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려움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마을, “베델의 집” > 장애, 한 걸음


나의 어려움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마을, “베델의 집”

함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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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연구를 소개하는 베델의 집 멤버들. 왼쪽부터 무카이야치, 이토, 차미 씨.
 
“어젯밤 잠을 잘 못 자서 컨디션은 안좋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오늘은 4시까지 일하겠습니다.”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 보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날의 업무량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정해도 되는 공동체 베델의 집.
 
1980년,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 마을인 우라카와의 적십자병원에 입원되어있던 정신장애인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설립하여 현재 약 100명의 당사자들과 60명의 사회복지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
 
<함께걸음>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접 보고 경험한 ‘베델의 집’과 ‘히가시 진료소’의 현재를 기록하며 정신장애인들에게 단순히 거주의 기능만 제공하는 시설 이상의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개방된 공동체’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한다.
 
 
“저는 요즘 TV를 볼 수가 없어요. TV를 너무 보고싶지만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너무 화가 나요. 삶에 의미가 없어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TV만 보면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나는 당사자 아사노 씨가 동료들에게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대해 발표한다. ‘베델의 집’이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당사자연구’는 이렇게 시작된다. ‘당사자연구’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정신과적 어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동료들과 함께 모색해 간다.
 
 
“TV를 보고 있지만 소리는 들리질 않아요. 저랑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신 분이 계신가요?”
아사노 씨가 던진 질문을 시작으로 원형으로 둘러 앉아있는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소리가 안들리면 그 소리가 어디로 가는 것 같나요? 벽 같은 게 생겨서 거기로 향하나요?”, “소리가 잘 들리던 프로그램은 없었나요?”, “TV소리가 안들려서 무엇이 힘든가요”, “자동차 소리나 물 끓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모두 다 안들리나요. 아니면 차이가 있나요?”
 
아사노 씨는 답변할 수 있는 것은 답변하고, 동료들의 질문에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함께 있던 사회복지사는 아사노 씨가 TV 보는 상황에서의 감정을 더 잘 느끼게 하기 위해 즉석에서 역할극을 제안하기도 했다.
 
▲ 당사자 연구 중에 나온 모든 말들을 받아 적는 차미 씨.
 
모든 대화의 내용을 칠판에 기록하던 아사노 씨의 동료, 차미 씨가 조용히 있다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예전에 아사노 씨와 다른 멤버들과 함께 티비를 본 기억이 나요. 그때 아사노 씨가 티비를 보면서 웃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재미도 관심도 보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린 적도 있지만요. 혹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볼 때는 좀 괜찮나요?” 생각에 잠긴 아사노 씨는 “네. 같이 있을 땐 좀 난 것 같네요. 혼자 계속 있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와요.”라고 답변했다.
 
 
“정말 소중한 발견입니다.”
함께 있던 멤버들은 아사노 씨의 말을 듣고 “매우 소중한 발견을 한 것 같다. 고독과 관련된 발견을 찾은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연구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앞으로도 죽음의 생각이 찾아오면 멤버들에게 말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아사노 씨의 ‘당사자연구’의 첫 장이 종료되었다.
 
일반적인 의학적 모델은 정신질환자들이 본인 스스로 비정상적 행위를 하거나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들이 환각이나 환청 등 자신의 정신과적인 위기를 깨닫게 하기 위한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약물로서 조절하는 방법만을 강조한다. 자신의 어려움과 힘듦에 깊이 빠져 헤엄쳐볼 기회와 용기를 주기도 전에 약물을 처방해 어려움의 세계를 리모컨으로 TV를 끄듯이 종료시켜 버린다.
 
언어는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망상이나 환청으로 치부되어 무시당해오는 경험을 해왔을 것이고 그들의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 아닌 병적 증상을 판단하는 근거로만 활용되었다.
 
 
“저의 자기병명은 ‘신날 때는 쇼핑을 많이 하고 안 좋을 땐 기운이 없음’이에요”
‘베델의 집’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정신장애인들의 ‘언어’를 계속해서 생산해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불안이 닥치면 ‘손님’이 찾아왔다고 표현하고, 망상은 ‘압박’이라고 한다. 또 당사자가 겪는 불행을 ‘고생’이라고 지칭하며 힘들어하는 당사자에게 ‘지금 혹시 당신에게 고생씨가 찾아왔나요?’라고 질문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우울증 환자’라는 의학적 병명이 아닌 자신이 증상에 스스로 붙인 이름을 사용한다. 이렇게 ‘베델의 집’은 언어가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깊게 고찰하며 말을 바꾸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지속해왔다.
 
 
“지원자로서도 정말 고민이 들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저희도 그럴 때 당사자연구를 합니다.”
‘베델의 집’에서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원자 즉, 사회복지사(‘베델의 집’에서는 이들을 ‘스텝’이라고 칭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 8년 째 일하고 있는 스텝에게 소회를 물었다.
 
그러자 스텝은 오히려 당사자와 지원자 사이의 벽이 너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서로 표현하는 감정이 너무 날 것 그대로여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며 여기까지 왔냐고 묻자 역시 답은 ‘당사자연구’였다. ‘베델의 집’에서는 정신장애가 있는 당사자들 뿐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인지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는 모두가 다 ‘당사자연구’를 시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15년 간 집 안에서만 거주하던 소위 ‘히키코모리’ 청년은 공동체 사람들과 끊임없이 ‘회복’의 방법을 연구했고 현재는 ‘베델의 집’에서 스텝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나아가, 삿포로 교도소와 여자소년원에서도 ‘당사자연구’가 시행되고 있고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  히가시 진료소 가와무라 원장
 
정신장애 친구, 가와무라씨
올해로 개원 9년차에 접어든 ‘히가시 진료소’의 가와무라 원장을 만났다. 우라카와 적십자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하던 가와무라 의사는 40년 내내 자신의 지위를 계속해서 낮추고 낮추는 것에 주력했다. 가와무라 씨는 우라카와 마을에서 40년째 살아가고 있는 주민이기도 하다.
 
“약하고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전까지는 약한 사람을 치료하는 주체가 모두 의사였고, 오직 병원에서만 그 기능을 하도록 되어있어 진정으로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40년 전에는 사람들이 의사 옆에만 가도 병이 낫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들켰죠. 그 전엔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사람을 고쳐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어떻게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이들이 더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자신의 지위를 낮추고 낮춰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친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동네 정신과 의사에게 생긴 아이러니한 일이 있다. 실제로 1990년까지만 해도 병상수가 130개가 넘고, 2013년까지만 해도 60개의 병상수가 있었던 우라카와 적십자병원의 정신과병동은 2014년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폐쇄되었다.
 
▲ 우라카와 정신과병동 폐쇄 [베델의 집 제공]
 
진료소가 아닌 ‘수다’ 떨며 서로 일상을 공유하는 ‘방앗간’
가와무라 원장은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베델의 집’ 인근에 ‘히가시 진료소’를 세웠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치료의 장소가 지역으로 전환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도 ‘히가시 진료소’에서 당사자들의 일상생활과 취업지원을 돕고 있다. 그룹홈과 농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음악치료와 미술치료도 진행한다. 이 진료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1세부터 90세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실제 이 진료소는 병원이라기 보단 동네 찻집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와무라 원장을 찾아온 환자들은 의사에게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약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잘 하지 않는다. 본인이 어떤 일을 새롭게 배웠고, 무엇을 해냈는지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 히가시 진료소 내부
 
 
 ▲ 히가시진료소 전경(외부)
 
‘우리들끼리의 리그’가 아닌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공동체를 추구하며
이 공동체는 다른 지역사회구성원과 개방된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베델의 집’에서 발간한 저서에 따르면 이 공동체가 마을에 잘 정착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초기에는 지역사회의 교류가 거의 없었고 주민들로부터 좋지 못한 시선을 받았다. 사회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해보았지만 ‘아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나기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베델의 집’은 포기하지 않고 직접 지역의 어업협동조합을 찾아가 ‘우라카와의 다시마를 전국에 팔고 싶으니 좀 나누어달라’고 부탁을 하며 원재료 구입, 판로 개척 등을 위해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서서히 열어가고 사회와의 접촉면을 넓혀갔다.
 
 
 
▲ 베델의 집 생산품(다시마, 가쓰오부시 등)
 
그 결과, 1993년 ‘복지숍 베델’을 설립하여 다양한 지역의 특산물들을 판매해오고 있으며 꾸준히 높은 매출액을 달성하여 지역경제에 파급력 있는 영향을 미치는 어엿한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젠 ‘베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우라카와 마을을 찾는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40여회가 넘도록 한국 정신보건 관련 단체들과 함께 ‘베델의 집’을 찾은 청주정신건강센터 김대환 관장에 따르면 “전국 각지에서 매년 ‘베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적어도 2,000여명이 우라카와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매년 여름 2박 3일동안 진행하는 ‘베델 축제’기간 동안 약 천여 명이 이 마을을 찾는다. 이 많은 방문객들의 숙박과 식사를 지역사회에서 해결하면서 ‘베델의 집’은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특히 ‘베델 축제’ 기간 동안은 인근에 있는 숙박업소들은 모두 다 만실이어서 예약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역과의 협력은 자연스레 ‘모두가 안전한 마을’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우라카와는 10년마다 강한 지진에 시달려왔고 이에 ‘베델의 집’은 2003년부터 국립장애인재활센터(NRCD) 그리고 마을 행정부와 협력하여 ‘지진 발생 후 4분 이내 10m높이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대피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연습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이러한 협업 과정을 통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음며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찾아나가는 ‘베델의 집’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응원한다.
 
 
 
▲ 지역사회 교류 장면 [베델의 집 제공]
작성자글과 사진.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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