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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세요. 당신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 : 대한민국 휠체어합창단 상임지휘자 정상일 교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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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힘을 펼쳐야 할 때는 이런 시점이다. 전국 각지의 어디든 장소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실내든 야외든 그 여부도 상관없다. 수많은 관객이 마주할 수 있는 커다란 무대 하나만 존재하면 된다. 그 공간 위에 상상의 힘을 불어넣는 거다. 하나씩의 휠체어를 탄 인물들이 무대로 등장하고 연이어 계속 나타나는 그 인원들이 수십의 숫자로 늘어나게 될 때, 수십을 넘는 수백으로 늘어날 때, 무대 전체가 줄 지어 자리 잡은 휠체어의 주인공들로 가득 채워진 장면이 실제 등장한다면, 그 감동의 하모니는 얼마나 큰 파도가 되고 해일이 되어 밀어닥칠까.
이제 우리는 그 해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도 된다. 꿈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20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아주 뜻 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의 창단식이 거행된 것이다. 상상의 힘이 현실로 등장하는 순간, 이제 우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 무대에 오를 그들의 위용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도 현실이 되리라 믿는 힘을 얻게 된다. 이 모든 디딤돌과 주춧돌을 반석으로 놓은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의 상임지휘자 정상일 교수를 만났다. 여러분을 초대하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본다.   

 

세상과 소통하는 소중한 공간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의 연습이 시작된 이음센터 지하공간으로 향했다. 이제 막 창단됐기에 아직은 서로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지만, 반짝이는 모두의 눈동자는 하나의 의미를 말하고 있었다. 기대와 희망이다. 이게 실제로 가능해졌다는, 정말로 합창단이 생겼고 그 일원으로 함께한다는 만족감이 모두를 하나로 감싸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커다란 손짓으로 모두의 화음을 이끌어내는 이가 바로 상임지휘자인 정상일 교수이다. 진지함으로, 웃음으로, 대화와 화음으로 가득 채워진 연습이 끝나고, 조용한 자리로 옮겨 그와 마주앉았다. 아마도 어느 언론에서 취재를 한다 해도, 첫 질문은 같은 내용으로 나올 것 같았다. 유래가 없는 새로운 판을 만드셨는데, 지금의 심정이 어떠신지를 묻는 것이다.
“감개무량하죠. 지금 ‘판’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로 판을 벌였을 때 처음엔 이 정도의 호응이 되리라고는 기대를 못했어요. 지금 70명이 넘었고 최종 목표는 100명인데,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도 1.5배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합창단의 면면들을 처음 둘러봤을 때, 유난히 인상적인 얼굴들이 눈에 띄었음을 언급했다. 평소엔 밖에 안 나오고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지낸 게 분명할 것 같은 분들이 이 자리에 선뜻 도전한 모습들이 적잖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 이들일수록 이 합창단에 거는 기대와 희망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과 소통하는 소중한 연결고리로 이 합창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모두가 아마추어가 맞죠. 하지만 저는 프로합창단을 꿈꾸고 있어요. 유급합창단을 만들겠다는 것이죠. 일시에 이뤄질 일은 아니기에, 단계별로 한 걸음씩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겁니다. 유급단원이 된다면 더욱 더 서로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생활에 도움도 될 수 있겠죠. 최종 목표는 그 다음이지만, 유급합창단이 되는 게 중간 정도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휠체어를 탄 지휘자
2012년 5월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주위의 많은 이들이 그의 재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모든 걸 다 포기했다고 한다. 대학 강단도, 무대의 지휘도 다 접어버린 채, 단지 ‘언제쯤 병원을 퇴원해서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정도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저는 장애인이라는 사람들이 아주 극소수인 줄 알았어요. 장애라는 대상 자체를 전혀 알지 못했거든요. 관심과 무관심 그런 개념이 아니라, 제 생활 주변에 장애를 가진 이가 없다 보니까 생각 자체를 아예 떠올리지 못하며 지내왔어요. 그런데 제가 장애를 갖고 나서 보니, 등록 장애인만 해도 이렇게 많고 관련 단체들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아, 이런 세상이 또 있었구나. 이렇게 폭넓게 있구나. 아, 나만이 아니구나. 이렇게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게 보람된 삶일까?’ 이 고민을 깊게 하게 됐어요.”
중도장애의 심리적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를 굳이 문장으로 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극심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정상일 교수의 지인들, 특히 후배 음악인들이 같은 말을 계속 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박했지만,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계속 듣다 보니까 그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이게 됐다고 한다. ‘정말일까? 할 수 있을까? 한번 해볼까?’
대학교수로서 대학 강단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무대에, 교회 성가대 지휘자의 자리에, 사회적 관계 속 여러 위치에 있던 자신의 자리에서 모두 물러나 있던 정상일 교수는 재기가 불가능할 거라던 주위의 판단에 종지부를 대신 찍게 된다.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대학 강단으로, 무대 지휘자석에, 성가대원들 앞에, 각종 사회적 직함 속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달라진 건 단 하나, 그가 휠체어에 앉았다는 것뿐이었다.
“후배들이 그러는 거예요. ‘아, 교수님. 그때는 저희가 뭐라고 말만 해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막 야단치셨잖아요. 그런데 똑같이 하시네요.’ 그래서 대답했어요. ‘그래, 난 똑같이 산다. 장애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다.’ 어떻게 보면 더 바빠졌어요. 왜냐하면 제가 음악활동을 하지만, 장애인으로서 장애계에서 할 일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장애계의 일까지 훨씬 더 늘어난 거예요. 할 일이 더 많아지고 활동반경이 갈수록 더 넓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더 바쁘게, 또한 더 기쁘게 살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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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당신의 차례입니다
클래식을 전공한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중음악을 터부시하는 관점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상일 교수는 음대 교수 입장에서 실용음악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전망과 비전이 확실하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다른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 당국에 건의해서 4년제 대학 최초의 실용음악과를 개설했다. 실용음악을 대중가요 수준으로 내려다보던 풍토에서, 일거에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저는 확실한 가능성을 봤어요. 불과 10년 15년 동안의 일이지만, 지금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 개설됐고 경쟁률이 가장 치열한 학과로 실용음악과가 자리를 잡았잖아요. 한류라는 문화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죠. 실용음악의 영역은 광범위합니다. 노래가 있고 각 악기별 연주가 있으며, 작사와 작곡과 편곡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어요. 폄하의 대상이던 대중음악이 아니라, 치열한 연구와 발전이 지속될 전공학문으로 앞으로도 크게 성장해 나갈 겁니다.”
휠체어합창단 또한 그에게는 가능성을 확신하는 도전이 된다. 그동안 비슷한 의견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가 중도에 사라지기를 반복한 바 있던 그 도전을 실제 이뤄냈다는 건, 분명한 이정표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휠체어에 한정을 지은 점에 대해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일단 하나의 시작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며 그는 양해의 발언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음악을 애호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아마추어인데도 노래를 잘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그런 분들이 무수히 많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 분들 사이에서 일정한 역할을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최종 목표는 100명인데 지금은 시작이니까 선착순으로 받고, 100명 이후에는 결원이 생길 때마다 충원하는 방식이 되겠죠. 합창단원이 됐다 해도 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성의가 없다면 탈락될 경우도 생길 겁니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건 진정한 프로합창단으로 완성되는 겁니다. 처음엔 꿈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젠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이뤄질 거라는 자신감이 생겨요. 100명의 프로가 함께 노래하는 휠체어합창단, 우리나라엔 물론 없었고 전 세계도 없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함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이 글 내용이 독자 여러분의 손길에서 읽혀진 다음이 되면, 합창단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훨씬 더 늘어날 것 같다. 공연 일정도 준비하는 걸 보니, 이제 곧 무대 위의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과 직접 만나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또 하나의 상상을 덧붙여 본다. 그날의 그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는 수백, 수천 명의 합창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된 수천의 합창, 그 자리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다.


 

 

작성자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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