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고단한 삶의 진열장, 노점상 > 세상, 한 걸음


[우리이웃]고단한 삶의 진열장, 노점상

본문

고단한 삶의 진열장, 노점상

<서민들의 이웃 "노점상">
 그 흔한 백화점 물건 할인판매 기간이 철마다 있어도 도시 시민이나 시골사람들은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재래시장이나 거리 노점상에 비해서 백화점 물건은 배 이상 비싸고 눈부시게 화려한 상품진열에 우리는 지레 주눅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싼 맛에, 없는 것 없이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다 선뜻 사기도 하고, 마치 시골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좋아서 서민들은 즐겨 노점상에서 물건을 산다.
 이들 노점상들은 우리 경제에 무시 못할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사라져 가는 낭만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두발 딛고 서 있는 한 평도 안 되는 자그마한 그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점상들은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더욱 강화된 정부의 단속정책에 맞서 싸우며 들풀처럼 질기게, 마르지 않는 푸른 물줄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현재 전국의 노점상 수는 평균 3.5인 가족을 포함해서 대략 30만명(가족 제외)에 이르고 있다. 노점상 1인 1일 매출액을 가장 적은 평균 2만원으로 잡아도 1백만 노점상의 1년 간 총매출액은 7조 2천억원이 되는 큰 규모이다.
 이렇게 "노점상은 친근한 이웃"이라는 서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정부는 노점상을 "감춰져야 할 사회의 치부"나 깨끗한 거리를 위해 "단속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단속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맞선 노점상들의 생존권 싸움은 치열하기만 하다. 저녁 5시 이후에나 장사를 할 수 있는 "상대금지구역"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지난 9월 17일 이후부터 "현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국노점상연합회 소속 동대문지역을 찾아가 보았다.

<노점상의 산 역사, 임타선씨>
 동대문 지역의 제기 2지부의 총무를 맡고 있는 임타선(52) 아주머니는 뼈에 맺힌 노점상의 한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돼요. 우리 집 아저씨가 생활력이 없는 분이에요. 시골에서 양반 집이라고 아버지가 남편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맘만 착했지. 고향 경남 거창군 신은면에서 농사짓고 살다가 못살아 가지고 내 나이 37세 때 아이들 다섯하고 시어머니, 남편과 함께 신설동으로 왔지. 남편 형제들이 장사를 하니 남편은 장사를 따라 댕기고 나는 공장 다녔지. 근데 그때 70년대 후반에 월급이 2만원이야. 그래 시작한 것이 옥수수 장사였지. 옥수수를 고무 다라에 넣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파는데 여기 말로는 "도부"(이동식 판매를 했다는 뜻의 은어)친거지."
 다 큰 아들 딸,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손바닥만한 단칸방 하나에 8식구가 새우잠을 자야 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연탄불 하나를 가지고 취사와 난방을 해야 했으니 임타선씨는 선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장사를 하고 밤 10시에 들어와 씻고 빨래하고 나면 12시. 그때 눈을 붙이면 3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연탄불에 밥을 하려면 2시간이 걸렸다. 이런 단칸방 생활을 7∼8년 하는 동안 5남매는 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다들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옥수수 장사할 때는 부끄러워 사람 있으면 숨어 머리에 이도 못하고 사람 없으면 이고 다니고, 눈물로 눈물로 다녔어. 그때는 전철 없어 버스 타고 다녔는데 제기동에서 옥수수를 삶아 가지고 그놈을 비니루에 넣어 도로변에 내려 조금이라도 팔아 짐을 덜고 가려면 당장 단속반이 쫓아오는 거야. 그놈들 뺏기면 울고 막 매달려도 주지 않고 막 달아나도 그냥 끝까지 쫓아와서 뺏어 가는 거야. 그래도 공장 다니는 것보다 나았지. 하루 7천원도 벌고, 그러면서 차차 나아졌지."
  지금 임타선씨는 제기동 경동시장 한약상가 2번지 앞 인도변에서 바닥에 인삼을 펼쳐놓고 인삼을 팔고 있다. 도부치며 옥수수를 팔다 제기동에 자리를 잡고 5∼6년 채소장사를 하다 물건을 맡길 보관소도 없고, 리어카도 없어서 간편한 맛에 인삼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여름철 따가운 햇살과 겨울에는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추석과 설 때만 빼고 거리에 나오다보니 몸은 이곳저곳 아프고 지금도 걸을 적에는 발바닥이 시릴 정도지만 자신이 파는 인삼 한 뿌리 먹지 않고 버텨오다 보니 "병이 왔다가 그냥 가나보다"고 한다.
 매주 한번은 금산에 있는 공판장에 인삼을 사러 다녀오는데 그때마다 1백만원 어치를 사오면 15만원 정도의 이익금이 나온다. 한약방에서 파는 인삼 중에는 싸구려 중국산이 많지만 그것도 돈 있는 사람이 중국산을 만진다고 노점상들은 대부분 국산을 팔고 있다. 손이 커서 별 이익이 없다는 임타선씨는 인고의 세월을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이겨왔다. 얼굴은 고생한 흔적이 있어 주름이 깊게 패여 있지만 노점상의 삶을 비관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임타선씨의 자리는 구청에서 동대문구의 얼굴이라고 말하는 큰길 "왕산로"변에 있어 오후 5시 이후에나 장사를 해야 하는 "상대금지구역"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동절기에는 저녁 해가 짧고 오후에는 손님이 없어 구청의 말을 따른다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다. 그래서 동대문지역 노점상연합회는 지난 9월 17일부터 낮 1시경에 나와 단속반과 싸우며 장사를 하는 "현장투쟁"을 벌이고 있어 임타선씨는 장사를 잠시 멈추고 현장에서 지부회원들을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노점상 권리는 우리가 똘똘 뭉쳐 싸우는 것밖에 없지. 구청에서는 상대지역에서 시간을 앞당겨서 장사하는 것은 시민들 통행에 불편을 준다고 불법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불과 2∼3시간 댕겨서 3시에만 나오게 하면 스스로 혼잡한 곳의 노점은 정비를 하면서 할 거예요. 있는 사람들은 수천, 수억씩 해먹게 하면서 우리는 왜 단속을 하는지 정말 곰곰이 생각해본 적 있어요?"

<홍정자씨의 바람>
 이들 노점상은 6∼70년대 급속한 공업발전 정책에 밀려 못사는 농촌을 떠나 대도시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에는 수입농산물이 밀려와서 농촌을 떠난 이들, 사고와 질병으로 노동력을 잃거나 노동현장에 흡수되지 못한 인원들이 있어 일정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같은 지역의 홍정자(47)씨는 겉으로는 잘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 시절 병을 앓아 왼쪽 몸을 쓸 수 없는 장애우이다.
 결혼회관 근처의 사거리 왕산로 변에 리어카를 한 대 두고 양파, 양배추, 고추, 당근 등을 팔고 있다. 그전에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다 29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노점상을 하게 된 것은 30대 후반부터였다고 한다.
 "나는 옛날부터 성격이 밝고 좀처럼 실망을 안 했어요. 쓸 수 있는 한쪽 몸을 이용해서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생활고 때문에 나왔지. 우선 금전이 없고 한 손밖에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까 야채를 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타방사람들인데 나는 이 동네서 나서 여기서 시집가고 지금도 여기서 살아요.
 아침 7시에 나와서 동서 청과물시장 가서 하루치 물건을 사는데 고추는 10킬로그램짜리 2∼3개 사오고, 양배추는 반접(50개)이나 30개정도 사고 당근은 두 자루 정도, 보통 합해서 10∼13만원어치 사오지. 그걸 경동시장보다 싸게 팔아요. 서민들이야 돈 적게 내고 많이 사가는 거 원하는 거고 우리도 그렇게 팔아 이윤을 적게 남겨요. 아침 7시에 나와 저녁 8시 30분까지 팔면 하루 3만원 정도 벌어요."
 역시 상대지역이라 오후 5시 이후 장사하게 돼 있어 오전에는 경동시장 안에 들어가서 장사를 한다고 한다. 지난 10월 6일 낮에 구청에서 용역반과 단속직원 100여인이 단속을 나오자 홍정자씨는 차도로 뛰어들어 다른 제기2지부 회원들과 함께 1시간 동안 단속 저지 싸움을 벌였다.
 홍정자씨의 이러한 적극성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생활철학에서 나온 모습이었다.
 "지금 세상은 너무나 인권유린이 많고 권위의식을 내세우는 것 같아요. 있는 자들이 없는 사람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래요. 나도 어릴 적에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듯이 우리 모두가 꿈이 많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 마음을 움츠려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거지요."

<상대금지구역의 "현장투쟁">
 서울의 전국노점상연합회 가입회원은 약2천명 정도이고 동대문 지역 14개 지부의 회원은 300명 가량이다. 전국노점상연합회의 전신인 "노점상복지협의회"가 1986년에 만들어지고 88년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계속된 "노점상생존권 결의대회"를 통해 노점상의 문제를 최초로 사회문제화 시켜 정부로부터 "노점단속유보"라는 부분적 승리를 얻으며 90년 "전국노점상연합회"로 발전하였다.
 그 이후 노점상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기업형 포장마차, 폭력노점, 무질서, 환경파괴자 등의 부정적 인식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단속을 강화해 나갔고 심해지는 단속에 비관해서 92년 6월 지체장애인 박승학(56)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89년 대책 없는 "노점단속 중단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한 달이 넘게 진행된 노점상들의 싸움 이후 정부에서는 몇 가지 노점상 대책을 내놓았는데 동대문 지역장 정병창(32)씨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전시행정이었다고 한다.
 "그때 절대금지구역, 상대금지구역, 완화지역으로 구분되어 역사 앞 등의 절대지역에선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완화지역은 24시간 장사를 허용하고 상대금지구역은 오후 5시 이후에나 장사할 수 있게 했어요. 절대금지구역이었던 곳에서 장사하던 분들께 전국적으로 가판점 1천대를 주고 다른 분에겐 융자금 500만원을 줘서 다른 직업으로 전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노점상이 1백만이나 되는데 가판점 1천대는 전시용이랄 수밖에 없고 융자금 500만원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동대문지역에서 미도파 백화점부터 청량리역을 거치는 왕산로가 상대금지구역인데 5시 이후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됐어요. 구청에서는 단속이 없는 시장 안의 완화지역에서 장사를 하라고 하지만 완화지역은 이미 자리가 넘치고 그곳도 정해진 자리가 있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쨌든 상대금지구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오후 5시부터 일해서는 생계문제가 해결될 수 없어요."
 노점상 단속은 83년부터 굵직굵직한 세계대회를 거치면서 심화되었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겉으로 보이는 노점상 단속은 폭력이 줄었지만 지난 5월 이태원에서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에게 최고 3백만원까지 벌금이 부과되는 등 단속은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절대금지구역의 단속>
 원래 절대금지구역, 상대금지구역, 완화지역이라는 지역구분은 89년 이후 생긴 것인데 정부의 노점상정책이 허술하다 보니 많은 수의 노점상들이 장사가 완전히 금지된 절대금지구역에서도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동대문 지역에는 청량리역 파이 절대금지구역인데 이곳은 구청용역반이 매일 살다시피 한다. 이곳은 단속을 둘러싸고 용역반과 노점상간에 단속을 눈감아 주는 대신 돈이 오가는 문제가 크다고 한다. 이곳에도 동대문지역 노점상연합회 회원이 14명 있다. 이들은 89년 당시 가판점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서류에서 누락된 이들로 용역반과 싸워가며 장사를 하고 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점상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겁니다. 역전 근방에는 건달들이 많은데 용역반들도 건달들이 하면 눈감아 주고 우리들이 하면 단속하고… 우리 회원은 절대지역에서 고정된 그 자리를 절대 이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번 추석을 앞둔 4일 전부터 절대지역 안이 여기저기서 온 노점상으로 판을 쳤거든요. 용역반에서도 외부사람에게 돈을 받고 장사를 해주게 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고, 그런 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동대문지역 노점상연합회에서는 회원 14인이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키며 용역반의 단속을 막고 있으며 다른 비회원들에게 용역반이 돈을 요구하는 현장을 잡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노점상이 되고자>
 전국노점상연합회에서는 정부의 단속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노점상이 되고자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종로지역은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서부지역은 저소득층 자녀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부방을 만들었다. 동대문 지역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에 거리 청소를 하면서 지역주민과의 결합에 노력하고 있다.
 달라지는 노점상의 모습에 비해 정부의 노점상 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전국노점상연합회가 결성되면서 일부회원을 관변단체에 가입시켜 지난 92년도에는 선거에 이용하기도 했고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건널목이나 번잡한 도로에 자리잡은 비회원을 핑계삼아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노점상연합회의 주장은 노점상연합회의 합법화라고 동대문지역의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저희 연합회는 차도나 역전 등 번잡한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과 노점 뒤의 가게와 마찰이 심한 사람은 회원으로 가입시키지 않습니다. 또 제기2지역 같이 40여명이 장사 할 자리밖에 없는데 이곳에 노점상이 들어와도 우리가 자리만 있어도 가입시키지만 자리가 없기 때문에 회원으로 받을 수 없어요. 대신 예전부터 자리가 있어도 회원으로 가입되지 않은 분들은 계속 설득을 하고 있죠. 이렇게 회원들을 대상으로 우리는 계속 노점상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한이 없는 "노점상 양성화"가 아니라 현재의 "전국노점상연합회"를 합법화시키고 이들에 의한 노점상 자율정비가 될 때 현실적인 노점상 정책이 실현되고 더 이상 노점상이 생겨나지 않도록 정부가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글/오숙민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