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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소통, 소리를 눈으로 본다

AUD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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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특정계층이나 특정연령대에 한정됨이 아닌,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을 지향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편하면 남들도 다 편하다’는 의미가 된다. 누군가에게 편리한 거라면, 예외 없이 나 자신에게도 그 편리함이 공유돼야 한다. 그렇기에 보편적 설계는 성별, 나이, 장애, 언어 같은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개념을 뛰어넘는, 말 그대로 유니버설(전 세계의,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차원의 편의성을 현실화시킨다. 그러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지향점을 자신들의 사회적협동조합의 명칭 그대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어 만나 보았다. 소통 방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AUD(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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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필요함을 모두의 편의성으로

발명이나 신기술 개발은 필요에 대한 욕망을 기반으로 탄생한다. 그건 우연한 관찰의 결과일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성과는 보다 나은 편의를 위한 ‘절실함’의 도전으로 이루어진다. 중증장애인의 치아건강을 위해 개발됐던 전동칫솔은 이미 세상 모두가 애용하고 있고, 이동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남녀노소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 자동문이 그렇고, 수동다이얼 전화기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비어 있는 영역이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 필요성의 절실함을 피부로 느끼는 당사자들의 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러 정책이 있고 보청기 같은 보조기기의 활용도 가능하지만, 청각장애 당사자로서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에 대한, 다시 말해 장애당사자인 저 자신을 위한 정책이나 시스템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방법은 분명히 있는데 그게 개발돼서 시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그냥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도전해서 만들어내고 활용하기로 결심하게 됐죠. 그래서 2012년 소셜벤처경영대회에 평소 생각하고 있던 실시간 문자통역서비스의 아이디어를 제출하게 됐어요. 그게 채택되고 선정이 돼서, 저의 오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지원을 받으며 사회적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이기 때문에 대표가 아닌 이사장이라는 호칭을 쓰게 됐다는 박원진 이사장, 그는 스스로의 불편함과 아쉬움을 중심에 놓고 모든 기획을 탄생시켰다.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게 된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어릴 때 고열로 심하게 앓은 뒤부터 청각의 이상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난청 판정을 받고 양쪽 귀 모두 보청기를 사용하게 됐지만, 보청기를 빼면 어떤 소리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원활한 소통과 정보습득의 방법론이었단다.

“구화를 하니까 입모양을 보면서 상대방의 의미를 파악하죠. 가까이서 일대일 대화는 어느 정도 가능한데, 여러 사람이 있거나 주변에 소음이 있으면 아무리 입모양에 집중해도 정확한 뜻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거든요. 입모양 또한 완벽한 게 아니에요. 쉬운 예로 ‘가’와 ‘아’는 입모양이 거의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맥락을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해요. 영어 듣기시험을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모든 문장 속 단어들을 단번에 전부 다 알아듣는 건 아니거든요. 아는 단어, 들리는 단어 중심으로 유추를 하면서 문장 전체의 뜻을 헤아리는 것처럼, 구화를 하는 데도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풀어가야 해요. 입모양을 본다는 건 의사소통의 보완책이지,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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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문장으로 나타나는 모든 소리들

대학에서 초등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특수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그가 찾아낸 방법론은 ‘소리를 눈으로 직접 보자’였다고 한다.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청각에 큰 비중을 두는 것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에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빠른 의미전달 방식이 따로 없다. 박원진 이사장은 바로 그 대목에 주목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각장애인 = 수어’라는 공식 하나로 생각하죠. 하지만 26만 명으로 집계되는 우리나라의 청각장애 당사자들 중에서, 대화의 방식을 수어만으로 사용하는 이들은 적어요. 훨씬 많은 난청인들이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구화를 한다는 거죠. 입모양을 주시해야 하는 일대일의 한계를 벗어나, 아주 많은 당사자들이 훨씬 넓은 공간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정확한 정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방식을 우선적으로 활성화시켜야겠죠. 저희는 그 지점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AUD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에이유디)의 AUD는 Auditory Universal Design의 약자다. auditory는 사용빈도수가 낮아 낯설 수 있는데, ‘귀의, 청각의’라는 뜻이다. ‘(극장 등의) 청중석, 관객석, 방청석’을 의미하는 오더토리엄(auditorium)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보다 쉽게 이해가 가능해진다. ‘청각의 보편적 설계’라는 걸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소리(대화, 강연, 공연 등)를 실시간으로 활자화시켜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에이유디의 여러 활동 중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인 문자통역(쉐어타이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박이사장은 실제 작업과정을 직접 시연하며 설명했다.

“국가공인자격증을 가진 속기사들을 저희 조합에선 문자통역사라고 부릅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보여드릴게요. 문자통역사와 같이 있는 이 자리에서 제가 말을 할 수 있고, 다른 먼 곳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핀마이크를 달고 스마트폰을 켜서, 문자통역사와 전화로 연결을 해요. 모든 게 전문 앱을 통해 전해지는데, 제가 강의하는 내용을 문자통역사가 동시에 타이핑을 하고, 그 내용이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납니다. 저희가 초중고교 재학 중인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서 눈앞의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의 글씨와 문장으로 확인하게 되는 거죠. 교육뿐만 아니라 미사나 예배 같은 종교행사, 각종 집회, 학술포럼, 전문 세미나까지, 모든 분야에서 실시간 문자번역을 공유할 수 있는 게 바로 쉐어타이핑입니다.”

기존에도 원격문자통역이라는 서비스가 있었지만, 그걸 이용하기 위해선 갖춰야 할 장비들이 많았다고 한다. 에이유디는 그 대신에 가장 간단하고 간편한 방식을 도입했다. 선생님 같은 강연자들에겐 옷깃에 핀마이크 하나만 달아주면 되고,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을 켜고 관련 앱을 열어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에이유디의 문자통역사들은 국가가 공인한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고 훨씬 인간적인 문자통역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문자통역사들도 에이유디의 쉐어타이핑 작업을 즐겁게 임하고 있어요. 속기사들이 주로 근무하는(했던) 곳이 검찰청이나 법원, 국회 같은 국가기관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곳에서의 실시간 기록 작업은 사건이나 논쟁처럼 대부분 좋지 않은 내용으로 진행되는데, 에이유디의 문자통역은 다양한 세상의 폭넓은 화제들을 접할 수 있어 일하는 재미가 훨씬 크다고 다들 말씀하세요. 딱딱하게 강연 내용 그대로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웃음과 농담처럼 순간순간 벌어지는 현장의 생생한 상황까지 속기로 전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만족도 또한 상당히 높게 평가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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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공유와 공감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에이유디는 일반 협동조합이 아닌 사회적협동조합이기 때문에, 비영리활동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지원사업을 펼쳐나간다. 공익사업 수행이 사회적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이자 설립목적이기에 지역사회공헌, 지역주민의 권익증진, 취약계층지원, 일자리 제공, 공공기관 위탁사업 등이 주된 활동분야가 된다. 신고만으로 설립되는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보건복지부의 심사를 거쳐 인가를 받았고, 조합원 배당 금지 및 경영공시자료 공개를 기본으로 한다. 사회지원사업과 투명한 경영이 최우선되는 것이다.

“에이유디는 문자통역을 통한 의사소통 지원사업, 다양한 앱과 기기를 개발하는 보조공학기기 지원사업, 장애인식 개선사업, 제도개선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정부와 지자체를 향한 다양한 정책제안에도 힘을 쓰고 있죠. 사회적협동조합은 법적으로 소액대출지원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안전망 구축을 위한 대출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청기를 분실하면 큰돈이 필요하잖아요. 또한 문자통역사들이 사용하는 속기 전문 키보드는 상당히 고가인데, 떨어뜨리거나 고장이 나면 당장의 활동이 어려워지게 되죠. 그래서 출자금 범위 안에서 조합원들을 위한 대출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에이유디는 함께하는 조합원들의 존재가 가장 큰 인적자산이다. 2018년 9월 말 현재 총 234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청각장애 당사자인 소비자 조합원, 상근자 중심의 직원 조합원, 재능기부활동의 자원봉사자 조합원, 통역사와 개발자를 아우르는 생산자 조합원, 후원자 중심의 후원자 조합원 등이 에이유디를 하나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조합원 가입은 하지 않고 후원만 담당하는 고마운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서로의 응원으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마련돼 있는 셈이다.

에이유디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 확인은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문자통역’ 또는 ‘쉐어타이핑’을 입력하면 된다. 이용요금에 대한 안내도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조합원이 되면 그 금액이 크게 낮아진다고 한다. 만약 지속적으로 에이유디 서비스를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인 이용보다는 먼저 조합원이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쉐어타이핑 지원서비스가 모두에게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건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A라는 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집에서 문자통역서비스를 받아야 할 경우에도 똑같은 지원이 그대로 진행되는 걸까? 별도로 건넨 이 질문에, 박 이사장은 예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론적으로는 어디서나 가능한데, 비밀번호가 걸려 있으면 그 번호를 현장에서만 알려 줄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유료 행사일 때는 현장에 참석한 참가자들한테만 정보를 제공하는 게 우선이 되죠. 보안을 요하는 모임일 때도 있고, 지자체나 관공서에서 주최하는 경우엔 문자통역 비용 때문에 참가자들 이외엔 잠금장치를 해놓을 때도 많아요. 가능한 한 현장에 직접 참가해서, 꼭 필요한 정보와 문자통역서비스를 활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이사장은 문자통역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강조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한테 ‘안 들린다’는 점 하나로 접근해선 안 되고, 그들이 사용하는 모국어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존중해야 제대로 된 소통의 방법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모국어가 무조건 한글인 건 아니죠. 농인들의 제1언어는 수어니까요. 난청인들의 제1언어는 음성언어인 한국어입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은 모국어로 수어를 쓰는 사람들 위주로 집중돼 있어요. 문자통역서비스는 수어 아닌 한국어가 모국어인 청각장애인들만을 위한 건 아니에요. 더 확장해서 본다면, 비장애인들한테도 큰 혜택이 전해질 수 있거든요. 가깝게는 귀가 어두워진 어르신들께도 편의가 제공되지만, 더 넓게 본다면 국제학술포럼처럼 큰 행사에서도 동시통역사의 음성 대신 문자통역으로 훨씬 더 쉽게 이해할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쉐어타이핑 자체가 유니버설 디자인이 되는 거죠.”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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