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법 제정은 시대적 요청이자 순리이다 > 세상, 한 걸음


발달장애인법 제정은 시대적 요청이자 순리이다

[만난 사람]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부모회 부회장 노석원

본문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심정을 이 한마디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할 언어는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깊은 이해를 할 줄 안다 자신하는 사람일지라도, 부모 당사자의 사무치는 심정을 대신 헤아리는 건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 긴 세월 동안 발달장애인들의 안정적 삶을 보장할 환경 마련을 국가에 요구해왔던 것이고, 번번이 막히는 벽 앞에서 부모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하기만 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가시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이 법의 제정이 부모들의 기대와 염원을 얼마만큼 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 또한 집중되고 있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제정 이후 무엇이 어떻게 바뀐다는 건지를 확실하게 들어보고자,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부모회 노석원 부회장을 만나 긴 대화를 진지하게 나눴다. 태풍 산바가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던 바로 그 시각에 진행된 이 만남을 통해,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현 위치가 어디인지 함께 확인해 보고자 한다. 그날의 그 세찬 비바람은 분명 발달장애인 부모 모두의 가슴속 모습이었을 거라 감히 헤아려 본다.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에서 자주 뵙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들께 자세한 설명을 전해주시면 좋겠다. (사)한국장애인부모회 부회장이시면서, 수원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을 함께 맡고 계시는 건가

부모회 활동은 지난 2000년부터 해왔다. 원래 개인적인 직업은 무역업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4일자로 부모회에서 수원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만들게 됐고, 부모회 수원지부에서 그 운영을 수탁 받게 됐다. 시에서는 상근 센터장을 두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 와서, 오랜 고민과 토론을 거쳐 9월 5일부터 상근 센터장으로 제가 여기서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제 아들 광수는 27살이고 자폐성장애 1급이다. 그냥 ‘광수아빠’라고 불러 달라. 많은 분들이 저의 이름보다 ‘광수아빠’라는 닉네임으로 더 많이 알고 계시다.

사적인 여담이지만, 작은 아들 광수의 나이가 27살이라면, 아버님의 외모가 너무 젊어 보이시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 키우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젊게 살아야 우리 아이를 위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사실 그게 바로 우리 부모들 모두의 똑같은 심정 아니겠는가.

일단 발달장애인법과 관련된 말씀부터 듣는 게 좋겠다. 지난 5월 말 국회에서 발의가 됐는데, ‘이게 갑자기 추진된 거다’, ‘당사자와 부모 의견수렴도 없이 발의가 됐다’ 등의 문제제기가 많아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어느 얘기가 맞는 건가

일단 제가 법제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부모의 입장이고 계속 관여해 왔기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말씀드릴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이 법 제정 논의는 지난 2007년부터 계속 거론되며 준비됐던 것이기에, ‘어느 날 갑자기 발의됐다’는 건 분명히 아니다. 2007년부터 발달장애 또는 당시 표현으로 지적장애를 위한 입법 추진의 의견수렴은 계속되어 왔는데, 발달장애인법 관련 움직임이 없었다고 보시는 이유는 이런 것 같다. 탄력을 못 받았던 거다. 작년에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부모회, 이렇게 4개 단체가 한데 모여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를 발족했다. 오랜 기간 각 단체별로 입법 추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겸비해 왔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움직이다 보니까, 실제 입법 추진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리게 됐던 것이다.

법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그 여력이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 같다

그렇다. 몇 년 동안 전체 장애계는 중요한 입법 성과를 계속 이뤄왔다. 그런데 2007년 이후로 발달장애인법은 매년 밀려나기만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밀렸고, 작년에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또 밀렸다.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 때문에 한 해 두 개 이상의 주요 법 제정에 난색을 표했다. 실제 작년의 경우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법은 경합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시점에 아동법을 먼저 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으면서, 발달장애인법이 다시 또 밀리게 된 거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이젠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확산됐고, 한데 집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됐다.

왜 4개 단체가 개별적으로 움직였나. 서로 견해의 차이 같은 게 있었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4개 단체 모두 최선의 의욕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더 큰 움직임 앞에서 한계를 깨닫게 된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제가 부모회 활동을 2000년부터 하다 보니까, 장애계 전반의 다양한 흐름 같은 걸 읽을 수 있는 그런 입장은 됐다. 그래서 4개 단체의 사무처장들한테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그게 작년 10월 전후의 일이다. ‘이제 아동법까지 됐으니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이제 발달장애인법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우리의 힘이 분산되어 있으니, 어떻게 하는 게 가장 낫겠나. 지금껏 각 단체별로 했던 걸, 이젠 힘을 모을 때가 되지 않았나. 그동안 힘을 나눴기 때문에, 강력하게 밀고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그만큼의 힘이 생길 거고, 더 센 수준의 요구도 가능해지지 않겠나.’ 그 제안에 모두 뜻을 모으기로 해서, 이후 사무처장 회의와 단체장 회의를 연이어 해나갔다. 그런데 이걸 아예 연대체 형식으로 구성해서, 본격적으로 대외적 활동을 하는 게 보다 더 확실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의견에 일치가 됐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발제련의 발족은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그 내부적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알고 싶다

제일 먼저 집행위원회와 법제위원회를 만들었다. 집행위원회는 우리를 알릴 수 있는 일들을 맡았고, 법제위원회에서는 그 이전까지 각 단체들이 가지고 왔던 법안들을 우선 논의했다. 그런데 그 4개 법안 중에서 어떤 걸 기준으로 풀어갈 것인가 치열한 논의를 거친 후에, 각 단체의 안은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아예 기본이 다른 완전 새로운 법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법제위원회는 정말 힘들게 고생하며, 우리가 입법안으로 제시할 발달장애인법 초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법제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4개 단체에서 각각 3명씩 추천을 했다. 한 명은 법률전문가, 한 명은 장애인복지전문가, 또 한 명은 부모들, 이런 식으로 해서 12명이 구성됐다. 물론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뒤따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건 법안을 만드는, 어떻게 보면 고도의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할 사안이었기에, 이번에는 일단 부모들의 의견으로 대신하기로 해서 부모들이 참여하게 된 거다.

이 발달장애인법이 실제 제정된다면, 지체장애 중심이었던 기존의 장애인복지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에 골고루 혜택이 가면서 장애인복지가 활성화된다는 데 의미가 상당히 크다고 보는데, 가장 많은 얘기가 나오는 게 결국 예산 문제이다. 큰 예산 때문에 국회 통과 과정에서 대폭 손질된 채 껍데기뿐인 법안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데, 이 대목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2억5천만이 아니라 2조5천억이다. 저도 이 단위를 보면서 제가 평상시에 쓰던 단위가 아니라서, 숫자를 읽으면서도 상당히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 어느 지점을 보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는 선진국의 예를 참고 안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제가 여러 토론회에서 말씀드리는 예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예산 비율이다. 전체 예산 33억 달러 중에 발달장애인 예산이 19억 달러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예산 배정이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발달장애 이외의 장애영역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의 인적지원과 물적지원을 통해, 최소한의 삶을 살고 세금도 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렇기에 큰 예산이 들어갈 부분이 점점 적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궁극적으로 장애인복지라는 측면을 놓고 볼 때, 정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마지막 영역이 바로 발달장애인이라는 게 실증적으로 증명됐던 것이다. 그 의미가 이번 예산 규모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본다. 그 예산이 너무 과다하다는 얘기는 분명히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길게 보고 제시해야 하는 것이 바로 법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오늘 법안을 만들면서, 당장 오늘 적용할 것만 얘기할 순 없지 않은가. 그 법이 한번 만들어지면 최소한 10년 20년 가야 될 테니까, 우리의 목표지향점을 거기에 두며 발달장애인법 전체 내용을 정리하게 됐다.

그런데 이 발달장애인법과 관련해서 보건복지부의 움직임은 눈에 띄는 게 없는 것 같다.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저는 이렇게 표현한다.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새 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예산의 뒷받침이 안 되고 막혀 있다 보니까 뭔가를 발표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거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보건복지부의 담당사무관이라든지 담당 팀장, 이런 분들은 굉장히 적극적이다. 용역을 주더라도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구체적인 사안들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이 분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제가 그 분들께 말씀드렸다. 사실 보건복지부의 목적과 저희들의 목적은 다 똑같다. 그런데 우리는 예산에 신경을 안 쓰고 주장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이든 예산의 규모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은 어디가 되는가. 결국은 보건복지부와 우리 4개 단체가 합쳐서,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더불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이해를 구해야 한다. 복지부 담당자들이 결국 못하고 있는 건 기재부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인데, 기재부가 안 된다고 한다면 우리 4개 단체와 모든 당사자들이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보다 더 가시적인 성과를 얻게 되지 않을까 한다. 모든 정부 부처 안에서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곳은 사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 아닌가. 저는 복지부 직원들의 적극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예산 없이는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는 그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많이 나오고 있는 의견 중 하나가 발달장애인 교육권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연대체와 부모회도 함께 뛰고 계시다고 알고 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떻다고 느끼며 받아들이시는지 듣고 싶다

현장의 현실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고, 결의대회 또한 계속 진행되고 있다. 거기서 나오는 의견들만 들어도, 아마 현장의 내용은 다 이해할 수 있으실 것이다. 최근에 교육과학기술부의 담당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특수학교 교장선생님들과 학부모 회장님들도 함께하셨는데, 거기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다. ‘지금 우리 장애인 당사자들, 우리 부모들의 공동의 적은 교육부는 떠난 것 같다.’라고 말이다. 조금 전 복지부와 우리 부모들이 같이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듯이, 지금 현재의 상태는 똑같은 상황이 교육부와의 관계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취재와 관련해서 교육부하고 얘기를 많이 해봤는데, 교육부는 오히려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이걸 행정안전부에서 막고 있기 때문에 일이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한다

교육부 담당자들도 행안부에 가서 계속 의견을 내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교육부 담당 과장이 제게 이런 말까지 했다. ‘지금 같이 투쟁하고 있다.’고 말이다. 공무원 입에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 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그 분의 진정성은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결국은 행안부가 내세우는 ‘공무원 총정원제’라는 게, 장애인들의 권리와 삶의 질 향상을 가로막고 있다는 현실이 명확해진다.

이미 법으로 정해진 사안인데, 공무원 정원을 이유로 내세우며 회피하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우리가 법에 없는 걸 해달라는 게 아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법, 그것만 지켜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받는가. 교육 받는 거? 의무이자 권리이다. 세금 내는 거? 의무가 맞다. 국방의 의무도 있다. 군대 안 가려 편법을 쓰면, 정부는 그런 병역기피자들에게 확실한 불이익을 가한다. 그렇다면 국회를 통과해서 국민이 만들어 준 법, 그것을 안 지켰을 때는 그 사람들에게 왜 똑같은 불이익을 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금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대부분이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나? 아니다. 강제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안부와 기재부에서는 ‘정부의 정책기조’라는 표현을 내세우며, 법 이행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기조가 공무원 수를 늘리지 않는 거,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늘어놓는다. 자, 이 대목에서 툭 터놓고 얘기해 보자. 도대체 정책기조가 뭐고 법이 뭐냐는 거다. 정책기조라는 게 과연 법 위에 설 수가 있는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 분들한테 미안하지만, 정책기조라는 건 엄연히 법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법을 만들어놓았는데, 감히 ‘정책기조’라는 이름으로 법을 무시하고 넘어간다? 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듯이, 법이 규정한 바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확실한 불이익을 줘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법적인 용어를 차용하자면, ‘의무불이행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도 준비해야겠다는 심정이다.

   
 

지금 기간제교사의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것 같은데, 확고한 해결책 없이 이대로 방치하는 건 장애인 당사자들의 학습권에 심각한 폐해를 낳는 게 아닌가 싶다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참 많다. 왜냐하면 광수엄마가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현실 목소리를 제가 너무나도 잘 들을 수 있는 입장이다. 기간제교사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1학기 초에는 그나마 기간제교사를 구하기가 쉽다고 한다. 왜냐, 임용고시에 떨어진 사람들이 1년 더 공부하는 과정에서, 기간제교사를 자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임용고시를 본격적으로 다시 준비해야 하는 2학기가 되면 거의 다 떠나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2학기에는 각급 학교에서 기간제교사를 구하느라고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직에서 명퇴하신 분들이 대체투입 되곤 한다는데, 이건 장애학생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 그대로 ‘땜질’ 수준으로 매번 머무는 게 된다. 심지어는 3개월 단위로 선생님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게 뭔가. 장애학생,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럴 시간 자체가 없다는 게 아닌가. 아무리 열의를 갖고 임한다 치더라도,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 보니까 아이의 특성을 파악조차 못하고 지낸다. ‘땜질’이든 ‘땜빵’이든 뭐든 간에, 그건 분명한 한계가 있다. 왜 우리 아이들이 ‘땜질’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는 거다.

성년후견제에 대해 듣고 싶은 의견이 있다. 잘 알고 지내는 발달장애 학생들이 있는데, 전부 친구 관계로 어울리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A, B, C라고 칭한다면, A학생의 부모가 B학생의, B학생의 부모가 C학생, C학생의 부모가 A학생의 성년후견인을 맡아 일정 부분의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이 성년후견제의 취지와 부합하는 건지, 긍정적인 일로 봐야 하는지 개인적으로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저 같은 경우는 결코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을 가장 잘 알고, 그 아이의 여러 어려움을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경우는 수평적인 입장에서 그 관계를 설정한 케이스인데, 저의 견해로는 수평적보다는 수직적인 방향으로 가는 게 훨씬 발전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부모님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연령대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비슷한 연령대끼리 묶이게 되면, 결국 비성년기 자녀가 성인기가 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노년기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 또한 비슷한 연령대가 되지 않는가. 저는 이 대목을 ‘보험 든다’는 표현으로 설명을 하는데, 자녀의 후견인이 가급적 자녀와 엇비슷한 연령대로 맞춰지는 게 훨씬 안정적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저의 아이 나이가 30이라면, 10대 자녀를 둔 30대 연령층의 부모가 제 아이의 후견인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훨씬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후견인이라 함은 재산관리와 신상보호에 중점을 두게 되는데, 대부분 재산관리보다는 신상보호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평소 인간적인 관계를 꾸준히 유지했던 분들 중에서, 가급적이면 연령대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분들을 후견인으로 선정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다.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 앞으로의 취재에도 참고할 만한 내용을 상세하게 풀어주신 것 같다. 마무리 차원에서 한 가지만 더 여쭙고 싶다. 성년후견인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성인이 되어 자립했을 때의 직업문제가 당면과제일 수밖에 없는데, 발달장애인의 직업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저는 한마디로 얘기한다. 지금 우리 부모들 입장에서 자녀들의 직업문제를 논할 때는 ‘질보다 양이 우선’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 삶의 질을 따질 때라고 흔히 말하지만, 발달장애인의 직업재활의 문은 너무도 불균형한 시스템으로 거의 방치되어 있다시피 하다. 지자체에서는 각 직업재활시설에 보조금을 준다. 보조금을 주다 보니까, 자기들 나름의 생각도 같이 전달한다고 들었다. 이왕이면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이 혜택을 골고루 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시설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맹점이 대두되는가. 전체 인원을 늘리지 않고, 시설 이용자의 숫자만 늘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용기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신규 인원 30명을 시설에 투입하기 위해, 시설에 있던 30명의 인원을 빼는 것이다. 장기적인 숙련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일 뿐이다. 발달장애인들의 실질적 직업이 아니라, 직업적 혜택을 ‘이만큼 줬다’는 전체 숫자만 늘리는 행정으로 일관한다. 속된 말로 ‘뺑뺑이’를 돌린다는 것이다. 2년 또는 3년 일하게 한 뒤, 다른 기관으로 가서 다른 일을 하게 한다면, 이렇게 ‘뺑뺑이’를 돌리기만 한다면 언제 숙련된 기술을 얻고 언제 자립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발달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직업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당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일자리의 확충 즉, ‘질보다 양’이 현재까지는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더 많은 토의가 장애계 전체의 의견으로 모여져야 할 일이다. 시급한 건 바로 그것이다. 

 

작성자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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