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다 해도 살아야 합니다 > 함께 사는 세상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살아야 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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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명단을 주의 깊게 살펴봐 주시면 좋겠다. 어떤 의미로 나열하는 건지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먼저 묻고 싶은 것이다. (호칭 생략) 장덕, 서지원, 김광석, 이은주, 유니, 정다빈, 여재구, 안재환, 최진실, 이서현, 장자연, 최진영, 박용하, 박서린, 한채원, 정아율, 김지훈, 김성민, 종현 등등, 이 이름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의 직업은 영화배우·가수·탤런트·모델 등 일반대중들에게 익숙한 얼굴들이었고,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최고의 공통분모는 이름 앞에 ‘故(고)’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자살자들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죽음만 중요한 걸까?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의 삶을 접어버린 이들은 이 땅에 얼마나 더 많이 있었을까? 2016년 한 해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자살자 수는 13,092명, 하루 평균 36명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제 오늘 마주쳤던 이들 중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심각성이 이번 만남을 ‘한국자살예방협회’로 선정하게 된 이유가 된다.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닌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약칭 OECD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12월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전 세계에서 선진국 내지는 선진국에 근접한 국가들이 한데 모이는 협력기구로 상징된다.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 앞에 내걸었던 자기합리화의 주된 근거는 OECD였고, ‘대한민국이 OECD 내에서 상위 몇 위에 든다’는 정권 차원의 홍보가 주를 이룬 바 있었다. 그런데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한테 듣기 좋은 말과 통계만 중점적으로 밝혔을 뿐, 정작 ‘한 국가’의 실질적인 민낯을 밝히는 주요 통계는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복지 수준이다.

단순히 무역수지와 경제규모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선진국이라 불리는 건 아니다. 진정한 선진국의 자격은 국민 삶의 질, 바로 복지의 수준으로 가늠하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10.4%이다.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34위인 것이다. OECD 복지지출 전체 평균인 22%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한국보다 복지지출 비중이 낮은 국가는 멕시코뿐이다. 심지어 개발도상국인 칠레와 터키도 우리나라보다는 복지지출 비중이 높다.

또한 OECD 전체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게 바로 ‘자살률’이다.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보면, 대한민국은 2011년 31.7명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이래 지금까지도 여전히 OECD 1위를 13년 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하루 평균 43.6명, 38.7명, 39.5명, 37.9명, 37명, 36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복지지출 비중은 꼴지, 자살률은 독보적인 1위, 이는 ‘OECD’ 운운하며 자화자찬만 일삼던 전임 정부들이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방치했는지를 액면 그대로 드러내는 실질적인 증거가 된다. OECD 평균 자살률보다 2.4배 높다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무엇이 근본원인인지, 이젠 남의 일이 아닌 ‘내 주변의 당면과제’로 직시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자살률이 지난 2011년을 정점으로 다소 줄어드는 추세인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너무 심각하게 높다는 점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와 비슷한 자살률을 보였던 일본은 그 비율이 30% 가깝게 떨어졌는데, 우리의 감소 비율은 아주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죠. 그래서 이건 어느 한두 단체의 힘으로 다룰 게 아닌, 국가와 사회가 직접 나서야 하는 시급한 과제가 된 겁니다. 그래서 올해 초 정부는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자살이 개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뒤늦게나마 공식화한 것이죠.”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인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화의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갔다. 철저하게 한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는 게 자살이지만, 그 절반 정도는 사회적 타살로 규정지어야 할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실질적인 대처가 시급함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먼 과거가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살예방에 대해선 일정한 비관주의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잘못된 속설이 있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어차피 죽을 사람은 언젠가는 죽어’, ‘얼마나 힘들면 죽었겠어’, ‘그래, 죽을 만하지’, ‘이번에는 구조돼 살아났지만, 언젠가는 다른 강 다른 다리에서 또 뛰어내릴 거야’, 이런 식의 편견으로 방관하던 분위기가 만연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사회와 국가가 분명하게 노력을 하니까 자살예방이 가능해진다는 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저희 한국자살예방협회 차원에서도 자살예방의 성공사례들이 드러나고 있거든요. 국가와 전문기관이 직접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는 거, 그건 자살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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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2017년 2월 8일에 공포되고 같은 해 8월 9일부터 시행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약칭 자살예방법)’이라는 게 있다. 자살예방을 위해 국가가 공포하고 시행한 법률이 있는데도, 문제는 그런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반대중에겐 생소하다는 점이다.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한다는 통계를 굳이 시간으로 나눈다면 하루 종일 40분마다 한 명씩 자살한다는 건데, 해당 법률의 존재가 낯설다는 건 일반 국민들한테 아직 그 취지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지난 2월에 국회에서 34명의 의원들이 함께 참여한 ‘국회 자살예방포럼’이 출범했고 지금도 계속 열리고 있는데, 포럼에 참가할 때마다 저는 강조합니다. 자살예방법의 취지 자체는 좋지만, 너무 선언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법률 개정안을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의 현실에 보다 가까운 내용으로 바뀌어야만, 구체적인 방안과 대안이 국민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될 테니까요.”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단적인 예는 무엇이 있을까?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너무 없다는 점을 오강섭 협회장은 우선 지적한다. 가족을 잃어 경황 자체가 없는데, 조사를 나온 경찰은 가족을 범죄인 취급하듯 몰고 가며 2차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가장이 숨졌을 경우엔 경제적인, 법률적인, 심리적인 모든 부분에서 남은 가족들이 상처를 받게 되는데, 자살자에 대한 문제만 집중하지 유가족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시급히 개정돼야 할 또 다른 내용 중 하나는 ‘개인정보 보호법’의 맹점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말씀드린다면, 자기 아버지가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갔는데 연락이 안 돼요. 그래서 휴대전화기를 통해서 어떻게든 위치 정보를 파악하고 싶은데,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서 추적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가족들은 애가 타죠. 유서는 집에 있고 연락은 안 되는데, 어떻게든 찾아서 자살을 막아야 하는데도 법 규정 때문에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국회 자살예방포럼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자살시도자에 한해 별도의 예외규정을 둬야 한다는 겁니다.”

기술문명의 발전과 세상의 변화를 탓할 수도 없을 만큼, 이 사회는 5년 전이나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 검색으로, 유투브로, SNS로, 카톡 등의 연결망으로 공유되고 끝없이 전파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 중심에서 ‘자살’이 빠질 순 없다. 호기심과 중독성에 있어서 그만한 자극을 받을 게 따로 없기 때문이다.

“자살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는 거, 거기에 가장 많은 일조를 한 게 바로 언론과 방송입니다. 자살을 다루는 언론과 방송이 얼마나 치명적인 해악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자살사건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자세하게 다룸으로써, 모방시도와 실제 자살을 부추기는 측면이 너무 많거든요. 자살을 불가피한 선택인 양 파헤치면서, 여과 없이 그 장면과 현장을 방송합니다. 인기 드라마에서 투신자살 시도자가 실제 뛰어내리는 장면, 그 절박한 상황을 필연적인 결단인 양 묘사하는 건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잖아요.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그런 걸 법으로 다 일일이 제재할 순 없지만, 분명한 가이드라인(지침)을 만들어서 생명윤리의 관점에 따라 책임감 있게 시행해야 합니다. 저희 협회가 그 작업을 지금 진행하고 있는데, 언론과 방송 관계자들의 진지한 동참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나’를 살리는 건 바로 ‘나’다

‘자살’이라는 현상과 마주대하는 일반대중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은 또 무엇이 있을까? ‘자살예방’이라는 화두에 집중해서 접근한다면, 자살을 용서의 계기로 삼는 잘못된 인식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오강섭 협회장은 강조한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다 용서를 해줘요. 이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무슨 큰 사건이 있어서 조사하다가, 그 책임자가 자살을 하면 없던 일로 유야무야되고 말죠.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자살을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자살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대기업 고위 임원 같은 인물들이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살을 하면, ‘저 사람이 책임을 졌구나’, ‘책임지고 자살했으니 더 이상 조사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려버려요.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오 협회장은 자살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건 이혼율이 급증하는 원인으로도 비교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주변에서 너무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죠. 이혼을 부부갈등의 해결책이라고 손쉽게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잘못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혼으로 결론내야 할 관계도 물론 있겠죠. 하지만 그건 마지막 최종 결론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리치료도 받아 보고 심리상담도 받아 보고, 같이 종교생활도 해보고 취미생활도 해보고, 개인적인 노력도 해보고 그 이외의 이것도 저것도 다 해보고, 그런데도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거든요. 그 마지막 불가피한 최종 단계로 이혼을 생각해야 하는데, 요즘은 조금 힘들다 싶으면 ‘다시 결혼하면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아주 쉽게 이혼을 결정합니다. ‘생명’이라는 엄중한 문제인데도, 자살을 ‘그냥 죽어버리자’는 충동적인 결정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국자살예방협회는 국민의 인식개선을 위한 실천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움직임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Gate Keeper)’ 100만 명 양성이다. 협회가 위탁운영 중인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진행하는데, ‘생명지킴이’를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배치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직장인 버전이 있고 청소년 버전, 군인 버전, 이렇게 각 대상에 맞는 프로그램을 짧게는 100분, 길게는 3시간 분량으로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 교육의 효과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어요. 이 교육을 받게 되면 남의 자살뿐 아니라, ‘나 자신’의 자살도 예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사실 평생 살아가면서 한두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제가 강연을 할 때 질문을 해도, 몇 분은 어렵게 손을 듭니다. 자살시도 내지는 경험이 있었다는 거죠. 방송에서도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이 출연해서, 과거에 자신이 그런 생각을 심각하게 했었다는 고백 같은 걸 하잖아요. 실제 행동까지는 안했다 하더라도, 그런 충동과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는 건 국민 누구나 거의 예외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나’를 먼저 돕고 먼저 살리자는 게, 생명지킴이인 게이트키퍼의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누군가를 둘러보며, 나를 생각하듯 남을 살피게 되는 마음과 시선을 갖게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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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

이 시점에서 ‘고위험군’이라는 용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위험한 상황을 실제 진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상들을 의미한다. 거기엔 유가족들이 포함되고 알코올 중독자들도 포함된다. 이미 자살을 몇 차례 시도한 사람들 또한 영순위로 지목된다. 그래서 해외 선진국들의 성공사례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는 특별한 제도가 있다고 한다.

“국책사업으로 ‘응급실 사례관리자 사업’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도 종합병원에서 근무하지만, 일 년에 수백 명의 자살시도자들이 응급실로 이송됩니다. 전국적으로는 수만 명이 될 겁니다. 그들에게 많이도 아닌 딱 네 번의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겠다는 약속을 받으면, 그 자살시도자들의 치료비를 전액 국가에서 대신 내주는 제도입니다. 비용은 제법 크게 듭니다. 전체적으로는 연간 몇 억이 되겠죠. 게다가 상담하는 선생님들도 고용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상담을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거예요. 단 네 차례의 상담을 받은 자살시도자들의 자살 재시도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 실제 사례와 같이, 고위험군들을 선제적으로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그런데 국가 차원에서 특정한 제도를 시행할 때,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장기적인 조치가 아닌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보여주기 식의 성급함이라고 한다. 자살률을 10%든 30%든 큰 수치로 낮추기 위해선 아주 긴 시간과 치밀한 진행과정이 필요한데, 국가예산이 들어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시적인 성과 위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게 가장 아쉽다는 오강섭 협회장의 진단이다.

“몇몇 언론을 통해서도 전해졌지만, 경기도 화성시에서 번개탄으로 인한 자살률이 크게 줄어든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번개탄을 사용한 자살은 언론 보도의 역효과로 인해, 오히려 홍보가 된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도 했죠. 가장 쉽게 죽을 방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화성시에선 판매처마다 구매자에게 사용용도를 물어보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물건을 계산대로 가져와서 계산하고 그냥 가게 하는 게 아니라, 번개탄에 한해서는 ‘이 탄을 어떤 용도로 쓰실 건가요?’라는 질문 한마디를 전하는 겁니다. 그 한마디만으로도 화성시의 번개탄 자살률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관심으로 수단과 방법을 제어한다는 거, 이건 굉장히 중요한 사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살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자살의도’이고, 또 하나는 ‘자살방법’이다. ‘자살의도’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한국자살예방협회를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더 심각하게 개선해야할 건 ‘자살방법’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현실이다. ‘스크린도어’ 설치라는 수단을 통해, 지하철역에서의 자살시도는 거의 사라진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하철(전철)과 일반열차, KTX 같은 고속열차가 같은 역을 통과하는데도, 스크린도어 같은 방어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역들이 많다는 게 시급한 개선책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탤런트 최진실 씨가 자살했을 때, 사회적으로 자살률이 갑자기 올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보고된 자료는 아니지만, 탤런트 대선배인 최불암 씨가 방송에 나와서 ‘그녀의 자살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이상 소중한 생명들이 따라하는 건 안 된다’는 취지로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그 이후로 일반인들의 자살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외국의 어느 유명한 팝가수가 자살로 죽었을 때, 그의 아내가 ‘남편은 사실 알코올 중독도 있어서 불행한 결론을 내린 거니까, 절대로 청소년들은 따라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인터뷰를 공개한 뒤 사회적인 자살률이 평상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건강하면, 심정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기존에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들부터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죠. 도화선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이 사회 자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한 환경 안에 있다면, 누구든 위험한 생각을 떠올릴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뜻깊고 진지한 대화를 길게 나눈 뒤, 마지막 정리를 하는 의미로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께 당부의 한 말씀을 남겨주시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오강섭 협회장은 자신의 이 한마디를 제목으로 정해 주셔도 좋겠다는 전제와 함께, 단호한 음성과 손짓으로 만남의 매듭을 지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한 일상의 표현이자 조언인데도,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책임자 입을 통해 전해진 결론이었기에 그 무게감은 수십 수백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았다.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힘들어서 죽는다’, ‘아파서 죽는다’, ‘장애 때문에 죽는다’, 그러면 이 세상에 살아남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다는 거죠. 심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간에, 극단의 상처는 언제 오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한테나 다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위기와 고통을 ‘죽는다’로 해결할 건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는 잘 모르는 일이겠지만, 누군가는 ‘나’로 인해 삶의 희망을 얻으며 지내고 있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겐 희망으로 존재한다는 거죠.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삶은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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