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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 기부와 봉사의 숨겨진 주인공을 찾다, 가수 박상민

본문

각종 언론을 통해 자신의 활동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런 사실 자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며 나름의 적극적 활동으로 실천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특정인’의 남모르는 선행의 발자취를 전해 듣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주인공을 ‘직접 붙잡고’ 얘기를 나눠봐야겠다고 결정하게 됐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바로 ‘특정인의 남모르는 선행’을 경험하신 1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기로 한, 그 ‘특정인’을 이 자리에 소개하고자 한다. 가수 박상민 씨가 이번 ‘만난사람’의 주인공으로 함께한다.

 

   
 

바쁜 일정이라는 게 분명히 확인되고 있는데, 이 인터뷰에 흔쾌히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요즘 방송에서 노래 부르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운 마음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행복하기 때문에 매우 즐겁다. 대신 여러 명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등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저 역시 한 명의 사람인지라, 이왕이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좋다고 기대를 한다. 많은 분들이 ‘박상민은 이제 걱정을 안 해도 되겠구나!’ 하며 격려를 해주셔서, 상당히 영광스럽다.

그 선글라스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무대에 서 계실 때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본인의 성격이 어떻다고 직접 설명하실 수 있는가

성격이라…. 만약에 여러분께서 저의 발언을 언짢게 듣지 않으신다면, 그래서 솔직하게 저의 의견 그대로를 말씀드릴 수 있다면, 저는 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인간성 좋은 남자 그리고 정말 사람 같은 사람, 또한 정이 많은 남자 뭐, 그렇게 저 자신을 표현하고 싶고 그렇게 살아온 게 사실이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라는 것 또한 믿는다.

평소의 이미지가 정해져 있다. 선글라스에 중절모, 수염 등이 가수 박상민의 고정된 인상인데, 오늘은 좀 다르게 하고 나오신 것 같다. 이미지를 만들어서 정하신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까 굳어진 건지 알고 싶다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박상민’의 이미지 자체로 굳어져 버린 게 아닌가. 스스로의 이미지를 매우 만족하긴 하는데, 사실 좀 답답할 때도 있기는 하다.

언제 답답함 같은 걸 느끼시는가

예를 들어서 영화를 볼 때 그렇다. 선글라스는 계속 쓰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모든 영화가 굉장히 깜깜하다. (웃음)

웃음이 터졌으니까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겠다. 가수 박상민을 만난다고 하니까, 이웃의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꼭 부탁한다며 전해 달라 했다. 단적으로 묻겠다. 잘 때도 선글라스를 쓰고 주무시는가

아니다. 잘 때는 벗고 잔다. (폭소) 집에서는 벗고 있다. 아이들하고 있을 때는 벗고 지낸다.

그렇다면 팬들 앞에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활 내지는 활동의 제약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어떤 대안 같은 게 있으신가

간단하다. 변장을 하고 다닌다. 모자를 벗고 선글라스를 벗은 상태에서 다니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신다. 특히 겨울에 수염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개인적으로는 천국이 된다. 정말 마음 편하게 거리를 다닐 수가 있다.

직접 뵈니까 정말 동안의 얼굴이신데, 굳이 수염을 기르는 이유가 있으신가

   
 
수염을 기르는 이유 중 하나가, 면도를 한 얼굴이 저의 노래하고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제 노래의 스타일이라는 게 쓸쓸하면서도 남성스러운 면을 부각하는, 그런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까 면도를 한 얼굴과는 안 맞았다. 그래서 기르게 됐고, 그런 이미지가 고정되며 결정된 것 같다.

미대를 다닌 뒤 음대를 다시 전공으로 다니신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시게 됐나

음악은 원래 어릴 때부터 계속 해왔다. 한 번도 음악에서 다르게 뭘 해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음악은 저의 인생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노래를 못하게 되거나, 많은 분들이 ‘너 노래 그만해!’ 하실 때까지는 계속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인 방송 이미지는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이라 느껴졌는데, 직접 뵙고 나니 나름 활달한 성격에다가 유머도 가지신 것 같다. 스스로를 어떤 성격이라고 판단하시는가

낯가림이나 쑥스러워하는 면이 적잖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까 개인적으로는 진짜 안 좋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극단적인 결단을 내릴 정도의 그런 일들을 수십 차례 겪었다. 그런데도 낙천적인 성격을 믿으며,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지내온 것 같다.

궁금했던 게 있어서 편하게 질문 드리겠다. 다른 가수들과 달리, 가수 박상민을 선호하는 팬 연령층은 10대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보통의 팬 개념이라면 특정 연령층이 중심으로 등장하기 마련인데, 가수 박상민은 예외가 있는 것 같다. 그 대목은 어떻게 판단하시는가

우리나라에 수많은 가수들이 있지만, 전체 연령층을 포괄하는 건 저 박상민이 1등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런 자신감이 분명히 있다. 저는 청소년들의 행사장부터 시작해서 대학 축제의 마당과 어르신들의 자리까지, 모든 연령층에서 호응을 얻는 입장이다.

왜 그렇다고 판단하시는가

한결 같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팬’이라는 이름의 모든 분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지낸다. 물론 몸은 굉장히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팬들이 다가오는 걸 단 한 번도 피곤하다거나 싫다는 표정으로 대한 적이 없다. ‘같이 사진을 찍자’, ‘사인해 달라’ 등의 요청을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왜냐, 모든 걸 감사하기 때문이다. 항상 저를 찾아주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실 때, 정말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 후배들한테는, 늘 지적을 하는 입장으로 지내게 된다.

이번 만남의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기부(寄附)를 가장 많이 하는 가수 및 연예인으로 밝혀지셨는데, 수익의 정말 많은 부분을 나눔의 대상에게 전달하셨다고 알고 있다. 이번 만남을 위해 여러 자료들을 찾다가 보니, 가수 조영남 씨가 했다는 한마디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가수 박상민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어이없을 정도로 착하다’, 그리고 ‘정말 착한 가수’라는 극찬이 올라와 있던데, 원래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신 건가

대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몰랐는데…, 저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는 게 좀 그렇지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건 분명한데 마음이 너무 여리다. 저한테 정말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그 앞에 있다 보면 말을 못 꺼낼 정도이다. 어머니를 닮은 성격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어머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닮았다고 하시는 건가

너무너무 여리고 진짜 순하고 착한 분이시다. 그 여린 마음을 빼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까 저의 그 약점을 이용해서, 저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게 착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저의 이런 모습이 갑자기 독하게 돌변하거나 바뀌진 않을 게 아닌가.

그럼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어려운 분들을 많이 보며 지내오신 건가

저의 집은 풍요한, 그런 집은 아니었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데, 어머니는 평택의 OO시장에서 야채장사를 30년 넘게 하셨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 그렇게 오래 하셨던 거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그게 굉장히 창피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면 막 숨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고생하시며 자식들을 키우신 건데, 풍요롭지도 않은 저의 집안에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봐왔던 모습은 한 가지였다. 저의 부모님은 그렇게 어렵게 장사를 하시면서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다 거두어 먹이시며 지내셨다. 그런 모습을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저 역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다. 가수가 되고 나서 경제적인 여유 비슷한 게 생기게 된 다음부터는,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냥 자연스럽게 나서게 된 거다. 무슨 계기 같은 건 없다.

   
 

홍보대사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신다고 들었다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굉장히 많다. 지금 저도 그게 정확히 몇 군데인지 파악 못하고 있는데, 제가 맡은 홍보대사만 해도 30군데가 넘을 것이다. 일단 몸의 각 부분에 대한 홍보대사는 다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된다. 눈 홍보대사부터 시작해서 간, 심장, 신장 등의 홍보대사를 다 맡고 있다. 그런데 저는 홍보대사에 이름만 내걸어두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요청이 있을 때는 100%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수 활동 이외에도 정말 엄청나게 바쁘실 것 같다

많이 바쁘다. 워낙 일을 만들어 하는 성격이라서, 기획사 입장에선 저 때문에 많이 피곤할 것이다. 예를 들어 스케줄이 10개라고 하면, 그 중에 6개 정도는 제가 직접 잡는 편이다. 회사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일을 제가 먼저 맡아버리는 것이다. 홍보대사 이외에도 누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다. 대표적인 예로, 축가 제의가 들어오면 거의 해주면서 지낸다. 축가 같은 경우는 제가 돈을 아예 안 받는다. 안 받는다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다.

축가에 대한 답례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말씀인가

‘축하는 축하일 뿐이다’, 그것이 저의 철칙이다. 이게 멋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가수들은 꼭 사례를 받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것만 다 받았어도 굉장히 부자가 됐을 텐데…. (웃음)

그럼 1년에 몇 번 정도나 축가를 해주시는가

1년이라고 따지면 너무 광범위하고, 1주일에 보통 3회에서 많으면 5회 정도 부른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한테 갈 때도 있는데, 그런 활동이 피곤하긴 하다. 안 피곤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텐데, 그 피곤이 어떻게 풀리는가 하면, 저로 인해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단번에 그 모든 피로가 풀린다. 제가 축하의 노래를 불러서 행복해 하는 신랑과 신부, 그 가족, 수십 수백 명의 하객들의 환한 얼굴을 볼 때면 기분이 정말로 좋아진다.

그렇다면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 중 누군가가 축가를 부탁한다면 해주실 의향이 있나

그동안 정말 많이 했다. 저는 누구처럼 자신을 알리려고 드러내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거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다. 병원에서 요청이 들어올 때도 많았다. 병원 홍보대사 또한 많이 맡고 있는데, 정신병동 같은 공간에서 공연했던 적도 몇 차례 있었다. 그 분들이 정말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노래를 하면서도 음악의 힘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실감을 그때마다 느끼곤 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분들 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었나

예를 들어 귀, 달팽이관, 그러니까 제가 ‘사랑의 달팽이’도 홍보대사인데, 전혀 듣지 못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달팽이관 수술을 하게 해줬는데, 몇 년 후에 찾아와서 비록 어눌한 발음이지만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런 인사를 받게 됐을 때는 정말 말로 표현 못할 희열을 느꼈다. 또한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제가 미처 기억을 못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심장수술을 하라고 아이들한테 지원을 좀 많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10년 넘게 지난 뒤 저의 공연장으로 몇 십 명이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할 때는, 그럴 때는 보람 수준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서 ‘야, 내가 진짜 출세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촌놈이었는데 성장해서 이런 나눔의 희열을 얻게 된다는 건…, 그럴 때는 솔직히 저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한테서 그런 감사의 인사를 받는다는 건,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열 살 여덟 살인 저의 아이들한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많다. 제가 부모님한테서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왔듯이, 저의 아이들한테도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거다. 밥투정이나 공부를 게을리 할 때는, 정말 어려운 상황의 아이들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 마냥 약하게 온실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무조건 감싸며 안기보다는, 주변의 상황을 폭넓게 볼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신다는 건가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 한마디를 해야겠다. 책에 들어가도 좋고 편집된다 해도 어쩔 순 없지만…, 외국에 나가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연예인들이 많이 있다.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는 칭찬을 받을 일이겠지만, 그걸 꼭 언론에 노출시키면서 할 필요가 있는가. 독자들과 시청자들에게 알려야만 봉사가 값진 게 되는가.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저도 아프리카 아이들 20명을 몇 년 전부터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굳이 티를 내며 언급한 적이 없었다. 언론을 대동하고 해외봉사활동을 다닌다는 게 그들의 취향인지 언론플레이가 목적인지는 알 필요까진 없겠지만, 정말 어려운 아이들은 한국에도 많이 있지 않은가.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봉사가 이뤄진다는 점은, 솔직하게 말해서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과 사회에 관심이 많으신데, 특별히 요즘의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의식 같은 걸 갖고 계신 게 있는지 듣고 싶다

   
 
없다고 하면 그게 아닐 테고…, <함께걸음>이니까 장애인 여러분의 문제 먼저 말씀드리겠다. 방송이나 신문 같은 걸 보면, 너무너무 답답하고 성질이 날 때가 많이 있다.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 같은 문제가 자주 나오는데, 크게 어려운 점도 아닌 걸 왜 해결해 주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 분들의 어려운 상황은 분명히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아무 일도 아닌 걸로 해결이 될 텐데, 왜 그걸 무관심하게 방치를 하는가. 그 문제가 곪아터진 다음 언론에 노출이 된 다음에야 뒤늦게 수습하려 나서는 게 다반사인데, 그럴 때는 막 울분이 터진다. 외국과 비교한다는 게 격차가 너무 많이 난다 하지만, 비교를 해서 해결 가능한 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왜 나 몰라라 하며 방관하는 건가. 여기 <함께걸음> 6월호 표지가 마침 지하철 리프트 사진으로 나와 있는데, 언젠가 방송을 보니까 이런 리프트도 작동이 안 되는 게 절반이 넘었다. 그래서 장애인 한 분이 열차를 이용하려고 하면 몇 사람이 와서 짐처럼 들고 이동을 하던데…, 이건 분명 아니라고 본다. 정말 너무 답답하다. 제가 입 바른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면에선 제가 매우 강경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분명히 아니라고 지적을 하는 것이다.

지금 말씀하신 의견에 동감하는 독자들이 아주 많으실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자라오면서, 혹시 생활 주변에 장애를 가진 친구나 이웃과 함께하신 적이 있으신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오른손 절단이셨다.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 오른손을 넣고, 왼손으로 가르치며 생활하셨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도 여러 분들이 계셨지만, 장애가 있다 해서 굳이 다르게 본다는 것 자체를 저는 이해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관행 역시 절대 이해 못한다. 저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다르게 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전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한테, 힘이 될 만한 격려의 한마디를…

(질문을 막으면서) 저는 그게 싫다. 장애와 비장애, 장애는 어렵고 슬프고 힘들고, 이런 구분 자체가 싫다는 거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자격지심 같은 걸 가질 필요도 없다. 모두가 똑같은 사람들이기에, 자격지심 같은 걸 갖게 하거나 갖고 지낼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두가 우리 사회의 똑같은 일원이다. 조금 더 불편함 같은 게 있고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용기를 내세요, 힘내세요!’ 하는 격려나 덕담 같은 말이 필요 없다는 거다. 저는 그런 표현 자체를 싫어한다.

그게 훨씬 듣기 좋고 힘이 나는 말씀인 것 같다. 적극적으로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고 사회에 대한 올곧은 관점을 가지고 계시지만, 너무 손해를 보면서 지내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걸 가지고 아깝다거나 손해를 본다거나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저의 아내 얘기를 잠깐 꺼내겠는데, 그동안 저한테 안 좋은 일이 굉장히 많았다. 사기도 많이 당했고, ‘짝퉁 박상민 사건’ 같은 별의별 일도 다 겪었다. 그런데도 저의 아내는 신문기사 등을 보며, ‘이 분들을 우리가 도와주자’며 제안을 한다. 저 또한 기사를 읽고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회사에 연락해서 지원을 하게 하거나, 수익금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공연을 제가 해서 그 수익금을 전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한다. 저보다 제 아내가 더 적극적이다. 사실 돈이 있다면 그게 자기 돈이어야 좋지, 자기 손에서 떠난다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그런 면에서 저의 아내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늘 고맙게 생각하며 지낸다.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 마지막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다. 앞으로 어떤 노래, 어떤 음악을 하고 싶으신가. 의미를 좀 더 부여한다면, 어떤 인생을 노래하며 지내고 싶으신가

일단 노래한 지 20년이 됐고, 이젠 나이도 있기에 메시지가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 그동안 사랑노래를 하면서도 남자다운 사랑 얘기를 주로 해왔는데, 앞으로는 자연이나 인생과 같은 포괄적인 내용의 노래를 하고 싶다.

거기에 인권을 주제로 한 곡도 포함되면 정말 좋겠다

당연히 훌륭한 일이고, 의미 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제 입장을 벗어나는 과도한 욕심이 아닐까 해서 주저했던 게 사실이다. 좋은 제안으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검토하며 대화를 나눠보겠다. 독자 여러분을 위한 멋진 곡이 만들어지게 되길 저 역시 기대하고 싶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기를 기원한다.

 

   
▲ 아빠를 찾아온 두 딸과 함께한 박상민 씨
작성자대담 이애리 기자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bonbon72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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