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자폐인들이 사회에서 한 자리를 했으면 해요" 박현빈 신학박사 > 사람 사는 이야기


"많은 자폐인들이 사회에서 한 자리를 했으면 해요" 박현빈 신학박사

사람 사는 이야기

본문

 
자폐성장애 당사자로서 최초의 신학박사
박현빈 박사(43세)는 『켈트 영성의 관점에서 본 로이드-존스』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지난 2월 나사렛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박사학위 취득 소식은 그가 국내에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켈트 영성에 관해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 당사자로서 신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한 첫 번째 사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눈 맞춤, 장시간 대화 힘들어 대인관계 어려움 겪어
친구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이 굳게 닫히기도 “제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거를 어려워해서요. 양해를 조금 부탁드립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박 박사는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과 주변을 맴돌았고 대화를 나누는 내내 간헐적으로만 눈을 마주쳤다. 아스퍼거 증후군 당사자인 그는 특히 눈맞춤과 장시간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부터 박 박사는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역사에 깊은 흥미를 느껴 하루의 대부분을 역사책을 보며 보냈고, 역사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멈추지 않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모습에 부모는 “다른 사람 이야기도 좀 들어야 한다”며 종종 타이르기도 했다.
 
“눈을 안 맞춘다고 ‘나랑 대화하기 싫냐’, ‘일부러 시선을 피하냐’는 오해를 받았어요. 역사 얘기만 하니까 친구들이 싫어하기도 했고요. 친해지고는 싶은데 방법을 몰랐어요. 결국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죠.”
 
박현빈 박사는 담담하게 어릴 적 기억을 꺼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숙제도 같이 하고, 밥도 함께 먹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제가 배탈이 나서 힘들어할 때 그 친구가 애들이랑 같이 저를 낄낄거리며 놀리고 모른 척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가 트라우마가 생겼나 봐요. ‘너무 가까이 지내면 내가 더 상처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제가 사람들과 담을 쌓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친구라도 너무 깊게 친해지지는 말자’라고요.”
 
△ 이야기하고 있는 박현빈 박사
 
중학생 때 영국으로 유학
우연히 접한 컴퓨터는 도피처이자 자신만의 소통방법
그러다 중학교 시절, 그는 유학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어려웠지만, 한국에서의 경험에 비하면 한결 나았다. 다문화 가정이 많은 동네였고, 그랬기에 자신의 다름이 그 안에서는 조금은 덜 부각되는 것처럼 느꼈다.
 
“같이 학교 다니던 친구들과 집에서 감자칩을 먹으며 축구를 보곤 했어요. 물론 거기서도 힘든 일이 없진 않았지만, 괴롭힘을 당하면 나서서 도와주는 친구도 있었고요. 뭔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랄까요. 더 열심히 적응하려고 애썼던 시기였죠.”
 
영국에서 만난 선생님은 따뜻한 관심으로 그를 도왔다. 영어 발음을 지도해주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하나하나 알려줬다.
 
“제 생일이면 학생들을 모아 생일파티도 열어주셨고요.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자주 기회를 만들어 주셨어요. 저에게는 할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되게 고마운 분이시죠.”
 
논문을 작성할 때도 국내에는 켈트영성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대부분의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분석해야 했는데 이때 영국 유학 당시 익힌 영어 실력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 중학생 당시 박현빈 박사
 
“사실 영국은 저한테 도피처 같은 곳이었어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만큼 추억도 많아요. 거기는 ‘우리는 멍석만 깔아줄 테니 나머지는 네 몫이야’라는 문화가 강해요. 그래서 스스로 해야 하는 게 많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받아쓰기 과제를 컴퓨터로 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박 박사는 처음 컴퓨터를 접하게 됐다.
 
“너무 신기했어요. 자료나 데이터처럼 구조화된 걸 좋아하는 제 성향과 잘 맞았죠. 이후에는 컴퓨터실에서 자주 연습했고, 자연스럽게 문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졌어요.”
 
컴퓨터는 그에게 또 다른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직접 말을 나누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그에게,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은 한결 편안한 방식이었다.
 
신학 분야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신학자인 아버지의 영향
켈트영성 관심은 장애 경험에서 비롯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뚜렷한 목표 없이,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선택한 전공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흥미가 생겼고, 박사 과정까지 고민하게 되던 시점에서 신학자였던 아버지는 자신의 길을 이어 신학자가 돼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버지께서 신학을 공부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저도 모태신앙이고, 교회는 꾸준히 다녔지만, 신학은 낯선 분야였거든요. 고민이 컸어요. 그래도 아버지의 길을 잇는 것도 의미 있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죠.”
 
△ 학위수여식 당시 박현빈 박사(사진제공. 박현빈)
 
처음 접하는 학문 분야였기에 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문서 중심의 연구는 그에게 잘 맞았다. 신학 안에서도 다양한 연구 분야가 있지만, 박 박사가 켈트 영성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장애 경험이 있었다. 박 박사는 “켈트 영성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화적인 관점, 음악적인 관점, 공동체에 대한 관심,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켈트 영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일상적인 실천이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 교회 가기를 두려워하거나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사회복지정책연구원 취직
교육을 맡아 책임감도 느껴
박사학위 취득 후 박 박사는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에서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재한몽골학교에서 발달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경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고, 학습 속도나 관심사도 제각각이지만, 박 박사는 각자의 수준에 맞춰 조금씩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
 
학생들에게 책의 내용을 찾아주는 일부터 문서 정리나 학습 자료 준비 같은 소소한 일까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학생들의 개성도 각양각색이다. 글씨 쓰는 걸 좋아하는 감성적인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자기 글씨체를 만들 정도로 표현에 집중한다. 또 어떤 학생은 ‘1등이 되고 싶다’ 는 마음으로 공부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박 박사는 그 모습들을 조용히 지켜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원한다.
 
“물론 잘하면 좋겠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꼈으면 해요. 꼭 1등이 아니어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보람을 느끼면 좋겠다 싶죠.”
 
많은 자폐인들이 사회에서 당당히 살 수 있었으면
대면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수 있음에도 박 박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 이유는 분명했다.
 
“모든 자폐인들이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되기를 기대할 순 없잖아요. 피아노 천재나, 박사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고요. 그런 기대가 당사자에게나 주변에 더 부담이 되잖아요.”
 
그는 자폐 당사자 모두가 사회 속에서 차별 없이 자신만의 자리를 찾고,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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