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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 2022년 한해를 돌아보며

장애인 권익옹호 이야기

본문

 
장애인복지법 제15조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정신장애인을 복지체계에서 배제해 왔다. 그러나 최근 위 조항에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부분을 삭제하면서 2022. 12. 22.부터는 정신장애인도 장애인복지법상의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장애인 복지체계의 일환으로서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11에는 장애인 학대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별도의 권익옹호기관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서울, 경기 등 각 지역에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설립·운영되고 있는데 같은 법 제15조의 개정으로 정신장애인들도 위 기관으로부터 학대나 차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그 과도기적 상황에서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학대 및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로부터 관련 사업을 위탁받아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이하 ‘센터’)를 신설하여 권익옹호활동을 영위해왔다. 2022년 5월부터 센터에서 사업을 해오면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면서 나름의 소회(素懷)를 밝히고자 한다.
 
정신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흔히들 망상을 떠올린다. ‘망상이란 실제 사실과 다르고 논리 경험칙에도 부합하지 않은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을 의미한다’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정신장애인의 망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되는 경험적 사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경험적 사실은 어떤 사건에서 유독 정신질환자 개인만이 겪은 고유한 경험이라는 점에서 이를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환청이나 환시와 같은 환각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은 단지 환각을 겪을 뿐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도 정신장애인과 동일한 환각을 경험한다면 정신장애인과 같은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센터에서 상담했던 어떤 정신장애인은 자신이 과거 국가로부터 인체실험을 당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에 관해 다른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망상이라고 여길 수 있으나 적어도 당사자 본인은 정말로 그러한 인체실험을 당한 경험을 하였으므로 이를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국가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이미 모든 증거를 조작하였다고 믿고 있으므로 아무리 객관적인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인체실험을 당했다는 본인의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설득하더라도 이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처럼 망상은 정신장애인의 고유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형성되므로 정신장애인 스스로 망상임을 깨닫지 않는 한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한 제삼자로서는 타임머신이라도 개발해서 과거로 되돌아가 일일이 사실확인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정신장애인의 망상을 절대로 교정시킬 수 없다. 적어도 정신장애인 본인에게는 환각이 아니라 명백한 경험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약물치료는 사물을 인지하는 정신장애인의 감각 체계를 교정하는 작용을 하므로 유효한 치료 방법임은 분명하나 과거에 이미 형성된 망상까지는 교정시키지 못한다. 그렇기에 망상은 치료할 수 없다. 망상이 치료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정신장애인들을 무조건 폐쇄병동에 격리하여 우리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무분별하게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들이 망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누려왔던 기존의 일상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주변의 인간관계 등을 새롭게 조정해주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가 대표적이다.
 
 권리고지 및 조사원 대면조사 확인서
 
병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당사자들은 강제로 병원에 입원당하여 기약 없는 감금 생활을 지속한다. 당사자 대부분은 원치 않는 입원을 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상담한 당사자 중 대부분은 자신의 권리를 고지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했으며, 받았다고 하더라도 내용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현 권리고지서는 조항을 명시해놓은 서류에 불과하며 비장애인인 우리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상단 사진 참조). 센터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의 권리 알기’ (이하 ‘안내서’) 책자와 홍보물을 제작하였다. 안내서는 보호입원, 행정입원으로 입원한 당사자에게 의무적으로 서명을 받아야 하는 ‘권리고지서’의 내용을 알기 쉬운 언어와 삽화로 작성하였다. 안내서 홍보물에는 권리고지서 내용만 담아 권리 고지를 할 때 의료기관 종사자가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서 책자에는 권리고지 내용뿐만 아니라 정신병원 전반에 대한 권리와 일상 속 권리까지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다. 안내서는 전문가의 법적 자문을 받아 내용을 구성해 쉬운 언어로 바꾼 후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 검수를 거쳤다. 몇 개월간 다수의 노력 끝에 안내서가 제작된 후, 최근 관계기관 및 수도권 내 병원 약 50곳으로 발송되었다. 안내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사자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롯이 당사자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센터는 대리인보다는 옹호인으로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을 안내서에 담았다.
 
 
▲ ‘나의 권리 알기’ 안내서 속 입원적합성심사에 대한 설명
 
우리 사회는 한 개인에게 정신장애인의 낙인이 찍히면 잔인할 정도로 그들에 대한 신뢰를 모두 거두어간다. 한 번 정신장애인으로 낙인찍히면 그 사람은 취업도, 인간관계도,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할 때마다 사사건건 개입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나라 전체가 막아선다. 그렇기에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자신을 믿어주는 그 한사람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사회적장벽과 기꺼이 싸워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센터에서 생각하는 당사자들이 자유로 향하는 길은 바로 그들의 편에서 그들의 말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늘어나는 만큼 그들은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자유만큼 그들은 회복된다. 그렇기에 자유란 인간관계의 회복, 신뢰의 회복이고, 자유가 곧 치료이다. 지난 사업 기간 ‘온전히 당사자들을 믿었나’라는 회상해본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더 경청하는 한 해가 되길 소원한다. 센터의 존재가 그들의 답답한 숨통을 잠시나마 트이게 하는 잠시 잠깐의 자유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작성자글과 사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 임봉준 변호사 & 유인선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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