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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장애인 권익옹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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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2월 8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이하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새해 초에 공포됨으로써 향후 시행을 앞두게 되었다. 이번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은 1995년 12월 최초 제정된 「정신보건법」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17번째의 법률 개정이며, 법률 명칭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변경된 2016년 5월의 전부개정안을 기준으로 한다면 10번째의 개정에 해당한다.
 
 
길지 않은 법률 개정 이유 그러나 지난했던 법률 개정 과정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국가의 기본계획 또는 시ㆍ도 지역계획의 내용에 우울ㆍ불안ㆍ고독 등으로 정신건강이 악화될 우려가 있는 사람의 발견 및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과 재난 심리지원이 포함되도록 하고, 실태조사 항목에 우울ㆍ불안ㆍ고독 등 정신건강 악화가 우려되는 문제를 포함하도록 하는 한편, 일시적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정신질환자 등에 대하여 임시로 보호하면서 동료지원인 상담 등을 제공하는 동료지원쉼터에 대한 설치ㆍ운영 근거를 마련하고, 정신질환자 등이 정신건강증진시설에 입원ㆍ퇴원 등을 할 때 정신질환자 등의 의사가 충실히 전달되고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조력인 제도를 도입하며, 동료지원인의 양성 및 활동지원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ㆍ보완함.”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예시된 개정법률은 이번 법률 개정의 이유에 대하여 위와 같이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법률 개정 이유만을 놓고 보면 이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지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정신질환 고위험자의 조기 발견, 정신질환자 동료지원쉼터 설치, 절차조력인 제도 도입, 동료지원인 양성 등 상식적으로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이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매우 험난하고도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었다. 이번 법률 개정안의 출발점부터 살펴보자. 이 개정안은 단독 법률안이 아니며 여덟 개의 법률안이 병합심사되어 보건복지위원회 대안으로 정리된 것이다. 이 여덟 개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초반인 2020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발의된 법률안들이다. 즉, 2년이 넘게 발의된 여러 개정안들을 한꺼번에 통합·조정한 결과물이다.
 
이들 여덟 개의 개정 발의안들 가운데 정신장애계가 특히 주목하고 입법운동에 집중한 것은 2023년 2월 남인순의원과 인재근의원이 대표발의한 두 개의 법률안이었다.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 당사자와 가족, 변호사, 학자, 전문인력, 장애인권활동가 등이 참여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입법추진위원회에서 마련한 「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안이 인권과 서비스의 두 갈래로 내용이 나뉘어 각각 인재근의원과 남인순의원을 통해 발의되었고, 이 전면개정안의 전체 내용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살아남아서 이번에 입법화가 되었다.
 
위의 법률 개정 이유의 두 번째 단락에 담겨있는 동료지원쉼터, 절차조력인, 동료지원인과 더불어 공공후견 서비스가 바로 입법화에 성공한 극히 일부의 내용에 해당한다. 이것 이외에 이 전면개정안의 나머지 내용은 여전히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며 21대 국회가 종료되면 법안이 자동폐기될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극히 일부의 내용’조차도 입법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보건복지위원회의 법률심사를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에서 기획재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제2법안심사소위로 이송되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입법추진을 주도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된 시위대가 8월의 폭염 속에서 거리행진을 감행하고 대한의사협회를 찾아가 규탄 집회를 열었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가운데, 쉼터의 명칭을 포함하여 법안의 내용 일부를 수정하는 타협안에 대한 의견이 좁혀지면서, 이 수정안은 제2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되어있었던 2천여 건의 다른 법안들을 뒤로 하고 극적으로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어 마침내 2023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의 의미
 
애초에 「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안을 추진했던 입장에서 단 네 개의 조항만이 입법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부정적으로 본다면 기대에 비해 매우 아쉬운 결과이고 또 입법추진 활동에서 부딪혔던 의료권력과 정부(기획재정부)의 강고한 벽 앞에서 운동역량의 한계가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입원제도 개선을 포함해서 사회적 쟁점이 될 수 있거나 국가 예산이 동반되는 여러 내용들은 아예 보건복지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점에서 이번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우선 내용적으로 보면 이번 개정안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동료지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료지원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법적인 정의가 새롭게 만들어진 가운데 동료지원쉼터 설치와 동료지원인 양성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인재근의원의 대표발의안에 담긴 ‘정신질환자 동료지원센터 설치’ 규정이 함께 입법화되지 못한 것은 동료지원인의 주 활동 무대를 법적으로 확보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정신장애계가 동료지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동료지원을 중심으로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 지역사회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동료지원 중심의 지역사회 서비스 체계 구축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룰 비롯한 국내외의 많은 정신장애 관련 기관들이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권장해 온 인권기반 서비스 프로그램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사업 형태로 소수이지만 동료지원센터 운영을 지원해오고 있었다.
 
물론 「장애인복지법」에 ‘장애동료 간 상담’과 시행령에 ‘장애동료 상담전문가’에 대한 규정이 이미 있지만 정신장애 영역에 있어서 동료지원은 단순히 정신장애인 간의 동료상담을 뛰어넘어, 향후 정신위기대응시스템, 절차조력과 같은 의료보건 영역과 장애인활동지원, 근로지원 등과 같은 지역사회 인적 서비스 영역에서 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위한 서비스 제공자로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즉, 정신장애인을 위한 공공의 일자리 마련 및 확대라는 측면에서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의 역할은 다른 장애 영역과는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차별성을 갖는다.
 
동료지원의 법적 근거 마련은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의 흐름을 놓고 볼 때도 의미가 있다. 앞서 이번의 법 개정이 1995년 12월 최초 제정된 「정신보건법」을 기준으로 17번째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법률 명칭이 변경된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개정이 정신질환 관련 입원제도나 보건의료 관리·운영 체계를 내용으로 이루어졌지, 복지를 중심으로 개정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16년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7년 만에 비로소 복지의 내용이 추가된 셈이다.
 
정신장애인 정책은 보건의료와 지역사회 복지의 두 바퀴가 제대로 자리 잡아 굴러가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사회 복지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지원체계의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신장애나 정신질환 관련 예산이 거의 대부분 보건의료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은 본격적인 지역사회 복지 강화의 신호탄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병원과 집 이외에 쉼터라는 최초의 지역사회 서비스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이제 마련된 것이다.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은 내용뿐만 아니라 장애운동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개정안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번 입법운동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보여준 입법 활동의 주도성이 바로 그 지점이다. 지난 2016년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비롯해서 그간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당사자단체들이 깊이 참여했던 법 개정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법 개정운동은 그 주도성의 강도와 활동의 조직적인 측면에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이전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 전면에 나서서 주도적으로 법 개정운동을 이끈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며, 그러한 당사자 주도의 법 개정운동이 일정한 성공의 경험을 안겨 주었다는 것 또한 매우 고무적이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정신장애인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투쟁력과 대중성을 지닌 당사자 운동이 태동하고 있다는 강한 기대감과 함께, 투쟁을 통해 축적된 당사자들의 자신감이야말로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아쉽게도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포함되지 않은 전면개정안의 내용 대부분은 아마도 21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자동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뒤집어서 말한다면 21대 국회에서 입법화하지 못했던 모든 정책 아젠더들이 고스란히 내년 6월 이후 22대 국회에서 해결해야할 과제로 넘어간다는 뜻이 된다.
 
작년 서현역 사건 이후 정부가 대안으로 꺼내 들고 있는 사법입원제도와 정신장애계가 주장하는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및 행정입원 단일화 간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이 예정되어 있고,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이 2021년 8월에 발표된 이후 탈시설에 대한 별도의 입법까지 추진되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정신장애인 탈원화(탈시설) 로드맵’이 속히 발표될 수 있도록 정부를 추동해내야 하는 과제도 있으며, 주거, 소득, 일자리, 활동지원 등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기초 영역에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지 기반을 만들어내는 일도 매우 시급하다.
 
더군다나 이 모든 과제들이 진공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막강한 정신의료 권력집단과 정신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재정당국, 그리고 황색 저널리즘에 빠져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스티그마를 확대·재생산해내는 언론 등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거대권력들에 맞서, 가장 열악한 인권의 사각지대를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더 이상 주눅 들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새로 제정될 당시에도 그랬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서비스는 신체장애인을 위주로 설계된 활동지원 서비스 이외에는 전무했으며, 정부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모두 가족에게 책임 지운 채 뒷짐 지고 있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법」 제정 10년째가 되는 올해, 순수하게 발달장애인만을 위해 책정된 예산이 3,500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발달장애인 예산까지 합한다면 5,000억 원 이상 될 것이 틀림이 없다.
 
물론 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조건이 발달장애인과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이 더 이상 시설에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지난 10년간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발 벗고 나섰듯이,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 당사자와 가족이 운동의 주체로서 전면에 나서서 싸운다면 10년 후인 2034년에는 지금과는 무척 다른 사회환경이 분명히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무적인 것은 이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당당히 나설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2024년은 정신장애인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정신장애를 둘러싼 수 많은 과제들을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운동을 통해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작성자글. 김치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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