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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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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식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생전에는 그의 이름도 모르며 지냈네요.
하지만 각종 집회나 행사 때마다 촬영했던 사진들을 일일이 살펴보니,
그의 모습이 많은 참석자들 속 여기저기에 조그맣게 담겨 있었습니다.

 

죽음으로써 서로의 인연이 시작된다는 거,
생전에 맺지 못한 인연을 영원한 이별 뒤에 맞이한다는 거…,
그건 진정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살아있다면, 아마도 몇 달 전 즈음 서로 통성명 나눌 사이가 됐었을 것 같네요.

 

늘 마음속으로 그와 술잔을 나누며 기울입니다.
안주 하나 그의 입에 넣어주며 건배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힘든 기억, 힘겨웠던 과거를 털어내려는 그의 표정은 어둡지만,
마지막 건배를 나눌 때면 영정 속 얼굴처럼 환하게 피어오릅니다.

 

편한 옷차림으로 십여 분 걸어가면 그가 사는 곳이 나타날 것 같고,
그 문을 두드리면 환한 웃음의 그가 악수를 청할 것 같습니다.
또 한잔 나누자며 그가 먼저 신발을 신고 나서겠죠.

 

2.

그리움을 흰 종이 위에 가득 담으며, 그의 얼굴을 그리고 있습니다.
모두의 가슴에 남긴 그의 마지막 미소를 연필로 그리는 겁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절친하게 지냈던 그의 동료들에게
이 그림을 액자에 담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 완성보다는 이 정도까지만 그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의 삶이 완성을 보기도 훨씬 전에 멈춰 섰듯이 말입니다.
미완성의 그림…, 나머지는 그리움으로 채우렵니다.

‘그가 그립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새겨놓은 채로 말입니다

 

註 : 故 송국현 동지는 24세 때 후천적 중복장애를 얻고, 이후 인생의 황금기인 27년의 긴 세월 동안 장애인생활시설 안에서만 살아왔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탈시설의 꿈을 이루고자,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2013년 10월 세상 속으로 나왔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의 몸인데도 장애등급이 3급이란 이유 하나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역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제2, 제3의 인생을 꿈꾸며 세상에 한 걸음씩 적응해가던 그는 2014년 4월 13일 혼자 있던 연립주택 반지하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중태에 빠졌고, 결국 나흘 뒤인 17일 이른 새벽에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심한 언어장애로 주변에 도움조차 청하지 못했고,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는 그 화재 연기 속에서 몇 걸음마저 옮기지 못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의 몸이 장애등급재심사를 통해 3급으로 재판정이 났습니다. 1급, 2급이었다면 살아났을까요? 3급이니까 그냥 홀로 죽어야 하는 건가요? “장애등급제가 송국현을 죽였다!” 이 외침의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작성자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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