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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고 일하는 곳, 캠프힐

캠프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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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버튼 캠프힐 전경 ⓒKimberton Hills 홈페이지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특수교사로 일하며 발달장애 학생들과의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캠프힐 운동을 옆에서 지켜봤고 영국 마운트 캠프힐에서 단기 코워커로 1년을 보낸 뒤, 현재는 미국 캠프힐 빌리지 킴버튼힐스에서 4년째 단기 코워커로 일하며 캠프힐 아카데미 학생으로 Social Therapy를 공부하고 있어요. 캠프힐과의 인연이 시작된 이후로 이 만남이 제 삶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그리고 제가 현재 캠프힐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일하는지 그간의 경험과 배움을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대학교 졸업 무렵,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학부 교수님께서 일본에서 한 대안학교(키노쿠니학교)를 소개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셨다. 그 시절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동기 선·후배들이 임용시험 합격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기에, 교수님은 꼭 임용 시험 합격만이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라는 걸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그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또 다른 책은 없나 하고 대안교육 도서들을 모아놓은 곳을 다시 찾았다. 책들을 훑어보다 눈에 확 띄는 노란 표지에 귀여운 필체로 ‘캠프힐에서 온 편지’ 라고 적힌 작은 책을 하나 발견했다. ‘캠프힐이 뭐지?’라며 첫 장을 넘겨 보았다. 그때를 계기로 내 삶 속에 슈타이너학교, 발도르프교육이 들어왔고, 캠프힐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캠프힐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을에서 가정의 구성원이 되어 같이 살고,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며 함께 사는 곳’ 이었다. 자세한 건 몰라도 막연히 그렇게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도 같이. 그렇게 양평 캠프힐마을에서 프로그램 운영을 도우며 캠프힐의 시작 시기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캠프힐의 삶이 실제 어떤지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래 고민했지만 다른 선택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일단 해외 캠프힐에 코워커로 지원해보기로 결심했고, 마운트캠프힐로 가기 위한 과정을 하나씩 밟아 갔다. 기관의뢰, 지원서 작성, 인터뷰, 비자신청 등 5개월의 준비시간 끝에 2019년 3월 영국 마운트 캠프힐에 도착해 1년간 단기 코워커로 지낼 수 있게 됐다.
 
캠프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성인기 캠프힐 기준) 제목에서 붙인 바와 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가정의 구성원이 되어 한집에서 살고 작업장에 서 함께 일하는 곳이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영향을 받았고 1940년,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스코틀랜드로 이주해 온 오스트리아 소아정신과 의사 칼 쾨니히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학령기 장애 학생을 위한 학교 형태의 캠프힐이 스코틀랜드 에버딘 지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성장에 따라 학교를 졸업한 이들을 위한 캠프힐이 필요하게 됐고 그렇게 차츰 성인기를 보내는 캠프힐들이 생겨났다. 첫 캠프힐이 시작되고 80여 년이 흐른 지금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100여 개의 캠프힐이 운영되고 있다.
 
캠프힐은 기본이 되는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한다. 대부 분 캠프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구성원의 특징 이나 나이대, 주요 활동, 지역 특성, 주변 환경 등에 따라 각각의 특징들이 있다. 특히 구성원들의 나이대 에 따라 형태를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학령기 장애 학 생들을 위한 학교 형태의 캠프힐(미국 The Camphill School, 스코틀랜드 Camphill School Aberdeen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장애 청년들이 학교 졸 업 후를 대비해 자조기술과 직업기술을 배울 수 있는 전환기 형태의 캠프힐(영국 The Mount Camphill, 미국 Triform Camphill, Beaver Farm 등) 20대부터 80대 이상 다양한 연령대의 성인 장애인들이 작업 장 활동을 중심으로 살고있는 성인기 캠프힐(다수의 캠프힐) 그리고 노년기 성인 장애인을 위한 캠프힐( 미국 Ghent)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오늘은 캠프힐 이야기의 시작으로 성인기 캠프힐에 속하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캠프힐 빌리지 킴버튼 힐스(Camphill Village Kimberton Hills, 이하 킴버 튼 캠프힐)가 어떤 곳인지 간략하게 소개하며 캠프 힐의 삶 속 이야기로 차츰 들어가 보려고 한다. 
 
△ 시카모어 하우스 전경
 
캠프힐에는 누가 사는가?
캠프힐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용어는 기관이나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킴버튼에서는 장애인들을 빌리저(이하 빌리저), 비장애인을 코워커(이하 코워커)라고 일컫는다. 킴버튼에는 약 40명의 빌리저와 50여 명의 코워커, 그리고 코워커들의 자녀 10여 명 등 총 100여 명이 살아가고 있다. 코워커는 이 곳에서 지내는 기간, 맡은 역할과 책임에 따라 장기 코워커와 단기 코워커로 구분할 수 있다. 보통 6개월 혹은 1년 정도 이곳에서 일하며 집안일과 작업장 일을 하기 위해 자원 활동을 오는 코워커를 단기 코워커라고 한다. 매년 8월 말이면 대거 변동이 있는데 세계 곳곳에서 캠프힐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연령의 젊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하우스나 작업장 운영, 재정, 시설관리, 행사, 보건, 인사 등 기관 운영에 필요한 역할을 맡으며 기관의 주요 사안을 함께 회의하고 결정하는 역할과 책임을 지는 코워커들을 장기 코워커라고 한다.
 
캠프힐의 가정은 어떤 모습인가?
개인적으로 캠프힐에 사는 코워커와 빌리저들에게 물리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 가정생활이라고 생각한다. 킴버튼 캠프힐 안에는 총 18채의 집이 있다. 이 가운데 12채가 빌리저와 코워커가 함께 구성원이 되어 살고 있고, 나머지 집에는 은퇴한 코워커들이 빌리저와 함께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캠프힐에 필요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시카모어 하우스(Sycamore House) 에는 총 7명이 함께 살고 있다. 하우스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두 명의 장기 코워커가 있고 (하우스 홀더), 나를 포함한 단기 코워커 2명, 그리고 3명의 성인 빌리저가 우리 집의 구성원이다. 집의 형태는 평범한 가정집을 생각해 보면 떠오르듯이 개인 방, 주방, 식당, 거실, 세탁실, 화장실, 창고 등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고 휴식하는 공간이 있고 또 개인 시간을 보내는 독립공간이 있다.
 
△ 시카모어 하우스의 거실
 
주중 흐름으로는 아침 7시 30분에 다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각자 오늘 있을 일들을 내다 본다. 오전에 어디에 가서 일하고 점심은 어디에서 먹는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오늘 기대되는 특별한 일이 있는지, 누가 병원에 갈 계획이 있는지 등 서로 일정을 공유하고 또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내길 응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식사 후 오전 8시 무렵이면 빌리저와 코워커 모두 각자 일정에 따라 워크샵으로 일을 하러 나선다. 8시 30분에 대부분의 작업장이 일을 시작해 12시에 마친다. 그리고 각자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한 뒤 2시 30분부터 오후 작업장에 가서 일하고 5시에 일과를 마친다. 그리고 저녁 식사 자리에 다시 모여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눈다. 저녁식사 이후에는 다같이 식탁 정리를 하고 컬러링, 책 읽기, 음악 혹은 라디오 듣기 등 빌리 저들이 각자만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한다.
 
주말에는 작업장 일정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가정에서 토요일 오전은 집안 대청소를 한다. 빌리저들도 침구 정리와 먼지 닦기, 청소기 돌리기 등 자기 방 정리를 하고 코워커들은 점심 준비와 거실, 화장실, 창고 등을 청소하며 집 안 구석구석 한 주간 쌓인 먼지를 털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요일 저녁 시간은 Bible Evening이라고 해서 식사 전 한 주 돌아보기와 식사 하기, 성경 읽고 나누기 등 보통 식사와는 조금 다르게 시간을 보낸다. 또 주말에는 대부분 가정에서 사람들이 하고 싶은 활동에 따라 휴식하기, 산책하기, 도서관가기, 공원가기, 외식하기, 영화관람하기, 쇼핑가기, 친구나 가족방문하기 등을 한다.
 
△ 모자이크 작업장 내부
 
캠프힐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가?
킴버튼 캠프힐은 성인기 캠프힐이므로 코워커와 빌리저들의 주된 활동은 이곳에 있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작업장을 총괄 운영하는 리더(보통 장기 코워커)가 있고 리더와 함께 코워커, 빌리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코워커와 빌리저 100명 모두 각자만의 고유한 요일별 스케줄이 있다. 어느 누구도 똑같은 스케줄이 없다. 현재 킴버튼에는 도예, 직조, 수공, 목공, 모자이크, 카페, 베이커리, 각 하우스 등 실내 작업장이 있고, 농장, 목장, 허브가든, 과수원 Estate(환경 정비) 등의 실외 작업장이 있다. 나는 주로 모자이크 작업장과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다. 모자이크의 경우, 나와 빌리저가 같이 작업할 그림을 정하고 밑그림을 그리며 실제 유리나 타일을 이용해 만드는 일련의 활동을 함께 한다. 캠프힐에 오기 전에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생소한 작업이었지만 작업 장 리더의 도움으로 작업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자이크 작업장 입구 외벽에 모자이크 벽화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모네의 ‘수련’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을 모티브로 해서 밑그림을 그렸고 그걸 벽화로 옮기기 위한 작업 중이다. 캠프힐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와 인연이 없었을 모자이크 작업!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여전히 어색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시간이 흐르면서 쌓여가는 경험 속에서 일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가는 중이다. 캠프힐에서 바라보는 일의 의미 그리고 이곳에 사는 코워커와 빌리저들이 작업장에서 어떻게 함께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음 호에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 희남과 Beth Bradley가 함께 만든 모자이크 작품(Umbrella Lady)
작성자글과 사진. 김희남 미국 킴버튼 캠프힐 단기 코워커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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