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뻗어나가는 이스트 타이거즈의 홈런, 발달장애인 야구단 <이스트 타이거즈> > 함께 사는 세상


꿈을 향해 뻗어나가는 이스트 타이거즈의 홈런, 발달장애인 야구단 <이스트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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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도 풀어 줘야 돼!’
‘자 다음은 허리~’
 
신발부터 모자까지 말끔하게 야구 유니폼을 차려입은 청소년들이 능숙하게 몸을 푼다. 자신이 던진 공이 ‘퍽’ 소리를 내며 글러브에 강하게 꽂히자 뿌듯한지 빙그레 웃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왜 이렇게 공이 멀리 안 나가지’라며 혼잣말로 자책하는 선수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자 OO아 여기로 던져봐!’라는 코치의 말을 듣고도 텅 빈 시선으로 야구공을 쥐고만 있는 선수도 있다. 훈련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은 분명 야구단이지만 훈련하는 모습은 일반 야구단 모습과는 조금은 낯설다. 이들은 바로 매주 토요일, 광주의 실내 야구연습장에 모여 훈련하는 발달장애인 야구단 ‘이스트 타이거즈(East Tigers)’의 선수들이다.
 
동구의 ‘East’, 기아 타이거즈의 ‘타이거즈’
초기 10명으로 시작 30명으로 확대
2016년 창단한 이스트 타이거즈는 광주동구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이 당시 열렸던 국제 야구대회를 보며 ‘발달장애인에게도 야구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발달장애 청소년을 모아 10명의 단원으로 시작했다. 이들의 팀명 이스트 타이거즈는 광주 동구에서 창단해 ‘East’, 광주가 연고지인 기아 타이거즈에서 ‘타이거즈’를 따와 완성되었다.
 
△ 지역 비장애인 야구단과 시합을 한 이스트 타이거즈(사진제공. 광주동구장애인복지관)
 
야구를 즐기는 자녀의 모습을 보며 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는 단원이 서른 명에 육박한다. 14세부터 많게는 26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활동하고 있으며, 복지관 내 담당자는 창단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꼬마 아이가 이제는 성인이 되기도 했다고 야구단의 역사를 자랑했다. 초기에는 기아의 사회공헌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으나, 사업이 종료되면서 2022년부터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한 시민 후원금으로 전액 운영되고 있다.
 
목표나 성과보다 각자 자신의 속도로 배우는 야구
야구 통해 질서와 규칙, 날씨 요일도 더불어 익혀
이스트 타이거즈는 장애 정도나 의사소통 여부를 입단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단지 야구를 즐기고 훈련에 참여하는 시간을 기쁘게 여기는지가 기준이다. 목표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개별 발달장애인의 상태에 맞게 각자 자신의 속도로 야구를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권지유 선수는 야구단 활동에 대해 “집에 있으면 자꾸 혼자 있게 되고 심심해요. 근데 야구단에 나오면 친구들도 볼 수 있고 운동도 되고 좋아요”라며 애정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야구를 시작하고 10kg가량이 빠졌다고 자랑했다.
 
부주장인 서지원 선수는 팀 내 에이스로 통한다고 한다. 서 선수는 “책임감을 느끼죠. 제가 부주장이니까요. 애들도 실력이 더 늘면 좋겠어요. 부주장이 애들을 이끌어야 하니까 고민이 많아요”라며 연습 과정 중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지원 선수(왼쪽)과 권지유 선수(오른쪽)
 
야구단원의 부모는 “아들이 야구를 하며 규칙과 질서를 배우더라고요. 감독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행동하고 동료들과 소통하는 방법들 말이죠. 그리고 야구가 있는 토요일을 기다리다 보니 자연스레 날짜의 개념도 익히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 집에서는 말을 잘 듣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데 야구장에만 오면 말도 많아지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에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훈련하는 걸 자주 따라와요”라고 설명했다.
 
규칙과 용어 등 익히고 외우는 것 어려워
반복된 설명과 1대1 매칭 지원으로 해결
올해로 9년째를 맞은 이스트 타이거즈. 그들은 정식으로 부임한 선수출신의 감독과 코치가 있으나 고참 선수가 몸풀기와 캐치볼 등 기본적인 훈련을 주도한다. 선수들 또한 다음 훈련이 뭔지 익숙한 듯 준비를 서두른다. 처음부터 선수들이 이처럼 익숙하게 훈련을 소화한 것은 아니었다. 발달장애 선수들은 야구 규칙이나 팀 내 규율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도 겪었다.
 
△ 자체 시합 중 수비에 집중하고 있는 선수들
 
2019년부터 선수들을 이끈 임방현 감독은 “규칙에 있어서는 각자의 속도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설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야구단에 처음 들어오거나 이해가 조금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코치가 옆에서 타격이나 송구 등을 일대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들 야구단에 온 지 오래되다 보니 이제 규칙에 있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것들도 모두 반복된 연습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 야구단은 전국적으로 드물다. 이스트 타이거즈 외에는 남양주의 ‘드림야구단’이 유일해 시합을 통해 실력을 쌓는 기회가 부족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개선해 보기 위해 이스트 타이거즈는 3년 전부터 지역 비장애인 초등학생 야구팀과 꾸준히 시합을 이어오고 있다. 시합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웠지만, 선수들은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경기를 즐기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히려 다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상치 못한 위험 발생 우려 존재
안전을 위해 말랑한 공과 연식구 사용
야구는 배트를 휘두르고 딱딱한 공을 던지는 스포츠인만큼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이스트 타이거즈는 자체 시합에서는 충격을 흡수하는 말랑한 소재로 된 티볼 공과 티볼 배트를 사용하며 안전에 신경 쓰고 있다. 그러나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는 부득이하게 딱딱한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경우 최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공은 일반 야구공보다 부드러운 ‘연식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팀 간 협의하고 있다.
 
△ 몸을 푸는 이스트 타이거즈 선수들
 
임방현 감독은 “선수들이 안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선수들이 많아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잘 살피고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들 간에도 안전에 대한 주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다른 선수가 타격 훈련을 하고 있으면 “배트 조심해!”라고 서로 주의를 주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스트 타이거즈는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홈런타자, 멋진 투수
각자의 목표에 닿을 수 있도록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피자와 라면을 먹으며 웃음 가득한 대화를 이어갔다. 취재 당시가 2024년의 마지막 활동 날로, 선수들은 벌써부터 “내년에도 열심히 하자”며 새로운 목표를 다짐하고 있었다.
 
“저는 류현진 선수를 좋아해요.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하는 선수라서 멋져요. 제 포지션도 투순데 나중에 류현진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기아 타이거즈 네일 선수를 제일 좋아해요. 저도 그런 공 던지려고 해요”
 
“저는 포지션이 포수예요. 형들이 던지는 공을 다 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저는 소크라테스 선수요. 저도 홈런을 치고 싶어요!”
 
선수들은 각자 동경하는 선수를 떠올리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아직은 서툴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멀지만, 그 순간들이 의미 깊은 경험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담장을 훌쩍 넘긴 장외홈런처럼, 앞으로 이스트 타이거즈가 만들어갈 이야기도 세상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기를 바라 본다.
 
△ 단체사진을 찍는 이스트 타이거즈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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