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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보이는 마을, 소보사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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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농인들의 쉼터
공부방에서 시작, 대안학교로 발전
 
북한산의 정기를 받기 딱 좋은 위치,
대문 앞에서 우연히 만난 마을 어르신은 소보사대안학교를 가리키며 “저기는 참 조용하다”고 설명한다.
 
소보사대안학교(이하 소보사)는 모든 소통과 교육을 수어로만 진행한다. 2017년에 설립된 소보사는 2006년, 소보사 공부방에서 시작됐다. 
 
수어와 구어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펼쳐지던 교육으로 배우기를 포기했던 농학생들은 공부방에서 조금씩 배움의 재미를 알아갔다. 방과 후 모여 했던 공부지만 그 짧은 시간에서도 학생들의 반응과 열정은 뜨거웠다. 처음 공부방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농학생을 만나오고 있는 김주희 대표교사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물었다.
 
“학교 수업에 집중 못 하고 어려워했던 것이 자신에게 장애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안 거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부족해서인 줄만 알았는데 수어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큰 재미를 느끼곤 했어요.”
 
그렇게 약 10년간 이어온 공부방 활동. 이곳을 거쳐 간 학생만 1,000명이 넘을 정도로 그 인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수어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은 공부방이 유일한지라 공교육 속에서 농학생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었다. 학생들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교 설립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 소보사 간판. '소보사'는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공교육 속 소외되는 농인들
생활 전 영역에 수어 활용, 정체성 찾아 
 
소보사는 단지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도 수어를 사용하여 스스로 농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작은 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농인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인원에 제한을 두고 교사 수를 늘려 학생 한명 한명을 신경 쓰고 있다. ‘학교는 작은 사회’라는 말이 있듯이 소보사에는 하나의 농사회가 구축되어 있었다.
 
“소보사의 정체성이자 가치는 ‘농정체성’이에요. 그리고 농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사고하고 고찰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 그 힘을 기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처음 공부방을 시작했던 이유였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거죠.”
 
소보사에서는 농문화, 농사회에 대한 이해를 키우기 위한 대안적 교육과 일반적인 교과목 교육을 구분 지어서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특별한 교육과정을 채택한 것이고,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을까? 김주희 대표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 국·영·수를 했던 이유는 단지 공부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수어로 복잡한 개념들을 다루면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갈 수 있어서였어요. 수어와 한국어는 사고의 흐름과 언어적인 구조 자체에 차이가 있어 수업 설계부터 달라져야 해요. 청인들이 누구나 배우고 있는 교과목을 수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소보사가 하는 거죠.”
 
학생들은 수어의 언어성, 수어가 가진 문학·예술적 특정, 농인의 역사들을 배우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관심 있는 주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농정체성이란 무엇인지를 확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배움의 필요성을 느낄 때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한국어를 읽고 쓰는 연습도 하고 있다.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미인가 대안학교이다 보니 검정고시나 대학 입시 등 사회로 나갔을 때 필요할 요건들을 자신의 힘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였다.
 
공부방을 거쳐 간 학생이 선생님으로
농문화를 온몸으로 느낀 그들이 말하는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소보사대안학교 교사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비율이 소보사 공부방을 거쳐 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소보사를 이해하고 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사회를 먼저 경험해 본 선배 농인을 만나며 자신의 앞길을 더 넓게 상상할 수 있다. 소보사 공부방을 경험한 후 교사가 된 박상욱 선생님과 노지원 선생님에게 왜 교사가 되기를 마음먹었는지, 교사로서 학생을 만나는 건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 교사 인터뷰. 왼쪽부터 박상욱 교사, 초등부 학생, 노지원 교사
 
박상욱 선생은 “주변에 꿈이 있거나 잠재력이 있는데도 돈이 든다거나 주변에 위축되어서 시도도 안하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서 자연스럽게 농인 아이들의 꿈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리고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할 테니 소보사 교사가 된다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고 설명한다.
 
노지원 선생 또한 “저는 농인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어요. 청인학교만 다니다 보니 학교에 가긴 가는데 공부하는 법도 몰랐고 공부가 중요한지도 전혀 몰랐어요. 전부 말로만 수업하니 저는 그냥 자리에 앉아있기만 한 학생이었죠. 그러다 스무 살이 돼서 (소보사) 공부방에 처음 가게 됐는데 그때 완전 공부에 눈을 뜬 거죠. 그래서 그 시기 저는 아이들에게 저의 그런 헛된 시간의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무작정 김주희 선생님에게 교사가 되겠다고 했었죠.”라며 교사로서의 길을 선택한 배경을 이야기한다.
 
노크 필요 없어 교실 문 제거, 화재경보기 대신 시각적 화재감지기
소보사대안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것들
 
소리로 인기척을 알리는 ‘노크’, 농인들만 있는 학교에서 노크는 어떻게 하지?
화재가 감지되었을 때 위험을 요란히 알리는 ‘화재경보기’도 필요할 텐데...
 
사회가 통용하는 예절과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소보사 대안학교는 청인들이 청각으로 인지하는 것들을 시각화했다.
 
소보사는 교실 문을 제거했다. 농인들에게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방 안에서 바깥 상황을 살필 수 있으며 만약 ‘노크’가 필요하다면 눈 맞춤이나 등을 두드리면 됐다. 화재감지기는 화재 감지 시 레이저가 사방에 퍼지는 제품으로 교체해 경보를 시각화했다.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사방에 불빛이 나가 시각적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 방마다 있는 공간 설명에는 수어사진도 같이 붙어 있었고 회의록과 같은 문서에도 각각 QR코드를 넣어 수어영상도 함께 볼 수 있도록 했다.
 
‘문화’란 생활 전반에서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을 포괄한 단어다. 농문화 역시 생활 전반의 공유하는 생활 양식과 욕구, 필요도가 다르다. 소보사는 농인의 생활 속에서 생기는 작은 욕구와 필요, 습관에 신경쓰며 하나씩 변화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나 교육부의 지원이 전무해 학교의 돈으로만 구비해야 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남겼다. 
 
활성화된 수어, 사회 진출의 걸림돌 걱정
좋은 통역사를 만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
 
꿈이 많은 청소년 시기, 소보사 학생들도 졸업 후 각자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청인 중심으로 발전해 온 이 사회는 농인이 흔들리지 않고 농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엔 개인에게 돌아가는 부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소보사를 졸업하는 학생들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다.
 
“소보사에서 농정체성을 잘 가지고 졸업했는데 청인 사회에 나가 보니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어떤 학생들은 구화를 더 연습할 걸 하면서 소보사에 온 걸 후회하기도 해요. 소보사는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네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면 넌 멋진 사람이다.’라고 얘기하고 늘 응원해 주려고 해요. 소보사가 가정집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학생들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오라는 의미에서예요.”
 
“아직 사회는 정체성을 다수에게 흔들리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이 지지할 수 있는 둥지들도 많지 않고요. 현실적인 어려움은 농인은 통역사라는 다리를 거쳐야만 청인 사회에 갈 수 있잖아요. 그러나 수어 통역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을 때 농인은 딱 그 정도의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실제로 소보사 출신 청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좋은 통역사를 만나는 거예요.”
 
▲ 모든 소보사 가족이 모여 1년의 배움을 돌아보는 ‘한해배움나눔’ (사진제공. 소보사대안학교)
 
지역과 소통하고 인근 학교와도 교류하며 조금씩 변화를 모색한다
 
소보사는 학생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자그마한 해답으로 ‘마을’을 떠올렸다.
 
“소보사가 위치한 이곳 인수동을 저희는 ‘소리가 보이는 마을’이라고 지칭해요. 근처에 살고 있는 청인분들도 다 수어를 조금씩 하시고, 아이들이 지나가면 수어로 인사해 주고 하거든요. 특히 인근에 있는 대안학교는 수어를 교과로 배워요. 소보사는 그 배움에 함께하고 있고요.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소보사가 마을에 정착하고 오랫동안 마을과 관계를 계속 맺어가니까 하나씩 변화가 생겼어요.”
 
마을찻집 ‘마주이야기’의 사장님은 소보사로 인한 변화가 마을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보사 교사분들이나 학생들이 저희 찻집에 자주 찾아와요. 필담으로 대화 주고받으면서 소통하고 있죠. 사실 우리 사회에서 농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저도 농인을 만나본 기회가 그전까지는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마을에서 자주 만나니까 수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근데 이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을에 전반적으로 문화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보여요. 언어와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을 소보사가 만들어 주어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죠.”
 
▲ 마을 상점 '마주이야기'의 수어 표지판. 마을 곳곳에 수어 표지판이 있다.
 
청인과 농인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
마을에서 시작해 전체로 퍼지길
 
김주희 대표교사는 소보사의 계획이자 목표를 농인이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꼽았다. 
 
“청인과 농인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는데, 여기 인수동 마을이 그러한 곳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앞으로도 만남을 이어갈 생각이에요. 너무 좋은 이웃들을 만나서 그 이웃에게 많이 기대면서 지내고 있어요. 우리의 이야기, 가치들을 너무 잘 이해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농인과 청인이 함께하는 공동체, 마을이 하나하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마을에서 태동하고 있는 이 변화가 언젠가 우리 사회 전역으로 퍼져 농인들이 교육받고 소통하고 생활하는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기를 작게나마 바라본다. 사람은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소리가 보이는 마을’이 ‘소리를 보여주는 사회’로 퍼져가기를 기원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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