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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 없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오롯, 영화를 읽는 사람들

본문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단계를 거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의 일상으로 말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못 하다가 다시 할 수 있게 된 ‘일상’ 중의 하나가 영화관 방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상관없이 아직도, 여전히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막이 없어서 한국영화를 관람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이다. 자막이 없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제대로 관람하지 못 한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롯, 영화를 읽는 사람들’이다.
 
 
오롯, 모자람이 없이 모두가 온전하도록
‘오롯, 영화를 읽는 사람들(아래 오롯)’은 자막이 없어서 영화를 보기 어려운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영화의 자막을 제작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자막을 제작한다고 해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외국영화의 한글자막과는 다르다. 외국영화의 한글자막은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게 전부지만, 오롯에서 제작하는 자막은 인물들의 대사뿐만 아니라 배경음악과 효과음 등 ‘영화의 소리’를 가능한 모두 자막으로 담고 있다. 영화의 소리를 자막으로 제작해야하는 필요성을 최인혜 오롯 대표가 설명했다.
 
“저희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 경험은 24%,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비율은 1%,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비율은 0.01%입니다. 사실 영화뿐만 아니라 영상 콘텐츠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자막’이 꼭 필요해요. 여기서 말하는 배리어프리 자막은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한글자막입니다. 오롯은 이러한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을 통해 청각장애인이 언제, 어디서나 당연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리어프리 자막’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편리한 자막이 된다. 노인과 아동, 외국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자막을 필요로 하는 비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라는 뜻을 가진 오롯에 딱 맞는 활동이다. 반드시 청각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자람 없이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에 청각장애를 가진 웹툰 작가가 있거든요. 그분이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그 영화를 검색하고 내용을 조금이라도 파악한 후에 영화를 좀 볼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 작가의 한국영화 보는 방법이 발단이 되어 오롯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작가가 인터넷으로 미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자막이 없으면 영화의 내용이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부분을 비롯해서 자막이 없으므로 영화를 보는 데 어려움이 있는 분들을 위해 영화의 소리를 자막으로 넣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너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개봉하는 모든 한국영화의 자막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한다.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작권 협의가 된 콘텐츠만 자막 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모든 한국 영화를 자막을 통해 상영되길 기대하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리고 배리어프리 영화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한국농아인협회에서도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오롯은 오로지 ‘영화의 소리’를 자막을 통해 제작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최인혜 오롯 대표
 
“현재 배리어프리 영화가 너무 적게 제작되고 있으니까 가능한 많이 제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막 제작 봉사자로 참여해 주시는 분들이 1,000명이 넘어요. 그리고 봉사자들의 제작 후 청각장애인의 검수를 통해 완성이 돼요. 이 검수과정을 특정지어서 청각장애인의 일자리 창출로 연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검수 없이 봉사자들의 자막 제작만으로 완성시켰는데, 청각장애인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았어요. 너무 형식적인 제작인 것 같고, 또 자막을 가장 많이 보는 건 청각장애인이니만큼 청각장애인의 검수를 받으면 감수성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자리 창출로까지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어요.”
 
최 대표가 밝힌 청각장애인의 검수를 받는 이유는 ‘당사자성’이다. 수어를 많이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지문이 길고 복잡한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알기 쉽게 구성된 문장을 선호할 수 있다. 그래서 검수를 통해 어려운 단어나 불필요하게 많은 조사를 간결하게 함으로써 보다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제작한다. 검수를 통해 좀 더 ‘보이기 쉬운 자막’으로 거듭나면서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오롯에서 제작한 자막 있는 영화의 시작화면
 
오롯, 소리를 자막으로 옮긴다
외국영화를 볼 때 나오는 자막은 온전히 인물들의 대사를 우리말로 번역한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는 인물들의 대사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효과음과 배경음악도 있다.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효과음이 나오는지, 또 어떤 부분에서 배경음악이 나오는지를 영화를 보는 청각장애인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오롯에서 영화의 모든 소리를 자막으로 제작하고 있다.
 
“우선 영화를 시작할 때 자막에서 인물과 효과음, 배경음악을 어떻게 표시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어요. 인물은 소괄호, 효과음은 중괄호, 배경음악은 음표를 사용해서 알려주고 있죠. 효과음과 배경음악도 소리인데 그 소리의 의미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구분해서 표시했고, 또 효과음이라도 그냥 ‘효과음’이라고 적기보다 어떤 효과음인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영화의 그 장면이 정확히 어떤 분위기인지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배경음악의 경우, 음표가 나오고 그 배경음악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자막이 들어간다. 흥미진진한 음악인지, 긴장감 넘치는 음악인지와 같은 표현을 통해 배경음악의 분위기,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도 함께 전달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음악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 음악이 시작할 때는 ‘음악 시작’, 음악이 끝났을 때는 ‘음악 끝’이라는 표시도 하고 있다.
 
“사실 효과음이나 배경음악을 자막으로 표현하는 건 많은 고민이 돼요. 배경음악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흐름이 계속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요. 또 음의 톤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니까 ‘음악이 고조된다’와 같은 표현을 활용하여 음악의 높낮이 등 흐름도 상세히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잔잔한 소리’라고 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어요. 저는 잔잔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은 슬픈 음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사람들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하다보면, 자막 제작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인물들의 대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상세하게 인물들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의 톤이 높은지 낮은지, 부드러운 목소리인지 날카로운 목소리인지 등을 자막에 표시했다. 그런데 어떤 청각장애인은 영화의 화면을 통해서도 충분히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런 감정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자막보다 화면을 보면서 직접 느끼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너무 상세한 자막 전달이 오히려 영화관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롯의 청각장애인 검수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자막 제작과 관련해서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배리어프리 자막이 복지인지, 예술인지, 문화인지 논의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복지 차원에서 제작한다면 완농(완전 농인)이신 분들을 위해 모든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상세하게 표현하는 게 맞는데, 예술의 보조 도구로 자막이 들어가는 거라면 영화의 결을 맞추고 영화의 의도를 살릴 수 있게 자막은 최소한의 역할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논의들에 대해 고민하고 최대한 표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소리를 자막으로 제작하는 모습
 
오롯, 모두의 영화관람권을 실현한다
“영화 <기생충>이 개봉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슈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청각장애인들은 <기생충>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눠도 그 대화에 함께 참여하기가 어려웠어요. 따로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되지 않았으니까 청각장애인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거든요. 제작이 되더라도 한참 지난 후에, 그러니까 사람들의 이슈에서 지난 뒤에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최신영화는 저작권 문제로 영화 배급사에서 자막 제작을 잘 허가해 주지 않거든요. 이 부분이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어떤 영화든 청각장애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면 좋겠어요.”
 
이는 영화계 종사자들의 인식 문제이지 않을까? 영화의 소리를 자막으로 제작한다는 것이 저작권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저작권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에 제작된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영화를 볼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관객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영화 제작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차라리 영화를 제작하는 순간부터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드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럼 장애인들도 상영기간 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그만큼 관객수가 늘어나기에 영화제작사의 수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영화가 한 편당 배급사가 하나이진 않아요. 영화 한 편에 배급사가 3~4곳인 경우도 있는데, 하나의 배급사로부터 저작권을 따오는 과정도 많은 시간이 걸려요. 또 자막 제작의 필요성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연락을 하는 과정만 해도 반년 정도가 걸렸어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자막 제작에 대한 허가를 잘 해주지 않으시는 편이고, 오히려 독립영화나 중소영화에서 자막 제작을 환영해 주세요. 대형 배급사라도 이런 자막 제작에 대해 따로 담당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연락이 계속 돌게 돼요. 그래서 저희의 활동을 통해 많은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자막 제작의 필요성을 알리고, 동시에 그들의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키워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영화관람권은 일상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향유할 권리다. 화면해설을 들으며 관람하는 시각장애인, 자막을 통해 관람하는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비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영화관람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오롯의 활동에 그래서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 오롯이 제작한 자막이 있는 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날이 조금씩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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