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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다녀라. 죽어도 네 잘못이니까

송내역 시각장애우 추락사건

본문

글과 사진. 최희정 기자
 
 
 
 
지난 5월 15일 오후 5시 40분에서 50분 사이, 송내역에서는 장애우가 또 한 명 죽었다. 시각장애 1급 장애우인 장영섭(57) 씨가 선로 아래로 떨어져 들어오던 급행열차에 치인 것이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당일 저녁에 목골절과 머리손상으로 끝내 사.망.했.다. 도대체 그 10분 동안 송내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왜 한 시민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는 일이 생겼단 말인가. 사건을 취재했다.
 
 
그의 꿈은 타.살.됐.다
장영섭 씨는 5월 15일도 여느 때처럼 서울맹학교(종로구)에서 집(인천시 원미구)으로 오는 길이었다. 그는 종로3가에서 지하철을 탔다고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부인 김순자 씨는 장씨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송내역 개찰구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부부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부인이 송내역 개찰구에서 그를 기다리던 5시 40분경, 장영섭 씨는 송내역에서 내렸다. 시각장애우는 장애 특성상 늘 다니는 길을 이용한다. 하지만 장씨는 그 날 항상 다니던 출구 계단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 계단에서 물청소를 하던 중이라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장씨는 계단 옆 승강장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그 이는 선로에 떨어졌다. 시각장애우인 장씨는 승강장에 이미 진입한 인천행 급행열차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이는 사망했다.
故 장영섭 씨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였다. 그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4년 전 시력을 잃었다. 갑자기 찾아온 장애에 아직 익숙해지지도 못했을 장영섭 씨. 안마와 침을 배워 봉사하고 싶다던 소박한 그의 꿈은 타살됐다.
 
 
죽은 사람 욕보이는, 그들의 억지
故 장영섭 씨의 부인 김순자 씨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아니었으면, 자살한 줄 알았을 것이다”라며 분노했다. 김씨는 사건 직후 송내역 관계자들이 장씨가 자살한 것이라고 몰아부쳤다고 전했다. 그리고 “남편이 늘 이용하던 승강장의 유도블럭 바로 옆에는 기둥이 있다. 남편은 안경이 깨질 정도로 이 기둥에 부딪혀 몇 번을 다쳤다.” 이어서 “송내역은 안내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열차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위험천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故 장영섭 씨의 딸인 장유진(24) 씨는 “사고 직후 그들(역 관계자)은 당시 물청소가 끝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목격자들이 당시 물청소를 했으며 계단도 통제했다는 진술하니까, 할 수 없이 다시 인정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런 진상규명도 없고, 공개사과도 안 한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뿐이다”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송내역의 한 관계자는 “그런 기사를 국민들이 믿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 사람들만 바보되는 거지”라고 뱉었다가 당황해하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을 담당한 부천 남부경찰서 송용선 형사는 “진입하던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므로 기관사는 업무상과실치사로 입건했다. 그러나 송내역 관계자들의 도의적, 윤리적 책임에 대한 것은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없다”라고 밝혔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지난 5월 22일, 송내역 사건 현장에서는 故 장영섭 씨의 명복을 비는 위령제가 열렸다. ‘송내역 장애인 추락 참사 및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38개 단체 참가, 이하 송내역 참사대책위)’에서 주최한 위령제에는 유족과 부천시각장애인연합회, 부천 경실련 등 각 시민단체와 지하철을 이용하던 승객 등 50여 명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위령제에 참석했던 한 여성 시각장애우는 “떨어졌을 때 얼마나 무섭고 당황했을까. 부딪히기만 해도 아찔한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위령제에 참석한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도 차마 말을 하지 못하다가 “또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라며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죽을 때마다 많이 울고, 투쟁했지만 변한 것은 없습니다. 장애우는 왜 개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울지 맙시다. 눈물을 넘어서 분노를 조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이 책임을 인정할 때까지 행동할 것입니다!”라며 단호히 외쳤다.
위령제에 참석했던 부인 김순자 씨는 “여보, 얼마나 당황하고 무서웠어요. 당신에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 하나 없었다는 것이 마음 아파요…. (중략) 이젠 더 이상 억울한 죽음 없는 곳에서, 차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라며 오열했다.
 
 
목숨 걸고 다녀라, 죽어도 네 잘못이니까
송내역 참사대책위는 ‘故 장영섭 씨의 추락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이에 대한 철도청장의 공개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대책 강구, 장애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와 철도청, 도시철도공사 등은 ‘예산과 인력부족’이라는 핑계를 장애우 목숨과 맞바꿀 모양이다. 리프트에서, 선로에서 사람은 계속 죽어나가는데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다. 비명횡사 당하는 장애우는 자꾸만 늘어가는데,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하철에 장애우의 이동을 지원하는 안내전담 역무원만 있었어도 이 끔찍하고 억울한 장애우의 죽음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그나마 있는 리프트도 잦은 고장으로 무용지물이긴 마찬가지.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우들은 사지(死地)를 헤치고 다니고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에는 지하철과 플랫홈 간격이 3cm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서울시는 수수방관이다. 승강장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는 것이 또 하나의 최선책이지만, 어렵다면 전 역사의 승강장에 안전바(Bar)라도 하루속히 설치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 장애우도 인간이다. 장애우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왜 장애우는 누릴 수 없는가.
장애우는 집을 나설 때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목숨걸고 목적지에 가야 하는 것이 장애우의 현실이다. 그러다 다치거나 죽어도 ‘네 잘못’이라고 사회는 강요하고 있다.
 
 
 
 
작성자최희정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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