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치유하는 건 지역사회 동료와 지원입니다 > 사람 사는 이야기


우리를 치유하는 건 지역사회 동료와 지원입니다

양천장애인자립센터 정신장애인 활동가 손욱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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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일’에 유독 관심이 많던 청년 손욱형은 사회 관련 학과로의 진학을 꿈꿨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계속된 가족과의 불화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며 그 꿈은 점점 현실 너머로 밀려나는 듯했다.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가족들과도 단절된 방구석에서 짧지 않은 시간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는 이제 막 ‘사회복지사’로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 하고, 또 그것에 공감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손욱형 씨(46)를 만났다.

 

돌고 돌아 찾은 삶

작년 3월부터 양천장애인자립센터(이하 양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욱형 씨는 양천 센터 내 정신장애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2010년경 장애진단을 받은 이후 ‘사회복지’ 라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다. 손욱형 씨는 복지카드상 ‘조현병’으로 등록된 정신장애인이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기 마련이지만, 손욱형 씨에게는 이 과정이 유독 순탄치 않았다.

“어릴 적부터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사회의 여러 부조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관심분야를 살려 대학진학을 하려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20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어요. 결국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현실에 타협해야 했어요. 재수를 하는 대신 성적에 맞춰 적성에 맞지 않는 중국어과를 가게 된 거예요. 전공을 바꿔볼까도 고민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대학 시절엔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냈어요.”

학창시절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버거웠던 그는 대학 졸업 후 구직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애를 먹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특히 어문계열 직종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중요한 요소로 평가됐다. 그는 전공을 살리는 대신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기술이 있으면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모면해보려 시도한 일들이 결정적으로 문제를 키우는 계기가 됐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건 그저 성격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저 상황을 피하면 될 거라는 생각에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전문대학에 다시 들어가 기숙사생활을 했는데,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 비해 나이까지 많으니 어울리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학교 내에서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고 미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결국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어요. 기숙사를 나와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원룸을 하나 구해 혼자 살았어요. 혼자 지내다보면 힘든 게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불안감은 극에 달했어요.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옆집 사람들이 계속 나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고, 심지어 TV 속 인물들까지 나에게 해를 가하는 것만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어요. 너무 두려운 마음에 어딘가에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막막했습니다. 병원 말고는 도움을 청할 곳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가족들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병원에 가는 걸 반대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사이 상황은 더 악화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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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던 입원과 퇴원

그렇게 학업과 일에서 손을 놓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으니 가족들 모르게 사채를 쓰기도 했다. 엉망진창이 된 원룸 구석에서 고통스럽게 누워있기만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다 못한 형이 자신의 집으로 함께 가 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정이 있는 형의 집에서 신세를 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에 형과 함께 서울의 한 시립병원을 찾았는데, 그날로 곧장 폐쇄병동 입원조치가 내려졌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보호자인 형님과 할 이야기가 있다며 저를 밖으로 내보냈어요. 그러곤 바로 입원을 하게 된 거예요.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당시에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 정도로 삶이 피폐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거예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바깥보다는 병원 안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인권유린과 학대 문제가 끊이지 않는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손욱형 씨는 나름대로 적응을 잘한 편에 속했다. 상태에 따라 A, B, C, D 등으로 꼬리표가 매겨지는 그곳에서 그는 A등급으로 분류될 만큼 상태가 경한 환자에 속했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 없었고, 등급이 낮은 환자들과 다르게 병원에서 짜준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저는 그나마 괜찮은 병원에 갔던 것 같아요. 폭력이나 강압을 경험하지는 않았거든요. 입원 후 한 달 정도가 지나니 정말 심리적으로도 편안해졌어요. 긴장도 많이 풀리고 호전이 됐다는 걸 느끼고부터는 답답함이 들었어요. 병원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오전 회진 때 컨디션을 묻는 질문에 간단히 답을 하고, 시간이 되면 약을 먹고, 정형화된 프로그램 몇 가지에 참여하는 게 전부였어요. 여기에 더 있어봤자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입원 후 두 달여가 지났을 쯤 손욱형 씨는 퇴원 의사를 병원 측에 밝혔다. 자신의 등급이 상위권인 A단계였기에 조만한 퇴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손욱형 씨의 퇴원 여부와 퇴원 이후의 생활에 대한 의논을 위해 그의 보호자인 형과 병원 관계자, 지역 사회복지사 등이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를 통해 입원 네 달이 다 돼갈 때쯤 손욱형 씨의 퇴원이 결정됐지만, 회의에 당사자인 손욱형 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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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이후의 삶

“저는 그저 퇴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만 했어요. 폐쇄된 병원 안은 퇴원 이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도 없었어요.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그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게 되더라고요.”

2008년 퇴원 직후 가족과 지역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손욱형 씨는 서울의 한 그룹홈에서 살게 됐다. 그룹홈은 장애인이 소규모로 생활하는 공동가정으로, 자립을 준비하는 장애인에 한해 3년간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룹홈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그룹홈 가까이에 있는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이하 한울센터)를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는 듯했다.

“예전에 비하면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훨씬 편해졌어요. 지금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공동주거가정과 한울센터에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힘이 큰 것 같아요. 이제 더 이상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과 나를 공감해주는 동료들이 생긴 거예요. 그렇게 제가 가진 장애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 나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도 생겼어요. 3년이 지나면 그룹홈을 나와야하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생각하던 찰나 ‘사회복지사’라는 길을 알게 됐어요. 어릴 적 사회 쪽으로 가고 싶어 했으니,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게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겁니다.”

양천센터의 활동가로서 10개월 간 지내온 그에게 요즘 최대의 관심사가 하나 있다. 바로 ‘장애인복지법 15조’에 관한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으로 분류되지만,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장애인복지법 적용에 제한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해서 복지관이나 제가 일하고 있는 자립센터에서 정신장애인 이용자를 찾기 어려워요. 같은 장애인이지만, 다른 장애유형과는 또 다른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기 쉬운 것이 정신장애인입니다. 저의 경우 퇴원 후 운 좋게 그룹홈과 한울센터 같은 지역사회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 혜택은 정신장애인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 누릴 수 있어요. 병원만 가서 치료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건 지역사회 내 동료들과 지원들입니다. 우리들의 생존을 위해 장애인복지법 15조의 폐지와 지역사회 내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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