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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고용, 그 사이의 다리를 놓다

잡 코치(Job coach)가 바라보는 장애인의 근로 가능성

본문

 
▲  작년 여름 이룸센터에서, 필자가 진행했던 직업훈련 사업의 성과를 보고하며
 
 
필자 소개
“혹시 무슨 일하세요?” 초면에 자주 오가는 단골 질문이다. 직업이 그 사람의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기 때문일까. 가끔 나도 저 질문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콩콩 뛴다. 떨려서 그렇다. 내 직업이 워낙 잘 알려지지 않아 긴 설명을 해야 해서 떨리고, 스스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이를 알릴 마음에 설레서 떨린다.
 
나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중에서도 나의 전문 분야는 직업지원이다. 정신장애인의 취업 전반을 지원하는 일인데, 취업 지원, 직업재활, 잡 코칭(Job coaching)이라고도 불린다. 바라기는, 이 글을 통해 독자들께 나의 일이 잘 알려졌으면 한다. 더 나아가, 장애인의 일과 삶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주시기를 바란다.
 
잡 코치가 하는 일
내가 만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취업 과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단순히 일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하기로 마음을 먹기까지 숱한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이 사회와 주변인들에게 받아 온 가치 절하(devaluation)를 극복해야 하고, 스스로마저 부정해온 존재감을 회복해야 한다. 크고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야 자신감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자신감만으로는 자기소개서가 술술 써지지 않는다. 특히 평생 처음 써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막막할 뿐이다. 어찌어찌 서류 전형에 통과하더라도 면접이라는 대 난관이 남아있다. 막상 취업이 되면 이제 고생 시작이다. 다양한 어려움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업무를 익히는 것만 해도 상당히 벅찬데 직장 대인관계도 서툴고 근무환경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휴가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것은 언제 누구에게 물어볼지 모르겠다. 전화 응대가 너무 힘들어서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괜히 두렵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장애인 근로자와 함께한다. 단순한 인력소개업 정도가 아닌 것이다. 취업 준비 단계에서부터 구직, 유지, 종결의 전 과정을 아주 세심하게 지원하고 있다. 이를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다.
 
 
 
 
잡 코치의 존재는 비단 장애인 근로자뿐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수시로 고용주를 만나 다양한 고충을 해결해준다. 가끔 고용주들이 장애인 근로자의 업무 수행에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다. 이럴 땐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여 고용주를 최대한 안심시키는 솔루션을 제공하되 장애인 근로자에게는 이를 적당히 순화하여 전달해야 한다. 내가 솔로몬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게 쉽지는 않다. 장애인 근로자를 대신하여 고용주에게 정당한 편의(Reasonable accommodation)를 요청하기도 한다. 노사 갈등의 중재자 역할까지 하다 보니 상호 간 만족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취업 유지 기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장애와 고용, 그 사이의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 여긴다.
 
내가 만나는 근로자들과 고용주들
내가 만나고 있는 정신장애인 근로자 중에는 사고의 흐름이 아주 느린 분이 계시다. 이분께 직무지도를 할 땐 과업을 최대한 세분화한다. 그리고 그 세분화된 과업조차도 천천히 반복해서 설명 드린다. 또, 수시로 환청을 듣는 분이 계시다. 이분은 고객을 응대하다가도 환청이 들리면 대화의 흐름을 아예 놓쳐버리신다. 그래서 차라리 고객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렸다. 아주 드물게, 근태 관리가 안 되거나 근무 태도가 불량한 분들도 계시다. 갑자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OO 씨가 출근을 안 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곤혹스럽다. 이럴 땐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고 즉시 상황을 파악하는 편이다. 누군가 불량한 근무 태도를 보이면 별도의 공간에서 올바른 직장 예절을 교육하지만, 안타깝게도 태도는 잘 바뀌지 않는다. 만약 근로자의 모습이 개선되지 않으면 계약이 종료되기도 한다.
 
일을 갓 시작했을 땐 고용주를 만나는 게 그렇게 불편했다. 왠지 모르게 고용주는 장애인 근로자의 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상 관계를 맺다 보니 고용주야말로 원활한 직장 생활을 위한 최고의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일례로, 어떤 회사는 정신장애인 고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면접장에 따라간 나를 따로 불러내 이런 질문을 했다. “정신장애가 있는데 일을 할 수가 있어요? 도대체 정신장애가 뭐예요? 위험한 건 아니에요?” 이때가 바로 나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기회이다. 그 자리에서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이 시작되었고 나의 대답을 들은 고용주는 바로 채용을 결정했다. 근로자는 회사의 우호적인 분위기와 나의 잡 코칭에 힘입어 아주 잘 적응했다. 이분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3년 넘게 일하고 계시고 최근에는 승진까지 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나. 결국 근로자도 고용주도 나도 사람이기에 우리 각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직장 생활의 안녕을 결정한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삐걱댄다면 전체가 흔들린다. 물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한데 뭉치니 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합을 잘 맞추기만 한다면 안녕한 직장 생활이 되는 것이다.
 
 
 
▲작년 겨울 덕수궁 돌담에서, 봄날의 햇살 같은 그대들과 함께 
 
 
잡 코치로서의 소회
장애와 고용, 그 사이의 다리 놓는 일은 상당히 보람차다. 특히 취업하신 분들의 표정을 볼 때 그러하다. 취업 전에는 보통 낯빛이 어두우시다. 근데 취업 유지 기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미소도 간간이 짓고 말 수도 늘어나면서 낯빛이 환히 바뀐다. 최근 유행하는 말로 ‘금융치료’라고 하던가. 통장에 찍히는 월급만 봐도 낯빛이 좋아지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성취감이며 직장 생활을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정체성일 거다. 내가 만나고 있는 분 중에는 스스로를 ‘무능력한 정신질환자’ 정도로 여겼던 분들이 많다. 어떤 분은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이 너무 부러워 여러 차례 실패를 거쳐 취업했다. 더 이상 무능력하게 살고 싶지 않아 “죽기 살기로” 일을 배웠고 결국 동료들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자신감이 생기니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가치 절하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잡 코칭을 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일하는 곳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도 여럿 있고 공공기관이나 학교, 병원, 대형마트도 많다. 직무도 상당히 다양해서, 아마 독자께서도 알게 모르게 지역사회 곳곳에서 장애인 근로자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장애인의 일과 삶은 좀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장애인 취업률은 여전히 저조하며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도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여전히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간혹 현실의 장벽이 너무 거대하게 보일 때면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 스토리를 되새기며 위로를 받는다. 잠깐 독자들께 그 스토리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지원고용 스토리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장애인 직업지원 서비스의 대상으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통념은 “중증 발달장애인은 일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경증 발달장애인들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대체로 지역사회와 분리된 환경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았다.
 
1980년대 초, 지역사회의 대학생들이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고용을 실시하였다. 지원고용이란 ‘선 훈련-후 배치(train-then-place)’가 아니라 ‘선 배치-후 훈련(place-then-train)’ 접근을 따른다. 즉, 대학생들이 지역사회의 회사를 찾아가 고용주들을 설득했고 그곳에 우선적으로 중증 발달장애인들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고 고용주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기존의 통념이 완전히 부수어졌고 중증 발달장애인의 근로 가능성이 증명되었다. 이후, 다양한 시범사업과 연구가 진행되며 지원고용은 장애 전 영역으로 퍼졌고 공식적인 법이 지정되며 대표적인 중증장애인 직업지원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스토리는 나에게 많은 통찰을 준다. 과연 내가 1970년대 미국에 살았다면 중증 발달장애인의 근로 가능성을 볼 수 있었을까? 혹시 2023년 지금의 나도 어떠한 통념 때문에 누군가의 근로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반성도 한다. 그 당시 통념에 반기를 든 건 장애인 직업지원 전문가들이 아니라 대학생들이었는데, 과연 전문가의 전문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의 전문가적 행위들은 정말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것인가?
 
글을 마무리하며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일은 중요하다. 그래서 청년 실업률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가 한숨을 내뱉으며 공감한다. 나는 장애인의 일과 삶에 대해서도 모두의 공감을 기대한다. 장애인 당사자도 아닌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김도현 활동가의 말마따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이 그들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비장애인-장애인 간에 발생한 일이다. 따라서 서로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체이다. 사회가 변하려면 장애인들의 시위만이 아니라 상호 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독자의 손에도 해결의 열쇠가 쥐어있다. 특히, 비장애인 독자께는 장애인의 일과 삶에 대한 관심을 부탁드리는 바다. 최소한 장애인의 근로 가능성을 비웃지 마시라. 아마 지원고용 프로젝트를 시작한 미국 대학생들에게 주변 사람들이 이런 조언을 했을 것이다. 너희는 현실은 모르고 열정만 넘친다고. 이제 독자께서는 그 프로젝트의 결과를 알게 되었으니 종종 마트나 카페에서 장애인 근로자가 보인다면 섣부른 조언을 삼가주시라. 설사 그의 일 처리가 좀 느리더라도 아니꼽게 보지 말고 서툴더라도 안타깝게 보지 마시라. 나와 같은 잡 코치가 전문적으로 지원하게 된다면 그 또한 훌륭한 근로자로서 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장애인의 일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베푸는 온정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당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서초열린세상 박한길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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