 아래에 옮긴다.

 

   
 

이번에는 ‘이영문의 영화읽기’가 아니라, 선생님의 전공분야를 여쭙고 싶어서 찾아왔다

정말 반갑다. <함께걸음>과의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독자 여러분께 꼭 필요한 내용을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선생님께서 정신장애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연구해 오신 것들을 중심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올해 초에 성남에서 장애인 부부가 사망한 사건과, 정신장애 동생을 둔 형이 동생과 함께 투신자살한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정신장애인들이 심각하게 방치되어 있다는 현실이 다시금 재확인된 것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말씀해 달라

제일 큰 문제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다.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이 유린된다는 건, 그 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그냥 장애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편견이 존재하는데, 정신장애인이라 하면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받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까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은 아예 없는 걸로 치부하게 되고,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족들까지 죄인이 되는 것이다.

다른 지체장애인들과 달리, 정신장애인은 가족이 그 사실을 숨기려 하는 부작용마저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더 숨기려 하고, 가족의 수치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체장애는 가족이 뭘 잘못해서 발생한 게 아니지 않은가. 정신장애 역시 가족 차원에서 잘못한 원인이 없는데도, 마치 양육을 잘못해서 발생한 것처럼 주변인들이 인식하면서 문제가 더 커진다. ‘잘못 길러서’, ‘부모의 태도가 그래서’ 등의 편견들이 너무 많다. 그건 다 잘못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고,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 증상이 점점 더 악화된 상태가 되어 입원치료를 받게 된다. 초기에 치료하지 못했으니 입원치료 또한 쉽지 않게 됨은 당연하다.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버리는 거, 편견으로 인해 소외되고, 소외되다 보니까 치료의 시기를 또 다시 놓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나았다 해도 재발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의미냐 하면 다시 동네로 돌아갔는데,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수군거리게 된다. 그러면 병원에 가는 걸 꺼려하게 된다. 다시 악순환이 시작되며 재발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게 무슨 큰 형벌처럼 되어 있는데, 이런 편견들이 모든 악순환의 시작이자 마지막 종점으로 존재한다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면 약간 꺼려하는 경향이 있지만, 요즘 사이코패스라는 것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불필요한 문제가 재생산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본다. 사이코패스와 정신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의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정립해야 올바른 건가

   
 
정신 쪽에 장애가 있는 건 맞는데, 사이코패스는 성격이상이 범죄와 연결되어 있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신장애 및 정신분열증은 영원한 개념이 아니고 ‘상태의 개념’이다. 다른 신체장애하고 구별한다고 볼 때, 정신분열병과 같은 순수 정신장애는 상태의 개념이기 때문에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면 회복이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심각한 망상에 시달리고’ 등의 상황이 무조건 지속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하면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를 ‘회복이 됐다’고 표현하고, 그 상태에서 좀 더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가게 하는 걸 ‘재활치료’라고 하는데, 정신장애는 재활이 가능한 증상이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는 성격적인 부분으로 완전히 뭉쳐서, 일정한 상태의 개념이 아닌 ‘기질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거기에다가 그것이 어떤 범죄적인 생각과 연결되기 쉽기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교정이 처음에는 상당히 어렵다. 그렇지만 사이코패스도 특수하게 제작된 치료방식을 거치다 보면 많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처럼 일반적 정신장애와 사이코패스는 정확히 구별과 구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으로는 정신과 관련된 모든 걸 통틀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계속 발생하는 것 같다

거기에서 또 한 가지 분류해야 할 것은 지적장애와의 관계이다. 지적장애는 정신장애하고 완전히 다른 부류이다. 지적장애가 일시적으로 정신장애 상태에 놓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규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갈수록 자살사건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결국 국가와 이웃들의 편견과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하는 건 아니다. 자살 충동 자체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세상과 연결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실제 자살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살자의 심리는 우리가 평상시엔 평가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질환을 앓았다든지, 정신장애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사회로부터 계속 고립이 된다. 그리고 가족들도 거기에 대해 적극적인 도움을 줄 만한 힘이 없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병이 많이 회복되어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해도, 직접 헤쳐 나가기엔 세상이 너무나 버거워지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던 분들이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예로 우울증 환자분들이 언제 자살을 많이 하느냐 하면, 우울증에서 회복되었을 때 자살하는 사례가 많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의 현상인 것 같다. 그건 또 왜 그런 건가

우울증이 아주 심각할 때는 죽겠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 거기에 빠져 있다가 회복이 되면, 여러 가지 상황이 동시에 좋아지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좋아지면서부터 비로소 현실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을 회복기에 느끼게 될 때, 그때 자살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아주 어렵고 힘들게 참고 살다가, 어떻게든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도 자살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한 가정주부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집을 장만하고, 어떤 자영업자가 온갖 고생 끝에 어떤 지위를 획득하게 됐다고 할 때, 그 다음부터 밀려오는 ‘성공우울증’을 피할 수 없게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즉, 자기를 바쳐서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한 결과가 끝없는 성장으로만 이어지고, 거기에서 헤어날 수 없는 성과주의의 늪에 갇히게 될 때 성공우울이 발생한다. 이건 현대인들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이기도 하다.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최고 학부에 입학해서 남부럽지 않아 보이던 사람들이었는데, 느닷없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종종 들리지 않는가. 성공우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의 외로움과 고독을 수반한다.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연구 내용 중에서, 요양시설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사설 정신병원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대목을 읽은 적 있다. 지역편차도 상당히 극심하다고 밝히셨는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게 올바른 것인가

정신과에서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형이냐 하는 건, 사실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계적 추세나 기준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면, 입원을 1년이나 2년 이렇게 하는 시대가 지나갔음은 분명하다. 입원시설은 최소화해야 하고, 정신보건센터 같은 사회복지시설은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입원을 줄이고 지역사회에서 치료하는 개념으로 균형이 맞춰져야 하는데,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입원실이 꾸준히 증가하는 역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입원실이 증가한다는 건 그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된다는 의미인가

지금 현재 약 8만 병상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신과 입원실 규모가 그 정도나 된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나 WHO(세계보건기구)의 기준으로 맞춰 보면, 우리나라는 약 5만5천 병상 정도면 적정한 입원의 수요를 맞출 수가 있다. 그러니까 현재보다 2만5천 병상 정도를 줄이고, 지역사회 시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로 키워야 입원 안 하고도 치료가 가능해지게 된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는 1978년도에 법을 만들면서 ‘1980년 1월 1일부터 모든 정신병원의 새로운 입원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확정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정신보건법의 1호 내용이다.

병원의 입원을 금지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지역사회에서 돌본다는 뜻이다. 입원실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면, 일반인들은 병원이 크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서 100병상을 가지고 있다 할 때, 한 달씩만 입원을 시킨다면 1년에 1,200건의 입원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100병상을 가지고 입원기간을 1년씩 해버리면 100건밖에 안 되지 않은가. 같은 규모로 1,200건을 해결할 수 있는데도, 100건밖에 못한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원기간이라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는 평균 입원기간이 1년을 넘기는 게 보통이다.

맞는 말씀인데, 우리의 경우는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상황이 맞물려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게 대부분일 것 같다. 가족은 정신질환을 감추려 하고, 국가는 격리시키려는 경향이 강하지 않은가

정확하게 보셨다. 국가는 관리를 아주 쉽게 하기 위해서 정신장애인들을 가두고,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 안에 정신질환장애인이 있다는 걸 분리한 뒤 자기들끼리의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가족들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 하는 마음도 들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의 편리성과 국가의 방임이 주된 요인이다.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정신보건전문가들이 여기에 대해서 적극적인 해결책을 안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의 무사안일주의, 이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이런 결과들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 인구는 그 수가 얼마나 되는가

최근에 실태조사를 해서 발표했다. 그 조사에 저도 연구팀으로 참여했는데, 2011년에 총 13개 지역의 연구 참여기관이 진행을 했다. 이번 조사에는 전 세계적인 CIDI(Composite International Diagnostic Inventory)라는 도구가 사용됐다. 그래서 ‘평생유병률’을 파악했는데, 평생유병률은 현재 병에 걸려 있거나 과거에 걸렸거나 미래에 걸릴 확률을 뜻한다. 이게 24.7%로 파악됐다. 4명 중 1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알코올 남용과 니코틴 남용도 포함됐는데, 니코틴 남용을 빼면 최소한 6명 당 1명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6명 당 1명이라는 게 굉장히 많다는 뜻인가, 아니면 반대의 개념인가

굉장히 많다는 거다. 6명 당 1명은 평생 동안 정신질환을 한 번 정도는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면 된다. 여기에는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치매, 알코올 남용 등을 다 포함한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치료가 잘 안 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우울증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술이 허용되는 분위기 아닌가. 술이 하나의 도구가 되어 있는데, 술을 좋아하는 민족들은 많지만 우리의 경우는 유독 알코올에 대한 의존장애가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치료를 안 받고 있고, 알코올 의존장애가 대부분 우울증에 가려져 있다.

우울증이나 정신병을 개인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지난 97년 IMF 금융위기처럼 경제적으로 국가가 어려워질 때 발생하는 외적인 변수로도 파악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맞다. 내적, 외적인 변수는 맞물려 있다. 경제가 안 좋으면 정신질환 비율이 올라가고, 또 지나치게 발전 속도가 빨라도 현대인의 소외감각이 올라간다. 최근 출간된 한병철 교수의 저서 ‘피로사회’의 진단이 정확하게 맞는다고 본다. 우울증이 많아지고 주의력결핍 아동들이 늘어나면서, 늘 성공에 대한 불안요소로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쫓기게 된다. 성공을 해도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더 인정받으려고 더 발버둥 치게 되고, 현대의 질병이자 피로사회의 주범이 정신질환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아까 정신장애인 인구의 규모를 질문드렸는데, 그 정신장애인들 중에서 요양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격리되어 있는 환자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나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긴 하지만, 일단 장기입원이 다른 나라보다 높고 많고 길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지금 오늘 날짜로 입원하고 있는 분들이 8만명 정도 되는데,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오늘 당장 입원해 있어야 될 필요가 있느냐를 따져보면 내용이 달라진다. 이건 저의 연구이기도 한데, 전체 입원환자 중에서 약 50%에서 60%는 입원해 있을 필요가 없고 통원치료만으로도 충분한 환자들로 파악이 됐다. 조금 전에 적정선의 입원 병상을 5만5천개라고 말씀드린 근거가 이것이다. 8만명 중에 약 3만5천에서 4만명 정도는 지역사회에서 관리를 해도 되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입원기간을 법적으로 정해놓는다면, 병원을 옮겨 다니는 등의 편법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걸 ‘횡수용화’라고 한다. 말씀하신 그런 방식은 실제로 적잖게 파악되고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요양원이 있다고 치자. 이 요양원이 국가로부터 시립병원 위탁운영을 받게 된다. 또 인접해 있는 도립병원을 또 위탁운영으로 받는다. 그 다음에 자기 개인 정신병원을 새로 차린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정신과 패키지를 다 가지고 있게 된다. 정신요양원, 시립병원, 도립병원, 개인병원, 여기에 요즘은 한술 더 떠서 노인병원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면 정신요양원에 있던 환자들이 도립병원에 가서 몇 달, 시립병원에 가서 몇 달, 개인병원에서 또 몇 달 하는 식으로 65세가 넘도록 돌고 또 돌게 된다.

그럼 계속 병상에서만 옮겨 다니며 인생을 보낼 수도 있다는 건데, 어떤 대책 같은 게 마련된 건 없는가

   
 
이걸 잡아내서 시정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국가 공권력이 굉장히 협조를 잘 해줘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국가 공권력이 어느 정도 방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위탁을 주면 안 된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지만 공공병원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공공성을 강화한다고 도립병원을 지어서 이걸 민간에게 위탁을 준다는 논리인데. 이건 안 된다는 것이다. KTX 민영화와 지하철 9호선의 민영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국가가 자기 돈으로 지어가지고 공공의 병원을 만들어 정신장애인들의 불필요한 입원을 막아야 하는데, 그냥 지어주고 위탁을 해버리니까 결과적으로는 방임해버리는 결과만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겠다. 선생님께서 국가적인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 하면, 선생님 입장에서 최우선 순위로 바꿔야 할 국가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겠는가. ‘이것만큼은 반드시 고치겠다’는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되겠다

그런 입장이 된다면, 이탈리아 정신보건법을 가장 먼저 도입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입원을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할 것이며, 입원병상률을 정확하게 규정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인구비례를 따져서, 각 지역 안에서 입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 환자가 부산지역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그래도 갈 경우에는 자기부담을 100%로 하는 등의 조치로 국가에서는 비용을 치르지 않게 해야 한다. 더불어 정신질환자의 입원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걸 함부로 민간에게 위임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의료보호환자의 재정에서 가장 많이 배정을 받는 게 정신과 환자의 보호비용으로써, 약 50%나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 소요되고 있다. 불필요한 입원이 가장 많은 게 정신과 입원이라는 뜻이다. 그만큼의 고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다른 분야의 의료보호환자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인권을 언급하셨는데,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정신장애인들은 인권이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민간정신병원이 더 많아지는 추세라 했는데,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법이라고 하는 게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힘든 자들을 돕는 게 아니고, 가진 자들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저도 정신보건법을 만들 때 참여했던 핵심인력 중 하나인데, 그걸 만들 때는 이 법을 만들면 정신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다 지역사회로 나오는 줄 알았다. 이 법에 의해서 탈수용화가 다 된다고 생각했고, 이 법을 만들면 지역시설이 다 만들어지면서 정신병원은 축소될 줄 알았다. 현실을 정말 몰랐던 거다. 결국 세월이 흘러서 보니까, 제가 거꾸로 정신보건법을 잘못 만든 사람이 된 셈이다. 법을 만든 사람으로서, 치료자의 입장에서 그 원죄가 있음을 인정한다. 강제입원 등의 잘못된 규정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권을 보다 더 강화하는 쪽으로 계속 수정을 하고 있다. 당사자들에 의한 치료거부권 문제를 법적으로 배려하고 사회적 보호를 확충하면서, 그 분들에게 치료혜택을 넓힐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실행해야 된다. 예를 든다면 평가입원을 하게 될 경우에는 그 분들에게 인권침해에 대한 어떤 보상이 있다든지, 더 나아가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입원할 수 있는 권리를 많이 강화할 수 있게 보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이 침해받았을 때는 보호자보다는 당사자들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쪽으로 법령이 개정되어야 한다.

여러 정책적인 말씀을 잘 들었는데, 좀 민감하고 일면 죄송스러운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실제 치료하는 의료진 차원에서는 이런 걸 각성해야 되겠다 하는 문제를, 치료자 당사자 입장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독자 여러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를 갖고 병원을 이용하려 해도 일단 병원 자체가 답답하고 문턱은 높으며, 따지는 게 많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등의 불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정신보건법과 재활치료의 가장 기본이 뭔가 하면, 바로 자기 병에 대한 교육이다. 그런데 그걸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특히 정신장애환자가 자신의 병명도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자신이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치료를 받다 보니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약의 부작용이 상당히 많았다. 지금까지도 부작용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만큼 정신질환자에 대한 교육을 안 했던 거다. 그러니 가족 교육은 말할 것도 없는 상태였다. 오전 진료와 오후 진료를 각각 서너 시간 보면서, 환자를 100명 이상이나 보고 있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그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진료상담 없이 처방만 했다는 얘기밖에 안 되지 않은가. 자본의 논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치료를 해야 한다. 환자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면담을 진행한다는 건 정신과의 고유한 진료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면담이 중시되는 치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는데, 그게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정신과마저도 치료가 약물 중심으로 뒤바뀌게 된 바 있다. 면담치료를 발전시킬 기회를 놓치게 됐다는 것이다. 최상의 치료는 면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치료사의 치료방식도 발전적으로 바뀌어야 하겠고, 환자분들도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를 택해서 치료를 받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거라 판단한다. 

 

   
 
작성자취재/ 이승현 기자,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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