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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물]아·태 장애인 10년을 위한 발걸음 같이해야

등박방 중국잔질인연합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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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 장애인 10년을 위한 발걸음 같이해야
-등박방 중국잔질인연합회 주석-

 지난 11월 4일 중국잔질인연합회 등박방 주석이 한국재활협회(회장·조일목) 초청으로 "중국장애인 예술단"과 함께 한국을 찾음으로써 한·중국 장애우 교류에 새장을 열었다.
 등박방 주석은 11월 5일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중 양국의 장애인교류협정서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간 장애인교류의 물꼬를 텄는데 재활협회는 이미 지난 10월 23일 일본재활협회와 장애인교류협정서를 교환한 바 있어 2001년까지 새롭게 시작되는 "아·태 장애인10년"의 공동대응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중국의 실력자 등소평의 장남인 등박방은 1964년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공격으로 장애우가 됐으며 1980년 중국잔질인연합회 주석에 올랐다.

 다음은 지난 5일 힐튼호텔에서 있었던 등박방주석 기자회견 내용이다.
 -한국방문은 처음인데 이번 방문의 의의는 무엇인가.
 =중국장애인을 대표해 한국을 방문하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의 정치·경제발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앞으로 한국의 장애인 정책에 관해 많이 배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개혁·개방정책 15년을 맞아 경제발전과 장애인사업이 발전하고 있어 서로 배우고 경험을 나누어 두 나라 장애인사업을 반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욱이 아·태 장애인 10년 행사에 두 나라가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 두 나라가 함께 하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예술단과 함께 온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10년을 맞는 중국의 사업내용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중국은 큰 나라이지만 아직 경제적 발전수준은 그리 높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실제적인 토대 위에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간 장애인보장법과 장애인협회조직을 정비했으며 최근 5년 간 90만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개안수술을 하고 32만 명의 지체장애인을 수술해 건강을 회복시켰으며 4백여 개에 불과하던 특수학교를 1천1백 개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초보적인 노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장애인 숫자는 얼마나 되며 구체적인 사업을 시행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1984년 4월 다섯 가지 영역으로 장애인을 조사한 결과 중국에는 5천1백64만 명의 장애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숫자는 유엔이 발표한 일반적인 수치보다는 낮은 것입니다. 중국에서 장애인사업을 해 나가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경제와 사회발전이 아직 더디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빈궁한 지역의 장애인들이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국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데 이들 중 장애인의 숫자는 얼마나 되며 생활실태는 어떤지.
 =중국은 장애인 통계를 낼 때 지역별로 하기 때문에 조선족 장애인 숫자가 얼마나 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선족 장애인은 다른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으로 경제적 수준은 오히려 한족보다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장애인예술단은 어떤 단체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중국장애인예술단은 공연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을 과시해 사회대중에게 장애인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장애인의 문화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1987년 만들어진 전문 예술공연단체입니다. 우리 예술단은 올 봄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성과를 거뒀으며 한국공연이 끝나면 태국으로 갈 예정입니다. 특히 45명의 단원 중 대만출신도 5명이나 들었습니다.
 -중국의 장애인고용제도와 고용현황은 어떠한지.
 =중국은 1990년부터 장애인의 무고용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각성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2%내외의 장애인을 의무 고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는 약 4만9천여 개의 복지공장이 있으며 연 생산량은 인민폐로 6백억원(우리 돈으로 약8조3천4백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북경아시안게임 권투경기장의 링도 일반공장과 경합해 장애인공장에서 제조권을 따냈을 뿐 아니라 잘 아시는 "101발모제"도 장애인공장의 제품입니다.
 -언제 장애인이 됐는지 그리고 중국잔질인연합회에 대해.
 =1968년 북경대학에서 기술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문화혁명이 일어나 홍위병들의 공격을 받아 장애인이 됐는데 당시 부상으로 수용시설에 있었는데 라디오, 텔레비전 수리를 했습니다. 그 후 정치적인 변화를 거쳐 시각, 청각, 지체로 각기 구분돼 있던 장애인조직을 1983년 단일기구인 중국잔질인연합회로 통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중국경제 실력자의 아들이라는 점이 중국장애인복지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지난 3-40년 전 중국은 경제사회발전을 이루지 못해 장애인문제엔 관심을 쏟지 못했지만 1970년 유엔결의안이 통과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장애인복지는 저 개인의 역량이나 지위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 발전과 같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편집부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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