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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의 출발점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다

[만난 사람]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기획팀장 조형석

본문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진정의 절반 이상이 장애와 관련된 내용들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침해 받는 인권의 절반 이상이 장애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도 기구가 축소되고 인원이 감축되는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밀려드는 진정을 해결하려는 일손은 멈출 길 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 첨병에 서서 현장을 뛰고 있는 이는 이 땅의 장애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장애차별조사기획팀의 조형석 팀장을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함께 나누어 보았다. 그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Q _ 얼마 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방문하신 걸 봤다. 인권위원회 활동이 현장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 많이 나가기는 나간다. 하지만 저희는 인권위에 들어온 진정을 가지고 나가게 된다. 조사를 하고 정책수립도 하지만, 현장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인권위가 모르는 상태에서 시급하게 진행되는 사안이 있을 수 있기에, 저희가 바라보는 방향성 같은 걸 점검하고 조율하기 위해 현장의 단체들과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저희 장애차별조사기획팀에 즉각적인 조사권이 있다 보니까, 침해의 정도가 심할 경우는 보다 빨리 들어가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경우가 자주 있다. 그렇기에 일선 현장과의 연계를 중요시하고 있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아예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도록 정기적인 일정을 잡아놓고서  함께 협의하고 있다.

Q _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게 지적장애와 발달장애와 정신장애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상에서도 정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고 취약한 부분들이 워낙 많이 있다 보니까, 낮은 사회적 인식 또한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위에서 파악하고 있는 인권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정신장애 문제는 현재로선 풀기가 너무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일단 처음부터 짚어본다면, 정신장애는 입원하기가 너무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어떻게까지 입원할 수 있는가 하면, 한 개인의 건강을 위한다는 전제로 국가가 그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게 해놓았다. 가시적인 위험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제가 감기에 걸렸다면 국가가 저의 건강을 위한다며 입원시킬 수 있다는 거다. 결국 무슨 의미인가. 국민 전체를 다 집어넣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외가 없다. 그만큼 정신병동은 들어가기 쉽게 되어 있다. 들어가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는가. 아티반(Ativan ; 정신신경안정제) 4mg을 정맥주사로 놓는다.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느냐를 관찰하는 게 중요한데, 일단 아티반을 쓴 다음에 CR이라 불리는 격리실에 넣는다. 하루나 몇 시간 정도 본 다음, 이 사람을 이 정신의료기관에서 저쪽 기관으로 빼낸다. 그리고 14일 정도 전화통화를 제한한다.  

      Q _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절차가 일방적으로 진행된다는 건가? 그것이 바로 인권에 반하는 사례가 될 것 같은데,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는 것인가

이 사람들이 호소할 길은 법적제도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제도가 있다는 데 대한 정보고지를 못 받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나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정보를 모르는 사람들, 인신보호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6개월의 퇴원심사를 기다려야 된다. 자신이 여기에 대해서 부당하다는 청구를 할 수 있다는 권한도, 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다는 권한도, 인신보호법에 의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권한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은 6개월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계획입원심사표라는 게 있다. 들어갈 때는 어떻게 들어가는가. 정신과적 경증(가벼운 증상)을 가지고 쉽사리 입원시키지만, 퇴원시킬 때는 사회적지위체계를 본다. 이게 이상하지 않은가. 들어갈 때는 저걸로 보고 나오는 걸 심사할 때는 이것을 본다는 거, 사회적지위체계라는 건 결론적으로는 보호의무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들어오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가 다르다. 이게 필요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문제는 너무 남용되고 있다는 것과 절차가 너무 길다는 것이다.

Q _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6개월이라는 기간을 설정해놓았다는 건, 게다가 6개월이 끝이 아니라 갱신의 과정으로 악용된다면 심각한 일인 것 같다

그렇다. 환자에다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이 정신의료계는 수가에 초점을 맞추며 살펴봐야 한다. 들어갈 때 쉽고 나올 때 어렵게 만들어놓은 다음 ‘이 사람의 장애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극히 원론적인 말이고  그것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 수가를 바꿔야 한다. 이 정신의료기관 같은 데서는 수가가 가장 중요하고 모든 문제가 비용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 수가 책정을 아주 급격하게 개선시켜야 한다.

Q _ 그래서 일부 병원에서는 병실 채우기를 하기 위해 환자를 마구잡이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실제 지적장애인들까지 동원해 입원환자 숫자를 늘리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그건 ‘본 적이 있다’가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다. 지적장애와 분류코드가 같기 때문에, 시설에서 일부러 입원시키며 악용하는 사례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수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에는 빨리 치료 받으면 빨리 낫는다. 그러면 비장애인들과 동일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좋은 의료체계를 만들어서, 빨리 치료하고 빨리 사회로 복귀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좋은 약을 쓸 수 있도록 틀을 바꿔야 한다. 약을 어떻게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속칭 ‘회전문’이라고 부르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는 행위를 단절시켜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심평원에서는 누가 어떤 치료를 어디서 받는지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 A병원에 있다가 B병원으로 가서 무슨 약을 썼는지도 추적하는 게 가능하다. ‘회전문’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만들고, 사회가 그 병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모니터링이 강화되어야 한다.

Q _ 그렇다면 현재는 그걸 볼 수가 없다는 건가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안 보는 것이다. 보는 것도 물론 힘들게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수가에 대한 조정 그리고 여기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화되고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신보건센터를 강화시켜야 한다. 퇴원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한을 정신보건센터에 줘야 한다. 서울시 같은 경우는 계속입원심사를 할 때 대면심사를 한다. 보통 다른 데는 서류심사를 하는데, 대면심사를 세밀하게 함으로써 일차적으로 걸러낼 여지가 생겨나게 된다. 이렇게 정신보건센터가 강해지면 여기에 가서 면담을 하고 퇴원계획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모니터링 역시 자연스럽게 이뤄질 여건이 마련된다.

Q _ 흔히 말하는 정신보건법의 개정이나 폐기 같은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건가

   
 
입원요건의 강화보다는, 차라리 하려면 계속입원심사 청구를 3개월 이내로 당기는 게 낫다. 생각해 보자. 정신장애 때문에 병원에 갈 때, 사람들은 입원할 거를 미리 예상하면서 가방을 싸가지고 간다. 이게 벌써 틀린 게 아닌가. 그렇기에 진단입원과 치료입원 같은 것들이 정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기간이 길다는 건 행정의 낭비로 이어진다. 기간을 줄인다는 건 행정의 낭비를 줄이고, 국가 차원으로는 비용의 절감이라는 효과 또한 얻는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의료기관’과 ‘가족’과 ‘국가’라는 삼각의 균형이 너무 잘 맞춰져 있다. 이게 일본에서 들여온 시스템인데, 실제 운영되는 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일본의 방침이 ‘따로 하되 잘해 준다’라면, 우리는 ‘따로 해서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잘못 굴러가고 있는 현실이다.

Q _ 생활을 하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걸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단 강제입원의 개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지 않으려는 인식부터 강해진 것 같다

입원 과정이 잘못 진행되면, ‘자괴감’이라는 게 많이 다치게 된다. 치료와는 별개로 ‘나는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하는 자괴감과 자존감이 훼손되는데, 폐쇄병동이냐 개방병동이냐의 문제가 아닌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정신과 치료에서 자존감이 훼손되면, 나중에 아무리 호르몬 적용이 잘 된다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 자존감이 같이 갈 수 있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Q _ 정신과적 치료를 무사히, 완전히 마쳤다 해도 그 다음이 문제가 된다.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다는 건데, 이 대목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다

아주 큰 문제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이혼사유가 된다. 법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법적으로 말도 안 되는 사례들이 너무 많이 있다. 누군가 심신이 지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면 ‘우울증’이든 뭐든 간에 코드를 일단 지정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정신장애로 분류되고 ‘정신장애인’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법에서는 정신장애는 면직사유로 명시되어 있다. 특히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면직을 피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안식년처럼 잠시 쉬었다가 완치된 다음 되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직장 자체를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아주 잘못된 관행이자 실제 현실이다. 우리의 문제는 패자부활전도 아닌 이것이 한번 아프고 나면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의 대부분의 법 제도는 그냥 ‘원 스트라이크’ 하면 ‘아웃’으로 완전히 끝나버린다. 다시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법과 제도가 과연 올바른 건지, 이젠 공개적으로 묻고 대답할 때가 됐다고 본다.

Q _ 이런 법적 문제점과 사회적 인식의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선 어떤 방식을 택하는 게 나을지, 또한 우선순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팀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다른 분의 말씀으로 대신하겠다. 정신보건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 권위자인 노만 사토리우스 교수(스위스 제네바 대학)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너무나 많은데, 이걸 시정하기 위해 교육과 홍보를 한다면 누구한테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 분의 말씀은 간단했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편견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먼저 정신과전문의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따끔한 지적이었기에, 그 분의 말씀이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Q _ 정말 동감할 만한 의견이다. 대국민 인식개선 등의 노력이나 캠페인 같은 건, 언제나 형식적인 일과성으로 끝나버리는 게 보통 아니었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신 것 같다

정신과전문의들의 인식을 먼저 바꿔놓아야 한다. 국민은 그 다음이라도 늦지 않다. 솔직하게 한마디 하겠다. 대국민 인식개선 운운하는 얘기는 늘 반복되고 강조된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똑같이 강조를 해도 어느 누군가가 밖에서 총 한번 쏘면 끝난다. ‘그 사람이 우울증이었다’라고 하면, 5년 동안 쌓아온 대국민 홍보는 단 한순간에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언론은 그 사람의 정신적인 면을 범죄와 연관시키는 데 혈안이 되지 않는가. 국민적 인식을 아예 나쁘게 만드는 첨병의 노릇을 한다는 거다. 사회적 지지체계가 그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그 지지체계의 허점은 도외시한 채 정신적인 면만 집중 부각시킨다. 특히 모두들 다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사례들까지 다 끄집어내서 문제를 확산시키지 않는가.

Q _ 정확한 지적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문제를 확대 재생산시켜, 오히려 국민여론을 악화시키는 결과만 반복하는 게 언론의 병폐라고 본다. 비단 정신장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장애와 발달장애 역시 이런 언론의 폭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장차법도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지적장애를 위한 법 내용은 둥그스름하게 담겨 있을 뿐이다. 지적장애의 경우는 당사자운동이 많이 약하다 보니까, 법에 담아야 할 사항들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반영된 게 아닌가 판단하곤 한다. 지적장애와 발달장애는 처음의 출발점부터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태어나서 학교 다니는 시기, 그 이후의 생애 전반을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출 받기 어렵고 스마트폰 계약이 어렵다’는 식의 하소연과 항의는, 현상학적으로는 너무 작은 부분이다. 그렇기에 전체를 매번 놓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Q _ 지금의 제도가 제대로 된 것도 없지만, 그나마 학교 졸업 이후에는 방치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맞다. 이 분들이 사회적 지지체계 테두리 안에 있는 게 어디까지인가. 19세까지라고 보면 될 것이다. 교육기관 안에 있는 기간이 전부이고, 그 나머지 40년은 사회적 지지체계가 없다.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발달장애인법이 그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법이 다른 법하고 보다 더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분들에 대한 지지체계는 발달장애인만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가시적 변화를 전제로 나아가야 한다. 전반적인 자립의 문제를 중심으로 가는 게, 보다 큰 반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거시설의 다양화와 장애연금 및 장애수당의 현실화, 취업 같은 경우는 보호작업장의 사회적 연계 시스템이 뒤따르는 지지체계를 필요로 한다. 크게 보면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앞에서 ‘생애 전반을 전체적으로 다시 봐야 한다’고 말씀드렸던 게 그 의미이다. 

Q _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 발달장애인의 교육적 차별에 대한 사례가 특히 많이 접수되고 있다. 부모님들은 통합교육을 원하지만, 특수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통합교육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는 걸 상당히 많이 원하시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역작용을 낳는 부분에 대해 너무 힘들어 하신다. 인권위 차원의 의견은 어떤 건지를 듣고 싶다

이건 가장 말씀드리기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양쪽을 다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당연히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힘들어 하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 측의 입장 또한 들어봐야 한다. 간단한 예로 어깨를 살짝 툭 치는 것과 힘을 줘서 세게 치는 것, 그렇게 두 가지가 있다고 치자.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아닌데, 폭력이라고 받아들이면 폭력이 된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게 폭력이라 받아들였는데, 선생님이 봤을 때는 아이의 돌출행동과 반응에 대한 ‘행동중재’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그런 갈등이 커지면 아이만 방치가 된다. 폭력이냐 행동중재인가의 양립이 발생하면, 그 다음부터는 아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게 결과적으로는 방치로 연결되는 악순환만 이어지는 것이다.

Q _ ‘통합교육’이라는 명제가 실제로는 너무 허술하게 운영되는 것 같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막연한 기대감, 학교 입장에서는 아무런 실질적 준비도 없이 같이 섞어놓는 것만 우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통합교육을 자원하셨던 부모님들도, 고학년으로 가게 되면 특수학교를 원하시게 된다. 저학년 때 받았던 상처들이 크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아의 부모님들이 원하고 요구하시는 건 사실 큰 게 아니다. ‘우리 아이가 숫자를 잘 읽었으면, 우리 아이가 화장실을 혼자 잘 다닐 수 있으면’ 하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기대를 하신다. 하지만 현실은 아예 딴판이고,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일반 학업을 진행하면서 발달장애아들한테 알아서 따라오라고 하고,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교육과 개별화교육을 시키라면서도, 실제 수업은 일반 학업 시스템을 그대로 진행시킨다. 이건 어폐가 있지 않은가.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걸, 서로 대화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아이의 교육방법이 무엇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대화로 정해야 한다. 모든 갈등의 시작은 폭력과 차별이냐, 아니면 행동중재인가의 시각 차이에서 출발된다. 이걸 대화로 정리해야 한다는 거다. 제가 교육을 나가면 꼭 말씀드리는 게 있다. ‘적자생존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이게 뭐냐 하면 ‘적으면 삽니다’라는 말인데, 모든 사항을 직접 글로 써서 의견을 나누라는 뜻이다. ‘항상 알림장에 쓰십시오. 알리십시오. 전화를 거십시오. 통화하시고 이야기를 하시고, 아이의 교육목표를 같이 상의해서 같이 나가셔야 합니다’라는 걸 항상 강조하며 말씀드린다.

Q _ ‘적자생존’이라는 표현과 그 뜻이 참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말로 대화하고 글로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계속 거치라는 말씀 아닌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 그래서 키워진 문제들이 가장 많았다고 본다. 제가 역으로 질문 드리고 싶은데, 이런 경험 있으실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해도 어떤 걸 계속 생각하게 되면, 그게 사실처럼 되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커지는 부분들이 있지 않았는지 말이다. 실제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대화를 하셔야 한다. 대화를 외면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인권침해인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꼭 강조하고 싶은 건, 특수교사의 처우개선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남보다 더 고생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고, 사명감을 갖고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 사명감이라는 것도 어려운 환경에서 20년 이상 이어지다 보면, 그 자부심을 이어갈 여력을 잃게 된다. 그 자부심을 잃지 않을 환경을 반드시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존중하게 되고, 그게 바로 발달장애인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 자부심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우리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교육자의 자부심을 재충전할 환경을 최우선시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작성자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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