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의 정체성은 수어로 완성됩니다 > 함께 사는 세상


농인의 정체성은 수어로 완성됩니다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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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기능의 장애유형 중에서, 가장 바깥지점에 존재하는 건 청각장애다. 외견상으로는 장애유무를 단번에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청인으로 살아온 부모의 갈등은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자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수어와 구화의 선택이라는 갈림길 앞에 추가되는 건 인공와우라는 대안이고, 믿고 의지해야 할 전문 의료진의 결정은 언제나 정해진 매뉴얼(진행방식) 그대로일 뿐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이후의 사회 모든 게 태산 같은 장벽들이기에, 모든 선택은 부모의 힘겨운 결정 하나하나에 따르게 된다. 문제는 부모 아닌 자녀가 장애당사자라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선택이 없었던 수많은 결정에 대해, 자녀의 삶은 자신이 책임질 무게감을 가질 수 있을까? 정답은 가장 단순한 확신 안에 있다는 것, 그 확신을 실제 생활교육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 찾아가 봤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을 했다.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문을 연다.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는 사회

주소를 펼쳐놓고 지도를 살펴보니, 서울의 북쪽 끝 지점이다. 환승해야 할 대중교통도 조금은 복잡하다. 실제 길거리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터넷 지도로 따라가 보니, 좁은 골목골목을 한참 지나 밭으로 둘러싸인 산자락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건 간편한 차량 운전이 아닌, 그 길을 따라 걸어야만 ‘그 곳’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겠다는 자문자답이 됐다. 결국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 걸로 시작했다.

목적지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를 경상북도나 전라남도의 ‘OO군 OO면 OO리’ 두메산골이라 말해도 그대로 믿어야 할 환경이다. 서울 안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을 때, 한 남자아이가 활짝 웃으며 수어로 인사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이방인의 등장인데도 저렇게 밝은 웃음이 가능할까? 뒤따라서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에 있던 모두의 얼굴이 ‘빙그레’ 그 자체로 시야에 모여들었다. 서너 살 쯤 된 여자아이가 다가오더니, 뭐라고 수어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이에요.”라며 말을 옮겨주는 이가, 맞은편에 서 있던 김주희 대표교사였다. 준비된 상황이 아니라, 평소의 모습 그대로임을 알게 되는 건 채 십여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자체가 그들의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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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보사 바로 옆 좁은 텃밭에 학생들이 직접 가꾸는 무, 배추,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이 번갈아가며 재배되고 있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아래 소보사)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어로만 모든 소통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대안학교다. 청각장애를 가진 청소년들과 야학 같은 공부방 형태로 2006년부터 함께 교류를 해왔고, 대안학교의 문은 2017년에 열었다.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특수학교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라 했다.

“반지하 주택부터 패스트푸드점까지 전전하며, 수어 하나로 함께 공부를 했어요. 초기에는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몇 차례 진행을 하긴 했는데, 그 이후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게 됐죠. 방송이든 지면이든 어디든 간에,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한 사람으로만 묘사되는 거예요. 우리는 자연스럽고 즐겁고 마음 편하게 공부하며 지내는데, 언론은 도움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의 그림만 원하며 찾더라고요. 밝은 미소로 경쾌하게 수어하는 모습 자체로도 충분한데, 굳이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대고 농인 특유의 ‘어, 어’ 하는 소리만 크게 부각시키는 식이었죠. 애들이 원치도 않는데 한 줄로 세워서, ‘우리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같은 수어를 하도록 연출하며 만드는 게 언론의 시선이었어요.”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화에서, 김 대표교사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분명한 신념을 꾸밈없이 펼쳐놓았다. 농인과 청인이 함께 사는 방법을 청인의 도움으로만 재단하려는 사회의 인식, 그건 사회통합이 아니라 농인에 대한 낙인찍기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통합은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언어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통합교육은 ‘이쪽이 정상’이라는 기준을 전제로 놓다 보니, ‘저쪽은 비정상’이 돼버리는 역차별의 악순환이라는 지적이 따끔하게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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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출입문 앞쪽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어느 아이의 젖은 신발 모습.

“얼마 전까지는 닫고 있었지만, 이젠 언론을 향한 문도 조금은 열어두려고 해요. 농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희 소보사를 거의 다 알아요. 농사회 자체가 넓지 않고 얼마간 좁다 보니까, 일정부분 서로서로 다 알고 지내거든요. 저희가 소보사를 다시 드러내고 싶다는 건, 농사회 근처에도 안 가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자녀한테 수어를 보지도 못하게 하고,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부모님들이 많으시죠. 어떻게든 비장애인처럼 키우겠다는 유혹을 먼저 받아들이면서, 인공와우 수술과 구화교육에 집중하시게 돼요. 그 유혹의 상당부분은 전문의들의 권유입니다. ‘이렇게 수술하고 이렇게 교육하면 비장애인처럼 살 수 있다’는 걸 확신처럼 강조하죠. 소보사는 농인 그 자체의 정체성에 집중합니다. 그게 농인의 진짜 삶이고, 농인 스스로의 인생을 살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거예요. 저는 이제부터 그 말씀을 드릴 겁니다.”

 

듣지 못하는 건 농인이 아니라 세상이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수어를 참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늘 받는다. 실제로 제3의 대화 자리를 통해서도 그의 이름을 들어봤던 바 있다. 그런데 그는 청인이다. 그렇다면 장애당사자도 아니면서 지금의 길을 왜 걷게 됐는지, 더욱이 활동지원이나 복지사 같은 활동이 아닌 ‘청인’으로서 수어에 그토록 방점을 찍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 특별활동반에서, 일주일에 딱 50분씩 배웠던 게 ‘수화’와의 첫 만남이었다고 한다. 아주 기초적인 대화만 가능했던 당시, 그에게는 예정에도 없던 연이은 만남이 이뤄졌단다. 또래의 연령대인 농인들과 마주해야 할 일들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평택의 에바다학교, 또 하나는 서울 강북의 OO학교 아이들과 각각 만나게 됐어요. 강북의 OO학교 애들은 대부분 부유한 집안이었고, 당시에 문자가 뜨는 호출기를 전부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었죠. 반면에 에바다학교 애들은 직접 평택에 가서 보니까, 교실이 아닌 텐트바닥에서 지내며 농성을 하고 있었어요. 아주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게 바로 에바다사태 시기였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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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보사를 방문한 모든 느낌을 아주 짧게 묘사한다면 '일상의 자연스러움'이다. 공부 사이의 휴식시간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의 모습. 옆에 선 이가 김주희 대표교사다.

같은 나이의 또래들이었는데, 상황과 환경은 극과 극이었단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계속됐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OO학교 애들은 고등학생 김주희를 만날 때마다, 조바심마저 대신 느껴질 만큼 반복해서 질문을 던졌단다. ‘너 내 말 들려?’ ‘너 내 목소리 들려?’ ‘내가 말하는 거 알아듣겠어?’ ‘나도 너처럼 말을 잘하면 좋겠다’는 재확인만 반복됐다는 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구화교육에 내몰린 아이들의 실제 상황이었음을 반증한다.

“그런데 에바다학교 애들은 자신들이 매를 맞은 자국을 먼저 보여줬어요. ‘이건 경찰한테 맞았고 이건 선생한테 맞았다’면서, 학교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천막생활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를 정말 놀라게 만든 건 OO학교 애들의 불안감과 초조함 가득한 모습과는 전혀 달리, 에바다학교 애들은 다들 너무나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는 거예요. 게다가 OO학교 애들의 부모는 거의 다 청인이었는데, 에바다학교 애들의 부모는 농인들이 대다수라 했어요. 아이들은 항상 당당하게 말했어요. ‘내가 말(음성언어)을 못해서가 아니라, 저 사람들(학교, 경찰)이문제야. 학교 선생들이 수화를 못하는 게 문제야.’라고요. 똑같은 청각장애인데, 너무 다른 얘기와 상황인 거잖아요. ‘이게 도대체 뭐지?’ 정답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에바다학생들의 그 당당함에 있었어요. 문제의 원인을 불평등한 세상에서 찾아낼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들리지 않음’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거죠.”

당시 그에게 충격으로 방점을 찍은 건, 에바다학생들이 내놓은 발언이었다고 한다. ‘그런 거(소리) 들어서 뭐해?’ 사용가능하게 지급되던 보청기마저 거부하던 그들의 모습 앞에, 일부러 이어폰을 끼며 청인인 척 보이려 애쓰던 OO학교 학생들의 일상들이 겹쳐졌단다. 고등학생 김주희한테는 너무나 상반된 세상, 바로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다르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이 절대적인 화두로 가슴에 심어졌다고 한다. 오랜 고민과 탐색의 결과로 얻게 된 결론은 ‘정체성(正體性)의 차이’였단다.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독립된 존재임을 인식함’을 의미한다. 즉 ‘받아들이느냐’와 ‘거부하느냐’의 차이가, 바로 농인으로서의 삶을 180도 다르게 지배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살아가는 그 수많은 다문화 사람들을 떠올리시면 답은 간단해요. 말이 안 통하잖아요. 삶의 방식과 문화도 전부 다 다르죠. 다른 국적의 다문화를 바라보는 그 관점을 같은 국민으로 돌려서 보면, 농인들은 같은 한국인인데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이에요. 인정하면 그걸로 끝인 거예요. 장애와 비장애, 이런 구분을 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와 다른 언어(수어)와 농문화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 받아들이면 돼요.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차별의 낙인부터 붙이려 하죠?”

 

수어,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

대화가 진행되던 어느 시점이 되자, 짧은 낮잠시간에서 깨어난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서성이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평소에 보지 못했던 ‘시커멓고 커다란’ 카메라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대신 손에 들고 ‘여기(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여기(셔터)를 눌러보라’ 했더니, 아이들은 ‘알아서’ 줄을 선다. 자기들도 해보고 싶다는 눈빛이 대답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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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보사 안의 또 다른 공간인 '반짝반짝 어린이집', 문에 제작된 간판은 아이들의 솜씨로 제작됐다.

살아있는 교육은 아주 먼 곳에, 또는 교육지침서 같은 두터운 서적 속 딱딱한 문장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생생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경험한다는 것, 추억과 기억으로 잉태되는 자아와 인성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에서 출발해야 하는 법이다. 이런 교육을 찾는 부모들한테 복잡하기만 한 서류절차부터 먼저 제시하는 게 행정당국이다. 의사들은 ‘A를 하면 B가 된다’는 진단을 확답인 양 내린다. 장애아한테 꼭 필요한 개별치료와 교육은, 부모들의 직장에선 통하지 않는 ‘시말서 사유’만 된다. 통합교육의 현실 앞에선 추가로 언급할 필요성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소보사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묻기도 전에 답이 들리는 듯한 실감은 뜻밖의 경험이 분명했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정체성이에요. 내가 누군지 안다는 거, 어떤 상황인지를 받아들이고 ‘그게 나’라는 걸 인식한다는 거,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거예요. 그 정체성 안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내면 되는 거죠. 농인이 살기 힘든 건 농인들이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지 못한 사회가 문제인 거지, 농인 한 명 한 명과 그 가족 구성원 모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김 대표교사는 평소엔 듣기 힘든 독특한 체험을 언급했다. 정말로 수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을 때, 그가 매일 찾아다니며 만나 수어로 대화를 나눴던 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는 것이다. 붕어빵 장사를 하시던 분, 일용직 하면서 매일 저녁마다 술자리에 계시던 분들 같은, 일상에선 쉽게 접하지 못하던 농인 어르신들을 오랜 시간 일일이 찾아다녔다는 고백이었다.

“오래 전 만나 뵈었던 어떤 할아버지가 지금도 특별하게 기억이 나요. 한글을 하나도 모르는 분이셨거든요. 자기 이름도 못 쓰셨어요. 당연히 신문도 못 보시잖아요. 농인이니까 라디오를 듣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고요. 그런데 세상의 정치 돌아가는 얘기를 너무나 생생하게 저한테 (수어로)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당시 대통령 욕까지 실감나게 하시면서요. 당연히 질문드릴 수밖에 없잖아요. ‘할아버지, 어떻게 그걸 다 아세요? 할아버지는 신문도 못 보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 말씀이, 농인들끼리 만나면 두루두루 다 얘기를 나눈다는 거예요. 바로 그게 정답이었어요. 수어로 가능한 그 문화를 존중하면, 농인들 모두가 얼마든지 자기 정체성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기성의 사회, 그러니까 ‘정상’이라고 하는 ‘비장애’의 사회에 기준점을 맞출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이미 농인들은 농인들의 정체성만으로도, 얼마든지 이 세상 안에서 개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건, 기억할 수 있는 체험의 기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구화교육에 몰두했던 이들 중 적지 않은 당사자들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 해야 할 문장을 미리 외워서 발언했다’는 고백을 한다. 인공와우시술이 절대적인 선택 같지만, 인공와우를 통해 들리는 건 ‘아들아, 딸아, 엄마 아빠 목소리 잘 들려?’ 같은 구체적인 언어가 아니다. 처음 접하게 된 ‘웅, 웅’ 울리는 소리 자체일 뿐이다. 그건 언어가 아니다. 갑자기 들리게 된 소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소리를 음성과 주변음으로 구별하려는 노력이 언제까지 지속돼야, 자녀들한테 ‘비장애’ 같은 인생을 보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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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 출입문 옆 칠판에 새겨진 문장들은 '소보사의 정체성'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자신만의 언어가 없다는 건 생각하는 힘이 사라지는 거예요. 한글과 수어는 대한민국에서 인정한 두 가지의 공식 언어잖아요. 그런데 수어는 한글과는 체계가 완전히 달라요. 수어는 수어 그 자체로 배워야 한다는 거죠. 구화가 안 좋다는 게 아니에요. 잘하는 능력만 갖추면 충분히 사회생활이 가능하니까요. 그런데 농인의 정체성까지 ‘비장애’인 양 묻어갈 수 있을까요? 특수학교에서는 언어치료 같은 치료만 강조하죠. 치료의 끝은 무엇일까요?‘비장애’일까요? 무엇을 하든 농인은 농인의 정체성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농인은 농인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 해답은 수어에 있습니다. 농인만의 언어를 확실하게 사용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다른 언어를 받아들이며 농인의 삶도 이 사회 속에 녹아들게 만들 거예요. 저의 확신은 수어가 농인들의 정체성이라는 겁니다.”

 

작성자채지민 대담전문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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