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들의 참상,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 세상, 한 걸음


북한이탈주민들의 참상,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본문

  15998_15700_1756.JPG  
 

이 글을 적는 시점은 북한예술단의 사전점검단이 서울과 강릉을 오갔고, 단일팀을 위한 북한 선수들이 휴전선을 넘어온 날이다. 이 지면이 독자들 앞에 펼쳐지는 건 평창올림픽 기간이 될 것이고, 언론매체들은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그리고 예술단의 동정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북한 내에서도 극소수의 선택 받은 인물들이라는 건 언급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국제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단체인데, 정작 국내에선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을 찾았다. 그들은 업무의 특성상 ‘소리 소문 없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공개될 경우 북한주민들의 생존권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이다. 캠페인팀 선임간사인 김소희 씨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북한이탈주민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사진 이미지는 북한 현지를 답사했던 최순호 사진작가의 영상으로 대신한다. 소중한 이미지 사용을 흔쾌히 승낙해 준 최순호 작가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북한인권을 대하는 정치적 논리, 그 일관된 관점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하 시민연합)은 1996년 5월 4일 서울에서 인권운동가, 지식인, 탈북자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시민단체다. 휴머니즘 정신에 따라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개선하고 고통 받고 있는 북한난민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국의 시민단체 및 인권운동가들과 함께 활발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내 재정착을 돕고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이 보수지향의 개신교 계열이고, 활동의 주된 목적이 선교와 단체 자체의 홍보에 집중되며 크고 작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지만, 시민연합은 비영리·비종교·비정치를 우선하는 순수한 시민단체를 지향하고 있다. 회원들의 기부, 자선 콘서트, 국내외 공모사업, 개인과 기업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며,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비공식적으로도 전혀 없다는 게 단체의 존재이유를 유지하게 만든다. 시민연합의 창립자는 윤현 명예이사장인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최초로 설립해서 19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 치하의 대한민국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해 온 인물이다. 시민연합의 지향점이 어느 지점을 향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된다.

“시민연합은 1996년부터 23년째 북한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장 오래된 단체예요. 설립자이신 윤현 명예이사장님께선 한국의 민주화운동, 한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셨던 분이세요. 19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 체제에 맞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세우고 활동하면서, 민주화를 위한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어요. 그런데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역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북한의 인권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최악의 상태였잖아요. 그래서 남한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하셨던 그 힘을, 북한의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되셨던 거예요.”

하지만 상황은 모든 게 장벽이었다고 한다. ‘북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대였고, 모든 걸 정치적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하던 국내의 환경에선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언론에서는 연일 북한의 핵문제, 북한과 미국 지도자 간의 대립, 미사일 발사 위협 등으로 북한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지만, 모든 건 정치적 사안일 뿐이고 북한 내부의 인권상황은 거론되지 않는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은 각각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과 정치권에서 북한정권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분이 북한인권을 주장하니까, 보수로 전향한 것이냐며 정치적 흑백논리로 공격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라서, 정말 순수하게 인권문제로 접근하셨던 명예이사장님께선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되셨대요. 그래서 접근방법을 완전히 바꾸셨던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정보나 이슈에 대해선 큰 관심을 갖잖아요. 국내에서 제기한 이슈에는 색깔론부터 뒤집어씌우지만, 외국의 공식매체를 통해 제기되고 전파되는 소식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기류가 강하죠. 그래서 명예이사장님은 북한인권 문제를 국내가 아닌 유엔을 통해 먼저 제기하셨다고 해요. 유엔 역시 북한의 존재를 거의 모르고 있었죠. 완전히 폐쇄된 나라라서 북한의 지도부 정도만 알고, 그 나라의 국민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관심을 가진 전문가가 아무도 없었대요. 그래서 유엔에 있는 세계 각국의 외교관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북한주민들이 처한 실제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셨대요. 결국 유엔에서 북한의 문제가 정식 안건으로 토의되는 초석을 만드셨던 거죠.”

 

탈북민의 모든 상황은 진퇴양난이다

  15998_15701_1756.JPG  
 

시민연합은 유엔 보편적정례검토(UPR)에 참가해서, 북한이 인권협약을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해 유엔 담당관, 관련기관 및 각국의 외교관들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로 2004년 북한인권특별보고관, 2013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수립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가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이며, 북한 지도자들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가 북한 내부의 인권상황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시민연합이 수행한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이 떠도는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어요. 탈북민의 전체 규모는 헤아리기도 어려운 실정이죠. 외국을 떠돌다가 저희와 직접 연결이 되는 탈북민부터 우선 구호와 지원이 시작됩니다. 국내로 들어온 탈북민은 삼만 명이 넘었잖아요.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하나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사회적응훈련 및 각종 지원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희들의 활동이 닿을 수 없는 지역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바로 북한이죠.”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민이 급증하면서 그들이 정말 남한 행(行)을 원해서 들어온 건지, 실제

탈북민이 맞는지, 불순한 의도로 잠입하는 건 아닌지의 여부는 전문적인 확인절차를 통해 밝혀진다고 한다. 탈북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축적된 정보의 양 또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북한에서의 거주지, 하던 일, 탈출 동기 등을 조사하다 보면, 사사로운 거짓말 정도는 뒤섞일 수 있지만 진술의 진위 여부는 명확하게 판정이 난다고 한다.

“인공위성이 굉장히 발달됐잖아요. 정말로 정치범수용소라든지 교화소라든지, 실제 그런 시설이 있다는 것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촬영할 수 있게 기술이 발전했어요. 그런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탈북자들의 증언과 맞춰봤을 때 거짓 여부는 쉽게 가려지고, 여러 사람들과 교차확인(크로스체킹)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거예요.”

탈북민의 존재는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땅 어딘가에 모여 있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똑같은 한민족이기에 외형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그들 특유의 말투와 강한 억양은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민의 80%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정보였다.

“북한경제가 무너지면서, 당국에서 나눠주는 배급으로는 더 이상 생활이 안 되게 됐죠. 그것마저도 끊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장마당에 직접 나가 개인이 벌어서 개인이 써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어요. 그런데 남자들은 직장이나 군대에 얽매어 있어서 장마당 활동을 못하죠. 직장이라는 것 자체가 철저한 감시체계이기 때문에,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감시체계에서 조금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생존을 위해 탈북을 시도하는 기회도 여성들이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죠.”

탈북한 남자들은 중국 입장에선 불법체류자가 된다. 일단 처음에는 숨어 지내지만 계속 숨어 지낼 순 없기 때문에, 지역의 공장이나 농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중국인인 고용주는 불법체류자인 탈북민임을 알게 되고, 신고를 할 수 없는 그들을 감금한 채 노예처럼 일을 시키게 된다. 임금체불 같은 걸 항의할 수도 없다. 주인의 신고로 공안에게 잡히면, 빠져나갈 방법도 없이 강제북송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상황은 더 끔찍한 현실이죠. 예전에는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요즘은 인신매매의 경로를 자발적으로 이용한다고 해요. 중국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탈북을 위해선 인신매매라는 방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결혼해서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중국인의 부인이 된다 해도, 돈으로 사왔기 때문에 물건 취급을 받는다고 해요. 계속 일을 시키는 거죠. 그리고 중국의 농촌이나 시골은 아직도 씨족사회 분위기가 강해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북한여성을 감시한다고 해요. 도망갈까 봐, 실제로 도망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탈북민을 대하는 국가의 현실

  15998_15702_1756.JPG  
 

이 대목에서 북한의 실제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부독재정권 시절의 반공주의 논리 그리고 극우보수정권의 대북 적대주의 정책에서 강조하던 북한의 실체는 대부분 사실, 그러니까 팩트인 건 맞다. 그만큼 참혹하고 생지옥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군부독재정권과 극우보수정권의 주장이 대한민국을 일그러지게 만들어놓았던 건, 남북교류가 아닌 정권 자체의 방어논리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실상을 언급하고 알리는 걸 ‘친북’ 또는 ‘종북좌파’라는 공격의 논리로 활용하는 데 급급했기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 자체가 없었다. 오로지 정권 차원의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최고의 편 가르기 전용 카드로만 사용됐던 것이다.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오랫동안 ‘상상을 초월한 잔혹한 범죄’가 북한정권 체제 하에서 자행돼 왔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를 아홉 가지로 분류했다. 식량권 침해, 정치범수용소 관련 모든 인권침해 사항, 고문 및 비인간적 대우, 자의적 체포 및 구금, 기본적 인권과 자유에 대한 조직적인 박탈 및 침해 속에 이루어진 차별, 표현의 자유 침해, 생명권 침해, 이동의 자유 침해, 외국인 납치를 포함한 강제실종 등이 그것이다.

북한의 계층은 출신 성분과 당성에 따라, 북한당국이 주민관리 목적으로 분류한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의 세 가지 계층으로 나눠진다. 계급은 세습되고, 신분상승은 극도로 제한된다. 이 계층 분류는 북한주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계층에 따라 교육, 고용, 식량배급, 의료혜택 등 모든 사회 전반의 서비스가 차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에는 다섯 군데의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약 12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북한정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한다. 수감자들에겐 공정한 재판이나 기본적인 적법절차가 생략된다. 또한 수감자 본인 외에도 연좌제를 적용해서, 수감자의 가족은 물론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삼대(三代)에 걸친 친족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는 걸로 확인되고 있다. 구금시설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사망률은 특히 높은데, 현재까지 구금시설에서 희생된 수감자의 수는 백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북난민들 중에서 저희와 연결이 닿게 된 분들은 정말 운이 좋은 경우가 되는 거죠. ‘기획탈출’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북한주민들도 남한이 잘 산다는 걸 거의 전부 다 알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직접 중개인(브로커)을 구하는 경우 또한 급증하는데, 문제는 그 비용지불이 선불지급이 아니라 후불제라는 거예요. 한국에 오면 국가 차원의 정착지원금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지원금만큼의 중개인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주민 자격으로 실제 정착하게 될 때는 ‘0원’으로 시작해야 돼서 상당히 힘든 상황에 내몰린다는 거예요. 중개인들은 어떻게든 다 알아내서, 어디 사는지의 여부까지 확인한 뒤 찾아간다고 하죠. 전화 연락은 물론 계속하고요.”

시민연합은 정부와 이 사회를 향해 항상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통일통일’ 말만 하지 말고,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떠도는 북한난민들을 하루빨리 대한민국으로 데려오는 게 진정한 통일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남한 땅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탈북민이 많아질수록, 그 소식이 북한 내부로 전파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게 되면 동요하면서 탈북하려는 북한주민들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 그게 실질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중국 같은 외국에 떠도는 탈북난민들이 저희와 연결이 돼서 구호활동이 시작되면, 모든 분들은 한국에 가면 꼭 연락하겠다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약속하세요. 그런데 국가에서 운영하는 하나원을 거친 뒤 실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면, 저희한테 연락하시는 분들은 정말 없어요. 연락을 극도로 회피하시는데 저희가 연결을 시도하는 것도 무리한 일 같아서, 섭섭하지만 저희는 그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입장을 바꿔 보면, 그 분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요. 저희는 그 분들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모습들을 다 봤고, 그래서 구호를 시작했던 거잖아요. 그런데 간절히 원하던 남한에서의 새 출발이 시작됐다면, 당연히 과거의 기억과 인연부터 끊는 게 우선이겠죠. 그건 배은망덕의 개념이 아니라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에요. 정말로 섭섭하긴 하지만, 저희들은 그 분들의 선택을 인정하며 받아들입니다.”

탈북민이 대한민국 국민이 된 다음의 어려움은 없을까? 너무 많다고 한다. 우선 중년 이상의 연령대가 돼서 입국을 하면,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문화가 완전히 다르고 모든 게 낯선 환경이기 때문에, 차라리 북한의 문화가 더 편하고 좋았다는 생각까지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북한은 사실 돈만 있으면 정말 살기 편한 사회라고 해요. 돈이면 다 되니까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건 말투가 되죠. 억센 억양과 더불어 굉장히 직선적인 표현과 자기의견을 앞세우니까요. 누구나 24시간 자신을 감시하던 사회에서 살았고, 한국보다 훨씬 더 심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북한이에요. 타인의 상황에 관심을 두거나 바라볼 겨를도 없이,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한국보다 더 극심한 경쟁사회였기 때문에 자기의 속마음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역으로 자기를 더 과하게 표현해서 불필요하게 주변의 오해를 사는 일도 자주 있어요. 그래서 평소 익숙하지 않은 억양 때문에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조선족’이라고 답을 하죠. ‘북한이탈주민’이라 하면 순식간에 달라지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함께 질문공세에 시달리게 되니까요.”

어른들과는 달리 어린 연령대는 보다 수월하게 남한사회에 적응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탈북어린이들을 마주한 이들은 똑같은 경험담을 얘기하게 된단다. 눈빛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살기’가 느껴진다는 건데, 정말 힘들게 지냈던 기억과 자기방어기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기성세대들의 우려와 달리 보름 정도의 기간만 지나면, 우리가 아는 ‘어린 눈동자’로 바뀌게 된단다. 그만큼 새로운 현실에 대한 동화가 빠르다는 것이다.

김소희 선임간사는 남한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들과, 반복되는 시행착오 끝에 실패로 끝난 이들의 생생한 실제 사례들을 자세하게 전해줬다. 뒤늦게 열심히 공부해서 영국으로 박사학위 과정을 떠나는 이와 서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이와 같은 성공 케이스도 있지만, 남한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한 이들의 소식도 연이어졌다. 그런데 그 모든 탈북 체험담을 세세하게 듣는 동안, 그들이 일개 개개인이 아니라 모두가 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장편 소설이나 대하소설 주인공의 삶을 살았다는 실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생존과 인권의 극과 극을 모두 체험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인생의 밑바닥을 모두 겪고 끝내 살아남은 생존자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데, 북한정권의 정치행위와 북한주민들의 실존은 분명하게 구분하며 바라봐 주시면 좋겠어요. 북한정권의 만행을 규탄하는 건 정치적 차원이나 국민정서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지만, 북한주민들 역시 북한정권에 의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잖아요.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는 가장 손쉬운 일이겠지만, 그걸 지속하는 건 어려운 일일 수 있어요. 그래서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입장으로 당부 드리고 싶은 건, 북한주민들의 현실과 노예상태로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제3국의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통일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먼 얘기가 아니라면, 같은 한민족으로서 그들이 언젠가는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웃이자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아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15998_15703_1756.JPG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