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주양육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사람 사는 이야기


아빠도 주양육자가 될 수 있습니다

前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 씨

본문

 
 
 
지난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종목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던 박항승 씨를 기억하는가? 한쪽 팔과 한쪽 무릎 아래가 절단된 박항승 씨가 스노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많은 이들이 보았고, 덕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러 지난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에서는 국가대표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박항승 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단,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나 해설위 원으로서의 박항승이 아니라 ‘인간’ 박항승 씨의 모습을 소개한다.
 
아내와의 약속
박항승 씨는 현재 운동선수가 아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권주리 씨의 남편,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다. 으레 패럴림픽과 같은 큰 대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 대회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박항승 씨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지난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시 기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4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우선 그동안의 근황을 들어본다.
 
“저의 인생에서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끝나고 아이가 생겼어요.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시험 준비도 해서 특수교사가 되었고, 그렇게 지금은 육아와 특수교사 생활을 함께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인생에서 큰 행사였다면 다음 대회인 베이징 패럴림픽에 한 번 더 도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항승 씨는 해설위원으로 참여했을 뿐 국가대표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해설위원으로 현장에 있으면서 다시 선수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을 텐데, 왜 다시 도전하지 않았나 궁금해진다.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시작하기 전에 아내와 약속을 한 게 있었어요. 평창 동계패럴림픽까지만 운동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운동을 더 하고 싶으면 아이는 가지지 않는 것으로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아이를 갖고 싶어서 평창 동계패럴림픽까지만 운동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끝나고 아이가 태어났고요.”
 
아내와 한 약속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운동을 계속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고 한다. 계속 운동한다고 해서 이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장애인스포츠는 등급별로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박항승 씨는 상지와 하지에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상지나 하지 중 어느 등급에 속한다고 해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할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명 아쉬움도 있지만 평창 동계패럴림픽 출전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둘 수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직업(?), 육아
우리 사회에서 아이에 대한 주양육자가 엄마와 아빠 중 누구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엄마’라고 대답할 것이다. 박항승 씨의 아내 권주리 씨는 올해 1월 도서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를 출간했다. 육아는 엄마만이 전담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아빠도 육아를 전담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권주리 씨가 주양육자로서 ‘휴직’을 선언하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면서, 박항승 씨가 주양육자가 되기 위해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작년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를 전담했는데, 많이 힘들었어요(웃음).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몰랐었는데, 아이를 돌보다 보니까 아이의 정말 작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옷이며 기저귀와 같은 것들을 주로 챙기려고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할 일이 너무 많더라구요. 집안 정리도 전담하게 되면서 ‘육아도 쉬운 일은 아 니구나’, ‘주양육자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박항승 씨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아내인 권주리 씨는 밖에서 일을 하고 박항승 씨가 양육을 전담했다. 주양육자로 ‘일’해보는 게 처음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육아를 하면서 막히는 건 없었을까? 특히 어린이집에 가거나 할 때도 다른 아이들의 주양육자는 ‘엄마’인데 박항승 씨의 아이만 주양육자가 ‘아빠’라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 같다.
 
“제가 주양육자를 하기 전에 아내가 꼼꼼하고 철저하게 정리를 해줬어요. 사이트는 어디에 들어가서 로그인하는지, 책은 어디에서 대여를 하는지, 기저귀는 어떤 사이즈로 어디 것을 해야 하는지 등을 종이에 다 작성해서 정리해줬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따로 물어볼 일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양육자는 보통 엄마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인지 제가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사람들이 움찔하는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머리도 길고 수염도 있어서 인상도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선생님들이나 원장 선생님이 저를 보면 움찔움찔 하면서 많이 놀라셨던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른 아이들의 주양육자도 다 ‘엄마’들이 오는데, 박학승 씨만 유일하게 ‘아빠’여서 어색하기도 했단다.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말을 걸어야 될지도 모르겠는데 괜히 말 걸었다가 혹시라도 부담스러워 할까봐 주양육을 하면서 이런 부분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박항승 씨 부부의 시도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유교 사상과 남성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양육자=엄마’라는 공식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공식에 깊이 자리잡은 사람들의 인식을 깨고자 책도 출간하고, 직접 실천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박항승 씨가 주양육자로 있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빠도 주양육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외에 한 가지 보여준 게 더 있다. 바로 박항승 씨의 ‘장애’다. 박항승 씨 가 주양육을 하는 동안 어린이집에 가면 선생님들과 부모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박항승 씨의 장애를 보게 된 다. 왜 한쪽 팔이 없는지 궁금해하고,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접했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오는 젊은 어머니도 계시지만, 할머니도 많이 계셨어요. 처음에 제가 아이를 안거나 케어할 때 불안해하시거나 ‘도와줄까요?’라는 질문도 몇 번은 받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쪽 팔이 없으니까 아이를 안고 그럴 때 걱정하는 눈초리를 받게 되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지시고 해서 나중에는 같이 음료수도 마시고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친해질 수 있게 되었어요.”
 
결국 막연하게 장애에 대한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박항승 씨처럼 주변에 있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것만큼 더 좋은 교육은 없는 것이다. 박항승 씨와 함께함으로서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고, ‘함께 할 수 있다’고 직접 경험하면서 장애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을 수 있다. 박항승 씨는 이 외에도 장애를 가지게 된 계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콘텐츠로 하여 장애인식개선 교육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에 당연히 걱정을 했었어요. ‘내 장애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을 진짜 많이 했었는데, 막상 키우고 현실을 살아보니까 장애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현 사회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장애 자체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박항승 씨가 주양육을 하면서 아이가 아빠가 가진 장애를 가까이에서 보고 있을 텐데,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이에게 장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또 이런 부분으로 인해 드는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팔이나 다리가 없는 걸 많이 봐왔으니까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왜 팔이 없어?’라고 물으면 처음에 아주 어렸을 때는 도깨비가 가져갔다고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커서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게 되었다고 자세히 설명해주는 편이에요. 지금은 괜찮지만 아이가 좀 더 크면 제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때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될지 약간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상처 받지 않고 현명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이런 고민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처음부터 아빠의 팔과 다리가 없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아이가 크면서 새롭게 만나는 아이의 친구들은 아빠의 장애가 처음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을지 고민된다는 박항승 씨. 이건 어쩌면 박항승 씨만의 고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진 부모라면 한번쯤은 꼭 하게 될 고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항승 씨가 주양육자로 활동하는 동안 어린이집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나중에는 친해졌듯이, 아이의 친구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될 사람들도 결국에는 다 괜찮아질 것이다. 장애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인식만 가지고 있기보다는, 박항승 씨처럼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장애인과도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부대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박항승 씨, 그리고 그의 가족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원 한다.
 
 
 
작성자글. 박관찬 기자 / 사진 제공. 박항승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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