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렛,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리 > 사람 사는 이야기


뚜렛,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리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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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연주 중인 임태섭 씨
 
 
틱과 뚜렛병에 대한 연구가 전무했던 어린시절
의사의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병원 치료보다 가족의 울타리가 더 절실했던
 
“어떤 틱 증상이 있냐고요? 매일매일 너무 달라요.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한 시간 넘게 쭉 나열할 수 있어요. 눈 깜빡이는 거부터 해서 어깨 들썩거리는 거, 아무 이유없이 소리내는 거.. 학생 때는 시험지를 다 찢어버려서 혼자 재시험을 봐야했던 때도 있고요. 셀수 없이 많죠. ADHD나 분노조절장애 같은 것도 같이 있었던 것 같아요.”
 
태섭 씨(28)에게 틱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 원인은 알지 못한다. 태섭 씨는 10살 때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틱을 고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아 부모와 자주 갈등을 빚으면서 태섭 씨를 가정에서 일시적으로 분리하기 위해서였다. 태섭 씨도 부모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원인과 방법을 몰랐던 상황이라 전문가의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같은 병실에 한 살 차이나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불 끄고 나가자마자 그 형이 주먹으로 제 얼굴을 쳤어요. 저도 열받아서 같이 싸웠고 결국 간호사가 저희를 창고에 가뒀어요. 그 다음 날인가? 한참 지나서 나올 수 있었는데.. 전 그 때부터 폐쇄공포증이 생겼어요.”
 
태섭 씨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태섭 씨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섭 씨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병원생활은 ‘부모와 생이별’, ‘멈출 줄 모르는 투약’, ‘체벌과 감금’, ‘또 다른 불안 생성’과 같은 모습이었다.
 
“같은 병실에 틱하는 애들만 모아놓거나 그러지도 않았거든요. 입원의 주목적은 부모랑 아이랑 떨어뜨리는 것이었던 거죠. 외국 논문에서 그게 좋다고 했다던가.. 그런데 아무리 가족이 서로 힘들어도 같이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떨어지는 시간을 가지는 건 도움이 될지 몰라도..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는 더더욱 가족 울타리 안에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온 학교, 타인을 위해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나의 ‘틱’
어차피 설명해야 될 거 모든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기로 결심해
효율을 위해 내린 선택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태섭 씨의 틱 증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났던 시기는 퇴원 이후, 초등학교 4~5학년 때였다. 여전히 친구 들은 태섭 씨의 틱 증상을 흉내내며 놀려댔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태섭 씨는 하루도 친구랑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얼마나 힘겹게 참고 버티고 있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면서 너무나 쉽게 말을 내뱉어버리고,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 불쾌했다.
 
태섭 씨는 새 학년에 올라가기 전,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같은 반 친구들 모두 앞에서 ‘틱’에 대해 스스로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담임선생님에게 직접 부탁한 것이다.
 
“사실 매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제 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귀찮았어요. 왜 너는 자꾸 소리를 내는 거냐, 그 행동을 왜 하는 거냐며 한 명씩 한 명씩 저한테 물어보고 놀리고 하는데.. 그냥 한 번에 설명하는 게 더 낫겠다 싶었죠.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내가 수업 때 갑자기 시끄럽게 하거나 어떤 행동들을 반복하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고, 또 엄청엄청 참다가 나오는 거니까 잘 이해해주면 고마울 거 같아. 잘 지내보자’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같은 말하는 것이 귀찮아서 친구들 앞에 용기 있게 서기로 한 어린 날의 태섭 씨는 ‘이 날’을 계기로 오롯이 자신의 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태섭 씨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규명하고 또래 친구들에게 전달한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함께 세상에 나아갔던 것.
 
“그런데도 계속 따라하고 놀리는 애들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제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따라하는 친구한테 ‘야, 너 나 자꾸 따라하면 너도 틱된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더니 그 친구가 ‘아 진짜? 그러고보니 너 없을 때도 하는 것 같기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이랑 스스럼없이 친하게 그냥 잘 지내려고 했죠. 자연스럽게 저희 부모님도 저한테 신경을 덜 쓰게 됐고요.”
 
태섭 씨의 삶에서 이전에는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가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자신의 틱을 인정하고 난 뒤부터는 이것의 중요도가 점점 인생에 있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태섭 씨의 주된 세계를 이루었던 틱이 희미해지니 인생의 다른 과제들이 더 중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입시 시기 등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거나 뜻대로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틱 증상이 심해졌을 테지만 태섭 씨는 그 증상의 정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증상의 변화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부모 등 주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증상이 조금 좋아진 것에 기뻐하고 조금 나빠진 것에 좌절하다보면 모두가 지치는 결론에 이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 틱은 가족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가족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잖아요. 태어난 순간부터 그냥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틱도 그런 거죠. 좋든 싫든 같이 가야 하는 내 피붙이인거예요. 틱으로 인해 힘든 것도 있고 또 좋은 것도 있겠죠. 그냥 인정하고 살아가다보면 평범한 다른 욕구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학업 문제, 진로 문제, 이성 문제.. 이런 것들에 더 신경 쓰면서 살아가게 되는 거죠.”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는 태섭 씨
 
 
내 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만남들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되었을 때 느껴지는 위로감
마음껏 배우고 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 만들고 싶어
 
태섭 씨는 중학교 때마침 태섭 씨와 비슷한 틱증상을 가진 두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오? 너도 틱해? 나도 하는데’. 한 명일 땐 개인이지만 셋이 되니까 공동체가 되었다.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보낸 시기였다. 태섭 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같은 틱 증상, 투렛장애를 갖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때, ‘혼자가 아니구나’라고 느꼈던 그 순간을. 친해지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던. 서로 여러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살아온 삶이 다 이해가 되는 그 느낌을 말이다.
 
“한국뚜렛병협회는 어린 친구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어른, 이미 그 삶을 살아내고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선배가 있다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협회에서 청년부 부장을 맡고 있고 멘토-멘티 활동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부모가 중심이 되어 협회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속가능함을 생각한다면 태섭 씨는 결국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태섭 씨는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다. 틱과 뚜렛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맘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층짜리 건물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하층엔 피아노나 미술, 밴드 음악 배울 수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틱이나 뚜렛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애들이 놀려서 학원도 마음껏 못다니거든요. 1층엔 쉼터가 있으면 좋겠고요. 2,3층엔 청년이나 성인 환우들을 위한 취업 코칭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직장 구하기도 진짜 쉽지 않거든요. 특히 대학생들은 서비스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작스럽게 틱증상을 보이면 손님들이 놀라서 계속 일하기 어렵게 돼요.“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겠지만 때로는 모르는 척이 배려가 될 수 있어
개개인의 증상에 대한 관심은 독이 되지만 ‘틱’과 ‘뚜렛병’ 자체에 대한 관심은 필요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당사자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나오는 행동으로 틱과 뚜렛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도가 심한 사람의 경우에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늘상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할 정도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자세가 필요할까. 태섭 씨는 이에 대해 “개개인에 대한 증상은 모른 척 지나가주시고, 집단에는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 대중교통, 카페, 영화관 등에서 당사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이들이 정말 큰 용기를 내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기를, 흠칫 놀라는 행동을 할지라도 슥 지나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 어떤 분들은 뚜렛 환우들이 소리 지르거나 할때, ‘좀 참으면 되지 않나?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그 환우 분들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참는 게 그 정도라는 걸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다만 당사자와 같은 반 학생이거나 함께 일하는 동료라면, 또 가족이거나 지인이라면 더 이상 ‘무관심’이 배려가 아니게 된다. 당사자가 갖고있는 증상과 현상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가 된다. “얼마 전에 한국뚜렛병협회에서 신년회를 했는데 청년부 당사자의 친구가 함께 모임에 왔더라고요. 너무 반갑고 기뻤지만 또 궁금하기도 해서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으니까 ‘내가 가장 친한친구가 겪고 있는 병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고 싶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했어요.”
 
태섭 씨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잘 모르는 낯선 세계이지만 기꺼이 이 세계에 동참하려는 그 대학생 친구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가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사람에게 ‘너 틱장애야?’라며 농담을 건네는 경우가 있다. 태섭 씨는 ‘그런 농담을 쓰는 것은 자유지만 최소한 이 세계에 들어와 관심을 갖고 무엇인지 충분히 안 다음에, 그 뒤에 쓰더라도 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2023년 한국뚜렛병협회 신년회 모습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 사진제공. 임태섭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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