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황금기 > 세상, 한 걸음


내 인생의 황금기

그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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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날은 조금 궂은 날이었다. 개나리가 살짝 얼굴을 비치는 봄인데도 카페 밖은 눈보라처럼 비 섞인 눈이 사선을 그으며 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3월말인데 웬 눈이냐며 우산이나 외투를 꼭 잡고 걷고 있었다. 봄은 따사한 햇살과 고운 꽃들만 있는 계절은 아니다. 우리의 생도 그렇다. 청춘이라는 10대와 20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도 시리게 아픈 날도 섞여 있다. 장애인문화공간에서 활동하는 30대 초반의 김경민 씨를 만나 그녀의 청춘은 어떤지 들었다.

“전 지금 너무 행복하거든요. 지금은 따뜻한 느낌이라면 초중고 10년 동안은 정말 외롭고 힘들었어요.”

김경민 씨는 청소년시절 왕따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하는 내내 친구가 3명밖에 없을 정도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녀를 멀리 했다. 그녀의 손모양이나 걸음걸이가, 때로는 말투가 달라서다. 그녀는 뇌병변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편견어린 시선에는 이상해 보였다. 태어날 때 양수를 많이 먹었는데 늦게 발견해 뇌에 영향을 미쳐 뇌병변이 왔다고 했다.

초등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장애인들만 다니는 특수학교에 가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엄마에게 특수학교로 전학시켜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엄마는 안 된다고 했다. 중학교 때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간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경민이가 학교 적응을 못하니 특수학교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해서 엄마도 상처를 받았다. 장애인/비장애인 통합교육의 중요성이나 시설의 문제를 안 지금이야 특수학교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장애인들만 있는 학교에 가면 외롭고 힘들지 않을 것"같았다.

고등학교 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같은 반 아이들이 그녀의 다이어리를 훔쳐보고 그녀가 쓴 일기의 한 줄을 칠판에 적어놓고 놀린 적도 있다. 이니셜이 가수 김건모와 똑같은 걸 이용해서 그녀의 일기 내용을 마치 김건모의 신곡 가사인 것처럼 적어놓은 것이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며 신곡가사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킥킥대는 반응에 읽어보니 칠판에 적힌 문장은 그녀가 다이어리에 쓴 내용이었다. 분하고 속상했지만 선생님에게도 엄마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한다고 애들과의 관계가 좋아질 리가 없으니까. 초등학교 때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엄마는 친구를 찾아가 혼냈고 그러면 애들은 더 쉽게 그녀를 떠나곤 했다.

왜 따돌림을 당한 것 같냐는 물음에 “제가 외모를 잘 가꾸지 않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 것 같다고 했다.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청소년 시절 숙제를 하고 시험을 준비하느라 때로는 잘 씻지 못하고 학교에 가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머리도 엉망이고 때로는 땀 냄새도 풍겼던 것 같은데 그런 날이면 반 애들은 그녀를 더 멀리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궁금한 게 있어서 선생님께 질문했더니 애들이 “그만하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웅성댔다. 언어장애가 있는 그녀의 말의 속도와 발음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노래패 ‘시선’ 활동도 하고 있는 경민 씨는 그때의 쓰린 경험을 랩으로 써서 불렀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건

 

경민 씨가 청소년기 힘들어할 때면 엄마는 “대학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녀도 “그래, 대학 가보자. 그러면 달라질 거야” 생각했고 재수해서 대학에 갔다. 대학을 안 나오면 더 삶이 힘들어질 거라는 엄마의 말에 더 대학입시에 매달렸다. 그런데 정말 대학에 가니 삶이 달라졌다. 친구들만이 아니라 선후배도 생기고 같이 공부하고 놀고 연애도 했다. 학생회 활동도 하고, 소모임의 운영도 하며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도 주어졌다. 그녀는 말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황금기라고. “정말 제 생각대로 됐어요. 정말 OT(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졸업 때까지 따뜻했어요. 내 인생의 황금기였어요. 4년 내내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자립센터에 취업하면서 인권운동을 접한 후부터 삶은 더 따뜻해졌다. 장애인노래패 활동도 하고 연극도 한다. 동료상담 활동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인 장애인자립센터에 들어가서 같이 일하던 선배에게 자신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니 소개해준 곳이 노래패 ‘시선’이다. 연극도 하게 됐다. 시선은 그녀 삶의 동반자다. “싸울 때도 있지만 언제든 힘든 거 말하고 같이 갈 수 있는 동지들이 시선 멤버들이에요. 시선은 저한테 운동하면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버팀목, 인생의 동지죠. 뭐랄까, 인생의 동반자랄까. 하하.”

사실 언어장애가 있어 노래를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좋아하면 할 수 있다고 알려준 곳도 시선이다. 연극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한 곳은 장애인미디어아트인데 이 또한 시선을 통해 시작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 활동들을 하면서 장애인인권운동에 대해 알게 됐다.

“인권운동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게 많아요. 비장애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주입이 돼서 저 또한 비장애인처럼 살고 싶었어요.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비장애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요. 장애인은 상담, 연극 이런 거 못한다고 해서 포기했던 것을 하게 됐잖아요. 솔직히 제 일상에서 자존감은 많이 떨어져요. 하지만 무대 위의 김경민만큼은 자신감이 있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뭔가도 생겨서 좋아요. 비장애인하고만 사랑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났고요. 그냥 나답게 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아직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집회)현장도 그냥 좋아요. 이유는 모르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여서 뭔가를 요구하고 바꾼다는 것도 좋았어요.”

그녀는 현재 장애인일반노조를 준비하는 모임에 함께하고 있다. 일하면서 겪은 부당한 경험도 있고, 장애인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누구나 일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건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러고 있고요. 지금 전 문화활동과 상담활동을 같이 하고 있잖아요. ‘나 일하기 싫어, 그런데 돈 벌어야 해’ 이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거기서 삶의 행복을 느껴’라고 말하는 세상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장애인권운동의 세대교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훌륭한 선배들이 운동을 잘 이끌어오고 있지만 매번 발언하는 사람이나 대표가 비슷할 때면 뭔가 정체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세대교체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앞에 나설 기회를 주면 좋겠다. 말 잘하는 사람만 나서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의문도 든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집회에 그녀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운동의 중심에 있는 것도 아니니 조심스럽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녀의 젊음이 주는 질문 같아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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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활력, 연애

 

경민 씨에게 연애는 생활의 활력이라고 했다. 연애 때문에 공부나 일을 안 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게 돼서 오히려 연애는 활력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끊이지 않고 연애를 하는 편이다. 연애하면서 주고받는 상처는 있지만 만날 때의 설렘도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도 좋다.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겪는 연애의 어려움이 있다. “자존감이 낮다 보니까 사람을 잃을까봐 말을 제대로 못해요. 연애관계에서도 그렇고 친구관계에서도 그래요.”

무엇보다 “장애 때문이 아니라 살 때문에 별로다”라는 외모 지적받을 때면 기분은 별로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녀가 만난 연애 상대들은 장애남성들이었는데 그들은 그녀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곤 했다. 그러나 뭐라 대꾸하며 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 함께하는 이에게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지금의 사랑받는 느낌이 좋아서 더 꾸밀 때도 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엄마에게 처음으로 연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연애든 결혼이든 장애여성인 그녀가 상처를 받을 게 분명하다며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한다.

“부모님은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해요. 장애인을 만나면 육체적으로 힘들 거고, 비장애인을 만나면 맞고 살지 않겠냐는 거예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냥 제가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요. 사실 누구를 만나든 저의 상처 때문에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많아요. 예전에는 실패 안 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실패하더라도 결혼이란 경험도 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신중해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출산을 하는 것을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연애 이야기를 할 때 반짝이던 눈망울 때문에 더 그녀의 연애가 어떤 모양이 될지 궁금해졌다. 힘주어 말하던 장애인노조도 잘 됐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그칠 때쯤 걷힌 눈과 바람처럼 그녀의 황금기에 찾아온 연애와 노동에 따뜻한 햇살이 깃들기를….

 

 

 

감옥보다 어두웠던 청소년기 생활

불쌍하게 보이려고 너 그렇게 걷지

내 소문 들은 새학년 새학기 내 짝꿍

똥씹어 먹은 울상된 얼굴을 했었지

나도 니짝 되기 싫어 말하고 싶었지

 

고등학교 때 입시준비 열심히 했지

의문이 많아 수업시간에 질문했지

질문 속도와 내용이 방해된다 하네

질문 좀 그만하라 짜증 섞인 눈치들

포기할수 없는 목표 돈스탑 퀘스쳔

 

평생친구 만나기 전 혼밥하는 생활

다른 반 내 친구와 있다 돌아온 교실

칠판에 써 있던 김건모의 신곡 가사

이니셜이 같은 마이 다이어리 내용

알고 있었지만 힘 없이 위축되었어

 

이젠 내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가지

단점 많은 날 사랑해주는 내 사람들

오솔길을 걸으며 행복한 날 보내네

감옥에 날 가둔 이들에게 보이고파

예전에 나는 없고 당당히 사는 모습

 

지금 날 사랑하고 찾아주는 사람들

그때와 다르니 잊어버려라

지금 난 너무 행복해서 잊고 싶지만

잊어버리면 다시 찾아올까

 

내 어두운 감옥을 안고 살아간다네

 

- 버리고 싶은 감옥의 기억 / 김경민 자작곡

작성자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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