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말 그리고 마음을 잇는 사람들, ‘저는 수어통역사입니다’ > 장애, 한 걸음


손과 말 그리고 마음을 잇는 사람들, ‘저는 수어통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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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행사에서 수어통역을 하는 김종문 씨
 
저는 경력 30년 차 수어통역사 김종문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이후로 수어와 수어통역에 대한 관심과 이해 도가 사회적으로 많이 높아져서 일할 때 많은 분과의 협업이 수월해지기도 하고 통역의 필요성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어서 수어 통역사로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수어를 배우고 싶다는 분들의 요청이나 생활 곳곳에 수어통역이 필요하다고 요청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사회적으로 많은 분이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와 수어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많은 분이 ‘수화’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실 텐데요. 2016년 수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가 한국의 공식 언어로 인정되어 한국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수화가 아닌 수어로 표기를 바뀌면서 지금은 모두 수어, 수어통역사 이렇게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수어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한국어와 비교하면 수어는 소수의 언어 그리고 약자의 언어라는 인식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가 수어통역사로서 일하는 환경이나 인식이 눈에 띄게 변한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코로 나가 시작되면서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하는 공식 브리핑을 통역하는 통역사들이 방송 화면에 작은 동그라미가 아닌 발표자 옆에 서서 메인 화면에 방송되면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는데요. 실제로 그즈음 수어와 수어통역사 또 수어통역사 자격시험에 대해 인터넷과 제 주변에서도 문의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전까진 통역 현장에 가서 “안녕하세요? 수어통역사 김종문입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이 “네? 수학이요?”라고 하거나 “무슨 통역사요?”라고 되묻는 일은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한 번은 청각·언어장애인이 아들이 사고가 났다고 병원 응급실에 통역이 필요하다고 해서 밤에 달려갔는데 사고 난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지셔서 얼른 응급실 침대에 눕히고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가 “환자분 눈떠보세요. 이름이 뭐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 저는 수어통역사이고, 이분은 청각·언어장애인이라 대답을 하실 수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 말을 듣고도 “본인 이름은 말을 할 수 있죠? 이름이 뭐예요?”라며 같은 말을 되물었습니다. 청각·언어장애에 대해 한참 더 설명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도 나지막이 의사는 한마디를 더했습니다. “이름은 말할 수 있지 않나….”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청각장애인 환자를 만나본 적 없는 의사 선생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이 정도라는 것을 체감했던 단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이 수어통역을 하시는 많은 통역 사분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나마 정말 다행인 건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정말 많은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수어통역이 필요한 현장에 가서 소개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이었는데요. 수어통역사를 자원봉사자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수어는 어떻게 배우나요?” “멋지십니다” “수어통역을 처음 봤는데 감동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또 최근에는 기업 행사에 수어통역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소수의 청각·언어장애인 직원을 위해 수어통역을 하고 마치고 나오려는데 연세가 많으신 임원 두 분이 오셔서 저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저는 살짝 놀란 채 “행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저는 수어통역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인데 정말 놀랐습니다. 수어는 손으로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어떤 표시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쭉 지켜보니 생활에 밀접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표현들도 있고, 표정과 몸짓, 표현 들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수어가 이렇게 멋진 언어라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수어통역이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한 일이지만 수어통역을 보는 비장애인들에게 수어에 관한 관심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수어통역사로서의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고조됩니다.
 
▲ 코로나19 관련 수어통역 중계영상
 
수어통역사의 역할이나 직업의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청각·언어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청각장애인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건 이들에게는 생활의 매 순간순간이 답답하거나 불편함의 연속인 상황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약국에 가서 약을 하나 사려 해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글로 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한국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시는 청각·언어장애인분들에게 한국어는 제2외국어입니다. 보통 비장애인들은 한국에서 초중고를 졸업하면 제2외국어를 하나씩은 배울 텐데요. 기초를 배우지만 그 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처럼 잘하기는 쉽지 않듯이 청각장애인들도 자주 보이고 생활에 자주 쓰는 한국어 단어들은 쓸 수 있지만 제2외국어인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수어통역사는 그런 분들에게 입과 귀가 되어드립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말이죠. 뉴스나 국회, 질병관리청처럼 정부에서 하는 통역들도 있지만, 배달주문 통역, 회사 안에서 작업 지시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수술을 앞둔 청각장애인과 의사의 면담 통역, 학교 수업 통역, 자녀의 학교 선생님과 면담 통역, 은행 통역, 관공서 통역, 결혼식 통역… 등 정말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통역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45세 청각장애인 남성분이 요청하여 가족들 회의에 통역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통역하면서 느낀 것은, 가족들이 청각장애인 아들에 대해,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문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생기는 여러 가지 문화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것을 다 설명하지 못함에 아쉽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비장애인이 보기에 ‘ 왜 그럴까?’ 하는 행동들이 생기게 되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잠시 가족회의가 멈춘 틈을 타서 그 부모님들과 가족들에게 청각장애인 문화가 무엇인지 설명했습니다. 물론 청각장애인이 알아볼 수 있게 말과 수어를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설명을 이어가는 중, 갑자기 그 청각장애인 아들이 서럽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가족들에게 청각장애인 문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 적이 없어서 그간 자신이 오해받았거나 고통스러웠던 일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자신들이 청각장애인 아들과 오랜 시간 같이 지냈기에 그 누구보다도 청각장애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처음엔 저의 이야기에 부정적이었다가 그 아들이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자 반응이 바뀌었습니다. 지난날 아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며 같이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느냐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어머니는 아들을 꼭 안아주셨습니다. 수어통역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기분 좋은 통역이었습니다.
 
한국수어통역사로 진로를 생각하거나 그쪽으로 배워볼까 하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어통역사는 한국수어사전에 나오는 수어만 공부하면 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어만 익혀도 수어통역사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 더 범주를 넓혀서 수어를 배운 적이 없이 오랜 시간 자연 발생적인 동작으로 표현하는 분들(일명, 수화 無 농인)에게까지 이를 수 있는 수어통역사가 진정한 수어통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보디랭귀지로 표현되고 집 안에서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홈사인(home sign)으로 일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꽤 많습 니다. 지방에 가보면 그런 나이 드신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수어를 접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가족, 이웃들과만 교류하고 진정한 의사소통을 해본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수어는 손짓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표정과 더불어 하나하나 미세한 몸짓까지 함께 표현해야 하는 언어이기에, 수어를 배운 적이 없는 그분들에게도 좋은 수어통역사로서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여러 수어통역사가 경찰서에 통역으로 왔다 갔음에도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고, 수소문해서 저를 찾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았다고 하시더군요. 경찰서로 찾아가 보니 수어를 전혀 모르는 60대 남성분이었습니다. 당연히 일반적인 한국수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디랭귀지로 표현하고 알아보기 쉽도록 여러 상황을 묘사하자 바로 그분도 받아서 표현하셨습니다. 조서를 작성하면서 느낀 점은, 정보가 차단되어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 모른 채 그렇게 시간 가는 대로 인생을 살아오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법적인 문제로 자세하게 설명을 못 하는 점은 죄송합니다.) 결국 성추행 문제로 검찰로 송치되고 결국 재판까지 가는 상황에서 끝까지 제가 통역을 맡게 되었고 재판장에서 판사가, “모르는 것도 죄예요!”라는 말에 제가 통역 중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론 그 판사는 많은 점을 이해해주었고 청각장애에 관해 공부하고 온 듯한 느낌이었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일반적인 규범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통역 중의 눈물로 갑자기 재판이 중지되어 전문가답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저의 눈물을 보고 그 청각장애인 피의자도 같이 우셨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고 있다가 저의 눈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도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으로 저는 느꼈습니다.
 
한국에는 많은 청각장애인이 우리와 삶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이 수어를 배우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따뜻한 사회가 되기 위한 사회적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자기계발 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약한 언어를 배우기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주위에 청각장애인을 만난다면 따뜻한 눈빛으로 응원해주십시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와 같은 간단한 수어들을 배워서 표현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것입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종문 수어통역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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