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을 위한 복지는 소외되는 이들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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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2세를 위한 육아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가 이 세상에 있을까? 자녀의 탄생은 그 자체로 부모의 존재이유가 되고, 이전보다 더욱 굳세게 살아가야 할 최고의 인생가치가 된다. 그게 바로 ‘2세’라는 의미인 것이다. 최근 한 대기업의 광고 영상으로 주목을 받은 한 가정이 있다. 우리는 광고의 내용이 아닌, 그 가족의 ‘오늘’을 만나고 싶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부부의 육아과정은 어떤 시행착오가 있고, 어떠한 남모르는 사연들이 실제 존재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2% 부족할 때’라던 예전 어느 광고와 같이, 행복 가득한 그들에게는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줄 2%의 도움이 항상 필요함을 확인하게 됐다. 조현영 씨와 최정일 씨 부부, 그들에게 지상 최고의 선물인 13개월 된 아들 최유성 군이 이번호 주인공이다.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함께걸음>이 그들을 만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는 한 편의 광고였다. 그 인연의 연결점을 새겨두고자, 광고의 표제어를 그대로 소제목으로 삼는다. 만남의 시간 내내 엄마와 아빠한테 얻은 실감은 그 한마디가 정답이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영상 37도 정도는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했던 2018년 여름, 유성이네 가족을 만나러 간 날은 서울 기온이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던 며칠 후였다.
오후에 들어서면서 이미 35도를 넘어서고 있었고, 영상 35도가 차라리 살 만하다는 넋두리가 터져 나올 만치의 구름 한 점 없는 뜨거운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승강기 없는 빌라 건물의 계단을 올라 4층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건 유성이었다. 실내로 들어섰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유성이는 아빠의 지갑 속 내용물들을 모두 다 끄집어내고 있었다. 거실 매트 바닥에 앉은 유성이 발 옆에, 인공지능 스피커라는 귀여운 형태의 클로바(Clova)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음성으로 손쉽게 모든 걸 제어한다는, 생각했던 것보단 좋은 성능의 제품이었다. “TV를 켜줘”부터 “공룡울음소리 들려줘”까지 모든 지시를 충실히 실행했다. 하지만 유성이한테는 신나게 밀어내면서 하루 종일 굴릴 수 있는 원통형의 장난감이었다.
“저는 사람의 형태까지는 보이는데요. 얼굴까지는 자세하게 못 봐요. 지금 앞에 앉아계신 건 보이고 안경을 쓰고 계시네요. 하지만 눈코입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인이 안 되는 시력입니다.”
아빠인 최정일 씨는 최소한의 바로 앞 주변상황은 분별할 수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선천성 백내장이라서, 무언가를 봤다는 기억은 없이 지금까지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왔단다. 그런데 엄마인 조현영 씨는 아주 나쁘기는 했지만,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읽으며 일상생활을 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섯 살 때인가? 소꿉놀이를 하는데 저기 굴러간 거를 집어오라고, 거기 있으니까 가져오라고 했는데 제가 그걸 못 찾더래요.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서 병원에 데리고 다니셨다는데, 당시 병원에서는 계속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대요. 그래서 그 상태로 그냥 살았던 거죠. 돋보기안경 쓰고, 항상 교실 맨 앞자리가 저의 지정석이었어요. 칠판이 안 보여서 쉬는 시간마다 지우기 전에 나가서 적거나, 친구들이 필기한 걸 빌려서 보는 식으로 공부를 했죠.”
그는 점점 안 좋아지는 시력이 진행성이라는 걸, 성인이 된 이후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RP라고 말하는 망막색소변성증임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제가 오빠랑 연애할 때만 해도, 사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결혼식 전후부터 지금 상태와 비슷하게 아주 서서히 나빠졌어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건 느끼지 못하지만, 작년에 봤던 걸 다시 봤을 때는 훨씬 나빠졌다는 게 실감이 났죠. 지금은 빛 정도, 어둡고 밝다는 정도만 구분하는 상태예요. 밝을 때는 앞에 누군가, 아니면 뭔가가 있다는 형태 정도만 보여요.”
엄마로서 조현영 씨가 가장 아쉽고 안타까워하는 건 단 하나, 아들 유성이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고 했다.
“눈이 더 나빠졌다는 걸 느낄 때마다, 사실 한동안 되게 우울해지거든요. 제게 조카가 있는데, 지금보다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을 때 봤던 조카의 얼굴은 생각이 나요. 그런데 유성이 얼굴은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아…, 얼마나 얼굴이 보고 싶었는지…. 다들 굉장히 미남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너무 궁금한 거예요. 우리 유성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칫 시작부터 무거워질 것 같아 화제를 바꿨다. 결혼을 한 부부가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다가, 2세를 낳고 난 뒤부터 거의 떠올리지 못하는 게 바로 연애시절의 추억이다. 아이 하나에 울고 웃으며 생활하다 보면, 아이의 육아와 현실의 생활 이외엔 모든 생각을 접어두게 되는 것이다. 두 분이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느냐 물으니, 두 사람은 참 오랜만에 떠올리는 화제라는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가 떠오른 듯 웃음부터 터뜨렸다.
“2011년에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로 남편이 입사를 했어요. 거기서 처음 저를 보자마자, 단번에 반해서 저를 계속 따라다녔거든요.”
독백 같은 엄마의 발언이 사실이냐고 아빠한테 묻자, 아빠 최정일 씨는 정말 그랬다고, 맞다면서 크게 웃음 지었다. 그럼 얼마나 따라다녔냐고 계속 물으니, 아빠의 걸쭉한 입담이 시작됐다. 아빠의 무용담(?)을 듣는 엄마는 내내 ‘호호호’였다.
“따라다닌 거는 대략 한 달 반 정도? 기간은 오래 걸리진 않았는데, 작전에는 성공했지만 승인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요. 최종 승인은 한 달 반 후에 나왔어요. 날짜까지 기억하거든요. 2011년 9월 16일에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가면서, 동작대교 위에서 승인을 받았어요. 손은 언제 처음 잡았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당시 저의 집은 의정부였고 저의 신랑은 인천이었는데, 정말 끝과 끝만큼 멀었잖아요. 사무실이 그때는 봉천동에 있었는데, 오빠가 1호선과 환승하는 창동역까지 매일 데려다 줬어요. 사귈 때도 아니었는데, 정말 매일 저의 귀가를 챙겨준 거예요. 뭐라고 할까? 한결같이 저한테 잘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귀어도 될 것 같은….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럼 우리 한번 사귀어 봐요’라고요.”
정안인들은 모르는 세계
유성이의 관심은 한 지점에 집중되고 있었다. 집에 찾아든 처음 보는 방문자가 가져온 물건들이 모두 신기했던 것이다. 커다란 배낭형 가방(백팩), 앞에 놓인 작은 녹음기 2대, 시커먼 카메라, 뭔지도 모를 촬영장비들이 유성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엄마 팔을 꽉 붙잡은 유성이의 눈빛은 엄마한테 이런 부탁을 하고 있었다. ‘엄마, 저것들 만지고 싶은데 혼자는 못 가니까, 엄마가 나랑 같이 가 줘.’
“솔직히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희 둘 다 불편하다 보니까, 혹시 우리 아기도 불편함을 가지고 태어나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이 제일 컸거든요. 그래서 정말 혼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오빠는 항상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죠. ‘설사 그런 아이가 태어나도 우리가 먼저 경험했지 않냐. 우리는 더 잘 키울 수 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임신 중일 때 입덧도 거의 안 했어요.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정말 심하게 고생했다던데, 다행히 저의 유성이는 너무 순하게 잘 있어줘서 평탄하게 무사히 낳게 됐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그 무엇보다 안심이 됐고, 지금까지 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그때그때마다 해야 하는 단계를 잘 넘어가 줘서 아들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정말 이런 아기가 어디서 왔을까. 이런 천사를 어디서 이렇게 보내주셨을까. 내가 어떻게 낳았나. 모든 게 너무 고마워요. 우리 아들, 고마워.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나고 잘 자라서.”
태어난 아기는 행복 그 자체가 분명하지만, 모든 게 웃음꽃으로만 펼쳐지진 않는다. 모든 엄마 아빠들은 다 안다. 갑자기 닥치는 상황은 말 그대로 생전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이다. 의도치 않은 급박한 상황의 영순위는 아이가 갑자기 심하게 아플 때다. 1년에 한두 번씩은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게다가 항상 한밤중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 실은 그대목이 가장 궁금했었다. 엄마와 아빠의 ‘불편함’ 속에, 그 긴박한 순간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듣고 싶었던 것이다.
“아…, 정말 많았죠. 저희는 이동이 자유롭지 않으니까, 즉각 대처할 방법을 찾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의 복지콜 차량이 있지만, 그건 신청을 해도 바로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서 마냥 기다려야 하고, 그래서 택시를 타러 같이 나가도 밤에 택시를 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응급실에 가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라, 저기로 가라’ 해도 마음까지 급한 상황에선 모든 게 힘겨울 뿐이에요.”
응급실 같은 상황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도 ‘엄마의 역할’은 모든 게 벽과 같단다. 아기한테 약을 먹여야 할 때, 숟가락에 따라야 하는 몇 밀리(ml)의 용량을 가늠할 방법이 없다. 그건 가장 기본적인 분유를 먹일 때도 마찬가지란다. 아빠가 있을 때는 물의 양을 맞추는 걸 도맡아 해주는데, 혼자 해야 할 때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며 한숨이 이어진다.
“꼭 제가 밖에 나가 있을 때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거예요. 아내한테 전화가 와요. 분유의 물을 맞출 수가 없다고, 활동지원사가 깜박 잊고 분유만 덜어놓은 채 물을 넣지 않고 갔다고. 그럴 때는 정말 당황스럽죠.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지하철은 시간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애는 목이 터져라 울고, 그게 전화기 속으로 다 들리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그런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부터 제약을 받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아빠가 ‘남자의 로망’이라는 표현을 불쑥 꺼냈다. 연애할 때는 여자 친구를 태우고 운전하는 것, 결혼한 후에는 가족을 태우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갈 수 있는 게 남자의 로망 아니냐며 허탈한 손짓을 잠시 내저었다.
“정말 답답할 때마다 오빠가 하는 말이에요. 아이가 아플 때도 그렇고,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언제든 차를 타고 가는 건데’ 그런 얘기를 자주 해요. 그런데 요새 들어서 더 많이 부쩍 늘어난 것 같네요.”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라, 무인자동차가 거의 상용화 단계에 와 있다고 한다. 기존 운전자들의 편의만 떠올릴 게 아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모습도,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마주칠 세상이 가능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자기는 그걸 꼭 살 거래요.”
엄마의 한마디에 아빠가 덧붙였다.
“네, 어떻게든,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살 거예요.”
열심히 살기 때문에 안 된다?
신혼 때 살던 집은 재래시장과 가까웠는데,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야 거기가 너무 시끄러운 동네라는 걸 알게 됐단다. 그래서 지난봄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고, 선택의 기준은 ‘조용한 동네’였다고 했다. 그럼 집을 알아보는 과정은 누구와 함께했냐고 물으니, 뜻밖에도 아빠 혼자서 다 했단다. 알아보고 찾아가고 방문해서 확인하는 모든 걸 아빠 혼자 해결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질문 같아도,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바로 이런 지점과 마주칠 때다. “저도 사실 걱정은 많이 했는데, 잘 해주고 안 해주고 하는 차이가 없더라고요. ‘집 보여 달라. 알아서 하겠다. 다른 집도 보고 싶다. 여기로 결정하겠다.’ 그렇게 정했어요. 얼마 전까지는 집주인들이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적잖았다는데, 지금은 거의 보기 드문 일이 됐다고 하네요.”
임대아파트 같은 데를 알아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지 않겠냐고 물으니까, 엄마 조현영 씨와 아빠 최정일 씨는 똑같이 정색을 했다. 그리고 할 말이 많다는 표정과 손짓으로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번 만남의 본론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를 일 같았다.
“정말 솔직히 말한다면, 가장 불편하고 가장 답답한 게 바로 임대아파트 문제예요. 입주자격은 된다지만, 사실상 들어갈 방법이 없거든요.”
이유는 단순하다. 부부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즉 개별수입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기약 없는 대기상태에 머물러야 하는 게 바로 임대아파트 입주라며, 두 사람은 현행제도의 불합리함을 조목조목 토로했다. 엄마와 아빠의 속상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내용들이 연이어졌다.
“실제로 세밀하게 조사하면 저희보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도 많고, 그런 사람들이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해요.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도, 임대아파트에 살기 위해 수급자로 살아간다는 얘기도 더 이상 감출 내용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둘 다 세상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졌는데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매일 맡기면서까지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있어요.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거주의 혜택이 우선돼야 하는 게 아닌가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한테 좀 더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이건 제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할 수밖에 없게 돼요.”
엄마가 언급한 의견처럼 현실은 따로 돌아간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약자로 그냥 존재해야만 살 수 있고 자격이 부여되는 세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마다 정말 화가 난다는 엄마의 말을 아빠가 이었다.
“예전에 어떤 경우를 봤는가 하면, 임대아파트 장기전세를 알아볼 때였어요. 서울 반포에 재건축을 한 아파트단지에 6억 원짜리 장기임대가 나왔더라고요. 자격을 보니까 일 순위라고 적혀 있는 게 ‘수급자, 차상위계층’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말 그대로 그들한테 우선권을 주겠다는 거잖아요. 아니, 이게 말이 되나요? ‘수급자와 차상위계층들부터 먼저 배려할 테니 6억 원부터 가져와라.’ 제도의 잣대를 일률적으로만 들이대고 평가하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거기 주민센터 직원한테 물어봤죠.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과 차상위계층한테 6억을 요구하는 게 맞는 거냐고요. 그 직원은 자기도 이해가 안 된다며 애써 말을 돌리더라고요. 누가 봐도 상식에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게 제도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게 현실이에요. 정말 말로만 민생을 헤아린다고 하지 말고, 이런 사례들을 제대로 살펴봐 줬으면 좋겠어요. 저기 위에 계신 분들은 이런 불합리함을 해결하려는 노력부터 먼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국민은 누구 하나도 소외되면 안 되잖아요
조현영 씨와 최정일 씨는 이런 세상과 마주칠 때마다, ‘우리도 그냥 수급자로 살아갈까?’ 하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게 된단다. 주거문제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유성이를 갖고 낳은 뒤 키우면서, 시각장애를 가진 엄마와 아빠가 아기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을 도처에서 확인해야 했단다. 당장 시급한 건 활동지원서비스의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는 점이다.
조현영 씨는 월 134시간을 받고 있는데, 그 시간을 출근과 퇴근길의 동행으로 사용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단다. 집에 돌아오고 나면, 활동지원서비스의 손길을 이용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일상의 예로, 마트에 갈 일이 매번 있잖아요. 유성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빠랑 같이 가는데, 저희가 원하는 물건을 고를 방법이 거의 없어요. 일일이 직원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길이 없는데, 그럴 때 활동지원서비스를 그만큼만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가 있잖아요.”
자립을 위해 일을 하라고 권하면서도, 실제로는 일을 할 방법도 없게 만든다. 직장을 옮기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새로운 분야를 알아보는 일도 녹녹치 않다. 그런데 일을 하면 국가 차원의 복지혜택이 없어진다. 혜택을 받으려면 일을 하지 말고, 수급자로 살며 차상위계층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 지지난해 가을부터 반 년 동안 전국을 뒤덮었던 외침 하나가 떠오른다. ‘이게 나라냐?’
“사실 제가 요리를 잘 못해요. 안 보인다는 핑계일 수도 있겠죠. 나름 열심히 노력하며 도전했지만, 언젠가 가스레인지를 다루다가 행주를 심하게 태우고 난 뒤부터 그 조바심이 극도로 커진 것 같아요. 하다못해 계란프라이를 하다가 뒤집개로 뒤집다 보면 프라이팬 밖으로 나갈 때가 많다는 거, 이런 어려움을 누군가에게 말로 편하게 설명하긴 힘들거든요. 게다가 아이가 있다 보니까 청소에 굉장히 민감해지는데, 바로바로 확인이 안 되니까 발에 뭐든 밟히는 게 있으면 즉시 처리하려고 마음이 급해져요. ‘로봇청소기 하나 장만해라’는 덕담 같은 조언을 자주 듣지만, 중요한 건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도 부부로서 가정을 갖는 게 장벽이 되지 않을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도를 만드는 분들의 보다 세심한 배려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엄마는 그동안 속상했던 일들을 아주 길게 털어놓았다. 이 지면에 언급한 건 10분의 1도 되지 않을 다양한 내용이었다.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여성으로서, 시각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거기에 가장 중요한 2세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간절하고도 절절한 요구가 속앓이처럼 표출된 것이다. 마무리는 아빠가 매듭지었다. 유성이는 낮잠을 잘 시간이 이미 지났다는 듯, 엄마 아빠를 연달아 쳐다보며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그렇죠. 장점이건 단점이건 간에 현실이라는 겁니다. 두려움이 많이 따르거든요. ‘유성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내를 잘 다독일 수 있을까? 내가 이 가정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들이 매번 생겨나는데, 저는 제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든 이겨내더라고요. 혼자 있는 것보다는, 제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게 무엇보다 훨씬 더 행복하니까요. 저희는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단, 국민의 삶을 책임진 분들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이 행복의 전제조건이 공평해야 한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가려는 이들이 역차별을 받는 불합리한 제도는 반드시 개선되고 시정되기를, 그 간절한 제안을 이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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