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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 국회의원 인재근

본문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사(史)는 위의 한마디 절규를 ‘듣기 이전’과 ‘그 이후’로 확연하게 구분된다. ‘왜 군부독재가 타도돼야만 하고, 민주화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의 근본적 화두를 그 절규가 내던졌기 때문이다. ‘김근태’라는 존재는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고, 2011년 연말에 갑자기 전해진 ‘그의 떠나감’은 그의 존재가 얼마나 컸으며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겨졌는지를 재확인시키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정치인으로서의 김근태에겐 인생의 동지이자 친구인 ‘1인’이 언제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산증인과 같은 그를 이번 ‘만난사람’의 공간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인권운동가에서 제19대 국회의원으로 역할의 위치를 바꾼 인재근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김근태’는 ‘인재근’으로 인해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이 글을 정리했다. 그의 진솔한 마음속 언어들을 여기에 옮긴다.

 

   
 

수많은 현장에서 늘 마주치며 지내왔던 입장인데도, 대한민국 국회 의원회관 안에서 뵙는다는 게 정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국회의원이 된 소감을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우선 국회라는 장소가 약간 낯설다. 새롭게 지은 의원회관 신관이 기존의 의원회관 바로 옆에 들어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함께하면서, 돈독한 친분을 갖고 지내온 분들이 국회 안에 많으시기에 크게 낯설지는 않다. 옛 동지들과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소소한 행복 또한 존재한다.

민초들의 현실적 현장에 계시다가 국회 안으로 들어오셨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가

생각했던 것보다 국회의원의 일이 많다. 일정도 정말 많고 처리해야 할 일들과 공부해야 할 내용들도 가득 밀려 있다. 전국구가 아닌 지역구 의원들은 더 심한 것 같다. 물론 제가 초선의원이기에 그런 느낌이 더할지도 모르겠지만, 차분히 배우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려 한다.

의원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사방 전체에 심어진 김근태 전 장관의 여운인 것 같다. 두 분이 같이 지내고 계시는 것 같은 이 느낌이 믿음직한 무언가의 힘을 전해주는 것 같다

일부러 의원 사무실 전체를 남편 김근태 의장의 사진과 유품들로 꾸며 놓았다. 그리운 마음도 있고, 한편으로는 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남편 김근태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화를 제 가슴속에 매일매일 되새기며 지내게 된다.

의원님의 인생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한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인권은 어디까지 와 있다고 판단하시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인권은 과거 100년에 비해 100배, 과거 50년에 비해 50배, 과거 5년에 비해 0.5배 좋아졌다고 말씀드리곤 한다. 과거 5년 전에 비해 5배 좋아져야 하는데, 독선과 불통의 현 정권 때문에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참 중요한 점을 스스로 되새기게 됐다. 87년 민주화 이후로 경제와 민주주의와 인권이 계속 성장해왔기에, 우리는 그 성장을 너무도 당연시하며 지냈던 것 같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정체하거나 후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요즘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깨닫고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현병철 인권위원장 재임명에,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는가. 상식적으로 터무니없는 것 이상으로 국민이 무섭기 때문이다. 국민이 무섭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힘이 아닐까 한다. 후퇴되고 균열된 민주주의와 인권을, 국민의 힘으로 다시 본래의 가치 그대로 회복시켜야 한다.

최근 정국의 큰 현안 중 하나인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신 바 있다. 의원님이 그 연임의 반대 목소리를 높이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상식과 역사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임기 동안의 행태는 국가인권위원장이 아니라 청와대파견위원장이었다. 인권위원장이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는 자에게 다시 위원장을 맡길 순 없다. 인권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임명되는 순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서야 하는 자리이다. 지금까지 여러 선임 위원장들이 그렇게 해왔지 않은가. 그 선임 위원장들은 청와대를 견제할수록 국민의 칭찬과 지지를 받았다. 왜 그랬겠는가. 바로 그렇게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인권을 퇴보시킨 자를 다시 임명하겠다는 것은 인권에 대한 도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에 극도의 절망감만 느끼게 된다. 대통령은 현병철이라는 오명을 자신의 과오에 추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의원님은 얼마 전 고문 피해자들이 만든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하셨다. 그 상이 어떤 상이고, 인권과 관련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 상인지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진실의 힘’은 군사독재 시절 억울하게 고문 등을 당하며 옥살이를 하셨던 분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정 받으셨는데, 그 보상금을 모아서 만든 재단이다. 그 분들께서 인권과 민주주의 등과 관련해 큰 기여가 있는 분들을 선정해서 인권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번에 2회 수상자로 남편인 김근태 의장을 선정하셨고, 제가 대신 수상을 하게 됐다. 그때 받은 상금이 있는데, 함세웅 신부님이 추진하고 계신 고문치유센터 건립을 위해 기부하고자 한다.

김근태의 아내로서의 자리매김도 물론 있지만, ‘인재근’이라는 이름 석 자의 무게감 자체도 상당함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오셨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돌아본다면 어떤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가

무엇보다 남편 김근태의 고문을 폭로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 남편과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민가협을 만든 것 역시 중요한 기억이다. 어찌 보면 민주화운동을 하는 당사자보다, 그 가족들이 더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걸 간과할 순 없다. 소식을 모르는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그러면서도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가족들의 애환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문익환 목사님을 가깝게 모실 수 있었던 점도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요즘 유행하는 ‘멘토’라는 단어를 어떤 한 분에게만 써야 한다면, 저는 문익환 목사님을 저의 멘토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순간이 감동과 영광이었던 시간들이었다.  

의원님의 지난 활동상을 보면, 인권문제 이외에 사회복지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걸 알 수가 있다. 평소 생각하고 계신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한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안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달라

우리 사회복지의 문제점은 어느 한두 가지를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비판보다 중요한 것은 대안제시이다. 문제가 많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를 다 압축성장한 나라에서, 복지 역시 압축성장하다 보니 엉성해진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통해, 복지가 대한민국의 대세이자 시대정신이 됐음을 모두가 확인하게 된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번 19대 국회 상임위 구성을 보니까, 의원님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으로 결정되셨다. 모두가 당연히 ‘인재근 의원은 복지위’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게 당연한 귀결이라고 믿었는데 어떻게 외통위 소속이 되신 건가. 그 점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정말 많이 있다

저 또한 당연히 보건복지위원회 배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인재근을 복지위로 안 보내는 원내대표는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이 거의 전부였기에, 의심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거다. 남들처럼 1,2,3 지망 전체를 똑같은 위원회로 적어냈어야 했는데, 또한 적극적으로 저의 의견을 개진했어야 했는데, 순진한 건지 그냥 순리대로 진행되리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원내대표한테 전화가 오더라. 잘 모시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알아보니까, 원하던 상임위 배정을 못 받은 의원들한테는 원내대표가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외통위 소속이 됐다고 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복지위에서 이러이러한 활동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고 저 또한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까지 전해드렸는데,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났느냐고 물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며 미안하다고 하는데…, 다들 난리가 났다. 일단 유보라도 시켜놓고 강하게 의견을 피력해야지, 어떻게 그걸 그냥 받아들이느냐고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렇게 됐다.

김근태 의장이 복지부 장관을 역임하셨기 때문에, 의원님 또한 당연히 복지위를 배정 받으시리라고 생각하며, 다들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 장관 수행비서였던 사무관도 저를 찾아오더니, 힘이 쫙 빠졌다며 크게 아쉬워하더라. 하지만 복지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해당 상임위도 아닌 제 의원실에 꼬박꼬박 들리며 인사를 한다. 김근태 장관 시절에 같이 일하던 분들의 실망감이 그만큼 더 큰 것 같다.

김근태 의장께서 복지부 장관을 하고 계실 때, 옆에서 보시기엔 어땠다고 기억나시는가

그때는 정말 일을 열심히 해서 보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자신감 같은 게 생겼다. 복지 분야에 대해서는 자기가 최종 책임이니까 충분히 그것을 잘할 수가 있고, 국가 복지의 국정전반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걸 정말 눈에 띌 만치의 자신감으로 해냈다. 그게 참 보기 좋았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원래 복지부가 아니라 통일부 장관이 될 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남편이 맨 처음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 지면에 밝히기엔 민감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는 복지부 장관으로 결정되는 분위기였다. 우리 가족은 대화를 겸한 가족회의를 자주 하는 편인데, 그때도 남편은 복지부 장관이 될 것 같다며 조금 마음이 안 좋다는 식의 속내를 비쳤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다 복지부 장관이 훨씬 더 좋다며, 강력하게 추천하며 권유를 했다. 왜냐하면 국민생활과 직결된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애들까지도 강하게 복지부를 권했다. 그래서 남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결정을 하게 된 것 같다. 저 또한 확실하게 도와주겠다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장관이 된 후로는 실제로 큰 힘이 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전국을 다 다니면서, 구석구석의 국민 의견과 현실을 모니터링해서 전달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현장 활동을 하셨다는 건가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각 지역의 여러 기관들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현장의 모습과 목소리를 직접 접하며 다녔다. 그렇게 얻게 된 의견들은 복지부에 다 전달했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 그런 세세한 내용들을 제가 경험한 그대로 전한 것이다. 저 나름의 그런 활동들이 남편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계기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김근태 장관이 계시는 동안, 정부 내에서 복지부의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는 걸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가 몰랐던 의원님의 내조가 뒤따랐다는 사실을 새롭게 듣게 된 것 같다. 화제를 잠시 바꿔서 지난 총선 때를 잠시 상기시켜 보고자 한다. 요즘 시대적으로 안철수 현상이 상당한 파급을 낳고 있는데, 당시 안철수 원장이 2명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었다. 경기도 의왕의 송호창 변호사와 서울 도봉의 인재근 의원님이 그 주인공이다. 송호창 변호사는 서울시장 캠프 관련 활동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인재근일까?’ 하는 궁금증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김근태 선생과 인재근 여사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밝혀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는데, 공개적인 지지 이전에도 두 분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던 건지 알고 싶다

얼마 전 일간지에 나왔던 것처럼, 남편이 아프기 시작해서 병원을 가던 게 작년 10월 중순 무렵이었다. 그런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김근태 의장의 건강이 어떻게 안 좋아지고 병세가 어떻게 악화된 건지, 그 자세한 내용이 알려진 게 없는 것 같아 늘 궁금했었다

오래 전부터 가을만 되면 앓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게 안 좋았다는 거다. 어느 날 이상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뇌의 혈전 어딘가가 막힌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런데 그게 정맥이었다. 동맥이었으면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증세가 점점 더 안 좋아졌는데… 지금도 아쉬워하는 건 그때 종합병원이 아닌 한방병원 같은 데로 모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쓰기 위해서 데려가셨다 생각해야만 제 마음이 편해지기에, 모든 결론과 결과에 대해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했다. 이 사람을 데려가신 건 야속하지만…,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남편의 증세가 안 좋을 때, 안철수 원장한테서 만나고 싶다는 의견이 왔었다. 하지만 이미 의사전달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직접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전갈이 왔다. 꼭 만나 뵙고 싶고,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게 되면 꼭 의논을 드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끝내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안 원장의 그런 마음이 인재근 공개지지 방식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다.

민감한 질문이긴 한데, 안철수 원장의 공개지지가 선거운동에 가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있는가

그렇다. 확실하게 있었다. 언론을 통해 그의 지지 소식이 전해지고 나니까, 개미군단의 후원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 대중적인 힘이 있는 인물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다른 후보들의 선거구호는 관심이 없다 해도 사람들, 특히 젊은 층에서는 안 원장에게 자신의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새로운 기운이 저의 선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의원님을 만나기로 한 이후부터 줄곧 해오던 생각이 있었다. 의원님과의 대화에서 상당부분 김근태 의장이 등장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오히려 앞으로는 인재근 의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고, 그 영역을 중점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의견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벗어나기보다는, 같이 추구하던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게 올바른 길인 것 같다. 거의 매일 민생현장에서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 오셔서 얘기하고 하소연을 하시면서, 법을 만들어달라, 억울하다, 살려달라, 이런 절규를 토해내신다. 어제 같은 경우만 해도 밀양의 송전탑 문제 때문에, 그 주변에 계시는 농민들이 올라오셨다. 다들 70대 80대인 어르신들이었는데, 살려달라고 정말 난리가 날 만큼 울부짖으셨다. 어제 함께했던 의원들 중 초선인 여성의원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야 했다. 느낀 점이 너무 많았다. 결국은 우리가 정치를 왜 하는가. 억울한 사람 없게 하기 위해서, 소외된 사람 없게 하기 위해서 해야 된다는 것,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항상 복지 문제를 위해 일해 왔고, 당연히 복지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할 줄 알았기에 많은 분들에게 약속했던 사항들도 많이 있다. 외통위 소속이 됐지만, 복지와 관련해서 제가 약속했던 내용들은 계속 지키며 실천해야 한다. 복지위 소속 의원들을 다그치는 한이 있더라도, 복지에 대한 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대화의 방향은 벗어나지만, 의원님을 만나기 전의 상황을 잠시 말씀드려야겠다. 제가 약속시간보다 십여 분 늦게 의원실로 왔다. 국회 안에서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늦게 된 거다. 방문차량의 운전자가 장애인인데, 차는 무조건 국회 밖에 주차시키고 들어오라며 길을 막았다. 국회 안에 주차하는 건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국민을 배려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에서 어떻게 장애인 차량을 밖으로 내몰아대는, 이런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가. 국회도서관 뒤에 가까스로 주차를 시키고, 이 넓은 국회 광장을 가로질러 힘들게 걸어오는 지체장애 방문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건 당장 조치해야 된다. 즉시 국회 사무처장한테 얘기하겠다.  의원회관 신관이 생긴 다음부터, 방문객들이 불편해졌다는 말을 많이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책임지고 당장 조치하겠다.

개인적인 기대이기도 하지만, 민초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의원님으로 모두에게 인정 받으며 존재하시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그 분의 한마디는 바로 우리의 얘기’라고 느낄 수 있도록, 민초들의 가슴에 와 닿는 말씀과 활동을 부탁드리고 싶다

저는 그냥 하는 얘기는 못한다. 그래서 어디에서 얘기해 달라 하면, 제 마음에 있는 얘기를 못할 환경이면 아예 안 간다고 한다. 공허한 얘기는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말하고 악수하는 걸로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그건 저의 성격과 전혀 다르고 맞지 않는다. 대신 꼭 가야 하는 곳, 꼭 해야 할 말은 어디든 달려가서 분명하게 밝힌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의원으로서도 그렇게 활동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바쁜 일정 중에 소중한 시간을 내주시고,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듣게 된 것 같다. 정리하는 마음으로, 또한 강조하는 의미에서 인권과 복지가 지금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고, 우리 후세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듣기 좋은 말로 ‘하늘이 내린 천부인권’이 결코 아니다. 다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이다. 쟁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론 뺏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권을 쟁취하는 데만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방심하는 사이에, 이명박 정부 4년여 동안 인권이 이만큼이나 후퇴할 수도 있다는 걸 처절하게 체험하며 깨닫게 된 셈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에 깜짝 놀란 국민들은, 결국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에 분노하게 되었다. 인권과 민주주의와 복지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 ‘덕분에’ 국민 모두가 뼈아픈 실감으로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야 없는 모든 대선주자들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모든 건 각성된 국민의 힘 때문이다. 지금 잘해야만 인권과 복지가 긍정적 방향으로 자리를 잡게 되기에, 때를 놓치면 절대로 안 된다. 그렇기에 지금 2012년 12월 대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등록된 장애인 인구가 250만 명을 넘어섰다. 미등록 장애인까지 포함한다면, 전체 국민의 10%에 가까운 이들이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데, 아직까지도 소외계층을 언급할 때마다 가장 먼저 예시되는 게 장애인일 정도로 인식과 현실 모두 열악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원님의 견해를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배려가 많이 시도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더 직접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장애인 여러분도 힘들지만 큰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그저 소외받는 장애인이라고만 생각하시면, 정말 시혜만 받는 소외계층이 되고 만다. 여러분은 장애인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주권의 원천인 국민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셔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배려는 결코 여러분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국민이고 이웃이고 형제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주도권을 가지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회의 이웃으로서, 공동체의 형제로서 우뚝 서서 나아가셔야 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장애인의 미래를 위해 절대 멈출 수 없는 길이다. 저도 언제나 응원하고 함께 하겠다. 항상 여러분 곁에 있다는 마음다짐으로, 최선의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약속드린다.

 

「오전 11시 경 인터뷰를 마친 뒤, 1시간 남짓 지났을 때 국회사무처 책임자로부터 김정열 편집주간에게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우선 오늘 방문차량 주차 문제에 있어서, 장애인 운전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처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회 후생관 주차장을 즉시 장애인 주차장으로 개방하는 조치를 내렸다며,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회의 각성을 다시 한 번 촉구하며, 인재근 의원님께는 항상 이러한 활동의 멋진 모습을 큰 응원과 함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작성자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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