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고 당장 실천하세요. 모두의 생존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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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교에서 결석시위에 나가기만 해도 징계하겠다고 압박한다는데 이는 부당하다.’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신을 펼치는 행위도 체험이나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학습권이 보장되도록 시도교육청과 적극적으로 조처하겠다.’ 지난 10월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나온 문답이다. 여당 의원의 질의에, 현직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학생들의 기후위기 결석시위 참여를 보장하겠다며 지지의사를 밝힌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이 서울특별시교육청에 제출한 ‘멸종위기종 청소년들의 요구’에 대한 답으로, 서울특별시와 시교육청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교육감 명의로 ‘생태문명 전환도시 서울’을 9월 26일 공동 선언했다. 국회의 국정감사에선 보기 힘든 내용의 질의와 답변, 서울시장과 시교육감까지 움직이게 한 나비효과는 누구로부터 시작됐던 걸까? 독자 여러분도 곧 그들과 동참하고 응원하리라 기대한다. 청소년기후행동을 소개한다.
불이 났다. 지구라는 우리 모두의 집에
세상에는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눠지는 기준점들이 있다. 그건 특정 인물의 등장일 때가 있고, 대형 사건이나 사고일 때도 많으며, 체제의 전환 같은 정치적 변화일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가까운 기억만 떠올린다 해도 세월호 이전과 이후, 촛불혁명 이전과 이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과 이후, 북미정상회담 이전과 이후처럼 정치경제 사회문화 모든 면에 해당된다. 그런데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는 2018년 8월 20일 스웨덴 국회 앞 인도에 홀로 섰던 15세의 한 스웨덴 소녀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기준점을 만들어놓았다. 기후위기라는 막연했던 개념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로 급부상시킨 것이다.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등교를 거부하고,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우리 양심의 무심함을 나무라면서, 당장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어요.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작은 희망조차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말뿐인 선언만 반복하는 세상 전체를 꾸짖은 거죠. 남의 집에 불이 나듯 방관만 하는 모두에게, 당장 우리 집에 불이 났다는 다급한 상황을 전 세계 청소년들과 시민들한테 생생하게 알린 거예요.”
세상의 반응은 엄청났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고 태양광 요트에 올라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던 올해 열여섯 살의 이 환경운동가는 테드 스톡홀름의 강연장에서,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도 연설자로 참석해서, 과학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기후위기의 심각한 수준을 각국 정상들 앞에 폭로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SNS를 통해 수백만 명의 감성을 일깨웠고, 2019년 3월 15일 (말 그대로) 지구 차원의 첫 번째 기후파업(결석시위, School Strike)이 약 160만 명의 청소년들을 학교가 아닌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던 그레타 툰베리는 ‘그레타 이전과 이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전 세계 청소년들의 가슴과 발등에 불을 질렀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될 순 없는 일이다. 거리에서 삼삼오오 외침을 시작한 이들, 올해만 세 차례(3월, 5월, 9월) 결석시위를 진행하면서, 기성세대의 통렬한 반성과 즉각행동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바로 청소년기후행동이다.
“작년 여름에 ‘기후소송’이라는 걸 청소년의 이름으로 해보자는 의견을 주고받을 때,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던 어른들이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까 모여서 의견을 나눠보라 했어요. 이후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했던 친구들이 만나서 계속 고민하다가, 공식적으로 행동을 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으면서 청소년기후행동이 결성됐죠. 서서히 체화되고 서서히 단단해진 과정이었기 때문에, 멘토나 롤모델이라는 게 국내외에도 아직 없는 상태예요. 전 세계 청소년들의 행동이 시작된 게 일 년 남짓이라서, 각국의 활동사례 중에 좋은 모델들을 찾아 우리의 것으로 습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운영총괄을 맡고 있는 김보림 활동가는 이십 대 후반의 성인이다.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상근할 순 없기에, 기후위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진 청소년들과 뜻을 같이하며 올해 초에 합류했단다. 세대 간에 생각과 언어차이가 극명하게 갈라지기에, 그는 일부러 검색까지 해가며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공유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런데 고교 1학년생인 청소년 동료한테 이런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너 답지 않다’고, ‘보림은 보림다운 언어를 쓰라’고, ‘굳이 쓸 필요 없는 단어와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의 내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드러내는 의미 깊은 증거가 된다.
“무엇을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지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서로 고민했어요. 우리가 바라는 사회와 지켜야 할 대상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다 보니, 이젠 청소년 동료들이 저 개인의 친구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청소년이라고 해서 꼭 초중고 재학생만 해당되는 건 아니에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 졸업을 해서 대학생이 된 친구들도 꾸준히 참가를 하죠. 다만 참정권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발언에서 배제되는 우리의 목소리를 상징하기 위해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는 거지, 내부적으로는 청소년의 범위를 한 번도 규정지은 적이 없습니다. 당면한 기후위기 앞에서 남녀노소가 따로 있을 순 없으니까요.”
행동의 주체는 ‘너’가 아닌 바로 ‘나’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냉해, 가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갈수록 심각해지며, 현실의 인간세상을 향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대규모의 물 부족과 식량 부족, 거주지 부족 사태는 머나먼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인구가 20억 명이 넘는다.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들인 2억6천만 명은 식수로 쓸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몇 시간을 왕복으로 걸어 다녀야 한다. 생활의 터전을 가꾸면서 일하고 공부하며 누려야 할 일상의 상당 부분을 식수를 구하는 데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맛있게 요리하고 깨끗하게 세탁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위생은 떠올릴 필요도 없는 대상이 된다.
▲ 지난 9월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거행된 '결석시위'에 참가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과 청소년들이 8박자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 인식은 ‘몰디브가 가라앉는다더라’, ‘어딘지도 모를 투발루라는 나라가 바다에 잠겨 위험하다더라’, ‘빙하가 많이 녹아서 북극곰 서식지가 사라진다더라’ 하는 막연함에 머물러 있어요. 지구촌의 빈곤과 기아 문제처럼, ‘내 일이 아닌 것’ 중의 하나 정도로 치부
하는 거죠. 청소년들이 내는 외침과 행동을 보면서도, 대부분은 그저 ‘기특하다’는 시선에 멈춰져 있어요. 공부나 해야 할 약자로만 여긴다는 거죠. ‘그런 얘기는 대학 가서 하면 돼’, ‘나중에 전문가가 될 거면 그때 얘기해’ 같은 반응이 먼저 나오고, ‘청소년들도 외치더라’ 하며 자신들의 활동에 끼워 넣는 홍보용 사진을 찍는 데서 끝나요. 저희는 기성세대한테 절대 소비되지 말자고, 내부적으로는 아주 강하게 선을 긋고 있어요. 저희가 원하는 건 홍보성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 찍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대신 동료가 돼 달라는 거, 행동으로 동참하는 실천을 보여 달라는 거예요.”
기후위기의 절박함을 느끼는 청소년들은 집회현장에 참가하는 인원만 있는 게 아니다. 전국 각 지역에서 동참의사를 밝히는 청소년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임을 깨달았다면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집회신고를 해야 하는지를 문의하는 연락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직접 움직이려는 청소년들이 전국의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는 것, 이 대목은 잠든 기성사회의 통렬한 각성을 촉구하게 만든다.
“퀴어축제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서울에서는 이미 공개적인 행사로 자리를 잡았잖아요. 성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재미있게 즐기는 한마당으로 매년 축제가 진행되죠. 그런데 지역의 주요 도시들은 소규모로 이제 시작하거나, 아직도 기획단계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에요. 지역 간의 격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래서 지역에 있는 친구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거죠. 당장 생존의 문제인 기후위기에 대해서, 지역이라는 이유로 나중에야 접하고 뒤늦게 얘기할 자리를 갖게 된다는 건 너무나 불합리하잖아요. 그래서 혼자라도, 둘이든 셋이든 만나서도 직접 행동하라고 알려주고 있어요. 참여인원의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전국의 모든 ‘나’ 하나하나가 기후행동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훨씬 시급하거든요. 첫 시작에만 용기가 필요하지, 일단 행동에 돌입하면 스스로 활동가가 됐다는 자긍심을 강하게 느끼게 될 거예요.”
▲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한지를 이용해서 만든 불꽃의 모습. 청소년다운 색다른 기획으로, '발등의 불'이라는 의미를 실감나게 일반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
대기권 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의 연소로부터 발생한다. 당연히 이어지는 건 지구온난화다. 산업혁명 이후로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집중적으로 가득 채워놓은 건 19세기 이후의 선진국들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강제로 제한하는 조치에 강력 반발하는 집단 또한 거대 대기업들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석탄발전소의 폐해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 낙후된 지역의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돌아간다. 그렇다고 특별히 보호받을 예외가 따로 존재할 수 있을까? 없다.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지구는 하나뿐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대기업과 정부, 그들의 정책을 애써 옹호하는 수구언론들을 강력히 규탄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미래를 살아갈 주인공은 바로 우리의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 이제는 멈출 수 없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착한 두 명의 청소년 활동가와 마주앉았다. 고교 2학년인 오연재 동료와 김서경 동료인데, 청소년기후행동의 발자취를 담은 수많은 사진 기록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얼굴들이기도 하다. 가장 열심히 행동하는 이들이라는 뜻이 된다.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소극적으로만 살았었는데,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며 같이 가자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어요. 당연히 모두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깊게 고민하는 마음들이 있다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현실적인 기후정보들을 계속 알게 되면서, 제가 고민하던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자 당장 눈앞에 직면한 시급한 과제가 기후변화라는 걸 깨닫게 됐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저 개인의 고민들도 해결이 가능하겠다는 거, 그 사실을 반 년 가까이 함께하면서 절감하게 된 것 같아요. (김서경 동료)”
“저는 성미산마을이라는 마을공동체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거든요. 학교에서 에너지 문제와 쓰레기 문제에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공부를 했어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들을 현장 방문해서, 지역주민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송전탑 문제로 고통 받던 밀양지역은 매년 가을마다 방문해서 간단한 일손 도와드리고 농성장을 같이 지키는 연대를 계속 했거든요. 현재의 환경파괴만 있는 게 아니라 현지주민들의 인권침해에도 문제가 크다는 걸 깨달으면서, 더 큰 상위개념인 기후위기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오연재 동료)”
이런 청(소)년들의 지속적인 움직임에 이 사회가 마냥 눈 감고 있을 순 없는 일이다. 분명한 나비효과가 나타난다. 사사로울 듯 보였던 청소년들의 날갯짓(행동)이, 어딘가에는 폭풍으로 전해졌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 전 세계 차원의 기후주간이라는 게 선포됐어요. 우리나라에선 지난 7월부터 모임을 갖고 ‘기후위기비상행동’이라는 연대체가 만들어졌죠. 환경단체뿐 아니라 노동, 종교, 인권, 장애, 농민, 여성 등등의 영역들이 다 모여서, 몇 해 전 탄핵운동 같은 틀로 결성이 된 거예요. 삼백 군데가 넘는 단체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들의 선언문에 ‘청소년들로부터 촉발되었다’는 문구를 직접 밝히신 거예요. 청소년뿐 아닌 시민 모두, 국민 모두의 행동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걸 재확인하게 된 것이죠. (김보림 활동가)”
▲ 활동가들이 직접 제작한 결석시위의 포스터 |
“저는 저희들의 행동에 답변이 돌아왔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름 정말 열심히 정리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에 ‘멸종위기종 청소년들의 요구’를 서한으로 제출할 때만 해도, 저희들의 솔직한 심정은 ‘그게 답변이 올까?’ 하는 막연함이 지배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서울시장님과 서울시교육감님의 공동 선언으로 확실한 답이 돌아온 거예요. 결석시위를 지지한다는 교육부장관님의 공식 발언도 이어졌잖아요. 무관심으로 치부될 줄 알았는데, 저희의 행동이 청소년뿐 아니라 세상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는 절실함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오연재 동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한테 ‘가만히 있으라’ 했던 나라였다. 그런데 포항지진으로 인해 ‘수능시험 일주일 연기’가 결정된 나라로 바뀐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청소년 활동가의 답변으로 답을 새긴다.
“직접 행동을 하면서도, 매번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앞서게 돼요. 왜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정부와 국회) 대부분이 그렇게 할 의지가 없다는 거죠. 저희의 의견을 ‘듣는 척’만 하잖아요. 우리의 목소리가 너무 쉽게 무시당한다는 실감, 그게 실제 행동 때마다 피부에 와 닿게 느껴져요. 안 들어줘도 별 문제가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대안을 찾아야 되는 걸까?’ 청소년기후행동은 깊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답은 일반 국민 여러분이 해주실 것 같아요.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는 거, 당장 발등에 불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거, 그 치열한 고통을 함께 느껴주실 수 있으신가요? (김서경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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