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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2017 퀴어문화축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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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던 퀴어문화축제가 올해도 진행됐다. 그런데 국가의 정부 체제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이만큼 실감할 공간은 드물 만했다. 인간의 입으로 내뱉을 수 있는 모든 증오와 온갖 저주의 언어로 도배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서울광장 주변이 뜻밖일 정도로 한산했다. 비가 온다고 하나둘씩 철수하더니, 막상 행진 순서가 됐을 때는 한 대의 트럭에서만 ‘일부’ 종교인들이 저주의 자기당착을 드러내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다름을 다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개인의 선택에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는 2017년 퀴어문화축제는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는 슬로건과 함께 성대하게 치러졌다. 내리치는 거센 장맛비 속에서도 축제로 진행된 그 현장의 모습을 이 지면에 옮긴다.

 

여기는 모두의 축제, 모두의 열린 공간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소통협력팀 안효철 주무관

“그동안 이 행사를 반대하는 측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처럼, 극히 퇴폐적이거나 불건전한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축제의 모든 현장이 굉장히 활기차고, 이 자체만으로도 아주 많은 다양성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 훨씬 건강한 모습들로 보였습니다. 인권의 다양성이 존중된다는 거, 그건 외부에서 단지 듣기만 했던 상황과는 가장 큰 차이점을 느끼게 만든 것 같아요. 저희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렇게 처음으로 자체 부스를 운영하는 것처럼, 다른 국가기관들도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갖게 됐습니다.”

2017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전, 가장 화제가 됐던 소식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문화축제에 공식부스를 마련하고 처음으로 참여한다는 것, 또 하나는 광화문 인근의 한 건물 외벽에 내걸린 무지개 깃발이었다. 서울정부종합청사 맞은편의 미대사관에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깃발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의 미대사관에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무지개가 걸린 건 이번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한다는 뜻’이라는 대사관 관계자의 설명이 당일부터 거의 모든 언론에 주요기사로 언급됐다. 앞서 6월 말에 열린 토론토 퀴어퍼레이드에는 캐나다 현직 총리도 참가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만드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이미 2005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캐나다라는 것, 그건 스피커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서 저주의 언어를 쏟아내는 ‘일부’ 종교인들이 활약해야 할 곳은 좁은 서울광장이 아니라 드넓은 선진국들의 영토임을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가 될 만했다.

인권재단사람 최현모 사무처장

“모두에게 소중한 날이 있듯이, 성소수자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하고 뜻깊은 날이 있는 거죠. 그날을 그냥 자기들끼리, 그들끼리만 알고 지내기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서로 축하하고 이 땅 전체가 차별 없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는 자리가 꼭 필요하잖아요. 그 자리가 바로 이 광장인 거죠. 인권재단사람이라면 당연히 함께해야 하기에, 즐겁게 동참하며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직도 20세기? 지금은 21세기다

‘퀴어(queer)’라는 단어는 원래 ‘기묘한, 이상한, 색다른’ 등을 의미한다. 20세기 중반까지는 성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됐지만, 당사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단어라고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 의미가 비하 아닌 긍정의 도전으로 바뀌게 됐다. 이는 성소수자들을 무조건 성(性)행위로만 연상하는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은 이성을 좋아하지만, 동성을 좋아할 수 있고 아무도 안 좋아할 수도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제3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자체를 인정하자는 게 ‘퀴어’의 본질이다. 단지 개개인의 취향이자 성격일 뿐이지, 거기에 인위적인 도덕과 규율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는 것이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

“본인의 존재이유와 스스로의 인권을 얘기하는 자리가 바로 이 공간이죠. 그러니까 누구든 함께할 수 있잖아요.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이 행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차별과 혐오 같은 사회적 편견이잖아요. 비단 성소수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문제를 함께 모여 어울리며 풀어갈 수 있는 열린 자리, 그렇기에 이런 행사가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년과 다르게 눈에 띈 건 군인권센터 부스였다. ‘퀴어’와 ‘군(軍)’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이 필요 없게 된 세상이 2017년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 때문에 법으로 구속되는 나라, 군 복무와 상관없는 사생활 때문에 검열을 당하는 나라가 21세기 이 땅의 현실이라는 건 당장 사라져야 할 편견임이 분명하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활동가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굉장히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작년과 다른 의미가 올해 저희 군인권센터 부스에 모여드는 거죠. 궁금한 점을 진지하게 문의하는 예비 입영자들이 많으셔서, 저희도 ‘무지개방패단’이라는 부스를 운영하며 진지하게 문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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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편견임을 이 공간이 증명한다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작년보다 행진 차량이 두 배 늘어날 만큼 호응이 컸다. 11년 만에 종로의 거리가 행진 코스로 포함될 만큼 확장성도 두드러졌다. 50여 명의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행진을 하고, ‘구경꾼’이 수십 배나 됐던 1회 행사와의 격세지감은 뚜렷했다. 18회가 된 이번 행사의 행진 과정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좌우로 길게 자리 잡으며 행진에 동참한 장애당사자들의 참여였다.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

“장애여성공감에서 2,30대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모임 레드립을 운영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사람 취급을 받는, 어떤 낙인과 규정 안에서 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거나 성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있잖아요. 퀴어도 마찬가지고, 저희는 장애와 퀴어의 교집합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고 있어요. 장애의 영역 안에 퀴어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죠. 저희는 그 편견과 차별의 벽을 깨기 위해, 정식으로 부스 신청을 하고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주한미국대사가 불의의 칼날 습격을 당해,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 시내 한복판으로 몰려나와 난타와 부채춤, 심지어 발레까지 선보이며 대사의 쾌유를 빌고 또 빌던 ‘특정’ 종교인들의 과잉반응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주한미국대사가 완치된 뒤, 지난 2016년 퀴어문화축제에 직접 참가해서 격려의 의미로 남겼던 한마디를 이 글의 마침말로 남긴다. “퀴어문화축제, 여러분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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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사진)주한 미대사관 건물에 걸린 무지개 깃발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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