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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염전 노동력착취 피해장애인 자립 지원 활동기

본문

↑ 염전에서 동료들과 함께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는 사뭇 비장해지기까지 했다. 비상 연락망과 활동지원서비스를 대체할 자원활동 인력풀 확보, 시댁과 친정 방문일정 조율과 사전에 매년 하던 양해를 구해두는 것까지. “엄마, 내가 알다시피 지원해야 하는 아저씨들이 있어. 올해도 못 자고 갈 것 같애”라는 말을 전할 때면 미안한 일이 아닌데도 말소리가 조금 작아지고, 엄마는 늘 그랬다는 듯 시큰둥하게 “아이고 세상일은 지혼자다 한갑다야” 하시고 나면 끝나는 통화. 말미에 어떤 이야기를 더 하셨던 것도 같지만, 마음 쓸 여력이 없어 그저 웃고 만다.
 
↑ 염전 장애인 노동력 착취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 발언 모습
 
보편의 사람들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설계된 이 세계에서, ‘학대피해에서 탈출하여 연고도 없이 지역에 자립하려는 중증장애인’이란 존재하지만 고려되지 않는 어떤 소수성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 길고 긴연휴라서 덕분에 더 어둡게, 우리는 이번에도 서비스의 그늘 속에서 추석을 함께 버텼다.
 
2021년,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퇴사하고 상담원에서 활동가로 직을 변경한 후의 삶은 사실 계속해서 ‘안될 일’과 ‘어려운 조건’만 부러 찾아다니는 것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날짜 변경선을 넘나들며 밤의 도시만을 찾아다니는 마피아처럼 밤이 되면 고개를 들었고, 따지고 싸워서라도 이 어둠을 조금 견딜만 하게 바꾸는 일들이 어쩌면 이 활동의 전부였다.
 
2017년도부터 공공과 민간을 두루 거치며 업무로써 학대피해 장애인 지원을 해왔고, 당시에도 나름 적극적으로 활동한다고 애써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관 상담 전화의 착신 가능 시간은 늘 9시로 해두었다. 팀장이 된 뒤에는 더 적극적으로 정시 퇴근을 독려했고, 민원인의 요구를 점잖게 거절하는 방법은 늘 우리 조직의 화두였기도 하다. 직장인으로서 업무적 규칙을 깬다는 건 단순히 나의 지향 문제를 넘어서서 다른 종사자의 삶의 질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고, 일 년에 백 여건이 넘게 접수되는 모든 사례를 촘촘하게 지원하기에는 인력도 자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그랬다.
 
그리고, 아마도 그래서 더 많이 돌아갔을까 싶은 염전 노동력 착취 피해자들을 2021년에도 염전에서 또 만났다.
 
지역사회로 돌아가자는 설득 따윈 씨알도 안 먹힐만큼 촘촘하게, 어둠에 베인 상처로 가득한 사람들. 노숙인 시설에서는 담배도 휴대전화도 못쓰게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복지관에서는 유치한 종이접기만 시키는 데다가 또래 친구도 없었다는 이야기들, 술 마셨다고 퇴소당해 결국 노숙하다 보니 소개소타고 다시 이곳에 왔다는 사람들, 너 따위가 감히 우리를 ‘구조’할 수 없을 거라는 서슬 퍼런 경고의 말들속에서 나는 마땅한 핑계도 댈 수 없었다.
 
물론 나의 탓만이 아님을 안다. 이 사람들의 빼앗긴 권리를 보장해야 할 진짜 주체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말라가는 논밭에 서서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혀를 차기보다 얼마 안되겠지만 물 한 바가지라도 가져다 붓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활동가가 되길 선택했다.
 
“내가 장애자요? 내가 왜 염전 나가요?”라며 지원을 거부하던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 이면에 숱한 실패 경험과 사회의 무관심이 있었음을 알기에 대단한 약속은 할 수 없었지만, 매서운 추위에 당신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우리 함께 얼어붙어 있자는 약속으로 두 달간의 염전 행 가운데 한 사람이 조심스레 먼저 손을 들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엔 다음의 두 명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왔으며, 마침내 오래도록 기다렸던 어떤 한 사람도 올해 목포에서 자립의 기쁨을 누렸다.
 
↑ 아저씨들과 술을 먹지 않기로 약속한한 날, 기념촬영
 
지난 이 년, 염전 노동력 착취 피해자였던 아저씨들은 각자 온전한 자신만의 자립 주택을 얻었고, 요즘은 원하는 데로 복지관과 평생교육원, 자활센터와 직업훈련학교로 낮 활동을 간다. 치과 치료를 마쳤고, 이성 친구도 생기셨다. ‘피해장애인’이 아니라 ‘자립당사자’로 오늘도 근사한 매일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밤은 낮보다 길다. 90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고, 등록되지 않는 경계성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서비스마저도 누릴 수 없어 빈곤한 자원 활동으로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 척추협착이 있는 아저씨가 사는 4층의 영구임대주택엔 일 년째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고, 다른 공공임대 입주는 하늘의 별 따기라 못 먹는 감만 매번 찔러보고 찔러보길 2년째. 무엇보다 싹 난 감자처럼 학대 현장에서 오랜 시간 살아내느라 메말라버린 아저씨들의 다소 거친 성정 또한 늘 여러 거절의 이유가 되고 핑계가 된다. “적응을 못하시네요”라는 말 뒤로“서비스가 당사자에게 맞추어 제공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답변을 매섭게 붙인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 현실들도. 그렇게 여전히 2023년에도 우리들의 세상은 썩 어둡다.
 
그러나 아저씨들은 이제 더 이상 염전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자주 실패하지만, 이젠 그 경험들이 흉터가 아닌 굳은살이 되어 더 단단해지고 있다. 아저씨들은 이제 스스로를 돌볼 면역을 얻었고, 황제펭귄의 허들링처럼 우리 주위를 단단하게 둘러싸고 온기를 전해준 ‘사람들’ 덕분에 더는 추워도 춥지 않다.
 
이제는 벌써 일 년 차가 되는 활동지원사 선생님, 아저씨가 오늘도 살림을 다 뒤집어 놓았다거나 담배를 너무 많이 태운다며 이런저런 푸념 하시면서도 통화 말미엔 꼭 “우리가 이해하고 해야지. 이것이 우리 일인데요” 해주시니 이제는 조금 더 세심한 부탁도 편히 드릴 수 있는 사이가 된 듯하다.
 
어떤 통합사례 담당자는 이제 활동가를 보면 자연스레 “아저씨들은요?”하고 묻는다. 주민센터에서의 연락은 늘 설렌다. 무언가 또 작고 소중한 후원 물품을 또 얼마나 세심히 준비해 주었을지. 처음 아저씨들의 반찬 내동댕이 사건을 겪고도 “입에 안 맞으셔서 그러실 수 있죠”라며 웃어주었던 그 마음 그대로, 지금도 함께 염려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 생겼다.
 
아저씨들이 평생교육원에서 멋진 시화 작품을 가지고 오실 때, 서툰 솜씨지만 일요일엔 요리사가 되어 밥상을 차려주실 때면 푼수처럼 여기저기 자랑을 멈추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잊지 않고 감사와 감동의 답장을 보내주시는 이 사건 피해자 대리인 변호사님들과는 활동가 연대와 조금은 또 다르지만 끈끈하고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승소는 아득하더래도 승리는 매일 할 수 있는 일임을 공감하는 법률가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법정 밖에서도 유의미한 판례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어려운 현장이지만 그래서 늘 즐겁다. 함께걸음이 400번 독자를 만났던 그 시간만큼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밝아지고 있음을 목격했기에 이 어려움도 언젠간 추억이 될 거라고 믿는다. 또한 이 글을 읽어주실 다른 영역의 선후배 활동가들의 열심과, 함께걸음이 비추었던 수많은 페이지가 모여 장애계 곳곳에 작은 동 틔움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 늘 든든한 희망이 된다. 글쓴이가 소속된 동행이라는 단체의 지향도 함께걸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무려 함께걸음 400회 창간 특집에 기고할 영광을 주셔서 오늘은 이 일로 하루 종일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 염전에서 '찾아가는 인권교육'을 진행 중인 모습
 
마지막으로, 염전 노동력 착취 피해자들의 따스한 한낮을 기다리는 이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에 혹 작은 발자국이라도 함께 걷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동행을 통해달라고 조심스레 홍보도 해본다(동행은국가와의 재정 독립성을 위해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은 이 밤을 함께 헤쳐나갈 마피아 조직원들 수가 ‘물이 바다 덮음같이’ 많아지길 바라며 여전히 권리의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당사자분들이 가질 불안함 대신 소소하되 확실한 안전함을 자주 선물하려고 그 곁을 오늘도 여전히 함께 걷고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기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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