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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회의 책임

지역사회탁아소 선생님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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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회의 책임
지역사회탁아소 선생님들을 찾아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영·유아기에 있는 자기 아이를 친어머니나 시어머니 또는 가까운 친척이 아닌 남에게 맡겨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 보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일을 하겠다는 여성이 얼마 되지 않았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일하는 여성보다 집안 일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 중산층 여성들은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계의 생계를 이어나가는데 큰 몫을 담당해야 하는 저소득층 여성들은 부모가 일하는 논과 밭 혹은 집에서 가내부업을 하는 같은 공간에서, 그것도 힘들면 집안에 아이를 가둬놓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육아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6∼70년대 소위 경제개발 바람을 맞아 취업하는 여성이 늘고 이들 중 기혼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일손이 필요해진 정부는 국·공립 탁아소를 만들고 민간탁아시설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탁아소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쉽게 이용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탁아소가 본래의 설립목적인 도시빈곤계층 아동과 농어촌 아동을 수용하는 대신 대부분 어느 정도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일반 가정 아동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값이 비싸고 시간도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의 탁아정책이 소극적으로 펼쳐지고 아이 돌보기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면서 맞벌이 부부들이 많은 빈곤지역을 중심으로 비영리 민간탁아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사회탁아소연합" 소속 탁아소들은 당시의 통념과는 다르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의 개인적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육아의 사회화를 주장하며 79년 이후부터 서울 난곡동, 창신동, 양동, 하월곡동 등 빈민지역에서 하나 둘씩 생겨 전국 80여 개에 이르고 있다.
 그간 지역사회탁아소연합은 91년 "영유아보육법"을 제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육아가 전 여성과 사회의 문제임을 널리 알렸다. 이는 이들 탁아소의 선생님들이 하루 12시간의 긴 보육시간에서 오는 육체적 고달픔과 낮은 임금을 묵묵히 이겨내고 지역 한 구석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탁아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뭄에 콩나듯 영아 탁아소>
 "탁아시설"은 "보호자가 근로 또는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아동을 보육하기 어려운 경우에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아동을 보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을 말한다.
 탁아시설은 크게 운영자에 따라 가정탁아시설, 직장탁아시설, 민간탁아시설, 국공립탁아시설로 나누는데 10인 이하의 규모는 "놀이방", 그 이상은 "어린이집"으로 명칭을 통일하고 있는데 93년 3월 보사부 통계를 살펴보면 전국에 4천8백 41개의 탁아시설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아탁아시설은 30%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적으며 탁아소가 많다는 인천에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소속 영아탁아소는 3개밖에 없다고 한다. 인천시 서구 가좌동에 있는 "새싹어린이집"의 이은순(33) 원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유아탁아보다 육체적으로 더욱 힘들고 보육료에 대한 단가가 높고 우유나 이유식 부담도 많아요. 다른 데서는 우유를 싸오라고 하는 곳도 있는 등 국공립이든 민간탁아소든 12시간 보육시간을 지키는 데가 없지요. 아이들을 보는 선생님이 허리디스크에 걸리거나 건강을 해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지역사회 탁아소에서도 영아탁아를 하려는 사람이 없는 형편이지요."
 서울에 지역사회탁아소연합 소속영아탁아소가 하나밖에 없고 영아도 생후 7개월 이후로 받는데 비해 "새싹어린이집"은 생후 3개월부터 30개월까지의 영아 23명을 받고 있다. 지역사회탁아소 소속으로선 거의 최초의 영아 탁아인 셈인데 89년 2월 일하는 엄마와 자원활동가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민간탁아소의 영아 보육료가 20만원이 넘고 그 시간이 짧아 이용할 수 없는 조건에서 지역사회탁아소연합의 영아탁아는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새싹어린이집"의 탁아시간은 12시간, 13만 5천원이다. 선생님당 아이의 비율도 4대 1 정도로 다른 탁아시설에 비해 적정 기준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낮은 임금과 긴 근무시간 때문에 유아탁아보다 영아탁아시설이 더 필요한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이처럼 열악한 탁아 현실은 이 일에 뛰어든 사람에게 남다른 의지와 소신을 요구하게 된다. 새싹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김동준(27)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인천에 있는 전자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회사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는 바람에 탁아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 회사에서 노조활동을 하면서부터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직장 탁아소의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여기 있기 전에는 유아탁아를 몇 달했죠. 그러나 아이들만 좋아해서는 안되고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작년 11월부터 6개월 간 800시간의 양성교육을 받고 이곳으로 왔지요. 유아탁아보다 영아탁아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어요. 회사다닐 때보다 지금 이기들하고 같이 있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김동준씨가 특별히 아기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많이 안아주고 같이 피부접촉을 해주며 근무시간 동안 엄마를 대신하여 충분한 사랑을 기울이는 것이다.
 새싹어린이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한상남(37)씨는 두 자녀를 키우며 집에서 살림만 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는데 탁아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경우다.
 "27살에 결혼을 하고 그 뒤로 집에만 있었지요. 아이는 지금 9살, 10살인데 당시에는 아이를 맡긴다는 생각도, 그런 데가 있는 것도 전혀 모르고 살았어요.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고 사는 줄만 알았어요. 결혼하면서 다시는 직장생활을 한다고 생각을 안 했지요. 그런데 애가 크면서 집에 있어도 점점 엄마가 필요 없어져요. 애를 나서 키우면서 살림하는 그 자체를 열심히 하면 아주 잘하는 거라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생기더라구요. 남편도 맞벌이하기를 바라구요. 어째 남편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굉장히 불신이 쌓였지요."
  그러다가 35살 때 경제적 요구 반 일 욕심 반으로 8개월 동안 스템프를 만드는 공장에 다녔다. 그 후 두세 달 쉬는 동안에 보육사 양성교육에 대한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이거다"는 느낌을 가지고 92년 9월부터 양성교육을 가지고 92년 어린이집으로 오게 되었다.
 "너무 좋더라구요. 교육적인 내용도 너무 좋고 다시 공부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동기들하고 수련회를 갔는데 사진을 보니 생활은 어려웠을 텐데도 표정이 밝더라구요. 남편도 제가 원했던 거니까 좋을 거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죠. 1∼2년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많은 신체적인 발달과 정신적 발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볼 때 엄마가 못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 해줄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또 다른 선생님은 월급 1백만원 정도를 받으며 9년 동안 다니던 롯데백화점을 퇴직하고 초봉 30만 7천원을 받으며 새싹어린이집에 소중한 미래를 위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재정지원이 시급한 영아탁아소>
 새싹어린이집에서는 얼마 전부터 9∼10시간씩 일하던 선생님의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줄였다. 아기들의 보육시간은 엄마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일하면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월급도 많이 올라 초봉이 30만 7천원이고 1년마다 1만원씩 인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월급이 적고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유아탁아보다 선생님들의 이직률이 높아 탁아소의 운영 역시 항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맞벌이 부부 월 소득이 70만원 이하인 가정에는 한 아이당 월 4만 9천원을 주고 있어요. 하지만 지원을 받을 때 서류가 복잡해서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현실성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시설지원은 국공립시설에만 있었고 민간보육시설에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지역사회탁아소연합에서 계속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한 결과 작년부터 민간보육시설에 조금씩 지원이 되고 있어요. 우리는 1년에 2백50만원 정도 지원 받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적자입니다. 보통 한 달에 운영비가 2백50∼2백80만원 들어요. 영아와 교사들의 비율은 3대 1은 돼야 하니까 운영에서 인건비의 비중이 그만큼 높아지지요. 한 달에 보육료로 걷히는 게 2백만원인데 월세와 선생님 월급 등 모자라는 것은 다 빚이죠."
 그래서 11월중에 어머니와 선생님들은 "재정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을 열 계획이다. 매년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 영아탁아의 현실을 불 때 정부의 지원은 생색내기가 아니라 실제로 운영에 도움이 되야 한다고 이은순 회장은 강조한다.

<햇살어린이집 선생님>
 인천시 북구 청천동은 부평 4공단을 끼고 영세 하청공장과 주거지가 섞여 있는 곳이다. 89년 5월에 유아탁아소 "햇살어린이집"이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이 동네는 봉제 1번지라 할 정도로 봉제공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명숙(33) 원장은 86년 인천 송림동 산동네서 빈민 선교를 위해 만든 탁아소에서 맨 처음 탁아 일을 하기 시작하여 이제 경력 9년이 되는 전문인이다. 지역사회탁아소연합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진 인천의 민간보육시설연합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전북 이리가 고향인데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어요. 유치원에 조금 있으면서 영리화되고 부모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육의 문제를 많이 느꼈고, 사회문제도 생각하게 됐지요. 인천에 와서는 송림동에서 교회 사모님하고 둘이서 일했는데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때죠. 8만원 받으며 거의 그 동네서 살다시피 했죠. 평생을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 곳에서 배운 게 많아요. 삶에 대한 사람들의 집념, 굉장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열심히 사는 것, 정직함과 소박함을 많이 배웠죠."
 하지만 종교가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려니 갈등이 많았고 철거가 되기 시작하면서 2년 만에 그만 두고 말았다.
 그 후 청천동에 살면서 미싱을 배워 동네 아줌마들과 부업을 했다. 아줌마들 사이에 동네에 탁아소가 없으니까 만들자는 약속을 한 뒤 역할분담을 하고 돈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탁아 자체의 독자성보다 청천, 삼곡 지역의 일하는 어머니회를 만들고 어머니회의 사업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선교회에서 운영할 때는 돈이 어디서 들어오고 얼마가 쓰이는 지도 몰랐고 교회자체가 베풀고 자선하는 성격이라 햇살어린이집을 운영할 때는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탁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공간도 같이 만들어 내고 같이 운영하자는 것, 부모들도 자기 삶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탁아소가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탁아소 자모회가 잘 됐어요. 처음에는 전세로 집을 빌어 남는 보육료로 교사 월급을 줬는데 9만원을 받았어요. 엄마들이 열심히 도와줬어요. 재정이 공개되고 여기가 비영리로 운영되고 동네 아이를 굉장히 잘 봐준다고 소문이 났지요. 공부방은 이 동네 엄마들이 제대로 봐 줄 수 있는 여건이 없어서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만들었어요."

<바쁜 하루 일과>
 햇살어린이집에는 4명의 탁아교사와 1명의 공부방 교사가 있다. 미혼인 다른 선생님이야 덜하겠지만 이명숙 원장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16개월 된 아들이 있다. 게다가 임신 8개월의 몸을 이끌고 탁아소 살림을 하느라 올해는 일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한다.
 "지난달까지 아이를 다른 영아 탁아소에 맡기고 다니다가 너무 교통이 불편해서 지금은 이곳 자모 한 분께 제가 아이 낳을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아이를 맡기고 8시에 출근하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요. 오자마자 보리차를 끓여놓으면 9시에 선생님 두 분이 오세요. 9시 30분에 간식으로 죽을 끓여 아이들에게 먹이고 오전에 두 시간 동안 수업을 합니다. 3∼4세반, 5세반, 6∼7세반으로 나누어 이야기 나누기, 미술활동, 조적활동, 과학활동을 하죠. 그때 저는 전화 받고 운영, 재정 등 잡무 처리를 합니다."
 점심식사를 따로 준비하는 아줌마가 있어 식단은 매일 다르다. 12시 식사 후에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세수시킨 뒤 낮잠을 재울 수 있도록 방을 치우고 이불을 깐다. 2시부터 4시까지 6살까지의 아이들은 오전 내내 뛰어 노느라 피곤해서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를 몇 장 들으면 잠이 드는데 이 때가 선생님들이 조금이나마 쉬면서 하루를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이명숙 원장은 취학기 아이들의 공부를 봐준다. 아이들이 낮잠에서 깨기 시작해서 놀기 시작하고 4시 30분에는 간식을 먹는다. 선생님이 자연식품을 사용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든다. 5시부터 한시간 동안 다시 분반으로 나누어 오후에는 주로 신체활동 중심의 놀이를 한다. 그 뒤로 아이들은 하고 싶은 놀이를 정핵서 블록, 퍼즐, 콩콩이 등을 하면서 노는데 저녁 6시가 되면서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기 시작하고 밤 8시에 하루 일과가 끝난다.  
 하지만 정작 이때부터가 탁아소 선생들이 과외의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매주 교사회의가 있고 자모회가 한 달에 한번, 그리고 요즘에는 두 달 동안 가정방문을 하느라 퇴근하면 10시가 넘는다. 이렇게 일해서 선생님들의 월급은 지역사회탁아소연합 소속 탁아소 중 좋은 곳이 40만원 선인데, 초봉이 37만7천7백원으로 해마다 1만원씩 오른다.

<전문직, 평생직이 되어야 할 일>
 고정미(26)씨는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를 하다가 양성교육을 받은 후 햇살의 집에서 일 한지 아직 1년이 안된 신참이다.
 "처음에는 탁아라는 부분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죠. 이제는 아이들의 보호와 교육이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내가 익숙해지고 현실에서 주어지는 문제를 풀어가고자 해요. 시간이 지나니까 아이들에 대한 지도도 되고 아이들도 선생님을 믿는 것 같아요. 매일 고민을 하죠. 이 일을 내가 평생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 중에서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를 잘 지도했는가, 자모님이나 다른 선생님을 잘 대했는가, 그리고 내가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항상 생각하죠."
 고정미 선생님의 고민이 해결되려면 탁아 현실이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나 정부, 탁아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이 아이의 육아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토대는 탁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은 더 중요하다.
 "지금 민간보육시설은 원아모집이 안돼서 문닫는 데가 많아지고 있어요. 왜 그러냐면 영유아보육법이 생겼지만 그에 뒤따르는 제도가 없어 학원, 유치원, 선교원 등에서 아이를 탁아도 같이 하기 때문이죠. 이런 무질서가 정리되고 정부가 과감한 지원을 해 영아탁아소를 많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유치원과 학원은 그 고유의 업무를 했으면 해요. 전문적인 영역을 정하고 영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만 탁아요구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명숙 원장은 산전산후 휴가를 얻기 위해 교사를 구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한다. 양성교육원을 나왔다고 하지만 근무시간과 월급을 따지고 탁아에 대한 소신보다는 탁아교사라는 지위를 생각하고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육아의 사회적 책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세우지 않는 한 우리나라 탁아의 발전은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이다.

글/오숙민

 

작성자오숙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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