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통일은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 씨앗으로 싹이 자라고 있다 > 함께 사는 세상


이미 통일은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 씨앗으로 싹이 자라고 있다

남북 청년들의 독서모임 남북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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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표현하던 명칭이 ‘북한’ 아닌 ‘북괴’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이 땅의 방방곡곡을 뒤덮었던 건 ‘반공·승공·멸공’이라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던 섬뜩한 구호들이 전부였다. 카메라를 휴대하고 산에 오르내리면 간첩이라며 일단 연행됐고, 한 집안의 사촌과 팔촌을 다 뒤져서 북한 태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빨갱이 집안’이란 낙인부터 찍었다. 아주 머나먼 얘기일까? 아니다. 지금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속칭 ‘태극기부대’의 구호는 수십 년 전 ‘공산당을 때려잡자!’는 논리 그대로 그 정서가 바뀔 줄을 모른다. 서문을 이런 주제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미 수천수만 번 뒤바뀐 세상인데도, 그 뒤바뀜을 전혀 모르는 일부의 현실을 개탄하기 위함이다. 이번 ‘함께 사는 세상’은 ‘남북한걸음’이 주인공이다. 이 만남까지도 ‘빨간색’을 덧칠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배제돼야 할 ‘레드카드’임을 미리 밝혀둔다. 모르면 도태되는 법이다. 올해는 1945년이 아닌 2020년이다.

 

기득권은 이미 소멸됐다

‘대한민국’이라는 남한의 대통령과,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이미 세 차례 만났다. 지구 전체의 최고 앙숙이라던 북한과 미국의 최고책임자도 이미 세 차례나 만남을 가졌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무덤덤해진다. 그래서 별다른 관심마저 식어버린 상태가 된 듯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만큼의 반전이 진행된 2년이 있었을까? 아예 불가능이라 했던 만남이 이미 현실로 진행됐는데도, 끝까지 그 만남의 의미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갈등이 있고 분쟁이 있어야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 이들, 바로 수구와 극우의 집단들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독차지하고 있다며 자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친일파’와 ‘친미지상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바뀐 세상에서 태어난 새로운 만남

처음 취재를 준비할 때부터, 어떻게 이런 모임이 가능할까 싶었다. 북한 출신의 청년들과 남한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정기적인 독서토론모임을 진행한다는데, 기존의 (타성 가득한) 상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철옹성 같다던 타성을 누군가는 한 조각씩 깨버리고 있었고, 그런 한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균열을 만들고 있었음이 여기저기에서 확인되고 있다. 분야도 다양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체육·의료·종교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수많은 분야에서도 이미 광범위한 밀알들이 뿌려지고 있음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 이번에 만난 ‘남북한걸음’ 역시 변화된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할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반갑게 환영해야 할 대상이 된다.

“모임의 정체성 자체가 저의 정체성과 같이 가기 때문에, 저의 정체성부터 밝히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남북한걸음의 정서윤 대표는 해맑은 얼굴로 자신과 남북한걸음의 소개를 시작했다. 악수를 나누고 가까이 마주앉은 이가 북한에서 온 인물이라는 거, 아마도 예전이라면 이질감과 거부감부터 떠올렸을 게 분명할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와 교육의 지배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자연스럽다. ‘북에서 왔다’는 정체성은 놀랄 만한 새로움도 아닌 세상이 됐다. 일대일로 마주앉아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다면, 이미 그 자리는 두 사람 사이의 통일이 이루어진 셈이다. 서로를 알게 될수록 새삼 강렬해지는 느낌은,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의 재확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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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로 향하는 복도 입구에 설치된 남북한걸음의 배너 모습

“1998년에 북에서 나왔고, 2002년에 남한으로 왔어요. 북한에서 왔다는 정체성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차별과 편견, 그런 낯선 환경을 굉장히 많이 마주치게 됐어요. 그런 상황과 계속 마주하면서 저는 북에서 온 사람들, 저보다 뒤에 온 사람들, 청소년기의 정체성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돼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죠.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북에서 온 사람들을 도와주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원래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실천할 분야를 모색하다가 내린 결론이 바로 독서모임이었다고 한다. 남북의 청년들이 같이 모인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 방법론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단다.

그러다가 탈북민이 많던 한 교회에 가서 독서모임 제안을 했는데, 교회 측에서는 글쓰기에 약한 탈북민들을 위해 논술과 같은 글쓰기 수업을 역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된 글쓰기 수업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서, 2015년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독서모임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단다.

“남북청년들의 중간 매개체를 책으로 놓았어요.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만큼 좋은 대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책을 읽는 독서모임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한 과정의 기간을 사 개월로 잡고, 다양한 책읽기와 토론을 진행하게 됐어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기에는 삼 개월은 좀 짧고, 반년은 긴 느낌이 있어서 한 ‘시즌’을 사 개월로 정했는데, 계속 진행해 보니 집중하기에 적당한 기간이 된 것 같아요. 다양한 주제로 좋은 책들을 만났는데, 이번 시즌의 주제는 ‘민주주의’로 정했어요. 총선도 있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꼭 탐구해야 할 분야라고 모두가 느꼈거든요.”

 

우리만 소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옆 강의실에서 정 대표와 마주앉기 전, 남북한걸음 회원들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름과 출신을 밝히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짧게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예상대로 절반 정도가 북한 출신이었고 그 지명도 다양했다. 대부분 생소한 명칭들이라서 ‘함경도’와 ‘양강도’ 정도만 귀에 들렸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정의는 출신과 상관없이 직접 느낀 그대로의 내용이었다. 민주주의란 주인의식·참여·남한테 피해 안 끼치는 자유의 보장·모든 국민이 자신의 지지를 선택하는 보통선거·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100명이 모두 100가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말(언어)로 공존에 이르는 게 가능한 시스템·개인주의 등 생각 그대로의 꾸밈없는 발표가 이어졌다.

“일회성 모임으로 진행되는 남북한 청년 관련 행사들을 정말 많이 참가해 봤어요. 그런데 일회성 만남으로 끊기는 게 아쉽기만 하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판단했던 가장 큰 문제는 남한친구들의 호기심이 너무 많은 거예요. 궁금했던 모든 걸 질문했죠. 그러면 북한친구들은 구경의 대상이 될 뿐이에요. 계속 질문을 받고 대답만 하다 보니, 정작 북한친구들이 남한친구들한테 묻고 싶은 건 뒤로 밀리게 되거든요. 알고 싶은 정보 이외에, 그 밑에 깔려 있는 진짜 삶에 대한 소통은 매번 그 정도의 문답에서 끝나버리곤 했죠.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존재한다는 실감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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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전문가답게 가장 빠른 이해가 가능한 용어 사용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남북한걸음 정서윤 대표.

그래서 남북한걸음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단다. 지금의 독서모임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정 대표가 지향하는 건 좀 더 도전적으로 서로가 가까워지고 한 차원 높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성장한 이들이기에 다른 견해들이 많을 것 같지만, 남한친구들이 가장 놀라는 점들 중 하나는 북한친구들의 의견이 남한의 정서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서로의 공유감을 높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단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걸 구분하잖아요. 구분하려는 의식이 앞서는 순간, 모든 건 ‘우리는 우리, 너희는 너희’로 나눠지게 돼요. 지금도 도심에서 벌어지는 각종 집회들이 철저하게 ‘너와 나’를 구분 지으려는 외침이잖아요. 그래서 저희 남북한걸음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구분 자체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어요. 출신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성별도 나누지 않아요. 종교가 뭐든 상관없고, 성정체성까지도 따지지 않아요. 따질 필요도 없고요. 나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모임이지만, 청년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기 때문이에요.”

정 대표는 청년의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청년은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준비,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준비, 들을 수 있는 준비, 소통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사람을 뜻한단다. 아무리 젊어도 들을 준비가 안 된 이들이 너무나 많고, 배려의 자세가 갖춰지지 않은 이들 또한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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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극적인 참여가 인상적이었던 회원들이 강의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는 모습

“처음에는 북한친구들의 자존감이 많이 낮았어요. 스스로의 경계심도 있었겠지만, 이 사회가 던지는 차가운 시선 또한 적잖은 부담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는 책을 많이 읽었고, 동시에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만드는 책과 토론도 이어갔어요. 그리고 제가 강조했던 건, 우리뿐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부분에서 소수자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독서뿐 아니라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초청강연도 많이 했죠. 어려운 현실의 소수자들을 책으로만 접하면, 결국 그들을 대상화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중증장애를 가진 분, 성소수자이신 분, 난민이신 분 등을 직접 만나 터놓고 소통하는 시간들을 가졌어요.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큰 관심을 갖고, 탈북민이라는 소수성을 극복하려는 시야를 갖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도전이 없는 성취는 있을 수 없다

정서윤 대표는 눈에 띄게 긍정적이었다. 대화 내내 밝은 표정이었고, 그만큼의 진지함으로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남북한걸음이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다면, 앞으로는 전국의 더 많은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제안을 겸한 의견을 물었다. 자신 있게 긍정할 줄 알았던 정 대표가 잠시 손을 내저었다.

“여전히 안타까운 건,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에 무조건적인 거부감부터 갖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에요. 모임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한 회원이 자신의 교회에 문의했더니, 담당목사는 교회 내의 반대 목소리부터 걱정하며 거절했대요. 저희들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내용을 관련 누리집에 올렸을 때는, 댓글에 ‘빨갱이 O끼들’이라는 표현부터 올라왔죠. 직접 참여해 보지도 않고, 단순히 탈북민과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색깔 프레임 하나로 모든 걸 바라보는 것은 너무 시대착오적인 시선이라고 봐요. 저희가 넘어야 할 내부의 산이 아직도 높다는 생각이 앞서게 되는 거죠.”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이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고 다시 물었더니, 정 대표는 그 역할을 맡을 분들은 따로 있을 거라며, 자신은 그 디딤돌이 될 도움의 역할에 만족할 거라 한다.

“통일이 머나먼 것 같지만, 결국은 남과 북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거잖아요. 저희의 독서모임은 아주 작지만 그 씨앗 중의 하나일 테고요. 남북한걸음이 전국차원의 조직으로 커가는 게 목적은 아니기에, 저는 저희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각자 성장해서 각자의 모임으로 싹을 틔우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힘이 닿는 대로 그 시작점의 경험을 나눠드릴 겁니다. 한반도 상황이 많이 변했잖아요. 몇 해 전에는 북한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급변도 저희는 실제 체험했어요. 이런 세상의 흐름 속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게, 독서모임 자체를 알차게 다잡는게 우선이라고 봐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를 더 존중하면서 소통을 하고, 이 사회에서 스스로 민주시민으로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데에 제 역량을 다하겠습니다.”

정 대표와 나눈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상상을 떠올려 보았다. 작은 강의실에 모여 앉아 독서와 토론을 하는 게 아닌, 남북한걸음의 정신이 크게 확장돼서 남한과 북한의 청년들을 본격적인 교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마당으로 활성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남한의 대학생들과 북한의 대학생들, 남한의 청소년들과 북한의 청소년들이 금강산호텔에서, 원산의 해변에서,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별장 같은 공간에서, 설악산의 울산바위 앞에서, 해남 땅끝마을의 바닷가 노을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토론을 끝없이 펼치는 날은 불가능하기만 할까?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오고갔듯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생각 자체가 가진 한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면 되고 해야 되는 법이다. 모임에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는 북한 출신의 한 여성 참가자가 전한 짧은 소회가, 우리 모두와 남북한걸음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북한 특유의 억양을 떠올리며 아래의 발언을 읽는다면, 독자 여러분께 전하는 생생한 목소리처럼 전해질 거라 기대한다.

“도전 안 해보고 겁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딪쳐 보고 아닌 건 아닌 거지만, 한 번씩 도전을 해서 원하던 걸 성취하는 그런 경험들을 모두가 함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채지민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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