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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빈곤입니다’라는 신호등은 없다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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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17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거행된 '1017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 현장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시드니 국제영화제 대상 수상, 정말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둔 영화 ‘기생충’을 먼저 봤던 지인들이 전한 말에는 공교롭게도 똑같은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소줏집을 먼저 찾았다는 것이다. 왜일까?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도 영화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실제 현실을 발견했다는 거, 상황은 전혀 다른데도 그 안에서 ‘내 삶의 위치’를 확인하게 됐다는 건 심각한 실존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난은 무조건 남들의 얘기일까? 얼마든지 회피가 가능한 취사선택의 대상일까? ‘그렇다!’고 강변한다 해도, 가슴 한쪽에 남겨지는 짙은 먹구름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가난과 빈곤이 저 먼 곳의 다른 세상 얘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움츠리고 있음을 확인하며 이번 만남을 진행했다. 빈곤사회연대의 문을 연다.

 

드러나지 않던 새로운 빈곤을 직시한다

빈곤사회연대 출범의 결정적 계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하나가 등장한다. 故 최옥란 열사의 투쟁과 죽음을 기점으로, 빈곤의 문제를 직시하려는 사회적 운동이 발화됐다는 것이다. 故 최옥란 열사에게는 ‘장애해방열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지만,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이 땅의 서민 모두가 제3자로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빈곤이라는 거대한 함정이다. 누구든지 자신만은 열외라고 생각하지만, 예외가 있을 수 없는 현실의 늪이자 낭떠러지가 분명하다. 이건 지갑 안에 지폐 몇 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지진처럼, 언제든지 몰아닥칠 쓰나미로 항상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는 올가미인 것이다.

“작년에 기초생활수급 대상 중에서 전국 서른 가구의 가계부 조사를 진행했어요. 각 지역의 활동가들이 두 달에 걸쳐 매주 방문하면서, 가구별 한 달의 지출과 수입을 총 정리한 거죠. 1인 가구 생계비가 50만원인데, 주변에선 ‘야, 나라가 이렇게 돈을 많이 줘?’라고들 하지만, 정말 다른 수입 하나도 없이 5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진짜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게다가 기초연금을 받거나 다른 수입이 생기면 그만큼 수급액에서 깎이죠. 그렇다 보니까 발생하는 부작용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안 만난다는 거예요. 대인관계라는 게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 밥 한 끼라도 먹으면, 어찌됐든 돈 만원이라도 지출해야 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대인관계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는 거죠. ‘고독사(死)가 왜 문제냐’는 의견도 많은데, 고독사는 필연적인 현상이 된 사회로 이미 진입해 있는 겁니다.”

2010년부터 함께했고 2013년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빈곤사회연대의 중심으로 활동하는 김윤영 사무국장은 영화 ‘기생충’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영화 속의 반지하집 가정처럼, 다른 건 다 그럭저럭 괜찮은데 돈만 없는 상황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총체적인 박탈이 진행된 결과가 빈곤이지, 금전상의 결핍 이외엔 유지가 가능한 빈곤이라는 건 성립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도시빈곤문제에 주목하고 있어요. 노점상들은 거리정비의 명분으로 구청에 의해 철거당하고, 철거민들은 조합에 의해 철거를 당하죠. 임차상인들은 건물주한테 쫓겨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축출하는 데 집중되고 있어요. 저희가 연대체 형식으로 활동하잖아요. 노점상단체, 철거민단체, 장애인단체, 홈리스운동, 사회복지 활동가들과 노동자들 모두를 아우르게 되는데, 그들 모두가 도시에서 쫓겨나는,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거예요.”

빈곤이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떠올릴 만한 몇몇 밑그림에 머무르기 쉽다. 달동네 지역이나 거리의 노숙인들의 모습 같은 정형화된 대상에 한정짓는 것이다. 그런데 김 사무국장은 ‘새로운 빈곤’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우리의 관심 밖에 머물러, 아무에게도 하소연을 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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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사회연대가 중심이 된 투쟁대회 현장의 한 플래카드에 새겨진 그림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죠.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인 예가 돼요. 막상 일이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지만, 그 이상의 논의나 진전 없이 잊히고 마는 죽음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제가 항상 무겁게 생각하는 건, 이 사람들이 살았을 때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그 죽음만 이 사회에 남기고 떠나간다는 점이에요. 죽음으로 마지막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서야, 이 사회는 잠시 들여다보는 척한다는 거죠. 빈곤사회연대의 활동은 이렇게 존재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한 서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절박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난마저도 경쟁시켜야 하는가?

2004년 3월 30일, 당시 대한민국 부(富)의 상징으로 지목된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가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양재천 옆 공터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라는 단체가 결성되고 이 사회에 공식 등장하는 자리였다. 2008년 4월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정한 게 바로 빈곤사회연대다. 故 최옥란 열사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기점으로 구성된 2001년 12월 ‘기초법 연석회의’가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의 모태가 되니까, 빈곤사회연대의 역사는 어느덧 20년을 눈앞에 둔 긴 발자취를 뚜렷하게 남기며 ‘새로운 빈곤’ 문제해결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는 건, 죽음 이전의 목소리들을 듣고자 하는 국가와 사회가 없었다는 반증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가장 집중하며 전개했던 활동은 ‘그 목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이 목소리를 내자’였어요. ‘죽지 말자, 죽는 것으로 마지막 모습만 보여주지 말고, 우리가 먼저 연대해서 그 목소리를 내자.’ 그래야만 같이 싸울 수가 있잖아요. 꽉 닫힌 문 속에서 각자가 홀로 죽어가는 게 아니라, 나와서 같이 목소리를 내고 서로 힘을 합쳐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직접 확인하자는 거죠. ‘도대체 언제까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외칠 거냐?’라는 일부의 얘기들도 들리는데, 그건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아직 폐지 안 됐습니다. 폐지가 안 됐으니까 더 강력하게 외치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거제 이씨 할머니 음독자살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극소수만 남았을 듯하다. 부양능력이 없던 사위가 취직했다는 이유로, 78세의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했다. 혼자 살며 밀린 월세를 견디다 못한 할머니는 ‘사람이 법을 만드는데 이럴 수 있는가. 법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유서와 함께, 마시다 만 제초제 두 병을 남기고 거제시청 앞에서 음독자살했다. 2012년 8월의 일이다. 그 시점은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를 내걸고 1,842일 동안 진행됐던 광화문역 농성의 시작점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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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0월 17일은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거행된 2015년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 현장 모습

“당시 농성에 들어갈 때, 정말 그런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죽어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싸우는 곳이 있고 싸우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면, 어떻게든 잘못된 제도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릴 수 있잖아요. ‘당신 탓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잘못된 거니까 함께 바꿀 수 있다. 함께 싸우자!’를 끊임없이 외치는 게 가능해진 거죠. 그 과정 중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건, 저희 사무실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났다는 점이에요. 상담전문 전화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상담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전화를 주시는 수급자 분들이 꽤 되시거든요.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떡하나, 부양의무자기준 언제 폐지되나, 기초연금수급자한테는 안 주는 거 언제 개선되나’ 등, 혼자서만 고민하며 누구한테도 물어볼 데가 없던 분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거예요. 저는 이런 하나하나의 변화들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2011년 유엔이 발간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빈민이 사회복지에 접근하는 자격 조건과 조사의 강화를 ‘빈곤의 형벌화’ 조치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혼자의 힘으로 준비하기 어려운 서류가 너무 많다. 더군다나 까다로운 수급자격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은 ‘탈빈곤 없는 탈수급의 굴레’를 맴돌게 만든다. 해당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힘겹다. ‘기준중위소득’, ‘소득인정액’, ‘소득판정액’ 등 일반 시민들도 알기 어려운 법과 제도의 용어들로 가득하다는 건, 수급권자와 보장기관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재생산하며 수급권자들의 권리찾기를 가로막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대통령도 약속했고 복지부 장관도 약속했어요. 이미 결정했잖아요. 그런데도 안 하고 있어요. 그것마저도 중증장애인만 폐지하겠다고 뒤늦게 밝혔어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목표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대국민 약속이에요. 그렇다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쪽방의 어르신들한테는 필요 없나요? 보호아동들과 한부모가족과 각종 피해당사자들은 해당이 안 되나요? 중증장애인들을 빼고 자신들이 선정되기 위해, 고독사 직전의 어르신들이 모여 집회라도 열어야 하는 건가요? 왜 가난한 사람들한테 빈곤마저도 경쟁을 시키는 거죠? 반인륜적인 ‘부모와의 관계단절사유서’ 작성을 언제까지 요구받아야 하는지 엄중하게 묻고 싶습니다.”

 

힘들어질수록 스스로를 응원해야 한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폐지되지 않는 부양의무자기준이 어떤 사람들한테 어떤 좌절을 안겨주는지를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상담했던 분들 중에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참으면서 살고 있는 여성 장애인이 계세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면 이혼하겠대요. 본인은 생계능력이 없으니까, 정말 엄청 심하게 매를 맞으며 지내는데도 마냥 기다리고 있다는 거죠. 연락도 끊긴 부모님이 어딘가 살아 계시다는 이유 때문에 기약 없이 수급신청을 포기하고 계신 분들도 적지 않고, 작년에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친구가 자살했다고 연락 주셨던 분도 계셨어요. 정말 엄청나게 원망을 털어놓으셨거든요. ‘대통령이 한다고 했으면서 왜 안 하느냐고,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공약대로 했으면 친구가 죽지 않아도 됐던 게 아니냐고.’ 이런 탄식과 원망을 언제까지 국가는 외면할 건가요?”

빈곤은 오랜 기간 가난으로 힘들어했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새로운 빈곤의 영역에는 번듯한 직장과 여유로운 삶을 누리던 이들도 다수 등장한다. 식당 창업 후 1년 생존율 59.5%, 5년까지 살아남을 확률 17.9%라는 조사통계, 그건 매년 18만 명이 사업자 등록증을 새로 발급받고 19만 명이 폐업하는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 고액의 연봉을 받다가 퇴직금과 대출금으로 프랜차이즈 창업에 나섰던 이들이 빈털터리 정도가 아닌 빚더미에 올라앉는 것도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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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철폐의 날 집회 현장에 전시된 상자들 앞에 '가진 자들'과 '빈곤한 자들'의 실제 현실이 부착돼 있는 모습

“금전상의 몰락은 급격하게 일어나요. 최초에 얼마로 시작해서 지금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조차 인지를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죠. 계속 독촉전화가 오고 불안과 절망에 휩싸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그냥 포기해 버리는 상태로 진행이 돼요. 채무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탈적 금융에 의한 고리의 대출을 일단 퍼줬다가, 한 사람과 한 가정을 거의 박살내는 방식으로 회수해 가는 피해사례 또한 일반화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빈곤을 가난한 자들만의 영역이자 업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정말 순식간에 발생합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예외가 없는 늪으로 빠져버리니까요.”

빈곤은 ‘여기서부터 빈곤입니다’라는 신호등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자신에 대한 편견에 시달리기도 한다. 빈곤층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낙인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게으르다, 실패했다, 안 움직인다, 노력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쓰지 않는다’ 같은 편견과 자괴감에 갇혀, 자신의 상황을 자포자기로 내몰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힘겨울수록 스스로를 응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주 작은 실패부터 큰 실패까지 여러 번의 시도와 좌절이 엮여서 최종적으로 가난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해하고 타인의 상황 또한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가난에서 탈출한다고 해서, 실제로 탈출이 쉽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난이라는 아주 단편적인 현상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이것을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현재의 세계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주인공이 돼서 자신의 권리를 발언해야 돼요. 해결책을 찾기 위해선, 그래서 우리 사회의 닫힌 문을 더 넓게 열기 위해선 연대의 힘이 필요하거든요. 빈곤사회연대가 여러분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저희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저희들과 손을 맞잡아 주세요.”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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