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복지 패러다임’이 아닌 ‘권리 패러다임’으로 옮겨야 한다 > 세상, 한 걸음


이젠 ‘복지 패러다임’이 아닌 ‘권리 패러다임’으로 옮겨야 한다

[만난사람]유엔(UN)장애인권리위원회(CRPD) 위원 김형식 교수

본문

활동보조인 없이 잠을 자다가 화재로 참변을 당한 故 김주영 씨의 장례식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사회적 관계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김주영 씨의 참변 그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 - 그건 솔직히 말해 ‘충격적’이었다. 일개 연예인의 사소한 언행이나 해프닝도 검색순위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세상인데, 국가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사회적 타살을 당한 이가 있다는 걸, 더욱이 언론에서 그만큼 집중적으로 다룬 사건인데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자체를 대부분 모른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이 ‘딱 거기까지!’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증거가 아닐까 싶다.

이 땅의 장애계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UN)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 CRPD)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협약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제안사항을 권고하는 최고 위치의 국제기관이다. 그 위원회를 이끄는 18명의 위원들 중 바로 우리의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정작 국내 장애계는 모르고 있고 비중 있게 인식하지도 않고 있다. 당장의 현실이 너무 어렵고 힘겹다는 탄식에 머무르기 전에,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은 곳에만 한정되고 있다는 자성 또한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2012년 가을에 인천광역시 송도에서 세계 장애계의 가장 큰 4개 행사가 열렸다는 사실도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현실에서, ‘그 한국인’을 만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따끔한 지적을 받는 자리가 반드시 있어야겠다고 <함께걸음>은 결론 내리게 됐다.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협력학과 명예교수이며 호주 커튼대학교 인권학부 겸임교수 또한 UN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인 김형식 교수를 만나서, 그가 바라본 대한민국 장애계의 현주소가 어떠한지 들어본다.  

 

   

 

 

국내외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데,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12월에 호주로 가시게 돼서, 그 준비 때문에 더 바쁘신 걸로 들었다
이제 아주 은퇴해서 간다. 호주에서 20여 년 교수를 하다가 왔는데, 집과 가족이 현지에 있다. 할아버지가 되니까 애들이 자꾸 오라고 해서, 지금 짐을 싸느라고 여기 내부가 어수선하다. 한국의 대학에선 이제 명예교수니까 자주 와야 할 테고, 호주의 대학에선 석좌교수 성격으로 초빙을 한 것이기에 정년 없이 연구 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또한 유엔(UN)의 일도 해야 하니까, 바쁜 일정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으로 2순위로 선출되신 걸로 알고 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한 나라가 160개국 정도 된다. 그 나라들에서 다 대표를 보내기 때문에, 사실 상당한 검증을 받고 선발됐다. 정말 치열한 선거였다. 내 임기가 2014년에 끝나는데, 국내 장애계에서도 국제인권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을 가진 인물이 어서 많이 나와야 한다.

이번에 한국에서 큰 국제대회를 열었다. 교수님께서 보셨을 때 성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형식적인 대회로 끝났는지,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듣고 싶다
장애운동이 국내에서 활발하지만, 국내에서 활발한 것 못지않게 국제적인 맥락도 갖춰야 한다. 물론 국제 활동을 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국제적인 감각이 있어야 하고 예산 또한 뒷받침이 돼야 한다. 아시아권에서는 1990년대에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했고, 2000년대에 넘어와선 중국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제 한국이 아태지역에서 중추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이번 한국에서의 행사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1천5백 명이 참가했고, 개발도상국에서도 30개국 정도 왔다. 이번에 논문 700편 정도를 읽었다. 읽고 다 정리하면서 퇴짜를 놓을 건 퇴짜를 놓았다.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회의를 한 것도 좋고 좋은 내용을 다룬 것도 좋았지만, 국내의 몇몇 단체들이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 건 지적 받아야 할 사항이다. 함께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국내의 장애계는 집안싸움을 이젠 그만해야 한다. 더 크게 큰 그림을 가지고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할 텐데, 우리는 아직도 국내적인 편협한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인다. 여전히 밥그릇싸움과 조직싸움에 머물러 있는 게 드러나는데 그럼 안 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국제적 관점으로 볼 때,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가난했다. 그래서 해외에 못 나갈 때, 선진국에서 지원을 해서 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선진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도 참가하기 어려운 나라들에게 우리가 기금을 마련해 줘서, 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한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계는 새롭게 눈을 떠야 한다. 지구촌에서 전체 장애인구의 80%는 개발도상국에 집중되어 있다. 개발도상국의 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이 뭔가를 하면 잘해 줄 거라고, 한국이 좀 더 국제 장애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국제회의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 같다.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보시는가
비준안 협약이 있고 선택의정서가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50조에 해당하는 협약과 18조에 해당되는 선택의정서가 성격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비준안은 150개국이 했는데 선택의정서는 60개국 정도밖에 안 했고,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거의 안 했다. 50조는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이고, 선택의정서는 권리침해를 당한 개인이 유엔을 상대로 신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누가 권리침해를 당했는데 국가가 해결을 안 해준다면, 유엔에 ‘내 문제를 풀어 달라’고 신청을 낼 수 있다는 거다. 한마디로 보다 구체적인 면에서 국가가 망신당할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더 많다. 따지고 본다면 국내적으로 인권침해가 얼마나 많겠나. 그걸 국가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이 안 되니까 국제기구에 와서 해결을 요청하는 거다. 그러니 전 세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거 아니겠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비준을 하려면 둘 다 해야지, 하나는 하고 하나는 안 한다는 건 모순 아닌가. 장애인권리협약을 하려면 둘 다 해야지, 하나만 안 하겠다는 이유는 뭔가.
 
정부는 ‘국내 장애계 분위기가 좀 성숙된 다음에 비준을 고려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을 했는데 국내 장애계가 아니라 시민들이 해야 된다. 장애인인권운동을 장애인 당사자들만 하다 보니까, 언론에서는 ‘장애인들끼리’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고 포장하기 일쑤이다. 그건 벗어나야 한다. 이젠 시민들이 ‘아, 저건 우리가 지지해야 되겠다.’ ‘장애인 인권 문제는 보편적인 인간의 존엄성 문제이기 때문에, 그걸 장애인들에게만 맡겨선 안 되겠다.’는 인식이 시민사회에 퍼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국내 장애계와 시민사회에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으로 ‘복지’에 집중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복지 패러다임’에서 ‘권리 패러다임’으로 옮겨야 한다. 지금은 국가가 책임지고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권리의 시대이다. ‘장애인 복지’라는 담론에 더 이상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라는 명칭이 얼마나 좋나. 권익과 권리를 얘기하라는 것이다. 이제 담론은 권리이다. 복지는 시혜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바로 모든 사람들의 인권과 동등함을 기본으로 한다.  


      복지 패러다임을 권리 패러다임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씀이 신선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건 무엇이 있는가
국가가 하나의 정책을 펼 때는 우선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하며, 그 정치적 의지와 국민적 의지를 담아낼 수 있는 예산이 있어야 된다. 그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장애인 분야의’ 등등의 문구가 아니라, 국민적 지지가 먼저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아닌가. 그런데도 장애인 권리를 위한 이 중요한 일을 복지기관이나 몇몇 단체에만 맡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먼저 장애인 당사자들이 일어나야 되고, 장애인의 권리를 온 시민들이 함께한다는 차원으로 진행해야 한다. 장애인‘끼리만’, 당사자들‘끼리만’이라는 틀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같이 가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장애인권리협약인데 정작 장애인들은 이걸 연구 안 한다. 그걸 누가 연구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누구한테 강의를 하고 있는지 아셔야 한다. 대법원이다. 법조인들과 법무관들이 이 협약을 공부하고 연구한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장애인 기관이나 당사자들도 이 협약을 불경이나 성경처럼 들고 다니면서 공부해야 된다. 유엔(UN) 차원의 협약인데, 그 내용이 뭔지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선 많이 얘기하는데, 장차법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유엔협약도 공부해야 한다. 장차법은 스케일이 좁지만 협약은 크고 넓다. 훨씬 더 큰 세계를 꿈꾼다면, 당연히 협약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유엔기구의 위원으로서 보실 때, 국제적으로 한국이 바로잡아야 할 단점이 있는 것 같은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다. 먼저 유엔에 200여 개국의 회원국들이 있다. 그 중 한국이 7번째로 많은 회비를 낸다는 말과 11번째로 많다는 말로 나뉘는데 어쨌든 10권이다. 대한민국이 유엔에서 그 정도의 회비를 내는 나라라는 것이다. 해외원조를 받은 나라가 100개국이 넘는다. 우리도 지난 60년 동안 개발원조를 받았는데, 개발원조를 받은 나라들 중 유일하게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그 정도 위상이 됐다면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다른 예를 든다면, 한국은 30년 만에 오늘날만큼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일본은 75년 걸렸고 미국은 150년 걸렸으며, 유럽은 무려 200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단 30년에 끝냈다. 한국이 잘난 점은 정말 많다. 그런데 두 가지 점 중에 또 하나를 언급한다면, 한국은 속칭 ‘냄비근성’이 너무 심하다. 그런 것들은 이젠 정말 고쳐야 한다. 더 성숙해져야 한다. 안목과 생각이 이젠 국제화되어야 한다. 말로는 ‘국제화 국제화’ 하는데, 우리가 너무나도 국제화가 안 되어 있다는 증거는 주변에서 단번에 찾아낼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가난한 사람들과 우리나라에 시집 온 이주며느리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등, 둘러보면 그런 게 너무나 많다. 그런 건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일 뿐이다.    


국제사회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인권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협약 같은 건 많이 가입했는데, 국가를 보지 말고 국민을 먼저 봐야 한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질, 이런 대목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생각하며 사는 국민인가를 자문자답해 보자. 나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너무 경쟁이 심하다. 다들 양극화 사회라고 하지 않는가. 빈부의 차가 심하고,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도 너무나 뿌리 깊게 왜곡되어 있다. 왜 강남에 사는 학생들이 명문대를 가장 많이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강남에는 장애인 복지관이 몇 개나 있나. 생각해 볼수록 우리 사회는 거대한 벽이 상당히, 너무 많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최근 중증장애인이 화재로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는 걸 알고 계실 것이다. 장애인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 24시간 제공 등의 절규가 드높은 상황에서 참사가 발생해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교수님은 이번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계시는가
얼마 전 TV 방송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내 의견을 언급했었다. 여러 얘기들 중에 활동보조인이 밤 11시에만 안 갔다면 그런 사고가 없었을 텐데 하는, 그런 의견들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설사 24시간 활동보조인이 운영된다 해도, 항상 인간적인 실패요인은 뒤따르게 되어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24시간을 제도적으로 운영한다 해도, 잠 잘 시간에 보조인이 ‘나 잠깐 집 앞에 나갔다 올게.’ 하며 10분 나갔다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제도가 완전한 100%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24시간을 요구하는 주장을 함과 동시에 일반적인 접근성, 유니버설 디자인 같은 게 생활화되면, 활동보조인이 10시간 필요한 사람도 5시간만 받으면서도 더 안전하게 살 수가 있는 길이 생기게 된다. 더 넓은 대안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예산이 문제인데, 그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정하느냐, 어디까지 정하더라도 언제나 거기에 포함 안 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는 것 아닌가. 등급제를 없앤다 해도 국가는 국가예산 범위 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고, 어느 선까지 지원하겠다는 얘기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라 해도 100%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지역을 직접 경험하셨을 텐데, 세계적 차원에서 장애인의 현실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가
한마디로 엇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장애인이 직장 갖기 힘든 건 다 마찬가지다. 일단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몸이 불편하니까 돈을 벌기 어렵고, 게다가 편견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직장을 얻게 된다 해도 당장 자동차와 같은 이동수단을 마련해야 하는데, 제반여건이 따르지 못해 포기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일 또한 엇비슷한 것 같다. 한마디로 악순환의 반복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그 위원회에 가입한 나라는 국가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이미 제출했는데, 한국의 상황이 대체로 모두 다 좋다는 식으로 평가를 내린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교수님은 민간보고서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신다. 민간보고서가 무엇이고, 중요성과 의의가 무엇인지를 독자 여러분께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국가보고서는 국가가 자기 나라를 평가하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그 내용을 잘 쓰려고 노력한다. 유엔위원회한테 자신들의 좋은 점만 강조하며 보여주려 한다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그런데 그 나라 엔지오(NGO) 단체들이 봤을 때는 국가보고서가 현실과 거리가 멀고, 잘못된 부분들이 뭔지를 찾아 지적할 수 있지 않겠나. 또한 국가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은 더 자세한 정보 등을 논리 있게 정리해서, 유엔위원회 위원들에게 알릴 필요를 느끼게 되지 않은가. 민간보고서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CRPD)의 위원들이 그 국가의 대표들을 상대로 심의를 할 때, 위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민간 차원에서 제출하는 게 민간보고서다. 국가가 모든 정보를 제한적으로 기술하면 안 되기에, 민간 엔지오 등의 단체들이 국가보고서의 함정과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민간이 국가를 감시하는 것이다. 유엔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허튼 소리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 광범위해도 안 된다. 50개 조항을 다 다루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심층적으로 몇 개의 조항, 예를 들어 접근성과 여성과 정보 중심으로 민간보고서를 작성하겠다는 식의 자세가 필요하다. 

교수님 말씀은 모든 NGO들이 모든 조항에 다 투자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이신가. NGO 나름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 다 못한다. 그만큼의 전문가도 부족하다. 이건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한 보고서이다. 쓸데없는 내용으로 제출했다간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다 함께 모여 많은 단체들의 중지를 모아 연구하고 작성하는 게 훨씬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몇몇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따로 민간보고서를 만들고 있다는데, 나는 개인적 의견으로 그걸 반대한다. 우선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 한국에서 잘해야 한두 개 정도의 민간보고서가 들어오면, 위원들은 바쁜 시간에 그걸 참고하는 수준으로 읽게 된다. 함께 연구해서 집중적으로 심화된 내용을 정리해야, 위원들에게 참고가 된다. 한국이 낸 국가보고서의 오류를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 이러이러한 부분들이, 예를 들어 장애등급제에 대해서 너무 대강 넘어갔다, 장애인의 생활수준을 너무 피상적으로 기록했다, 이런 걸 객관적인 자료와 함께 증명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 고용 문제와 독립생활 같은 분야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다. 

민간보고서를 NGO 등이 자체적으로 제출할 수 있다면, 그걸 언제까지 완성해야 위원회의 심의 일정과 맞게 되는가
위원회의 한국보고서는 2015년 쯤 나올 것이다. 지금 심의해야 할 전 세계 각국의 보고서가 7년 분량이나 밀려 있다. 2015년 초나 2014년 말이 되어야 한국의 국가보고서를 읽게 될 텐데, 그 6개월 전까지는 민간보고서가 제출되어야 한다. 
 
민간보고서가 어느 정도까지 심의에 반영되는지,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다
개별적으로 제각기 내지 말고, 함께 모여 연구하라고 조언하는 의미를 잘 받아주시면 좋겠다. 간단하게 말해서,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는’ 식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솔직히 위원들을 귀찮게 만들 뿐이다. 제각기 비슷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들을 겹쳐서 내면, 위원들이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한국의 엔지오끼리라도 어느 정도 합의를 해서 종합적인 내용을 일관성 있게 제출해야 그 보고서의 무게감이 생길 게 아닌가. 위원회까지 와서 한국의 엔지오들끼리 싸우는 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그건 우리한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골치가 아파지면 안 보게 된다. 그것 말고도 자료들이 많은데, 엔지오끼리의 알력에 위원들이 왜 휩쓸려야 하는가. 유엔기구에서 민간보고서를 읽는다는 건 그 보고서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고, 새로운 내용과 진실을 배우려는 자세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위원들이 배울 게 있게 해줘야지, 우리한테 가르침을 주는 게 없고 편 가르기 싸움뿐이라면 우리가 그 보고서를 왜 검토하겠는가.

   
 

국가보고서와 민간보고서의 내용 차이가 너무 크다고 한다면, 위원회 차원에서 조사 같은 게 진행되는 건가
해당 국가의 대표들이 우리 위원들 앞에 앉는다. 질타를 받는다. 재판을 받는 것과 똑같다고 보시면 된다. 이번에 중국을 심의하는데, 장관 대여섯 명을 포함한 50명의 전문가를 보냈다. 가난한 튀니지에서도 6명의 대표단이 왔다. 국가보고서만으로도 국가적인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 민간보고서 역시 엄중한 책임의식 속에 작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의 NGO가 분열되지 말고, 최고의 보고서 작성을 위해 힘을 합치는 노력을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작성자대담 이애리 기자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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