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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품은 삼달다방, 돕는 사람을 돕는 공동체

함께 사는 세상

본문

▲‘무지개동’에는 공용공간과 거실이 있고 복도 양옆으로 4개의 방이 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문화동’
 
돕는 사람을 돕는 공동체, 삼달다방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품다
 
세월호의 종착지이자 4·3의 아픔을 가진 땅 제주.
시원한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며 ‘제주다움’을 잘유지하고 있는 성산읍 삼달리.
돌담길에 둘러싸인 무밭과 감귤나무를 지나면 알록 달록한 공간 ‘삼달다방’을 만날 수 있다.
 
삼달다방은 ‘다방’의 이름을 하고 있지만 커피를 팔지 않는, 그렇지만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신기한 공간이다. 삼달다방에는 4개의 건물(문화동, 무지개동, 이음동, 무방)이 있다. ‘문화동’엔 늘 사람들이 가득한데 차 마시는 사람들, 밥 먹는 사람들, 다락에 올라가 책 읽는 사람들, 창밖을 보며 멍때리거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각자 따로 존재하기도 하고 함께 어우러지기도 한다.
 
아침에는 당일 수확한 재료들로 투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점심엔 오고가는 사람들을 반기며 다방 안과 밖을 정돈한다. 그리고 밤에는 살아온 삶을 나누고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며 서로에게 기대어 보낸다. 사람 냄새가 진득하게 풍기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고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이곳을 편안해하고 익숙해한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졸업을 앞둔 10대 청년들, 이들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원하는 선생님들, 다른 제주 지역에서 도매상을 하는 50대 남성, 제주에 사는 아들이 먹을 술을 담궈주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90세 할머니, 장애인 인권옹호 활동가와 공익 변호사... 하루동안 삼달다방을 찾는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데 이 공간 안에서는 모두가 자연스레 서로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녹아들게 된다.
 
삼달다방 구석구석에 적혀진 이름들
나눔의 선순환을 이어 나가는 삼달다방
 
다양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무지개동(게 스트하우스)의 각 방에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져있다. ‘오렌지가 좋아 방’은 인권현장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기록해온 故엄명환(별칭: 오렌지가 좋아) 님을 추모하는 의미로 붙여졌으며 ‘초코는 달콤해 방’은 삼달다방 지기들의 가정에 찾아왔다가 몇 년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초코가 남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또 ‘숫사자 방’은 여성 인권 활동가 故배임숙 님(별칭: 힘 있는 숫사자)을 기억하기 위한 방이며 ‘분홍 종이배 방’은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상징하는 분홍종이배(2014년 ‘송파세 모녀’사건 이후 분홍 종이배 접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분홍종이배가 사회적약자를 태우는 구명 보트를 의미하기 때문임)를 알리기 위함이다.
 
이 모든 방의 이름들은 단순히 추모 공간을 넘어 삼달다방의 지향점처럼 건강한 공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곳곳에 나눔의 흔적들이 빼곡한 삼달다방은 나눔이 순환되는 정거장이다. 삼달다방 화장실 변기들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기도 하다. ‘김○○ 마음’. 삼달다방에 물품과 자원을 후원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제주도 내에서 여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공감한 사람들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특장차(‘노랑버스’라는 별칭이 있다)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이곳의 냉장고는 화수분처럼 먹을거리들이 바닥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장애인이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제주에 만들어지길 희망하며 자신이 저축해놓았던 적금을 해지하여 목돈을 보내어오기도 했다.
 
‘더 나은 삶’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 함께 나아 가고 있음에도 이권에 따라 다투고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양상을 경계하며 함께 나누는 것의 선순환을 실천하는 노력들이다. 그렇기에 삼달다방은 경제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논리로 운영되지 않는다.
 
공간 곳곳에 장애인들의 편의를 고려한 삼달다방은 ‘배리어프리 숙소’로 마케팅 제안이 몇 번 들어왔지만, 꿋꿋이 이곳의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의 마음이 모이고 나눔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운영하여야 이곳에 ‘머물러야 할 사람들’과 ‘삼달다방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환대와 사랑, 음식과 술이 모두 넘쳐나는 삼달다방
그러나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다면 ‘문턱’
공간에 공존의 가치를 담았을 때 생기는 변화
 
▲이음동 방 내부에 있는 싱크대
 
삼달다방은 설계할 때부터 문턱을 없애고, 높이는 휠체어 사용자의 시선에 맞췄다. 화장실의 크기, 경사로 각도, 주방 싱크대, 손잡이와 문이 열리는 방향, 창문, 콘센트와 스위치 높이 등을 모두 휠체어 사용자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비장애인도 편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이음동 화장실. 변기에 ‘오영철 마음’이라고 적혀있다.
 
▲ 이동로 판석. 멀리에는 삼달다방의 또 다른 지기, ‘삼도’가 보인다.
삼도는 오는 사람에겐 짖지 않고 가는 사람을 향해서만 짖는 특별한 개로, 사람을 소중히 하는 삼달다방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이동로 역시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동로는 건물이 지어진 다음에 구조적으로 변경시키려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 삼달다방 설립자의 원칙이다. 처음엔 이동로에 친환경 야자매트를 깔았지만 수동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이동하기에 불편하여 현재는 판석이 깔려있다.
 
▲ 무방(왼쪽)과 이음동(오른쪽)의 전경
 
이음동은 어느 한 장애인권활동가가 장애인도 제주도에서 편히 머물 수 있기를 염원하며 자신의 적금을 해지해 설립비용을 후원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독립된 2개의 공간이 모두 배리어프리존으로 디자 인되어 있는 이곳은 건축 당시 휠체어 사용자가 직접 와서 높이부터 회전 공간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음동에는 30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지역사회로 나온 부부가 신혼여행지로 머물기도 했다.
 
▲ 이음동 내부 모습
 
▲ 휠체어 이용자도 탑승이 가능한 통합그네
 
이음동과 무지개동 사이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탑승이 가능한 ‘통합그네’가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네를 타본 경험이 없는 많은 지체장애인들은 삼달다방의 통합그네를 타고 희열과 행복을 느낀다고 전한다.
 
▲ 무방 내부. 2명이 함께 잘 수 있는 공간. 방 곳곳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무방은 ‘무엇을 해도 무방한 곳’이라는 뜻을 담은 곳으로 장애·비장애 공익 활동가들과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이다. 이들이 긴 시간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기타를 튕기고, 뒹굴뒹굴 쉼과 함께 예술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를 바라며 만들어진 이곳엔 2층 침대와 넓은 화장실이 조성되어있다.
 
 
물리적 배리어프리를 넘어 가치적 배리어프리로
 
이음동의 두 개 방, 무방의 또 다른 매력은 장애당사자와 이들의 활동지원사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지점이다. 어떤 장애당사자와 활동지원사는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서 머물길 희망한다. 또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 같은 곳에서 지내야 하지만 서로 약간의 사생활이 보장될 정도의 공간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사소하지만 당사자에게 매우 중요하고 예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점,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적인 욕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삶’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들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곳이라고 해서 모든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마다 필요와 욕구가 다양하므로 그것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삼달다방 지기는 “완벽한 시설을 만들면 좋지만, 대부분 많은 경우는 인적서비스에 의해 해결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장애당사자가 손님으로 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없을 경우 사오거나, 만들거나 또는 빌려온다. 서귀포시 장애인 보조기기대여센터에 도움 요청을 자주 한다고 한다.
 
삼달다방은 “사회의 많은 것들은 제도를 넘어 사람의 마음과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누구나 일상적 삶이 가능한 ‘현실적인’ 배리어프리 공간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그 도전 중 하나가 물리적 접근성을 넘어 심리적 접근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 공간을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물리적 배리어프리에 초점을 더 두고 있지만 정서적 차단, 우리도 모르게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감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가를 확인하는 것, 본인이 얼마나 사랑이 많고 따뜻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것. 삼달다방은 이러한 ‘재확인’의 과정들에 초점을 둔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추구하며
 
▲ 요리하는 무심의 모습. 30명이 함께 먹을 떡볶이를 요리 중이다. 
 
삼달다방을 만든 사람은 이상엽(앞으로 그의 별칭 ‘무심’으로 표기한다) 씨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을 만들고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5년에 제주도로 내려왔다. 학교, 직장, 사회운동 속에서 언제나 사람들 곁에서 불을 쬐어주며 ‘모닥불’ 역할을 하던 그는 더 많은 이들을 품고자 자신의 집을 팔고 제주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의 삼달다방 터에 건물을 지으며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 ‘누가 머물 것인가’, ‘제주도와 육지를 잇는 공간은 가능한가’, ‘차별없는 공간은 가능 한가’, ‘나의 인적·물적 자산은 무엇인가’ 등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의 결과 삼달다방은 첫째, 가치적으로 누구나 자유롭고 누구나 환영받는 공간. 둘째, 장애인권 활동가, 여성활동가 등 공익적 삶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번아웃 전에 충전하고 적정한 쉼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지향점을 갖게 되었다. 장애 인권활동가이자 무심의 아내인 박옥순(이하 ‘ 오케이’)은 “저는 삼달다방에 휠체어를 타신 분이 턱이 없는 문을 활짝 열고 쭉 들어와서 밝게 웃을 때, 그 웃음을 볼 때 이 공간을 만들길 참 잘했다, 보람차다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 만사가 '오케이'인 박옥순 활동가의 활짝 웃는 모습
 
오케이와 무심은 삼달다방이 단순히 사람들에게 먹고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의 의미를 넘어 서로의 문화와 가치를 주고받고 건강한 작당을 이어나가길 바라며 전국 곳곳에서 찾아오는 ‘작당가’들을 품어낸다.
어느 저녁 날의 이야기다.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삼달다방의 또 다른 식구, 반려견 삼도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삼도가 이끄는대로 산책을 하던 당사자는 길을 잃었고 당황한 그는 오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케이도 놀랐지만 침착하게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물어가며 “괜찮아, 괜찮아”를 외쳤다. 오케이는 당사자가 찾은 전봇대의 번호를 참고하여 무사히 당사자 그리고 삼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당사자 분이 제가 계속 그 때 '괜찮아’, ‘오케이’를 외쳤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은 이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 뒤로부터는 삼달다방에 혼자 여행을 올 수 있게 되었다며 너무 감사하게도 그 귀중한 경험과 용기를 삼달다방 북콘서트에서 나눠주었어요.” 삼달다방 지기들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행복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채울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누군가를 대상화하지 않고 마음과 사람을 잇는 자원의 순환과정이 이어지길 바라며, 또 삼달다방 뿐 아니라 제주도가,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순환과정을 닮아가길 꿈꾼다.
 
[삼달지기 인터뷰]
연구소에서 만난 인연, 사랑을 제주에 심다
 
삼달다방을 가꾸는 사람들
언제든 활동가들의 숨은 조력자가 되어준 이상엽과
무엇이든지 ‘오케이’고 ‘괜찮은’ 박옥순이 만들어가는 사회
 
돕는 사람들의 한숨을 품어내고 잠시 쉬다 갈 어깨를 내어주는 공간을 꾸준히 가꾸기 위해 삼달 다방 부부지기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이어왔을까. 익숙한 도시에서 내려와 외지에 자리를 잡기까지,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살던 집을 팔고 그간 해온 활동을 정리하기까지 이들이 나누었을 수많은 대화와 논의들이 궁금했다. 또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들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삶을 사는 이들의 비결을 묻고 싶었다.
 
이상엽(무심)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 묘지 근처에 있던 보육원에서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늘사랑’ 동아리를 만들었다. “처음엔 보육원 아이들이랑 그냥 공 차면서 놀다가 학습지원이 필요하다는 보육원의 제안에 동아리를 만들게 됐어요.” 무심이 무심하게 건넨 이 말은 그가 현재까지 하고 있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활동’의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무심은 대학 졸업 이후 우림건설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20년간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며 기업의 자본과 사회활동의 가치를 이어나가는 ‘잇는 사람’의 역할을 놓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사회 공헌팀을 만들자고 제안하여 책나눔 프로젝트, 음악콘서트 등을 기획했다.
 
그가 장애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여동생의 영향이 컸다. 당시 재활학과 학생이었던 여동생을 도와주며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운영하던 장애우대학을 다녔다.
 
이때 부인인 박옥순(오케이)을 만났다. 오케이는 연구소 장애인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간사부터 정책실 부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총장까지 장애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오케이는 “무심은 연구소 활동가보다 더 열심히 연구소를 지원했던 사람이에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법 제정을 향한 함께걸음 시민대행진, 북경여성대회 참가를 위한 일일호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2일 주점을 도왔죠. 또 사무실이 이사 다닐 때마다 어디선가 돈을 끌어와서 리모델링 공사비를 충당하고 늘 운동단체의 예산 부족을 걱정하며 콘서트 등으로 모금 활동도 했어요”라며 무심의 가려진 활동을 설명했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두 사람이더 큰 확장을 결심하게 되면
 
 
“무심이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 삼달리에 땅을 사겠다고 했을 때, 건물을 짓기 위해 안양에서 함께 살던 집을 팔아야겠다고 말했을 때 큰 고민이 되진 않았어요. 무심이 여러 번 ‘진짜 괜찮냐’고 되물었는데도 저는 오히려 ‘어떤 점이 괜찮겠냐는 거냐. 남편이 편안하고 행복해하는 제주도 땅에 집을 지을 돈이 있으니까 다행’ 이라고 답했어요. 우리 가족이 평소보다 적게 먹고 적게 싸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죠”
 
서로를 향한 존중과 신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켜켜이 쌓여온 흔적일테다. 무심이 삼달에서 공간을 일구어내는 동안 오케이는 서울에서 장애 운동을 지속하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제주에 내려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언젠가 한 번 오케이가 삼달다방에서 길게 머무르며 함께 지기로서의 시간을 보냈을 때 그간 무심이 홀로 감내해왔을 노동의 무게에 마음이 짓눌렸다고 한다. 그 때부터 오케이는 무심이 평생에 걸쳐 ‘무심’하게 오케이의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와 가족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게 되었다.
 
그 이후 오케이는 무심이 일군 삼달다방이 추구하는 가치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서울의 활동을 정리하고 삼달다방이 더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연결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오는 이들을 장벽 없이 환대하고 가는 이들의 안녕을 빌며 언제나 같은 곳에서 기다려줄, 이토록 따스한 삼달다방과 이곳을 이루는 모두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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