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없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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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정신장애당사자 모임을 처음 만들어 운영하다가, 말 그대로 ‘우애곡절 끝에’ 올해 초 2월에서야 정식으로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고 단체를 출범시켰다고 했다. 이 조직을 만들게 된 목적이 무엇이었냐는 첫 번째 질문, 이삼 초 뒤에 이어진 그 대답이 이번 만남의 핵심을 규정짓고 있었다. “살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정신장애를 갖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한 대한민국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당사자들의 땀과 피눈물에서 잉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처절했던 자립의 과정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이 땅의 정신장애 관련 문화와 인식을 한 단계씩 가시적으로 뒤바꿔온 이들이 있어 만났다. 계란으로 바위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그들, 바로 ‘사단법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다.
임계점에서의 몸부림, 살고 싶다
2018년 가을, 불과 한 달 사이에 끔찍한 범죄가 전국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피의자는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 하고, 피해자에겐 진심어린 위로와 애도를 전해야 한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여전히 반복되는 색안경의 메아리는 매번 같은 지점에서 등장한다.
‘피의자가 정신과 병력이 있다’,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조현병을 앓고 있다’, ‘그럴 사람 같지 않았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 등, 전후 진실을 밝히기 이전부터 정신장애인 낙인찍기 광풍이 몰아치는 것이다. 언론의 추측성 기사 하나면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연결망을 거쳐, 대부분의 여론은 거의 동시에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정신병자의 소행이야!’
기존의 다른 취재에서도 이미 언급하며 강조했던 통계수치지만,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범죄발생 총량을 100%로 봤을 때 정신장애당사자의 범죄율은 0.4%에 불과하다. 공무원비리, 사학비리, 방산비리, 취업비리, 사기횡령 등 굵직한 범죄들이 넘쳐나는데, 언론과 여론은 99.6%의 범죄발생보다는 0.4%에 모든 걸 집중한다. 마치 0.4% 때문에 국가 안전의 근간이 뒤흔들린다는 식의 공포와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정말 살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지점, 그 한계상황에 다다랐던 거죠.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시도가 필요했어요.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이 사회의 편견을 깰 당사자들의 움직임이 절실했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가 서로의 손부터 잡아야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요.”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하 파도손)을 책임진 이정하 대표는 지난 2013년 <함께걸음> 12월호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대화의 끝 무렵에 그는 당사자들의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며, 협동조합 형태가 될 거라고 언급한 바 있었다. 파도손은 이미 그 시점에 태동되고 성장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정신장애인 문화예술협동조합 준비위원회로 구성된 게 파도손이었어요. 그렇게 활동을 시작했던 거죠. 그런데 협동조합 설립은 무산됐어요. 준비위원회를 진행하는 과정에 저희 당사자 한 명이 자살을 했고, 다섯 명 정도가 연이어 강제입원이 됐거든요. 막판에는 저도 강제입원을 당했어요. 열심히 준비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본의 아니게 예상치 못했던 요인으로 와해가 돼버린 거죠.”
‘우애곡절’이란 표현 그대로의 과정 끝에 지금은 사단법인으로 출범했지만, 당시 협동조합을 신청하고 설립하려던 시도 역시 우애곡절뿐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핵심만 모아 풀어낸다면 이렇다.
서울시청을 방문해서 협동조합 부서에 문의를 했다. 자기들은 정신장애인 분야는 잘 모르겠다며, 장애인복지과로 가보라고 했다. 장애인복지과로 가니까 협동조합은 소관업무가 아니란다. 게다가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과의 담당업무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보건팀으로 가라고 했는데, 면담날짜까지 잡아서 방문했더니 난감해하면서 잘 해보라는 한마디만 했단다. 럭비공 돌리듯 다른 부서로 책임을 미루기만 했는데, 이유는 단 한 가지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이라고 이 대표는 판단한다.
“그때 뼈저리게 든 느낌이 있었어요. 저희도 시민이에요. 저희도 투표권 있고 주권자이고,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거든요. 그런데 직접 부딪쳐 보니까 저희는 이 나라의 시민도, 국민도 아니었어요. 심지어 장애인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상황과 계속 마주치다 보니까 어떻게 됐겠어요. 아파진 거죠. 저희 당사자들의 건강이 아주 악화됐어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게 되니까, 그게 정신문제로 다시 터져 나오게 됐던 거죠. 당사자들의 상황이 극히 나빠지면서, 저는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문화예술이 아니라 인권운동에 집중해야겠다 답을 내리게 된 거예요.”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가?
잠잠하다가 출렁이고, 때로는 몰아치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게 바닷가의 파도다. 썰물의 시기가 있고 밀물의 때가 있듯, 다양한 파도들끼리 연대의 손을 맞잡고 파도 같은 마음을 한데 모으자는 당사자들의 움직임이 바로 ‘파도손’이다. 그 뜻풀이를 헤아리다 보면, 참으로 깊이 있는 이름을 가졌다는 생각을 되새기게 된다.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들 = 정신병원’이라는 공식을 절대시해요. 정신병원에 속해 있는 사람들, 미친 사람들, 정신병자들, 그러니까 정신병원 안에만 속박되고 감금돼야 하는 존재들이지 일반시민은 아니라는 거죠. 그 공식부터 해체시켜야 해요. 정신병원의 폐쇄적 구조, 그 감금의 구조가 모든 악의 근원이기 때문이에요. 자기의사결정권이 전혀 없어요.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마저 박탈당하고, 강제입원을 당연한 결론이자 유일한 해결책으로 합리화시켜요. 복지선진국에선 개인의 의사를 먼저 존중하는데, 왜 한국에서만 이런 무조건적인 격리조치로 인권을 말살하는 건가요?”
이정하 대표는 지금까지 12번 입원을 겪었는데, 마지막 1회를 제외한 11번이 모두 강제입원조치였다고 한다. 원하지 않는 시기에,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원하지 않던 폐쇄병동에 기약 없이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제가 결정한 적 없고, 결정에 동의한 적도 없거든요. 당사자가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재발이 다가온다는 신호예요. 그런데 무자비한 강제입원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혼자 참고 견디며 버티는 거예요. 더 불안해지죠. 강제입원 당할까 봐 도망 다니게 돼요. 그 과정엔 말도 안 되는 모순만 발생하게 되죠. 병원에 가야 되는 시점에 병원에 가게 될까 봐 무서워서 피해야 한다는 거,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치료 받고 싶을 때 언제든 편하게 병원을 찾아갈 수 있고, 휴식과 안정이 필요하면 자의입원을 해서 회복의 과정을 밟아가는 게 모든 병 치료의 상식 아닌가요? 거의 모든 국민이 누리고 있는 그 선택권이 정신장애인들만 박탈되고 있다는 거예요.”
원치 않는 와해의 길로 접어들었던 파도손은 이대표까지 강제입원된 이후 2년 가까이 활동을 멈춰야 했단다. 다시 재개한 건 2016년이라고 했다.
“5월 6일, 날짜도 기억해요. 정신보건법 전면개정안의 법안을 저희가 먼저 받아볼 수 있었어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고 본회의 통과를 앞둔 시점이었거든요. 저희가 법 폐지투쟁을 계속하면서 외쳤던 건,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 쟁취’였어요. 그런데 절차가 조금 까다로워졌을 뿐, 자기결정권은 개정안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았어요.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죠. 법을 한 번 바꾸는 데만 이십 년 넘게 걸렸는데, 이렇게 바뀌고 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이 개정안에 명시될 때까지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계속 배제시키겠다는 선언과 다를 게 없잖아요.”
활동을 재개한 이후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를 했다가 그 연대가 끊어지기도 했고, 또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다가 갈등의 반복을 겪었다는 대목에선, 당사자들이 극복해야 했을 정신적 부담감이 먼저 우려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대표의 표정은 오히려 평상심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저희 당사자운동도 성장을 한 셈이 됐죠. 속도는 느리지만 점점 더 깊숙이, 목표와 본질을 향해 변함없이 계속 나아갔다고 저는 판단해요. 파도손 자체가 처음부터 금전적 재원이 없었던 데잖아요. 회원들이 헌신하고 몇몇 사람들이 사재까지 털어가면서 지켜왔던 운동단체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걸 어떻게 운영했는지는 짐작하지 못하실 거예요. 후원을 받기 시작한 건 사단법인이 된 뒤부터였으니까요.”
내 인감도장은 어디에?
2017년 9월 2일, 드디어 ‘사단법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창립총회가 거행됐다고 한다. 이대표 스스로 역사적인 날이라고 방점을 찍었는데, 서울시에 사단법인 등록허가를 받으려고 서류를 제출했다는 언급부터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협동조합을 만들려던 이전 상황과 달라진 게 없는, 정신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관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저희가 사단법인을 추진했던 이유는 의사협회, 병원협회 전부 다 사단법인으로 돼 있기 때문이었어요. 비영리단체나 임의단체의 모양새보다는, 직접 맞대면을 할 수 있는 공적인 권리와 자격부터 먼저 확보하자는 취지였죠. 법원에 등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만큼 절차가 까다롭기도 했지만, 공무원들의 업무처리방식과 저희 당사자들의 현실에서 동시에 문제가 발생했어요. 사단법인은 총회 참석 구성원들의 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돼요. 그런데 정신장애인들은 인감증명서를 뗄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인감도장을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이 일상생활 안에서도 이처럼 침해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어떻게든 발버둥 치듯 정족수를 채워서 제출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법인의 자격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법률검토를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단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법적인 자격을 검토한다는 건, 정신장애인들을 사단법인 설립신청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국민의 일인으로서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관리대상이자 치료대상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의사 같은 전문가들이 신청했을 때도 ‘법인의 자격’ 운운하며 검토를 했을까요? 파도손은 사단법인의 주체가 아닌, 다른 사단법인들이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 인식과 편견 때문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때, 담당자는 둘러대지 않고 그런 면이 있다고 답했어요. 이게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지자체와 정부의 민낯이라는 거죠. 실사까지 나와서도 명확한 답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어요. 그게 당사자들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죠.”
법인 신청을 하고 나면 일정기간 내에 승인이 나와야 하고, 법원에 등기를 마쳐야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는 공무행정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놓치게 되면, 다시 처음 첫 단계부터 신청을 진행해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장애당사자들이 다시 인감증명서를 발부받아야 한다. 자신의 인감도장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는데, 어떤 상황이 반복해서 벌어질까? 이 난맥상은 굳이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답이 나온다.
“저희가 하겠다고 하는 일들이 사적인 게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공적인 영역을 대신 담당하겠다는 거잖아요. 그 오랜 기간 동안 그 일을 하지 않았던 건 국가와 지자체예요. 그걸 이제라도 저희가 하겠다고 나선 거잖아요. 국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비용인데, 그걸 민간이 자비로 사재를 털어가면서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하죠. 그런데 해야 할 일들을 안 하는 공무원들은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내는 국민은 국가가 안 해주는 일을 사재를 털어서 하고 있다는 거, 저는 이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예요.”
‘정신보건법은 1990년에 들어 정신질환자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정부는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1995년 12월에 제정됐다’고 다수의 인터넷 검색에 등장한다. ‘범죄행위’라는 표현이 중심을 잡는다는 게 시선을 멈추게 만든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정신건강복지법)’은 2017년 5월 30일 시행됐다. 물론 다 좋은 취지로 만든 법이겠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은 결사반대의 몸부림으로 외친다. 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국가만 모르고 있다는, 아니면 익히 알면서도 ‘그 정도 선에서’ 봉합했다는 의미가 된다.
“저희의 무게중심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주권확보’예요. 주권이라는 건 한마디로 말해서 권리잖아요. 국민의 권리거든요. 기본권이에요. 그런데 정신장애당사자들한테는 그 기본권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파도손의 길은 정신장애인들의 기본권 쟁취로 귀결돼요.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원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 이게 저희가 내세우는 슬로건이거든요. 누구나 자기 운명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파도손이 지향하는 목적지는 그 슬로건 안에 다 함유돼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사단법인 설립허가증을 발급받은 이후, 그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한마디로 ‘대외적인 무게감’이 확연하게 변화됐다고 한다. 정부부처들과 관련 단체들이 대하는 대우가 바뀌었다는 건데, 기존에는 시도 자체가 무산됐던 성과들이 보다 수월하게 이뤄지게 됐다는 대목에선 파도손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라는 보건복지부 자문기관이 있어요. 정신건강 분야의 각 단체 대표자들이 모여 있는 기구인데, 거기에 처음으로 당사자 위원으로 들어갔어요. 의사협회, 의료계, 병원협회, 각 기관이 다 들어가 있지만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없던 기관이었는데, 드디어 당사자가 동등하게 참가해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맡게 된거죠. 지난 10월 12일엔 부산 롯데호텔에서 2018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후기 학술대회가 열렸는데, 의학회가 생긴 지 70년 만에 당사자로 처음 참가해 발표를 했어요. 정신장애당사자가 ‘관리대상’이 아닌 ‘토론상대’로 인정을 받는 데만 70년이 걸렸다는 거죠.”
이정하 대표는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다음 목표는 치료환경의 구축이라고 단언했다. 故 노회찬 의원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이젠 수십 년 똑같이 태우며 사용했던 불판을 바꿔야 한다. 틀이, 시스템이, 기본인식 모두가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강제입원이라는 건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것이 생명을 빼앗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든요. 절실함이 다른 거죠.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아무리 열정 넘치는 시민사회 활동가라 해도, 제3자의 관점으론 그 인권유린의 실체를 체감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이젠 바뀌고 있습니다. 파도손을 하면서 희망을 갖게 만드는 변화가 느껴져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감으로 다가오는 움직임들이 있거든요.”
이정하 대표의 판단이 맞는다면, 기대치 않았던 긍정의 메시지를 공유할 만해진다. 우선 과거보다 정신장애당사자들한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정신과 의사들과 의료계의 변화가 눈에 띈단다. 정신장애학계의 담론이 강제입원에서 치료현장의 개선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소규모 병원들은 사라지고 있고, 몇 군데 괜찮은 병원들이 국공립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이 변화의 물결이 파도손의 활동 때문은 아니지만, 저희들의 당사자운동이 오프라인에서 본격 시작된 시점과 정말 절묘하게 연결되거든요. 당사자의 목소리로 더욱 열심히 하다 보면, 병원에 있는 환우들한테 조금씩이나마 대우가 달라지고, 인권침해의 사례가 줄어들게 될 거예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거죠. 그래서 저의 지금 담론은 치료환경 개선에 집중되고 있어요.”
담론은 한두 발 앞서서 제기하고 제시해야 한다. 때로는 열 걸음 앞서서 외쳐야 할 때도 있다. 중증장애당사자들 중심으로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시작했을 때, 그들의 처절한 절규를 듣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투쟁과 희생은 계속 이어졌고, 거리의 턱을 없애고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 성과의 혜택을 장애당사자들만 독점하는 건 아니다. 모든 이동약자들에게 폭넓은 편의가 제공된다. 투쟁의 시작은 암울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이는 정신장애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신장애인들과 정신병원을 동일시하던 인식의 틀만 깨면, 국민 모두의 편의와 건강을 확보하는 게 가능해져요.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잖아요.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하며 치유하는 걸 누가 맡아야 하나요? 바로 정신과 전문의들이고, 크게 본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에요. 강제입원의 공포 없이, 치료할 필요성이 있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을 만들면 돼요. 억지로 가기 싫으니까 생기는 문제거든요. 누구나 가고 싶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편견이 해소가 되죠. 정신병원 또는 정신과가 ‘정신병자, 미친 놈’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열린 마당으로 새롭게 재탄생되는 거예요.”
11번의 강제입원을 겪었던 이 대표는 12번째가 돼서야 처음으로 자의입원을 했다고 했다. 재발이 되겠다는 신호가 왔을 때, 스스로 짐을 준비하고 나서서 입원을 신청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이 드디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의입원의 효과는 확실했다고 한다. 퇴원 후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재발 없이 잘 지낸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입원치료의 놀라운 효과를 반증하는 거란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골목길 안에 위치한 파도손은 실내공간이 아주 넓다. 사무실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귀가 아닌 가슴에 담겨졌다. 당사자들이 병원에서 워낙 좁은 공간에 오래 생활하다 보니까, 공간이 좁으면 갇힌 느낌을 심하게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름하더라도 심정적인 공간이 확보되는 곳을 골랐다고 한다. 실내 인테리어는 전부 당사자들의 손길로 완성됐단다. 입구의 커다란 어항도 해당 전문가인 당사자의 기술로 만들었고, 사방 벽에 자리 잡은 그림들도 모두 당사자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숨으면 숨을수록 편견은 심해져요. 나와서 우리가 드러나 보이는 양지로 나와야만 국민들도 정신장애인에 대해서 알 수 있고, 근본적인 편견 해소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움츠려들게 되면 자신감이 없어져요. 그러면 용기를 잃게 되고, 투병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당당해야 투병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당해야 투병의 의미가 있고, 세상 속에서 ‘나’의 인생을 만들 힘도 얻게 되거든요. 나오세요. 당당해야 해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하고는 좀 다를 수는 있어도, 당신의 삶 자체가 그 나름대로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을 맞잡아요. 파도손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우리 서로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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