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진 음악여행⑮]노르웨이를 세계로 알린 최고의 뉴웨이브 그룹 A-HA(아-하) > 문화


[성우진 음악여행⑮]노르웨이를 세계로 알린 최고의 뉴웨이브 그룹 A-HA(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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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대의 팝 음악 시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면 억울한 그룹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럴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꽃미남 그룹 ‘듀란 듀란’(Duran Duran)과 여장 남자 보이 조지가 이끌던 ‘컬처 클럽’(Culture Club)이 우선적으로 거론 되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영국이나 미국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 한방의 대역전 싱글 <Take On Me>로 세계 팝 시장을 정복한 3인조 밴드가 바로 ‘아하(A-Ha)’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1981년에 결성되었다고 전해지는 아하는 원래 세 명의 멤버들은 11, 12살일 때 이미 구상되었던 그룹이었는데, 노르웨이의 한 마을에서 친구로 지내던 폴(Paul Waaktaar-Savoy / 기타)과 맥스(Magne Max Furuholmen / 키보드)는 어려서부터 장래의 희망을 팝 스타로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데모 테입을 만든 후 그것을 갖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오슬로의 한 신문이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스타가 되겠습니다”라고 한 말이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이고 결국 첫 번째 시도는 좌절로 돌아갔다. 조롱거리가 되긴 했지만 두 사람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에는 노르웨이가 너무 좁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들은 옆 나라의 대스타인 아바의 예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아바도 원래 스웨덴어로 노래를 불렀지만 한계를 느끼고는 영어로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던 것.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영국행이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팝 음악 시장은 미국이지만 미국은 이 북구 청년들에겐 너무 멀고 낯선 나라였다. 영국은 같은 유럽에 속해 있는데다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성공하면 그대로 세계무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라 영국으로의 유혹은 막강했었다.
우선 두 소년은 우선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그 다음엔 영어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마침내는 영국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웠다. 두 소년은 정신병원에 보조로 일하면서 영국 런던행 비행기표를 마련했다.
천신만고 끝에 런던에 도착한 두 사람, 여러 레코드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역시 그 누구도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두 소년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당시 이들 말고도 영국 무명들의 데모 테입으로도 넘쳐날 판국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막 부딪히기에는 자신들의 야심이 너무 컸다는 걸 깨닫고, 둘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두 사람은 ‘노래’에 빈틈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다음 할 일은 멋진 보컬리스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런던에 있는 수많은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보컬리스트를 찾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하긴 영국도 아닌 노르웨이 출신으로 영어도 미숙한 어리버리(?!) 두 소년의 제의에 선뜻 응할 만한 선견지명의 영국 보컬리스트는 없었던 것. 결국 낙담하고 참담한 기분으로 두 사람은 다시 노르웨이 오슬로 행 비행기표를 끊어야 했다고 한다
본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보컬리스트를 찾았던 그때 그들 앞에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핸섬한 용모까지 받쳐주는 모튼 하켓(Morten Harket)이었다. 다행히도 모튼은 폴과 맥스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들의 연주를 예전에 한번 듣고는 언젠가는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하니 마치 신이 주신 인연이었던 것.
완벽히 3인조가 된 이들은 1983년 초에 다시 런던으로 날아갔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워서, 그들이 얻은 아파트에는 침대가 두 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번갈아 가며 한 사람은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서 자야했다. 게다가 전원 공급도 하나밖에 없어서 욕실을 사용할 때는 다른 전기 제품의 사용을 일절 중단해야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생계를 위해 세 사람은 우선 술집에 나가 1시간에 1파운드 씩 받는 웨이터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레코드회사 찾기는 계속되는데, 모튼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들이 노르웨이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전화를 받은 사람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데모 테입 제작비, 그리고 전화비조차도 없는 형편이어서 셋이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죠. 게다가 그 당시는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만 나면 몸이 떨리곤 했는데요. 틀림없이 경찰이 불법체류자라고 우리들을 체포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랬어요.”
그러던 이들은 어렵사리 여러 가지 관문을 거쳐 세계 굴지의 워너 브라더스 회사와 계약을 맺게 된다.  사전의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1984년 여름에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인 토니 맨스필드(Tony Mansfield)와 앨런 테이미(Alan Tamey)와 그 역사적인 데뷔 앨범인 [Hunting High And Low]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데뷔 앨범 수록곡인 10곡은 모두 그간 폴 왁타가 만들어 놓은 30여 곡에서 선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첫 싱글인 <Take On Me>가 발매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음악 싱글만 나왔을 때의 반응은 참담했었다는데…. 그저 그런 수준에서 묻혀버릴 뻔하다가 이들을 살린 것은 당시의 홍보 대세였던 뮤직비디오였다. 엄청난 반응으로 폭발적인 신장세를 펼치던 MTV와 함께 <Take On Me>의 뮤직비디오는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처리로 인하여 전 세계 팝 팬들을 사로잡고 말았다. 앨범 제작 과정을 지켜보면서 차츰 아하에게 확신을 가지게 된 워너 뮤직은 아주 팍 밀어주기로 결심하고서, 마이클 잭슨의 <Billy Jean>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스티브 배런(Steve Barren)이 제작하고 유명한 만화가인 마이크 패더슨(Mike Patherson)을 기용해서 연필 드로잉 기법으로, 아직까지도 진보적인 뮤직비디오 선구자이자 역사로 손꼽히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비디오와 싱글 모두의 엄청난 인기로 첫 싱글이 발매된 지 4개월만에 <Take On Me>는 1985년 10월 19일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정복하는 영광의 날을 맞았다. 노르웨이 청년들이 그간 했던 고생은 모두 추억이 된 순간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 <Hunting High And Low>에서는 계속해서 <The Sun Always Shines On TV>, <Train Of Thought> 등이 차트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2천만 장이 넘는 천문학적인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내 데뷔 앨범의 대성공을 다 만끽하기도 전에 전 세계를 도는 월드 투어를 가졌다. 그리고 하나 더. MTV 시상식에 8개 부문에 지명되어 모두 7개 부문을 차지하는 경사를 맞게 된다. 인구 4백만의 모국 노르웨이에서도 아하의 데뷔 앨범은 2백만 장 이상 팔렸고, 이로써 아하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노르웨이의 첫 밴드가 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지난 98년 12월 11일 대망의 노벨 평화상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하는 <The Sun Always Shines On TV>와 미발표곡인 <Summer Moved On>을 부르면서 모습을 보여 재결성이 예측되기 시작했는데, 결국 다시 워너 뮤직과 2장의 앨범 계약을 체결하면서 신보들이 나왔었다. 아직도 한국의 라디오 방송에서 아주 자주 나오고 있는 <Take On Me>의 주인공인 아하가 2004년 12월을 맞아 이들의 히트 곡을 총 망라한 베스트 앨범 [Singles 1984/2004]를 내놓으며 우리에게 돌아왔다.
왠지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왕년의 보리음료 ‘맥콜’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는데(아시는 세대는 이해하시리라…) 간만에 80년대의 추억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완전 왕년의 구닥다리는 아니니 걱정은 붙들어 매두어도 좋다!…

  글 성우진(대중음악평론가/방송작가)


 

작성자성우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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