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스크린을 켜는 대항로 사람들, 장애 운동의 장을 밝히다 > 장애, 한 걸음


저항의 스크린을 켜는 대항로 사람들, 장애 운동의 장을 밝히다

장애,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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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금)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2022년 대항로 사람들> 행사가 개최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비롯한 9개 장애인 단체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진보적 장애 운동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한 운영비 마련을 위해 후원 행사 형식으로 열렸다. 2008년 노들장애인야학을 시작으로 2018년 전장연 등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들이 대학로에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대학로를 ‘대항로’로 칭하기 시작했다. 장애 인권운동이 나아가야 할 큰(大) 항로이자, 차별에 저항하고 불의에 대항하는 길(路)로 만들겠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제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휠체어를 본 건 처음이에요.”
행사장을 함께 방문한 동료의 말처럼 공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저시력인 그에게도 느껴지는 공간의 울림이 이곳엔 있었다. 길게 늘어선 부스와 다양한 체험 행사. 자유롭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전동·수동할 것 없이 휠체어 여러 대가 자기만의 길을 따라 공원을 누빈다. 여느 축제 행사장과 다를 바 없는 분주한 풍경이었지만, 장애인 단체가 주최자가 되어 행사 참여자에게 추억과 즐거움을 선사했다는 점이 특별했다. 이날 연대 행사로는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무상급식 후원주점 ‘평등한 밥상’이 비건 음식을 선보이며 행사의 먹거리를 더했다. 중앙 무대에서는 합 맞춰 연습한 공연을 선보였다. 제 3회 종로구 동네 노래자랑,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위한 Disability Pride, 노란들판의 꿈행사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볼거리를 더했다. 무대 아래에선 흑인도, 여성도, 휠체어를 탄 사람도, 비장애인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흥겨운 레게 리듬에 맞춰 저마다의 몸을 흔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마주하고 있자니 한 가지 일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한국엔 왜 장애인이 없어?”
미국에 있었을 때, 한국을 좋아하고 K-POP 문화를 사랑하는 한 외국인 친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이제 막 이름과 전공에 대한 소개를 주고받은 후였다. 사회복지를 복수 전공하고 있다고 하니,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궁금증을 나에게 꺼낸 것이다. 침묵이 이어지는 사이 ‘내가 코로나 이전에 한국에 놀러 갔을 때 어느 곳을 가도 장애인을 볼 수 없었어.’라는 말을 덧붙였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되는 상황이 마음을 더 찝찝하게 만들었다. 대학에 오지 않았다면, 몇년 전의 나였다면 그 질문에 대해 ‘그러게. 한국엔 왜 장애인이 없을까?’라고 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올려다본 하늘은 날씨가 참 좋았다. 내일도 이런 날이 지속될 것처럼.
 
 
되게 벅찼어요. 마음이 고양됐다고 해야 할까요? 장애인 단체 행사에는 비장애인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행사 같았어요. 남녀노소, 장애·비장애, 내국인·외국인을 다 떠나 한 ‘사람’으로 오롯이 존재하는 행사였어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게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 행사 참여자 써니 -
 
 
제 주변에서도 그렇고 사실 장애인을 본 기억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장애인이에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존재하는데 나는 뭐 때문에 보지 못했었는지, 내가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닌지 생각을 해보니까 사회적 시선이나 인프라의 제약으로 인해 집 혹은 시설 밖으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더라고요. 이곳에서는 장애 당사자분들도 주변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자유로워 보여서 좋았어요. 모든 게 당연한 느낌. 비장애인한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인데, 당사자들에겐 손에 꼽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탈시설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접근성이 너무 안 좋았어요. 분명히 행사를 개최할 때 많은 고려를 했을 텐데, 이게 최선이라는 게 결국 장애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적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아서 개선이 아주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행사 참여자 김 알밤 -
 
 
함께 자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더욱 좋았던 것은 마로니에 공원에 휠체어 전용 그네가 있어서 그걸 타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이런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아이가 보고, 타보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당연함이 보편화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우리가 놀고 마시고, 턱이 없는 식당에 들어가 편하게 밥을 먹고, 배우고 싶은 것을 교육받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일하러 갈 우리의 권리는 언제쯤 지켜질까요? 마로니에 공원에서 함께한 당신들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오늘도 함께 투쟁합니다. - 행사 참여자 류진 -
 
작성자글과 사진. 이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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