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권의 주인공은 누구? > 함께 걷는 우리


내 인권의 주인공은 누구?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본문

글과 사진. 채지민 기자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 활동하고 있을 많은 자립생활센터들이 있다. 인권 중심의 단체들도, 교육 중심의 조직들도 일상 하나하나가 헛되지 않게 노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모든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 이 시점의 성과와 변화를 이뤄냈음은 모두의 지난 발자취들이 증명한다. 이젠 그 발자취들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지역의 상황에 맞게, 환경의 특색에 맞게, 인적 구성원의 면면이 누구인가에 따라, 저마다 고유한 장점과 성과를 간직한 이들이 전국에 가득하다. 이번 호에선 세상 모두가 공유해도 좋을 조직 이름의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세상의 중심은 누구?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누구?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와 마주앉는다.
 
 
↑취재가 진행된 자리의 모습.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추경진 강사(헤드폰을 쓴 이), 활동지원사, 김탄진 강사, 한광주 강사, 강희석 강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를 직접 드러낸다, 중증장애의 삶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정도는 ‘장애인인권교육 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라는 형태로 모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활동하기 이전의 일이라 문서로 확인한 건데,
지금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아래 나야)’의 시작점을 그 모임으로 보는 게 맞겠죠.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이 제정된 건 장애인권계 입장에선 역사적인 일인데, 그 법이 시행된 뒤 발생한 가장 큰 문제가 인권법으로 작동한 게 아닌, ‘장애인을 이렇게 저렇게 대하면 처벌받는다’는 잘못된 인식의 확산이었어요. 이런 긴장감들이 장애인복지시설과 일선 공무원들에게는 장애당사자들을 더 멀리하는 부작용만 양산했던 거죠.”
실제로 그랬다. 장차법 시행 이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장애인 차별’의 법적 개념이 사회 안에서 정립되지 않았기에, 일단 기피하는 게 우선이라는 역작용만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차별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게 차별인가, 무엇까지 차별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새롭게 제기되기 시작했어요. 장차법의 진정한 의미를 일반 대중들에게 다시 풀어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됐던 거죠. 그런 고민을 하던 활동가들이 모여 ‘장애인의 인권’을 제대로 전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던 게 네트워크의 핵심 과제였고, 그 과제가 2012년 나야의 출범에 가장 큰 화두로 던져졌습니다.”
나야는 조직적인 직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냥 활동가로 서로가 호칭된다. 그래도 전체적인 조직의 구성을 관리해야 할 ‘1인’은 필요하기에, 그 역할을 강희석 상임활동가가 담당하고 있다. 대표 아닌 대표가 돼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를 힘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타인에 대한 권리를 함께 보장하는 연대와 동료의식이 생겨나게 돼요. ‘인권’이라는 주제 자체가 뭔가 풀어서 말하기에 어렵고 무거운 내용 같잖아요. 그래서 나야가 지향하는 건 ‘자기가 이해한 만큼 얘기할 수 있는 편안한 인권’이에요. 거창한 논리와 문답은 없어도 돼요. 내가 나라는 거, 내 인권의 주인공은 나라는 거, 그걸 스스로 인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긍정한다면, 저희의 인권교육은 성공을 한 겁니다. 세상에서 ‘나’를 찾고 확인하는 일 이상 중요한 목표는 없으니까요.”
나야는 3명의 상근활동가, 15명의 교육활동가,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의 강사로 활동하는 장애당사자 20여 명과 비장애인 20여 명이 ‘나야’의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다. 그런 나야의 가장 큰 특징은 협업교육이다. 장애당사자와 비장애 활동가가 하나의 팀이 돼 교육을 진행한다. 이 대목에선 짧은 설명이 필요하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교육 현장의 단상 위에 올라가는 건 오래 전부터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거의 엇비슷했다. ‘장애를 가진 내가 이렇게 노력하다 보니까 비장애인 수준의 교육을 받고 직업도 갖게 됐으며, 그래서 사회 속에서 이런 삶을 살게 됐다’는 인생 극복기 내지는 성공기(?) 같은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비장애와 비슷해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증의 장애를 가진 분들이 주로 강의를 했죠. ‘목발’을 사용하는 1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하지만 나야는 중증장애를 가진 분들이 강의를 하십니다. 나야의 강사인 김탄진님은 중증 뇌병변장애에 심한 언어장애도 있어서, 실제 강의를 진행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저희 강사진 중에선 가장 큰 반응을 얻는, 인권교육의 성과를 최고로 올려주는 분이기도 해요. 중요한 건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는 거예요. 우리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실제 사실을 교육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협업교육의 가장 큰 성과가 되는 거죠.”
표현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협업교육에 동참하는 장애당사자들은 ‘구색 맞추기’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진행은 비장애강사 중심이었고, 그 곁에서 장애의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에 머무는 게 장애당사자들이 등장하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의 현장 모습들이었다. 나야는 그 틀부터 깨버렸다.
“다른 삶을 사는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삶을 얘기한다는 거, 비장애 중심의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실제 현실을 직접 드러낸다는 것 이상, 교육을 받는 대상자들에게 교육의 성과를 확실하게 각인시킬 방법이 또 있을까요? 비장애의 강사들 강의가 중심이 될 것 같지만, 실제 교육은 중증장애의 당사자 강사들의 한마디, 손짓 하나, 입놀림 하나하나에 집중됩니다. 모두의 고개가 진지하게 끄덕이게 되는 건 중증장애의 강사들 강의예요. 그렇게 나야의 협업교육은 함께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직접 전달합니다.” 
 
 
↑나야가 출간한 <인권공감>
 
 
인권의 필요성을 인생 모습으로 증명한다
네 명의 활동가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물었다. 호칭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느냐고. 대외적으로는 ‘나야인권강사(아래 강사)’라고 하면 된단다. 대표 아닌 대표라던 강희석 강사와 한광주 강사는 비장애의 입장이었고, 추경진 강사와 김탄진 강사는 중증장애를 가진 당사자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중증 뇌병변장애에 심한 언어장애가 있는 김탄진 강사는 무척 낯익은 얼굴이다. 물론 추경진 강사도 늘 마주친다. 장애인권운동 현장에 항상 존재하고, 부조리한 사회현실에는 불편한 손짓이라도 힘껏 내지르는 모습이 언제나 익숙했다.
한광주 “나야의 역사랄까, 그동안의 발자취를 언급해야 한다면 대답은 단순해요. 늘 같은 일을 해왔다는 거죠. 나야의 활동가들은 일 년에 몇 차례씩 집중공부모임을 합니다. 새로운 아이템, 새로운 교육자료 개발, 각자 스스로의 인권감수성 높이기 등, 나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며 진행하는 게 바로 ‘나야워크숍’이에요. 인권에 대한 담론의 장을 넓히고 심화시키는 것, 그건 나야가 지향하는 세상을 향한 중심 과제가 되니까요. 또 하나 집중하는 건 집필이에요. 생생한 현장의 음성과 경험으로 교육자료를 만드는 것, 이것 역시 나야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어요.”
그럼 주된 교육은 누구한테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1차적으로는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 요청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각종 법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인데, 나야의 강사들은 교육을 나간 그 자리에서도 확인하는 인권침해사례가 적지 않단다. 그리고 교육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마주쳐야 할 차별의 벽 또한 너무 많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추경진 “인권교육과는 다른 얘기지만, 비자발급이 필요해서 서울 OO구청을 방문했어요. 제가 가야 할 곳은 위층인데, 계단 몇 개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거예요. 방문한 목적을 얘기했더니, 공무원들의 대답은 (전동휠체어에 탄 그를) 통째로 들어서 옮기면 되겠냐는 거였어요. 다들 아시겠죠. 장애당사자가 탄 전동휠체어를 과연 성인남자 몇 명이 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게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는 발언인지 여부조차 그들은 모른다는 거죠. 다른 구청에선 이런 말도 들었대요. 배리어프리(무장애 이동편의)가 전혀 안 돼 있어서 항의를 했더니, ‘여기까지 장애인이 온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거예요. 장애인이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올 방법조차 없는 차별의 구조는 생각하지도 않고, 장애당사자들이 그동안 거기에 왜 방문 못했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거죠.”
 
 
↑나야가 출간한<앗! 나의 장애 감수성>
 
 
김탄진 강사는 말판을 사용한다. A4 크기의 코팅된 종이에 자음과 모음이 새겨져 있는데,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켜서 한 단어 한 단어를 조합하고 연결한다. 나야의 인권교육을 꼭 받아야 할 대상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의 답이 ‘중증장애의 속도’로 전해져 왔다.
김탄진 “있어요. 청와대. 공무원 맨 꼭대기에 있는 기관이니까, 그래야만 밑으로 전파가 될 것이잖아요.”
언어장애도 있는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권교육은 언제였냐고 그에게 물었다. 며칠 전 미리 전달한 질문지를 보고, 이 대답은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보완 대체 의사소통)를 사용해 작성했다고 했다. 비록 소리는 기계음이었지만, 그의 마음과 인생이 모든 자음과 모음 안에 가득히 담겨있었다.
김탄진 “철원의 OO요양원에 강의 갔던 일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제가 오랫동안 수용되어 있었던 곳으로 여기서 탈시설 했던 곳인데, 오랫동안 여건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이번엔 자립하고 취직해 일하는 제가 강사가 되어 다시 찾게 되었으니 옛날 동료들도 늙어서 다시 얼굴을 보았지만, 시간상 개개인과 대화를 못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제 얼굴을 알아보고 아주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상상도 못한 것을 본 것인 양 표정을 지었었죠. 그들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저를 보며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다소 해소되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협업강의의 교재로 활용되는 나야의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일하기>
 
 
↑지난 10월 초 세계뇌병변의 날 기념식 현장에서 나야가 출간한 <인권공감> 북 콘서트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는 현장 모습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시설’이라고 부르는 장애인(거주)수용시설의 운영자와 종사자들이라 한다. 의무라니까 받기는 하는데, ‘탈시설’이라는 용어와 설명이 나오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진다고 한다.
강희석 “항의도 들어와요. 그런데 이제는 지자체에서도 탈시설을 정책용어로 사용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물론 인간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서 생각한다면, 단순히 밥그릇의 싸움이라고만 치부하긴 어려울 거예요. 진정성으로 열심히 애쓰던 자신의 직장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어떤 시설도 좋은 시설은 없다’는 대전제를 우리는 확신하고 있기에, 자기결정권이 없는 곳은 절대로 좋은 공간일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결정권의 확립과 확보는 인권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실천사항이니까요.”
한광주 “그런데 변화는 느껴져요. 인권교육을 무조건 거부하진 않는다는 거죠. 의무사항이라서가 아니라, 실제 인권교육을 반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 시설에 수용된 장애당사자들은 인권교육의 시간을 기다린다고 해요. 이게 바로 인권교육이 쌓이고 쌓이면서, 조금씩 바꿔놓은 세상의 모습이라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인권교육이 정말 필요한 곳이 커다란 공공집단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인권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동네 빵집, 슈퍼, 병의원, 약국, 편의점 등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마주치는 대상들이에요. 가장 가까운 일상부터 바꿔나가지 않으면, 인권교육은 연중행사 같은 의무조항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을 겁니다.”
인권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까, 대답은 뜻밖의 장소를 가리켰다. 초중고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것이다. 나야는 참여형 교육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강당 같은 대규모 인원 집합이 아닌 교실 하나하나를 중시한다. 열린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 모두와 소통 가능한 소규모가 적절하다는 것이다.
한광주 “한 초등학교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인권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의견을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자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어요. 하다 보면 울 수도, 웃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마자 교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선생님이 들어왔죠. ‘야, 너 나와. 왜 울어?’ 그렇게 막무가내로 데리고 나가더니, 몇 분 후에 울음이 딱 그친 방긋 웃는 얼굴로 교실에 들여보내는 거예요. 인권수업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반인권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우리의 아이들이 다니는 교육의 현장에, 이런 인권침해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게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함께 동행하는 협업교육의 가치를 장애당사자인 강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추경진 강사는 중증장애의 입장에서 조직에 함께할 수 있다는 거,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노동에 따른 소득이 있다는 것 등은 누구나 얘기할 만한 내용이지만, 교육현장에 직접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가치는 따로 있단다.
추경진 “인권교육 강의가 끝났는데, 한 어머님이 다가와 손을 잡고 울먹울먹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자기자식도 중증장애인인데, 자기 자식도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여서 너무 기쁘다고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가슴에도 희망이 솟아났어요. ‘아, 내가 다른 사람한테도 희망이 될 수 있구나. 업무인 강의로서가 아니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그런 순간을 맞게 될 때는 정말 뿌듯한 마음이 되곤 하죠.”
김탄진 강사는 ‘장애인의 존재감’을 언급했다. 전날 말판으로 그 말을 표현했다는데, 함께하는 활동지원사가 매번 강조했다는 그의 의미를 대신 설명했다. 도시의 번화가 골목은 좁다. 상가 같은 데선 차를 가까이 대고 짐을 올리거나 내린다. 비록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든다 해도, 운전자는 사람 하나 통과할 공간은 확보하면서 차의 위치를 잡는다. 최소한 자전거 한 대 통과할 틈 정도는 다들 만들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휠체어가 지나갈 공간은 안 된다. 즉 운전자의 무의식 속에서도 휠체어 사용자에 대한 인식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존재감이 없다는 거, 차별도 존재감이 있어야 생겨나는 건데, 중증장애인은 무의식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김탄진 강사의 지적이다. 그래서 그는 이 사회에서 중증장애인들도 이렇게 살고 있고, 활동하고 있고, 일하고 있다는 그 존재감을 분명한 의식으로 모두에게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강희석 “탈시설했던 그 시설에 강의를 갔던 얘기를 조금 전 해주셨는데, 협업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당사자들의 언어를 듣는다는 거예요. 탈시설했다는, 세상 속에서 자립생활을 한다는, 일을 한다는, 노동을 하고 수익을 얻는다는, 이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 개인의 일상이고 인생이라는, 그 모든 증거를 당사자의 언어로 직접 드러낸다는 거죠. 협업교육이라고 해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그런 보완의 의미는 전혀 아니에요. 스스로를 함께 드러내는 거죠. 생생한 당사자의 언어만큼 값진 교육은 없습니다.”
한광주 “탄진 강사님이 늘 강조하는 게 있어요. 중증장애가 있든 언어장애가 있든,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면 다 들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다림을 가져달라는 거, 급하게 들으려 하지 말고 장애인의 속도를 이해해달라는 거, 그 실천이 바로 나야인권교육에서 펼쳐지는 거죠. 교육참여자들한테는 진정한 교육이 교육시간 안에 다 이루어집니다.”
2016년 1월에 탈시설을 했다는 추경진 강사는 자신의 의견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면 좋겠다고 했다. 탈시설이라는 얘기는 들어봤고 실제 탈시설을 한 몇몇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신은 별 관심 없이 시큰둥하게 반응하기만 했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경진 “시설에서 대충 살다가 죽어가겠구나 했는데, 어느 순간 나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시설에서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사느니, 나가서 일이 년 살다가 죽어도 후회가 안 될 것 같은, 정말 강렬한 욕망이 가득해진 거예요. 저는 이게 인권교육의 힘이라고 봐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 내 인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스스로 확인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인권교육이에요. 힘차게 ‘나야!’를 외쳐 보세요. 한 번뿐인 인생의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이라는 걸 확신하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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