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부부 유석종 선명지 > 사람 사는 이야기


시각장애인 부부 유석종 선명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게 아닌, 같은 곳을 지향하는 생의 동반자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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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안내견을 보게 될 때,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공간에서 주인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따뜻해지는 마음’이다. 제3자로서 함부로 예쁘다는 표현을 해줄 순 없지만, 주인과 동행하는 그 몸동작은 참으로 고마운 반려라는 생각부터 떠올리게 만든다. 함께 걷고 함께 움직인다는 거, 주인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집중한다는 거, 사람이 사람한테 다하지 못하는 책임을 대신 전담하는 것 같아, 일면 미안한 마음을 감춰야 할 때도 많다. 두 마리의 안내견과 함께 걷는 한 부부가 있다고 했다. 금슬이 너무 좋은, <함께걸음> 이 지면에서 꼭 만나고 싶은 한 쌍이라는 주변의 추천도 받은 바 있었다. 마침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만남의 연결이 이루어져, 경기도 용인시 한 아파트 단지를 향해 한 달음질로 달려갔다. 선천성 시각장애1급으로 서로의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이미 서로의 영혼을 누구보다 밝게 마주하고 있을 두 사람과 함께했다. 유석종, 선명지 부부가 이번 만남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만나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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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층 입구로 나오는 부부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사에 앞서 먼저 깜짝 놀라야 했다. 리트리버(Retriever) 종(種)이 대부분인 안내견들 중에서, 검은색 털을 가진 안내견은 정말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니, 검은색도 있어요?” 그런 질문에 익숙한 듯, 주인은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털의 색깔은 상관이 없어요. 다 같은 종인데, 가끔 다른 색을 가진 애들도 있거든요.” 부부는 앞장서서 걸었다. 잘 가는 곳이 있다고 했다. 인근 상가 1층의 카페로 들어선 안내견들은 주인이 늘 앉는 자리인 듯 쇼윈도 앞 벽면의 자리로 향했다. 한 대기업에서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안내견학교에 근무하는 남편 유석종 씨, 그는 넉넉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미소를 시종일관 입가에 머금었다. 이런 대화의 자리가 어색한 듯 굳은 표정이던 아내 선명지 씨의 얼굴빛이 화사해지는 것 또한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안내견학교에서 재직한 지는 만 10년이 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분들한테 안내견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일도 맡고 있는데요. 제가 회사에 들어와서 3년차 정도 됐을 때, 맹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 같은 걸 진행했었어요. 그때 졸업을 앞둔 고3의 명지 씨도 참가를 했는데, 저희 둘의 첫 만남이라고 굳이 시점을 잡는다면 그때라고 해야겠죠. 시각장애를 가진 몇 분이 같이 음악 활동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는데, 대학에 가서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때 명지 씨가 중심 역할을 해줬어요. 전공 학생으로 중심을 잡으며 활동하는 걸 보면서, 나름 대화를 할 기회가 조금씩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내견학교 직원이었던 유석종 씨한테는 갓 대학생이 된 선명지라는 고객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각인이 됐단다. 남녀의 개념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으로서 생각 자체가 저만큼 깨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속으로 혼자 감탄을 해야 할 경우가 자주 반복됐는데, 그건 맹학교 출신들이 갖게 되는 일정한 선입견을 깨버리는 모습을 명지 씨가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도 맹학교 출신이지만, 맹학교를 안 좋게 말하는 게 아니고요. 맹학교라는 환경 자체는 사실 어떤 사고의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이기 때문에, 생각과 경험의 폭이 크게 제한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곳이거든요. 그런데도 이 친구(명지 씨)는 누구보다 자기 소신이 강했던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려서 실용음악을 전공으로 삼고 입시공부를 하며 지낸다는 건, 사실 맹학교의 틀 안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런 테두리를 벗어나서 스스로의 결정을 그렇게 내리고 실천했다는 거, 그건 사실 천성적으로 타고 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는 봤으니까요.”

 

장애 비장애의 입장, 구분과 차별은 안 된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명지 씨는 거듭되는 질문에 흥미를 느꼈는지, 아니면 남편의 발언에 한두 마디를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편한 얼굴 표정으로 바뀌며 테이블을 향해 몸을 가까이 움직였다.

“신랑 말대로 여러 번 자주 만나는 계기가 생기잖아요. 음악 활동도 하고 또 얘기하는 것 자체도 재미있으니까요. 그런데 둘이 사귄다는 입장이 아니었던 상황에서도 참 신기했던 건, 따로 카페에서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거예요. 그냥 얘기만 해도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 그런 게 쌓이다 보니까, 정말로 하나의 느낌 같은 게 생겨나는 거예요. 이건 장애 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아,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처럼 뭔가 대화를 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사람과 사람의 문제니까요.”

여기까지 얘기하고 잠시 멈춘 명지 씨는 얼굴을 남편 쪽으로 향했다. 남편의 얼굴도 정확하게 명지 씨를 향했다. 서로가 마주보는 게 분명한 자세였다. “결혼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여러 조건의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문제가 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도 식탁에 차 한 잔 놓고 앉아도 두세 시간은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눠요. 저는 그 시간이 정말 즐겁거든요.”

방송이든 어느 강의 자리든 부부클리닉의 강사로 두 분을 모셔야겠다는 덕담을 전하는 순간, 집 밖의 카페로 나가서 대화를 나눈다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번 5월에 첫 생일(돌)을 맞이하는 딸 하임이가 엄마 아빠를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 더욱이 활동보조인이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대기하고 있었기에, 대화의 자리는 서둘러 정리된 뒤 집 안의 식탁으로 옮겨져야 했다. 거실 소파에 기대 선 하임이는 십여 분 가까이 꼼짝하지 않고 외부 침입자(?)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빛의 의미는 이 한마디와 같았다. ‘엄마, 이 사람 누구야?’ 잠을 잘 시간을 훌쩍 넘긴 하임이가 엄마와 함께 안방으로 들어가자, 아빠는 진지한 표정으로 화두를 던졌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의미였다.

“저희들의 결혼생활이 어땠는지가 저희들한테는 가장 크고 중요한 대목이지만, 사실 그건 저희들만의 문제잖아요. 그 얘기보다는 장애인의 결혼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대한 관점은 각자가 다 다를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나의 장애를 상쇄시켜 주거나, 나의 장애를 대신해서 뭔가를 도와주거나, 아니면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대신 채워줄 수 있는 이성을 원하는 게 현실적으로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요?”

그는 시각장애1급끼리 결혼한 입장을 중심으로 진지한 의견을 풀어냈다. 우선 기본적으로 건강한 청춘남녀의 연애목적은 명확하다고 했다. 자신과 뭔가 영혼이 맞거나, 아니면 뭔가 상황과 의견이 상통하거나, 진짜로 서로의 성적인 매력에 확실하게 이끌리는 등의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장애인들의 연애관과 결혼관 역시 거기에서 비켜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연애와 결혼은 대부분 비장애인의 연애와 결혼관에서 비켜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일단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언제나 ‘왜?’라는 전제와 질문을 받게 된다는 거죠. ‘왜 하필 그런 사람과?’, ‘그 사람 아니더라도 충분히 너는…’, 이런 질문에 스스로 얼마나 잘 방어하고 스스로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왜냐, 서로의 빈 부분부터 채우기를 우선 원하다 보면, 채우기 위해 만났던 상대방이 안 채워줬을 때 굉장히 힘들어지거든요. 그 상대방에게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은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까 결국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계속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 그게 장애인끼리의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가장 큰 화두가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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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과 ‘받아들임’은 전혀 다른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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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이자 남편인 유석종 씨와 긴 대화를 통해 들은 내용 중에는 정말 이 지면에 꼭 옮기고 싶은 진지한 의미들이 가득했다. 기본적으로는 안내견들이 어떻게 선발되고 어떻게 훈련받는지, 그 안내견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안내견들이 은퇴한 뒤엔 어떻게 살게 되는지, 그건 현장의 전문가한테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문답이 분명했다. 더불어 그가 살아온 지난 시절의 인생담 역시 빼놓기 힘든 영화 몇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선천성 시각장애라는 거, 저는 최소한의 빛의 유무조차 안 보이는 인생을 살아왔는데요. 저 나름의 갈등이랄까? 이걸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은 ‘인정하자’는 거였어요. 저는 ‘인정한다’와 ‘받아들인다’를 전혀 다른 의미라고 구별합니다. 받아들인다는 건 ‘이건 아닌데 어쩔 수 없이’라는, 절반은 포기한 상태로 ‘나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의미가 돼요. 포기의 개념이 앞선다는 거죠. 그런데 인정한다는 거는 아주 명확합니다.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는다’ 확실한 이분법으로 아예 나눠지잖아요. 그 이분법 안에는 ‘긍정한다’는 전제가 명확히 포함돼 있는 거예요. 인정하고 안 하고의 중간단계 자체가 없다는 거죠.”

‘받아들인다’는 거, 지금은 당장 안 되지만 차차 받아들이겠다는 식의 논리는 긍정하기 힘들어서, 유석종 씨는 빨리 인정하는 습관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포기 또한 빠르단다. 왜냐, 빠른 포기를 경멸하는 사회의 시선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오히려 의지가 약해 포기 못하고 붙잡은 채 고생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란다. 포기도 빨리, 인정도 빠르게, 대신 무언가가 확실하다고 느끼면 일단 도전부터 시작한다는 그의 인생관은 지금의 ‘그의 삶’을 만들어온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녀’를 인생의 반려자로 만나게 된 힘 역시 그것 아니냐고 물으니, 맞는 것 같다며 그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아휴, 너무 많이 기다리셨네요. 말씀 많이 나누셨어요?” 안방에서 한참 동안 징징대던 하임이를 재우는 데 성공한 ‘그녀’가 돌아왔다. 식탁 테이블 자리에 함께 앉은 엄마이자 아내인 명지 씨한테 몇 가지 질문을 전했다. 그런데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 이만큼 크게 놀란 경우가 있을까 싶은 상황이 이어졌다. 아빠한테 들었던 답변과 똑같은 언어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의 언어가 이렇게까지 똑같을까? 해답은 집 안으로 되돌아오기 이전에 카페에서 나눴던 대화 내용 속에 다 드러나 있음이 분명했다. 인상적이었던 한 음성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그 의미가 확실하게 전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참 신기했던 건, 따로 카페에서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거예요. 그냥 얘기만 해도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 그런 게 쌓이다 보니까, 정말로 하나의 느낌 같은 게 생겨나는 거예요. ‘아,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처럼 뭔가 대화를 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사람과 사람의 문제니까요.”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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