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 뭐든지 다 해보고 싶어요 > 사람 사는 이야기


다다, 뭐든지 다 해보고 싶어요

뇌전증 당사자 배정아 씨

본문

 
대한민국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유형은 총 15가지가 있다. 지체장애를 시작으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유형의 장애가 등장한다. 어떤 특정 장애를 중요하게 여기기 위한 순서대로 15가지의 장애유형을 나열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 15가지 장애유형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애는 여타 장애유형과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뇌전증 장애. ‘간질’로도 알려져 있는 이 장애는 분명히 15가지의 장애유형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장애로 등록하지 않고 있는 당사자도 존재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텐데, 아직 잘 모르고 있고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뇌전증을 가진 배정아 씨의 이야기를 이 지면에 실으면서 <함께걸음> 독자들에게도 뇌전증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다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 
배정아 씨는 서울 강동구의 한 도서관에서 활동가로 마을 아이들의 ‘오른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둬야 하는 건 배 씨가 도서관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사서’도 아니고, 아이들과 함께 한다고 해서 ‘선생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활동가인데, 그것도 서로 본명을 부르지도 않고 별명을 지어서 부른단다. 모모, 네네, 다다. 배 씨의 별명이 ‘다다’란다. 이렇게 각자 선호하는 이름을 지어서 부르면서 배 씨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아이들의 오른손 역할을 하는데, 창작 활동을 하거나 무엇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아이들도 궁금해 한다는데 기자도 궁금했다. 왜 ‘다다’라 지은 걸까?

“그냥 뭐든지 다 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은 것 같아요(웃음). 보통 사람들의 이름은 스스로가 지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함께 활동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본인이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짓게 해요. 지은 이름을 뱃지에 적어서 붙여놓고 함께 활동하는 동안만큼은 서로를 부를 때 그 이름으로 부르게 하는 거죠. 아이들도 자기가 불리고 싶은 물고기, 피카츄 등으로 이름을 지어서 활동해요.”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아이들이 그 ‘무언가’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다는 건, 정말 보람있는 일이다. 하지만 배 씨가 첫 마디에서 언급한 ‘다다’에 대한 해석은 뇌전증을 가진 당사자로서 담긴 고민이 묻어났다. 이곳에서의 활동가에 그치지 않고 배 씨가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다. 활동가가 아닌 ‘진짜’ 선생님으로 일하고 싶고 운전도 하고 싶다. 하지만 뇌전증이 있기 때문에,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 때문에 다 하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다다’라는 이름에 담기게 된 게 아닐까?

“뇌전증이 그렇게 심한 증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뇌전증이 저를 힘들게 한다기보다 뇌전증 진단을 받고 나서 약물치료를 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뇌전증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도 가족들은 소통이 잘 되지 않아요. 가족들은 그냥 병원에서 주는 약 먹고 발작 없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 되는데 왜 힘들어 하냐고 하거든요. 발작이 없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발작이 또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사회의 뇌전증에 대한 아직은 부정적인 인식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 제한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고민이나 힘든 점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검색을 해 보다가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되었어요.”

따뜻한 시선은 뇌전증 환우모임으로 기자가 <함께걸음> 2020년 12월호 ‘함께 하는 우리’에도 소개한 적이 있다. 배 씨는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된 뒤 격주로 일요일마다 따뜻한 시선 모임장소인 대구로 가서 참석했고,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최근 모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배정아 씨가 활동하는 도서관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이름이 적혀 있는 뱃지들
 
하고 싶은 것을 가로막는 뇌전증
“저는 은행에서도 10년 가까이 일을 했고 보험회사도 다녔어요. 또 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해서 졸업했고요. 덕분에 전공을 살려 잠깐이긴 했지만 청소년상담사와 관련 봉사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는데 뇌전증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2019년 1월에 뇌전증 진단을 받았어요. 오히려 진단을 받고 삶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의 청소년기가 정말 싫었고 슬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청소년들은 그런 힘든 시기를 보내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뭔가 이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배 씨의 의지와는 다르게 뇌전증 진단을 받고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먹게 된 약이 힘들게 했단다. 약이 정신도 못 차리게 하고 균형도 잡기 힘들게 하고, 소화도 어렵게 하는 등 뇌전증 약에 적응을 못 해서 먹다가 한동안 끊은 적도 있다고 한다. 약을 끊고 한의원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약을 끊은 후유증이 와서 한 달에 두 번씩 수면 중에 발작이 와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저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배우고 싶은 욕구가 크거든요. 그런데 뇌전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니까 그동안 공부했던 걸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왜 내게 뇌전증이 오는지 한동안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의사들은 뇌전증이 고협압이나 당뇨 같은 거라고 너무 쉽게 말을 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발작을 일으킨다거나 간질이라는 등 선입견이 있죠. 약을 먹으면 그래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제일 무서운 게 마음의 병인 것 같아요.”

사실 뇌전증이 15가지의 장애유형에 포함되어 있어도, 사람들에게는 뇌전증보다 ‘간질’이라는 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간질이 뇌전증으로 하나의 장애유형이라는 사실도 잘 모르고,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뇌전증이 있다고 하면 부정적인 선입견부터 가지게 된다. 자기와 같이 있을 때 발작을 일으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뇌전증 진단을 받은 뒤 뇌전증에 대해 공부를 했어요. 제가 당사자인 것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뇌전증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뇌전증과 발작이 일어났을 때의 대처방법 등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뇌전증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혹시 제가 쓰러지거나 발작을 일으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질식사하지 않도록 고개만 돌려 주면 된다고요. 처음에는 뇌전증을 알리고 인식개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가 돼요.”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배 씨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선’을 그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뇌전증으로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걱정과 우려 때문에 ‘배 씨가 이건 아무래도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뭐든지 다 하고 싶다는 배 씨의 바람을 뇌전증이 선을 그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다’라는 배 씨의 별명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런 힘든 부분들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아이들이 정말 순수하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하면 힘들어도 뭔가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생긴 프로그램에도 이렇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따뜻한 시선에서도 모임 때마다 장애아동들과 함께 수업을 하기로 했어요. 사실 건강하게 인생 후반기를 배움의 열정 하나로 계획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거칠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또 이렇게 새로운 출발선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게 아닌가 싶어요.”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창작 활동과 같은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고, 따뜻한 시선에서는 장애아동에게 수업을 하면서 배 씨가 느끼는 바가 있다고 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양쪽에서의 활동을 통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뇌전증 진단을 받은 뒤 힘든 시기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배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중’이라고. 
 
 
 
↑아이들과 함께 할 창작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배정아 씨의 모습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뇌전증 인식개선
뇌전증을 고혈압이나 당뇨와 비교대상으로 삼기는 뭣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뇌전증이 조금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수 있다.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발달장애, 지체장애 등 대부분의 장애유형은 ‘아, 어디에 장애가 있구나’라고 이해하고, 고혈압이나 당뇨 역시 어떤 증상이 있는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뇌전증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가 주변에 뇌전증에 대해서 아는지 물어봐도 10명 중 7명은 모른다고 했다. 그 뜻을 가르쳐 주고 발작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냐고 물어봤는데, 바르게 대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 뿐이다.

“100명 중에서 4명은 뇌전증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국민들이 심폐소생술은 할 줄 알면서도 뇌전증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과 대처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뇌전증 진단을 받은 뒤 의사로부터 받은 책자가 진짜 얇아요. 적어도 제가 접한 의사들은 진짜 뇌전증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거든요. 소크라테스, 갈릴레오, 노벨 등 이런 사람들도 다 뇌전증이 있었다는 식으로요. 그렇게 별거 아니라면 굳이 장애로 등록할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배 씨가 뇌전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주변에 알렸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누군가 배 씨에 대해 뇌전증이 있다는 이유로 ‘선’을 긋게 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배 씨가 잘못한 건 아니다. 배 씨가 충분히 설명을 해둔 만큼, 배 씨가 발작을 일으키는 등의 상황이 오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뇌전증에 대해서 알리고 다녔을 때,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었어요. 우리 친척 중 누가 그랬다고, 학교 다닐 때 우리반 친구 중 누가 그랬다고, 심지어 자기 형제 중에 그랬었다는 분도 있었어요. 이렇게 뇌전증은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존재해요. 그러니까 뇌전증은 절대 말하지 못할 존재가 아닌데도, 밖으로 못 나온다는 거예요. 또 뇌전증을 장애로 인정받으려면 의사소견이 있어야 하는데, 받아내더라도 장애는 3급이라서 별 혜택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꼭 필요합니다. 어떤 장애이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 그리고 주변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만 국민들이 알고 있다면 뇌전증은 정말 의사 표현대로 ‘별 거 아닌 것’처럼 될 수도 있어요.”
 
 
↑ 따뜻한시선의 온라인 모임 화면 캡처(사진제공. 따뜻한시선)
 
배 씨는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뇌전증을 가진 젊은 세대들을 걱정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기저질환에서 뇌전증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유명한 사람들이 다 가졌던 거라서 별 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모순적으로 취업이나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또 뇌전증을 이유로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배 씨와 같이 뇌전증에 대해 꾸준히 알리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고, 장애인 활동지원사 양성과정이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폐소생술과 같은 긴급재난 또는 소방안전교육에서도 뇌전증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도 일하고 싶거든요. 지금처럼 봉사로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살려서 정말 일하고 싶어요. 저도 바꿔서 생각해 봤어요. 제가 어린이집 선생님인데 아이의 엄마가 ‘배정아 선생님 정말 좋은데, 우리 아이 데리고 오다가 갑자기 쓰러지면 어떡하죠?’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럼 저라도 일자리를 주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뇌전증을 알려온 게 한계점이 있다는 걸 느꼈지만, 이런 건 꼭 뇌전증만이 아니라 다른 장애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안 된다고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다가가지 말고 먼저 맡겨보면 좋겠어요. 정말 잘 해낼 자신이 있거든요.”
 
 
 따뜻한시선의 온라인 모임 화면 캡처(사진제공. 따뜻한시선)
 
앞서 배 씨가 ‘다다’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운전이다. 주치의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단다. 운전 중에 발작이라도 일어난다면? 하지만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다 안다. 뇌전증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뇌전증으로 인해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뇌전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책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뇌전증에 대한 지원과 대처 방법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뇌전증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사회가 뇌전증 환우모임 ‘따뜻한 시선’처럼 되면 좋겠어요. 여기 모임 이름대로 따뜻한 시선을 강요하지 않고, 나만 따뜻하게 바라보면 되거든요.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하기 전 대구에서 모임을 할 때는 함께하는 분들과 김광석 거리도 가고, 복용하는 약이나 고민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우리 사회도 따뜻한 시선으로 뇌전증을 바라보고 그래서 뇌전증을 가진 국민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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