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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조화 속에 경쟁 이뤄야"

재활협회 새회장으로 취임한 조일묵씨

본문

                                    -재활협회 새 회장으로 취임한 조일묵씨-
                                 "조화 속에 경쟁 이뤄야"

복지체육회 부회장과 함께 최근 재활협회 회장까지 겸직,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장애판에서 서서히 실력자로 떠오르고 있는 조일묵 회장을 만나 장애우들과의 인연, 재활협회 회장 수락을 둘러싼 뒷얘기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보았다.

 

▲재활협회장-조일묵씨

 -복지체육회 부회장에 재활협회 새 회장까지 맡아 바쁘실 텐데 하루일과를 좀 소개해 주시죠.
 =우선 당분간 협회 업무파악도 그렇고 또 분위기도 좀 알아야 되겠고 해서 월·목요일에는 재활협회 일을 보고 나머지는 그대로 복지체육회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재활협회가 그동안 유일한 정책연구단체로서 장애판을 대표해 왔지만 최근에는 그 역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복지관과의 관계도 껄끄러운 상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는데 그동안 느꼈던 재활협회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기록에 의하면 재활협회가 1964년에 창설된, 그러니까 장애우 단체로서는 가장 오래된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사회환경이 변하고 복지에 대한 관심과 장애우들의 욕구가 많이 분출되면서 뇌성마비다, 시각장애다, 각종별 복지가 독립해 나가고 기능경기대회, 장애우 체육대회 등의 역할이 나눠지던 중 90년 협회내부의 분규가 일어나면서 사업이 줄어들고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정리 안된 상태라고 봅니다.
 하지만 줄어들면 줄어든 대로 할 일이 있는데 제가 이번에 업무파악을 하고 보니까 실무자들은 꽤 연구를 하고 방향을 찾아서 하는 것 같습니다. 조사업무라든지 재활정보의 제공 등 재활협회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는 다른 단체하고 중복이 안되게 연구를 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협회장에 뽑히실 때 사양하셨다고 들었는데 후에 승낙하게 된데 무슨 특별한 동기라도 있습니까.
 =그동안 재활협회 이사로 11년 간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해마다 총회에는 참석한 일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안 나갔죠. 한데 5월 21일 사무국장이 얼굴이 노래가지고 와서 총회를 했는데 내가 당선이 됐다며 "말이 되는 얘깁니까" 했는데 여섯 시쯤 서광윤 회장에게 정식으로 전화가 와 "대의원 회의서 만장일치로 됐다"고 그래서 5월 마지막날 만나기로 했습니다.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한쪽에는 "아무하자 없이 대의원 총회에서 선출됐는데 취임을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하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취임반대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해 선출경위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 날(5월 21일) 오후 대의원총회를 하기 전에 12시부터 이사회를 했는데 서광윤 회장이 "난 도저히 못한다"고 거듭 사퇴의사를 밝히고 박승서 부회장, 신영순 이사도 못한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중앙에 책임질 분들이 다 안 한다고 해 공중 분해시킬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래서 나를 추천한 것이라고 합니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회장과 정식으로 만나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라"고 하자 서회장은 "지금 내가 다시 회장이 되어 새롭게 나가자고 해도 새롭게 될 분위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젊은층에서 해야 한다"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원로 몇 분을 찾아갔더니 "가라, 안 되면 곤란하다. 지금 취임 안 하면 더 복잡하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지방에서는 "왜 안 하느냐"고 전화가 빗발치고 또 몇 사람은 반대하는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장애자판에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금물이지. 욕심 때문에 맡은 것은 아니고 이사생활 12년 동안 해오면서 내 눈앞에서 재활협회가 죽는 것은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이순신 장군의 말대로 "필생즉사"의 심정으로 맡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재활협회 회장을 맡게 됨으로써 장애우 단체간의 반목이 표면화되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싫든 좋든 이런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게 됐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입니까.
 =무엇보다도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지금 장애자판에는 협력이 없이 경쟁의식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뭐하러 그런 일을 맡아 흠집을 내느냐"고 진정으로 나를 생각해서 충고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도 한다고 봅니다.
 재활협회가 활발하면 활발할수록 지체든 맹이든 농아든 장애우들에게 더 좋은 것이지 "재활협회가 강화되면 다른 단체가 피해를 본다"는 논리는 이해가 안됩니다.
 또 항간에는 "장애판에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복지체육회, 재활협회의 3대 단체가 있는데 그 중에 제가 2개나 맡는 게 무슨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장애자 단체끼리 서로 반목할 필요 어디 있습니까. 그건 정말로 쓸모 없는 에너지 소모라고 봅니다. 나는 내 취임을 반대하는 사람과도 정면으로 만나 "반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재활협회도 법인격을 가진 법인체이기 때문에 잘못되면 이사회가 정관, 규정에 의해 합법적으로 절차를 밟아 해결할 텐데 남의 단체 일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협회의 문제는 "인사의 문제"라고 할 정도로 인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주성오 남부복지관 관장은 복지관과 협회와의 분리를 얘기할 정도로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주성오 관장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이사회에서 제명결의까지 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인사문제 처리의 기준은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그 문제로 이사회에서 심의를 하는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내부분규로 신뢰가 떨어지고 협회가 해야 할 사업방향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하면 또다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갈 염려가 많으니까 중징계보다 화합차원에서 해결해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쪽으로 건의를 했죠.
 그래서 취임하면서 당부한 것이 바로 "인화"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사행정이 규정대로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불만이나 갈등이 생겼던 것은 1년에 2직급 이상 승진을 하는 등 나름대로 인사에 맹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는 규정에 맞춰서 해나갈 것입니다.
 복지관과 협회의 분리요구는 나름대로의 지침대로 움직여야 될 것으로 봅니다. 재활협회가 전체 복지관의 공통적인 일 보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남부복지관과 구분 없이 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사무실 이전문제는 관악구청에서 7월 말까지 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조일묵 회장의 취임과 함께 재활재단과 협회가 신문가판 운영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재정사업의 정리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협회가 운영능력이 있는지 어쩐지 확실히 모르고 재단과의 관계도 복잡해 현재상태에서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재단 역시 함께 노력했던 사람들이니까 서로 타협해야겠죠.
 -복지체육회 부회장에 재활협회 회장까지 겸임한 것에 대해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고 정치판으로 나가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는데. 또 항간에는 "장애판에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복지체육회, 재활협회의 3대 단체가 있는데 그 중에 제가 2개나 맡는 게 무슨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하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일찍이 한번 정치물을 먹었던 사람입니다 온양에서 출마했었죠. 해봐서 아는데 정치는 거짓말을 밥먹듯 해야 가능합니다. 저는 절대로 정치적인 욕심이나 정치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 신조는 장애판에서 욕심을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마 예상 밖의 자리를 맡아 오해를 산 것 같은데 협회에 대한 의리와 책임 때문에 맡은 것이지 정치적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저를 뽑아준 대의원대회의 참뜻을 살려 맡은 일만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재활협회 좀 더 나아가서 장애우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장애우 복지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것은 1981년부터입니다. 당시 보사부가 장애인의 해를 맞아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던 중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제1회 장애인기능올림픽에 선수를 파견할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나라는 그때만 해도 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해본 적이 없어 선수선발과 훈련에 애를 먹고 있다고 중소기업진흥공단 상근이사였던 저에게 연락을 해 제가 기술위원장을 맡아 선수선발을 하고 일본에서 메달은 많이 못 땄지만 2등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장애우들과 인연을 맺게된 동기였습니다.
 그 후 84년 2월 보사부가 88서울장애인올림픽을 유치하고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는데 그때 제가 국제경험이 있다고 준비위원으로 뽑혔는데 느닷없이 사무총장을 하라고 해 "나는 기능올림픽 전문가지 장애자 체육 쪽에는 전혀 문외한"이라고 사양했는데 담당 국장이 "지금 장애자 문제 전문가가 어디 있느냐 시작하는 사람이 전문가"라며 권유해 일주일만에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정부 부처에서도 하나도 안 도와주고 심지어 "장애자가 무슨 올림픽을 하느냐.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이리저리 뛰어다녀 어찌어찌 잘 풀려 그런 대로 잘 치뤘죠. 하지만 올림픽을 치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후속기구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보사부가 1억을 주겠습니까, 백만원을 주겠습니까. 뻔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후속기구를 만들기 위해 올림픽 예산의 3분의 1일 남겨 복지체육회를 만들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고 또 그런 인연으로 재활협회 이사가 되고 협회 내 고용촉진위원회 위원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주위에서 많은 격려와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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